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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가든’은 ‘CF 가든’

‘시크릿 가든’은 ‘CF 가든’

장면 1: 주원이 말한다. “이건 그쪽이 생각하는 그런 옷이 아니야. 이태리에서 40년간 트레이닝복만 만든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껏…”

장면 2: 자신에게 대놓고 들이대는 주원 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운 라임이 침대 위에서 책을 집어 든다. 주원의 서재에서 봤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라임이 책을 읽는다. “내가 여기서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말해줄래?”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에 달려 있지.”

장면 3: ‘표절 논란’에 휩싸인 한류스타 오스카가 ‘몽벨’ 팬 사인회장을 찾은 팬들에게 말한다. “오빠가 음정은 불안해도 양심은 7옥타브거든.”

이것만 보고도 지그시 미소 지었다면 당신은 이미 ‘시가폐인’. 지난 16일 종영된 드라마 ‘시크릿 가든’(극본 김은숙, 연출 신우철·권혁찬)의 몇 대목이었기 때문이다.

“귀족적인 마스크에 거침없는 기품, 후덜덜한 섹시미”를 가진 캐릭터와 “신기하고 얼떨떨한” 스토리 덕분에 이 드라마는 20~30대 사이에선 ‘체감시청률 80%’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세 장면은 주인공 김주원(현빈)과 길라임(하지원), 오스카(윤상현)의 극중 캐릭터와 각자의 사정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대목이다.

이 대목들엔 공통점이 또 하나 있다. 간접광고와 상품배치광고(PPL·Product Placement)다. ‘시크릿 가든’은 인기몰이와 더불어 치밀한 상품전략으로 주목 받았다. 드라마 외주제작 업계에선 드물게 드라마 마케팅 전문회사에 간접광고부터 PPL, OST 제작을 모두 담당하도록 했다. 기업은 물론 정부부처까지 흥행 보증수표나 다름없는 ‘김은숙·신우철 콤비’에 기대를 걸고 간접광고에 나섰고 대부분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뒀다. 김·신 콤비는 이미 ‘파리의 연인’ ‘온에어’ 등의 히트작을 냈다.

특히 드라마의 이야기 줄기와 맞물린 간접광고 상품들은 ‘완판’ ‘매진’ 행렬을 이었다. ‘시가어록’을 빌려 말하자면, 이 작품은 8년간 드라마만 써온 김은숙 작가가 한 자 한 자 공들여 쓴 광고가 녹아있는 ‘CF 가든’이기도 하다.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주원이 입어 브랜드가 되다
“이태리에서 40년간 트레이닝복만 만든 장인이 한 땀 한 땀…”, “프랑스 남부출신 자연주의 디자이너가 꽃과 인권을 주제로 한 코 한 코…” 같은 주원의 명대사로 알려진 ‘트레이닝복 4종 세트’는 드라마의 인기를 토대로 상품이 급조됐다.

이 트레이닝복은 원래 작가의 대본대로 드라마의 스타일리스트가 제작한 옷이다. 방영 이후 크게 화제가 되자, 드라마의 총괄 마케팅을 맡은 ㈜어치브그룹 디엔(이하 ‘디엔’) 은 이 옷을 실제 기성복 브랜드로 만들어 출시했다. 이미 나온 상품을 드라마에 노출시키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드라마의 내용을 상품으로 발전시킨 사례다.

‘디엔’의 김혁준 전략기획실장은 “마침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의류사업을 준비 중이었다”며 “그런데 드라마에 나온 트레이닝복이 반응이 좋아 브랜드로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트레이닝복 4종은 지난해 12월 31일 ‘옐로클락’이라는 상표로 출시돼 120만원대의 고가로 판매된다. 이 중 주원이가 네 번째로 입었던 ‘골드 스터드’ 트레이닝복은 이미 다 팔렸단다.

‘자막 연시’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문학과지성사의 ‘현빈 시집’ 꾸러미(왼쪽). 민음사의 ‘주원과 라임의 테마도서’ 6권.

드라마의 한 장면도 상품이 됐다. 마지막 회에 방영된 오스카의 콘서트신이다. 실제로 콘서트를 열고 이를 드라마에도 삽입했다. 티켓값이 만만찮은 가격(5만5000원~9만9000원)인데도 예매 시작 5분 만에 2000석이 동났다. 드라마에 들어간 분량은 10분 남짓이지만, 이 한 장면이 만든 상품가치는 1억원을 훨씬 웃돌았다.

지난 15일 개최된 콘서트에는 윤상현·현빈뿐 아니라 백지영, 포맨 등 이 드라마의 삽입곡을 부른 이들이 대거 무대에 올랐다. ‘디엔’은 앞으로 국내와 일본에서 콘서트를 두 차례 더 열 계획이다.



'앨리스 증후군’에 빠진 시청자…

드라마가 일으킨 문학열풍
‘시크릿 가든’이 낳은 기현상인 ‘동화 다시 읽기’ 열풍에도 PPL이 숨어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루이스 캐럴·비룡소 펴냄)가 대표적이다. ‘사회 지도층’ 주원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 라임이 사랑에 빠지면서 서로를 이해하려고 읽은 책으로 등장했다. 제작진 역시 ‘마법 같은 사랑’에 빠진 주원과 라임을 이상한 나라에 던져진 ‘앨리스’로 표현하면서 시청자의 관심을 끌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이 동화는 드라마에 나온 이후 지금까지 10만 부 이상이 팔려나갔다. 국내에 출시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번역본은 100여 종에 달하지만,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나온 그 책’에만 지갑을 열었다.

이미 2주 전에 책을 샀다는 직장인 최모(35)씨는 “주원과 라임이 읽는 장면을 보고 다시 사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최씨는 “드라마에 주요한 소재로 등장하다 보니 이 동화 속에 드라마를 풀어가는 코드도 있을 것 같았다”며 “드라마에 나온 책을 사본 건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드라마의 소재로 쓰인 책은 2005년에 나온 완역본이다. 이 드라마에 PPL 업체로 참여한 민음사의 계열사인 비룡소에서 펴낸 책이다. 라임에게 “인어공주처럼 없는 사람처럼 있다가 거품처럼 없어져 달라”던 주원이 사랑 때문에 스스로 인어공주가 되기를 자처하면서 등장한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비룡소 펴냄)도 새삼 다시 사서 읽는 이들이 늘었다.

이 밖에도 ‘라임의 독백’으로 인용된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이응준)와 라임의 책꽂이에 꽂혀있던 ‘동화처럼’(김경욱),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강기원), ‘나쁜 소년이 서 있다’(허연),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김도언)도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아 5000부에서 1만 부가 팔렸다. 모두 민음사의 책들이다.

민음사 홍보팀의 이미현 부장은 “이렇게까지 팔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구매자의 60~70%가 20~30대로 드문 현상”이라고 말했다.

제목만을 이어 만든 ‘자막 연시’로 등장한 시집들도 불티나게 나갔다.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진동규), ‘가슴속을 누가 걸어가고 있다’(홍영철),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황동규),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황인숙), ‘너는 잘못 날아왔다’(김성규)가 그렇다. 문학과지성사, 창비사에서 펴낸 시집이다.

이 책들은 PPL이 아닌데도 덩달아 인기를 끌었다. 김은숙 작가가 평소 인상 깊게 읽은 시집들이어서 드라마에 썼다는 후문이다. 이 시집들 역시 드라마에 나온 이후 주문이 줄을 이었다. 인터넷 교보문고에서는 ‘현빈 시집’이라는 꾸러미로 묶어 팔아 매진됐다.

이런 장면도 PPL이었다니, 싶은 예도 있다. 예를 들면 이런 대목이다. 극중에서 라임이 오스카에게 암벽등반을 가르쳐주려고 만났을 때다. 라임은 같이 있던 오스카의 매니저에게 “종헌씨도 같이 하면 좋을 텐데” “제가 식단이랑 운동 스케줄표 짜드릴게요”라며 운동을 권한다. 오스카도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야. 몸짱이 되라는 게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살라고”라며 거든다.

백화점 출입구에서 김희원(최윤소)이 담배를 피우는 남성에게 “금연구역이고 아이들도 있는데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시면 안 되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시면서 왜 이렇게 당당하세요”라고 따지는 장면도 의도된 부분이다. 이는 모두 보건복지부의 금연과 비만예방 정책을 홍보하는 PPL이었다. 오스카가 보건복지부의 홍보대사가 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시청률 솟자 협찬 상품도 ‘대박’이렇듯 ‘시크릿 가든’을 제작지원한 업체는 14개에 달한다. 마임, 리솜리조트, 프랑코 페라로, IBK기업은행, 14일동안, 오렌지 팩토리, 잡코리아, 카페베네, CS호텔, 슈페리어, 보건복지부, 홀하우스, 롯데면세점, 파인비치리조트 등이 제작지원에 참여했다. 지상파 드라마로는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민음사, BMW코리아, LG 사이언, 소니, 자생한방병원 등 PPL 업체도 여럿이다.

‘디엔’의 김혁준 실장은 “1회 때는 제작지원 업체가 10곳이었지만, 방영 이후 참여의사를 보인 업체가 줄을 이었다”며 “14개 업체 이상은 받기 곤란해 4~5곳은 거절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제작지원이나 협찬 형식의 PPL 단가는 적게는 1억 5000만원에서 많게는 5억원에 달한다.

광고주들이 큰돈을 들여가며 TV광고가 아닌 드라마를 통해 마케팅을 하려는 이유는 그 효과 때문이다. 잘만 하면 기대 이상의 수익을 얻는다. 특히 ‘대박 드라마’일 경우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의 몰입도나 애정이 구매욕으로 연결되기 쉽다.

토종 커피전문점인 ‘카페 베네’는 드라마 마케팅으로 단기간 내에 시장에서 자리를 잡은 업체다.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의 제작지원에 참여한 게 계기다. 홍보팀의 김동한 과장은 “시트콤을 통해 ‘하이킥 커피’라는 애칭을 얻을 정도로 시청자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심어줬다”며 “시트콤 방영 시기에 가맹점 개설문의나 매출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또 “드라마 PPL은 자연스럽게 시청자의 감성에 호소하기 때문에 특정 연령층을 공략하기에 적절하고 브랜드 회상률도 높아 광고효과가 좋다”고 설명했다. 카페베네는 이후에도 ‘대물’ ‘커피하우스’를 비롯해 현재도 ‘시크릿 가든’‘역전의 여왕’ 등 주요 드라마를 계속 제작지원한다.

아웃도어 브랜드인 ‘몽벨’은 ‘시크릿 가든’에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를 통한 간접광고와 PPL을 모두 했다. 코바코를 통해 간접광고를 하면 상품명 노출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대신 드라마 초반 “이 드라마는 간접광고를 포함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나간다. 몽벨은 드라마에서 주요 인물들의 의상제공뿐 아니라 오스카의 팬사인회장으로 시청자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몽벨 마케팅팀의 이혜선 대리는 “첫 회부터 드라마 반응이 좋길래 브랜드를 확실하게 드러낼 수 있는 간접광고까지 병행하기로 결정했다”며 “15초 짜리 TV광고 보다 드라마를 통한 간접광고가 훨씬 각인효과가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주인공들이 입었던 점퍼는 완판 돼 비용 대비 큰 수익을 거뒀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간접광고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드라마 마케팅 시장은 갈수록 커지지만 혼란도 있다. 합법적인 간접광고보다 음성적인 간접광고인 PPL이 훨씬 많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모호한 구분도 문제다.

정부는 제작지원이나 PPL을 양성화해 시장을 투명하게 하려는 의도로 지난해 1월 방송법 시행령을 개정해 간접광고를 허용했다. 이를 통하면 테이프나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않고 상품명 노출이 가능하다. 단, 노출 정도는 프로그램 시간의 5%를, 상표·로고 등의 크기는 전체 화면의 4분의 1을 넘길 수 없게 했다. 소비를 권유하는 대사가 들어가서도 안 된다. 드라마 시작 전에는 “이 프로그램은 간접광고를 포함하고 있다”는 자막을 넣어야 한다. 정부는 이렇듯 간접광고를 허용한만큼 개정 방송법 시행령에 따른 간접광고를 해야 한다는 견해다. 외주제작 드라마에서 일반적으로 이뤄지는 제작지원·협찬 방식의 PPL은 편법행위로 본다.

그러나 드라마 시장에선 과거의 PPL 관행이 여전하다. 제작지원이나 협찬은 광고수익을 모두 제작사 측이 가져가지만 간접광고를 하면 코바코에 위탁수수료(14%)를 떼주고 나머지도 방송사와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간에 수익 배분을 어떤 비율로 할지도 정해지지 않아 아직도 논쟁 중이다.

제작 여건이나 재정이 열악한 외주제작사들은 “간접광고 수익을 외주제작인 경우엔 외주제작사가, 방송사 자체제작인 경우엔 방송사가 전액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방송사들은 난색이다. 이런 이유로 아직도 간접광고보다는 과거의 제작지원·협찬 방식의 PPL이 더 많이 이뤄진다.

방송통신심의위의 한 관계자는 “법에 따른 간접광고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제재할 근거는 없다”며 “다만 제작지원 등의 PPL은 협찬주에게 광고효과를 주도록 제작해서는 안 된다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에 따라 심의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종합편성 채널의 도입으로 앞으로 드라마 마케팅 시장이 두 배 이상 커지리라고 전망한다. 현재 지상파와 케이블을 포함한 TV 간접광고 시장 규모는 연간 500억원에서 1600억원으로 추정된다.

이희복 상지대(언론광고학부) 교수는 “아직은 과도기여서 시장에 혼란이 있다고 본다”며 “방송콘텐트 활성화를 위해 간접광고에 참여하는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광고산업 참여자들이 자율적으로 수익배분율을 합의한 뒤 정부가 이를 수렴해 세부 시행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교수는 “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구분이 모호한 간접광고와 제작지원·협찬의 개념도 다시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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