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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경쟁’ 수수료에서 수익률로

‘랩 경쟁’ 수수료에서 수익률로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 자문형 랩어카운트(wrap account·이하 자문형 랩) ‘전쟁’이 시작됐다. 지난 2월 7일 박현주(53) 미래에셋그룹 회장의 ‘자문형 랩 수수료 인하’ 발언이 시발점이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부상한 자문형 랩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졌던 미래에셋그룹이 삼성증권 등 선두권 증권사를 향해 ‘선전포고’를 한 격이었다.

사흘 뒤인 2월 10일 미래에셋증권은 기존 3% 안팎인 자문형 랩 수수료를 1.9%로 파격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자문형 랩 ‘후발주자’인 현대, SK증권 등이 수수료 인하에 가세했다. 삼성, 우리투자, 한국투자증권 등 ‘선발주자’들은 무대응으로 한발 물러섰다. 2월 14일 수수료 인하가 본격 시행된 후 각 증권사가 ‘영업전쟁’에 돌입한 지 1주일째. 투자자들은 어느 편을 선택했을까.

자문형 랩 선발주자와 후발주자 간 경쟁은 현재로서는 무승부로 볼 수 있다. 우선 수수료를 내린 증권사의 경우 신규 가입금액이 크게 늘었다. 2월 18일 현대증권에 따르면 자문형 랩 수수료를 내린 후 사흘간 약 100억원이 순유입됐다. 종전 하루 평균 유입액이 10억원에 못 미쳤던 것을 감안하면 4~5배가량 증가한 것이다. 현대증권은 앞서 수수료를 기존 1.5~3.0%에서 1.0~1.5%로 대폭 내렸다. 미래에셋증권도 수수료 인하 후 자문형 랩 가입액이 하루 평균 약 30% 늘었다고 밝혔다. SK증권은 17일부터 연 2.0%였던 자문형 랩 수수료를 0.99%로 절반 이상 내렸다.

여기에 ‘수수료 이슈’를 증권업계 전반으로 확산시킨 점도 후발 증권사들의 작지 않은 성과로 꼽힌다. 선발 증권사에 몰려 있던 ‘파이’를 쪼개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여타 중소형 증권사들이 잇따라 수수료 인하에 동참할 예정인 데다 대신증권 등 중형급 증권사들도 조만간 자문형 랩 상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선발주자 vs 후발주자 격돌그러나 수수료 인하 효과가 미풍에 그칠 거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자문형 랩 시장에서 선발 증권사들의 비중이 워낙 큰 데다 수수료를 내리지 않았음에도 이들 증권사 역시 가입금액이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증권은 2월 14일 420억원, 15일 650억원, 16일 570억원이 들어왔고, 우리투자증권도 사흘간 15억원 안팎이 유입됐다. 한국투자증권은 자문형 랩 상품 판매가 호조를 보이며 조만간 랩 잔액이 1조원을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타사의 수수료 인하 후에도 자금 유출입에 큰 변화가 없다”면서 “수수료 인하 경쟁보다 상품 서비스 질로 승부하겠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자문형 랩은 증권사가 고객이 맡긴 돈을 주식·채권 등 다양한 금융상품에 투자해 고객별 계좌에서 통합 관리하는 맞춤형 자산관리서비스다. 랩 상품은 크게 일임형과 자문형 두 가지인데, 증권사가 직접 고객의 일임자산을 운용하는 일임형보다, 투자자문사와 계약을 통해 자문사가 제공하는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일임자산을 운용하는 자문형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스타 펀드매니저가 차린 자문사가 늘면서 수익률 기대심리가 작용한 탓이다.

자문형 랩 규모는 지난해 3월 6500억원에서 연말에 5조2000억원까지 늘었다. 올해 들어선 이달까지 1조원가량이 신규자금으로 들어왔다. 자문형 랩 규모가 불과 11개월 사이에 10배 가까이 폭증한 것.

반면 국내·해외 주식형 펀드는 지난 한 해 12조원이나 유출되며 자산 규모가 크게 쪼그라들었다. 전체 순자산 규모가 지난해 말 기준 주식형 펀드는 100조원대고, 랩(일임형+자문형)은 36조원대로 크게 뒤처지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자문형 랩이 돌풍을 일으키며 주식형 펀드의 자리를 빠르게 위협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자문형 랩은 높은 수익률과 투명한 자산관리를 무기로 앞세워 주식형 펀드와 차별화에 성공했다. 랩의 운용방식은 40~60개 투자종목을 담는 펀드와 달리 8~15개에 압축 투자해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전체 자산을 특정 종목에 100% 투자할 수도 있고, 주가가 폭락할 때는 주식을 다 팔고 현금으로만 보유하는 등 투자에 큰 제약도 없다. 반면 주식형 펀드는 전체 자금의 10% 이상을 특정 종목에 투자할 수 없게 돼 있다. 결국 랩은 집중 투자한 종목의 주가가 많이 오르면 높은 수익을 얻지만, 반대로 주가가 하락하면 그만큼 손실도 커지게 된다.

고수익을 추구하는 것 외에 랩은 고객별 계좌로 운용되기 때문에 투자자가 손쉽게 포트폴리오를 볼 수 있는 점도 매력으로 꼽힌다. 투자보고서가 3개월에 한 번씩 투자자에게 전달되는 주식형 펀드와 달리 본인의 자산관리를 신속하고, 투명하게 볼 수 있는 측면이 투자자에게 크게 어필했다는 분석이다.

삼성증권 SNI강남파이낸스센터 류남현 부장은 “2008년 금융위기 후 주식형 펀드에 대한 불신감이 아직 팽배한 반면 랩의 경우 투자종목을 환히 알 수 있고, 투자자의 의견이 실시간으로 반영된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올해 시장 판도가 주식형 펀드에서 랩으로 어느 정도 이동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증권사들의 랩 수수료 인하로 일부 랩 상품은 오히려 주식형 펀드 수수료보다 싸졌다. 또 자문형 랩 시장에 속속 진출하는 증권사가 늘면서 향후 수수료 경쟁은 큰 의미가 없어질 전망이다.

관건은 결국 수익률이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어느 증권사가 어떤 투자자문사와 합심해 증시가 조정을 받을 때든, 상승세를 탈 때든 고수익을 내느냐에 따라 희비가 갈릴 전망이다.



투자자의 올바른 선택은실제 이달 들어 코스피지수가 조정을 받으면서 중순 이후 일부 자문형 랩의 수익률은 마이너스에 진입해 시장 평균을 밑돌고 있는 상황이다. 투자자가 스스로 자신의 투자성향을 점검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위험투자 성향이 높고 단기에 높은 수익을 내고 싶다면 랩이 대안이지만, 위험관리가 되고 장기적으로 꾸준히 성과를 내고 싶다면 주식형 펀드를 선택하는 게 낫다.

미래에셋증권 잠실점 장석진 과장은 “증시가 조정을 받으면서 자문형 랩과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이 함께 하락해 둘의 비교가 현재까지는 큰 의미가 없다”며 “투자자의 투자성향과 자문형 랩의 경우 대체로 최소 가입금액이 3000만원 이상인 점 등을 고려해 자신에게 알맞은 금융상품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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