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재자의 최후는 초라했다’
아랍인들이 늙은 독재자들에게 항거하면서 세계를 놀라게 한 지난 1월 두 살 난 아들과 함께 ‘거대한 바퀴벌레(The Giant Cockroach)’라는 러시아의 어린이 명작을 읽었다. 평온한 동물의 왕국이 끔찍한 훼방꾼의 등장으로 산산조각 나는 이야기다. ‘붉은 머리에 긴 수염을 가진 무시무시하게 큰 바퀴벌레’가 훼방꾼이다. 이 바퀴벌레는 자기보다 훨씬 큰 동물에게도 새끼를 자신의 저녁식사로 넘기라고 협박한다. 동물들은 그의 횡포에 눈물을 삼키며 나약한 희생물이 되고 만다. 늑대들은 두려움에 떨며 서로를 잡아먹는다. 한 코끼리는 겁에 질려 벌벌 떨다가 발을 헛디뎌 그만 고슴도치 위에 주저앉고 만다.
이 바퀴벌레를 대적할 상대는 없다. 그러다가 한 장난꾸러기 캥거루가 그는 한낱 바퀴벌레일 뿐 전혀 거대한 존재가 아니라고 입바른 소리를 한다. 하마는 캥거루에게 “넌 우리를 더 난처하게 만들 뿐이야”라며 무례하게 굴지 말고 입 다물라고 쏘아붙인다. 그때 어디선가 참새 한 마리가 날아와선 그 바퀴벌레를 삼켜버린다. 그러자 동물 모두가 기뻐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독재자의 부침을 풍자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긴 어렵다. 대개 폭군은 권좌에 있는 동안은 천하무적처럼 행세하지만 몰락하면 우스울 정도로 나약해진다. 피지배자가 그들을 놀리기 시작하면 어떤 독재자라도 금방 우스운 꼴이 되고 만다. 그들은 종종 사람들을 죽이거나 감옥에 가두면서 권력을 유지한다. 이란, 벨로루시, 우즈베키스탄이 떠오른다. 하지만 진정한 민중의 항거에 직면하면 독재자는 바퀴벌레만한 왜소한 존재로 오그라든다. 튀니지는 가장 최근의 사례일 뿐이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이집트의 오랜 독재자도 그의 사임을 요구하는 민중의 봉기에 직면했다.
‘거대한 바퀴벌레’는 ‘실수쟁이 의사(Doctor Ouch)’나 ‘악어 이야기(The Crocodile)’ 등 유쾌한 어린이 동화를 쓴 코르네이 추콥스키가 1920년대 초에 쓴 동화다. 그가 이 동화를 쓸 때 스탈린을 염두에 뒀을까? 동화 속 바퀴벌레의 수염을 생각하며 스탈린의 상징이었던 콧수염을 떠올리는 독자도 있다. 스탈린의 숙청으로 감옥에서 처참하게 생을 마감한 러시아 시인 오시프 만델스탐은 1934년 그 은유를 이렇게 풍자했다. “그 바퀴벌레의 콧수염은 웃음짓고, 그의 군화는 반짝인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분명치 않다. 1921년 추콥스키가 이 이야기를 구상할 무렵만 해도 스탈린은 장차 공산당의 우두머리가 되려고 발버둥치던 그루지야 출신의 잘 알려지지 않은 폭력배일 따름이었다. 그가 피비린내 나는 명성을 얻기까진 몇 년이 더 걸렸다. 추콥스키 자신도 그런 연관성을 인정해도 아무런 위험이 없는 시점에도 부인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든다. 훨씬 체제순응적인 작품에서도 흠을 잡던 소련의 검열관들이 어떻게 이 바퀴벌레 이야기를 그냥 뒀을까? 한 가지 가설은 풍자(만약 사실이었다면)가 너무 적나라해 그런 사실을 인정하는 일조차 명예훼손에 가담한 죄를 뒤집어 쓸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스탈린도 자신의 정치적 목표에 부합시키려고 이 바퀴벌레 이야기를 끌어들인 듯하다. 1930년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그는 당내 반대 의견을 이렇게 질타했다. “그들은 바퀴벌레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놀라 뒷걸음칩니다. 바퀴벌레를 직접 보기도 전에 공포에 떨며 소리 지릅니다. …소련의 종말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진정시키고 확신시키려 합니다. …당신들이 전혀 겁낼 필요가 없는 한낱 ‘바퀴벌레’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몇 년 뒤 추콥스키는 일기장에 스탈린이 자신의 이야기를 “표절했다”고 적었다. “그는 내 이야기 전체를 멋대로 인용하며 작가의 이름조차 밝히지 않았다.”
1990년대 들어 러시아가 스탈린주의의 잔재를 들추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바퀴벌레’에 대한 무수한 재해석이 나왔다. 그러자 작가의 손녀 엘레나 추콥스키는 그냥 보고만 있을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한 신문 기고문에서 할아버지는 자신의 이야기에서 “숨겨진 정치적 의미를 찾아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애석하게 생각했다고 적었다. 아울러 그 동화가 스탈린이 부상하기 훨씬 전에 씌어졌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약간 아리송한 어조로 이렇게 덧붙였다. “미래는 현재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문학은 그 그림자를 드리운 존재가 나타나기 전에 미리 알아본다.” 그렇다면 그 바퀴벌레가 스탈린일까 아닐까? 그녀는 “스탈린을 포함해 세상의 어떤 독재자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필자는 아시아 소사이어티의 선임 연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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