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Collection] 지하 서고에선 칭기즈칸이 숨쉰다
[CEO Collection] 지하 서고에선 칭기즈칸이 숨쉰다
서울 종로구 관훈동 대성그룹 본사 지하 3층은 김영훈(59) 회장의 서고다. 사방을 둘러싼 책장에는 1만6000 여 권의 책과 1만여 개의 DVD, 비디오테이프 등이 빼곡히 꽂혀 있다. 2002년부터 ‘십진 분류법’에 따라 전담 사서가 관리한다.
김 회장은 시간이 날 때마다 책 쇼핑을 즐긴다. 인터넷 서점은 물론 교보문고 등 오프라인 서점도 즐겨 찾는다. 한번 갈 때마다 수십 권의 책을 사 온다. 특히 해외출장을 가면 제일 먼저 들르는 곳이 서점과 DVD 상점이다.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책, DVD를 발견하면 꼭 두 개씩 사 온다. 한 개는 집에, 다른 하나는 서고에 놓기 위해서다.
역사 인물에게 배우는 경영 비법그의 컬렉션은 역사와 연관된 게 많다. 어린 시절부터 유독 역사 과목을 좋아했으며, 열정은 컬렉션으로 이어졌다. 초등학교 때 2000쪽에 달하는 이홍직의 <국사대사전> 을 다 읽었을 정도다. 한때 목회자가 꿈이었던 그와 늘 함께하는 성경이 역사 이야기라는 점도 한몫했다.
컬렉션 중에는 칭기즈칸, 이순신 등 위인과 관련된 게 많다. 그와 관련된 이론서, 소설, 다큐멘터리, DVD 등을 모두 모은다. 그는 “사람은 늘 무풍지대 속에서 사는 게 아니다”며 자신도 역사 속 인물처럼 갈등 속에서 종합적 판단을 해야 할 때가 있다고 했다. 이런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CEO로서 결단력과 경영 마인드를 배웠다고 한다.
투자 원칙도 이순신의 전쟁 전략과 유사하다. 세계 4대 해전 중 하나인 한산도 대첩이 그 예다. 이순신 장군은 일본 함대가 거제와 통영만에 접근해 공격하자 서너 척의 배만 띄워 군사력이 약한 것처럼 가장해 상대를 방심시켰다. 그 틈을 타 소나기처럼 포를 쏟아부어 왜적을 물리쳐 대승을 거뒀다.
김 회장은 표적이 앞에 있을 때 일단 뒤로 물러서 생각해 보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박을 터트릴 수 있다고 말하는 투자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유혹을 느낄 때도 있지만 한발 물러나 생각해 보면 허황된 것이란 점을 곧 알게 된다. 이순신 장군도 한산도 대첩에서 후퇴 작전으로 적을 무너뜨렸다. 그는 평소 직원들에게 역사 이야기를 자주 들려준다. 국사대사전>
활을 쏠 때 칭기즈칸 떠올려어린 시절 김 회장 눈에는 남산 석호정(국궁 활터)에서 활 쏘는 사람들의 모습이 무척 멋있어 보였다. 40대 후반이 돼 오십견 판정을 받은 후 지인 권유로 국궁을 시작했다. 그 덕분에 오십견은 자연적으로 치유됐고 국궁 매니어가 됐다. 그는 활을 쏠 때마다 컬렉션 하는 책, DVD 속 칭기즈칸의 용맹스러운 모습을 떠올린다. 11층 회장실 책상 옆에는 활 두 개가 있었다. 그는 물소 뿔로 만든 활을 보여주며 말했다. “활을 최고로 당겼을 때 현은 후진해 있지만 반드시 자신의 자리인 앞으로 돌아갑니다. 이러한 활의 복원력에서 ‘칭기즈칸’을 떠올리죠.”
칭기즈칸은 부족의 수장이었던 아버지가 독살돼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버림받았지만 결국 여러 부족을 통합해 원나라를 세웠다. 김 회장은 가끔 소장한 BBC 다큐멘터리 ‘Genghis KHAN(칭기즈칸)’을 보면서 숱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우뚝 일어선 영웅의 복원력에 감동 받는다고 한다. “칭기즈칸은 활의 현처럼 뒤집어지고, 뒤로 밀려 본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활을 쏘는 힘에서 느껴지는 추진력에서 그가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제가 CEO로서 항상 갖춰야 하는 부분이지요.”
그는 ‘칭기즈칸’과 관련된 자료를 가장 많이 찾고 모아왔다. 몇 년 전 티머시 메이의 <칭기즈칸의 세계화 전략 몽골병법> 을 미국 웨스트포인트 도서관에서 읽고, 책을 사고자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적도 있었다. 다음 출장지인 영국 피커딜리 광장의 한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했는데, 무척 반가웠다고 회상했다. 칭기즈칸의 승리 비결과 전쟁 전략을 상세히 다룬 이 책은 김 회장의 권유로 대성㈜에서 출판됐다. 그가 소장한 칭기즈칸과 관련된 책과 DVD는 무려 98개다.
다양한 트렌드도 안 놓친다서고에는 역사 관련 자료만 있는 게 아니다. 사회과학 도서가 23%, 문학 15%, 순수과학 7%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이 있다. 종류도 천차만별이다. 이론서부터 만화책, 어린이 책까지 장르와 연령대를 불문하고 수집한다. 신작 영화부터 고전 영화까지 모은 DVD 종류도 다양하다. 새롭고 흥미로운 것이라면 무조건 읽고 감상한다. 다양한 분야를 접하는 그만의 이유가 있다. 대성창업투자를 통해 문화사업을 하면서 드라마, 음원, 게임, 영화 펀드 등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트렌드에 뒤처지면 할 수 없는 일이라 늘 새로운 것을 찾는다.
영화 펀드의 경우 직접 시나리오를 검토하거나 영화를 본 후 투자를 결정하는 때가 많다. 이제까지 국내에서 운영한 영화 펀드 중 대성창업투자만 수익을 냈다. 특히 영화 ‘올드보이’ ‘말아톤’으로 각각 150%, 130%의 수익을 올렸다. 김 회장은 ‘말아톤’을 투자한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꼽았다. ‘말아톤’은 촬영이 끝났는데도 투자자가 없어 개봉을 못 하고 있었다. 지체장애인에 대한 영화라 모두 투자를 꺼렸다. 김 회장은 시나리오를 검토한 후 과감히 투자를 결정했다. 그게 대박이 났다.
그는 콘텐츠코리아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문화사업의 판로를 열고자 노력해 왔다. 2006년 인수한 포털사이트 ‘코리아닷컴’을 최근 외국인 대상 영문 사이트로 개편했다. 적자 누적으로 파산 상태에 이른 터치스크린 제작사 디지텍시스템을 인수해 수익률 2700%를 달성하기도 했다. 그는 앞으로 문화 콘텐트 사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전달(Delivery)과 테크놀로지(Technology)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콘텐트라도 어떤 방식으로 가공하는지가 승부를 가를 거란 얘기다. 이런 이유로 영화 후반부 작업에 대한 관심이 크다. 2005년에는 ‘반지의 제왕’ ‘라스트 사무라이’의 후반부 작업을 담당했던 뉴질랜드 회사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한국 시장 진출을 모색했다. 촬영만으로 전달하지 못한 영화 스토리를 후반부 작업을 거쳐 실감나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이순신, 칭기즈칸과 같은 역사적 인물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를 직접 제작해 보고 싶은 욕망도 있다. 칭기즈칸의>
신기술과 트렌드를 알고자 매년 스위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다보스 포럼)에도 꾸준히 참석한다. 그는 페이스북 CEO 마크 주커버그가 세상에 잘 알려지기 전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만났다고 말했다. 그와 관련된 책, 영화가 쏟아져 나오기 전이었다. 그는 책, DVD를 통해 미처 알 수 없는 것들을 포럼에 참석하면 먼저 알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책이나 DVD가 나올 때쯤이면 테크놀로지나 트렌드에서 한물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문 기사에 나오고 몇 개월이 지나야 책과 DVD로 출간되니까요.” 대성그룹 서고에 있는 책과 DVD는 모든 직원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대출 기한도 없다. 김 회장은 앞으로도 역사 중심의 책과 DVD를 모으겠지만 트렌드와 관련된 자료도 열심히 수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더 많은 직원이 서고를 방문해 역사를 비롯한 각종 자료를 봤으면 합니다. 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느낄 수 있도록요. 제가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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