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 기업 DNA 연구 | 포스코 ⑨
지속가능 기업 DNA 연구 | 포스코 ⑨
지난 1월 3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본사 대회의장에서 열린 시무식. 신년사를 프레젠테이션으로 갈음한 정준양 회장은 신년 휘호로 ‘窮變通久(궁변통구)’라고 썼다. 그러곤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항구적으로 경쟁 우위를 확보하자”고 임직원에게 당부했다.
궁변통구는 주역에 나오는 말로 ‘궁하면 변하게 마련이고 변하면 두루두루 통해 오래간다’는 뜻. 부단한 혁신으로 위기 상황을 극복함으로써 포스코의 지속가능성을 추구하자는 화두를 던진 셈이다.
포스코는 세계적으로 지속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 회사는 SAM-DJSI(SAM Dow Jones Sustainability Index) 평가에서 6년 연속 글로벌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SAM-DJSI는 국제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지속가능성 평가지수로 전 세계 2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평가한다. 포스코는 이 평가에서 4년 연속 철강부문 최우수기업에 뽑혔다. 포스코는 또 세계 2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탄소공개 프로젝트(CDP)에서 지난해 전 세계 철강사 가운데 유일하게 기후변화 정보공개·기후변화 대응능력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포스코의 힘은 불굴의 도전정신과 고객·협력사·국민 등 이해관계자의 신뢰에서 나온다. 포항·광양제철소 구내 곳곳엔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이라고 적혀 있다. 중국 장쑤성 장가항포항불수강공장 입구에도 한자로 이렇게 적혀 있다. 이 표어는 ‘포스코의 살아 있는 전설’인 박태준 명예회장이 초대 사장으로 재직할 때 만들어졌다. 1968년 영일만에 포항제철소를 지을 당시 박태준 사장은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모래 벌판에 전 사원을 집합시켰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바닷물은 바람에 출렁거렸다.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배상금(대일청구권자금)을 포철 1기 건설에 투입하는 그의 심정은 비장했다.
여기서 나온 것이 우향우 정신이다. 포스코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친환경 제철 공법인 파이넥스를 취재하러 2006년 기자가 포항제철소를 찾았을 때 배진찬 당시 파이넥스 2공장장은 “파이넥스 공장은 박태준 회장의 우향우 정신이 여전히 살아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친환경 파이넥스 공법 독자 개발14세기 이래 2007년 포스코가 파이넥스 공법을 개발하기까지 쇳물은 고로(용광로)에서만 뽑아냈다. 고로 방식은 지금도 제철공법의 주류다. 고로 방식은 철광석을 쪄 덩어리로 만드는 소결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연료인 유연탄을 구워 덩어리로 만드는 코크스 공정도 필수다. 이 과정에서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등 여러 대기오염 물질이 발생한다. 반면 파이넥스 방식은 이 두 공정을 생략한 획기적 기술이다. 공정이 단축될 뿐 아니라 무엇보다 친환경적이다.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먼지 배출량이 각각 고로 방식의 19%, 10%, 52% 수준에 불과하다.
파이넥스 방식은 또 1t의 용선을 생산할 때 고로 방식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0% 줄일 수 있다. 더욱이 이 공법은 경제적이다. 철광석과 유연탄을 정제하지 않고 바로 사용해 제조 원가를 20%가량 절감할 수 있다. 괴철광석보다 싼 철광석 부스러기(분철광석)도 원료로 쓸 수 있어 원가는 더 낮아진다. 친환경과 경제성이라는 두 토끼를 잡은 것이다. 포스코가 고로를 없앰으로써 철강산업은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정준양 회장은 지난 1월 운영회의에서 “싼 원료를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쓰는 파이넥스 공법을 21세기 제철 프로세스로 전파하는 게 글로벌 철강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박태준 회장은 이 공법이 개발되는 과정에도 기여했다. 박 회장은 1992년 정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21세기엔 환경 문제로 인해 고로 방식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고로 없이 쇠를 만들어 내는 신공법을 개발해 보라고 권했다. 공채 7기로 1975년 입사한 정 회장도 도전정신을 강조한다. 그는 2009년 10월 월례 임원회의 에서 “‘누울 자리를 봐 가며 발을 뻗는다’는 속담이 있지만 누울 자리를 보지 말고 발을 뻗어야 한다”고 말했다. 성패에 너무 연연하면 창의적 아이디어를 떠올리고도 혁신으로 발전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운영회의 때는 도전적 기술 개발과 원가 절감을 요구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지난 40여 년간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2008년 경제위기를 극복해 경쟁력 있는 포스코를 만든 것은 절박한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기술 개발과 원가 절감 노력을 부단히 해왔기 때문입니다.” 포스코의 도전정신은 ‘또 하나의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내자(Creating another success story)’는 이 회사의 비전에서도 엿볼 수 있다.
국영기업으로 출범한 포스코는 2000년 완전 민영화됐지만 국민기업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돼 있다. 포스코는 한국의 급속한 산업화 추동력이자 ‘한강의 기적’의 상징과도 같은 기업이다. 자동차, 조선 등이 한국의 간판 산업이 된 것도 포스코가 양질의 철강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같은 취지에서 포스코는 지난해 12월 성과 공유제의 수혜 대상을 기존 1차 협력업체에서 2~4차 협력업체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2~4차 협력업체도 공동으로 이익 개선 활동을 하면 그 성과를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상생보증 프로그램, 상생협력 특별 펀드, 협력업체 지원 펀드 등의 수혜 폭도 2~4차 협력업체로 확대했다. 또 중소기업에서 설비를 사들일 땐 30%의 중도금을 지급한다. 과거엔 선급금과 잔금 두 단계로 나눠 지급했다.
이해관계자와 동반성장을 위한 포스코의 노력이 이 회사의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높여 줄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준양 회장은 올해 시무식 프레젠테이션에서 “윤리경영을 전 패밀리사로 확대하는 한편 중소기업 동반성장, 저탄소 녹색성장 등에 힘써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대우인터내셔널 인수 후 시너지 기대포스코는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2008년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인 포스위드를 설립했다. 2009년과 지난해에도 자립형 사회적 기업인 포스에코하우징과 광양 포스플레이트를 세웠다. 또 직원들의 대외 봉사활동 시간을 꾸준히 늘려왔다. 지난해엔 한 사람당 30시간씩 봉사했다. 일반 기업의 평균 봉사 시간(11시간)의 세 배에 달한다. 봉사활동은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이다. 지난해 4월 1일 회사 창립기념일엔 정 회장 부부를 비롯해 임원 부부 130여 명이 정애원 등 포항의 복지시설 세 곳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정 회장은 이날 이 같은 활동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경제적 이익만 추구해선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포함해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발전하지 않고는 절대 혼자 성장할 수 없습니다. 사회 공익적 활동은 기업시민으로서의 책무이기도 하지만 지속가능 경영을 위한 성장 엔진이라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포스코는 조강 생산량(연간 3000만t 이상) 기준 세계 4위 철강사다. 그러나 경쟁력 면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적 철강 전문 분석기관인 WSD(World Steel Dynamics)는 지난해 4월 전 세계 32개 철강사를 대상으로 경쟁력을 평가했다. 평가 항목은 규모, 기술력, 수익성, 원가 절감 등 23개. 평가 결과 포스코가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로 선정됐다. 지난해 이 회사는 1조2836억원에 이르는 원가 절감으로 영업이익이 전년도보다 60.3%나 늘었다. 이 같은 실적은 포스코의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포스코는 착공했거나 조만간 착공할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 인도 냉연공장, 중국 용융아연도금강판 공장(CGL), 터키 스테인리스 냉연공장을 포함해 14개국에 총 48개의 해외 거점을 두고 있다. 해외 거점의 현지인 5000명을 포함해 임직원 1만 7000명에 달하는 글로벌 컴퍼니다.
이 회사는 올해 초 비전 2020을 발표했다. 2020년까지 10년 안에 철강 중심의 핵심 사업에서 120조원, 에너지·화학 등 성장 사업에서 60조원, 녹색 및 해양 사업 등 이른바 신수종 사업에서 20조원을 수확하겠다는 선언이다. 사업 내용 면에서는 철강과 비철강,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조화를 이루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포스코는 지난해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중동, 아프리카 등 미개척시장을 중심으로 포스코의 글로벌 판매 채널을 구축하는 한편 해외 자원개발 노하우를 바탕으로 포스코의 원료 확보를 지원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마그네슘, 리튬, 티타늄, 지르코늄 등 희소 금속을 확보해 포스코가 글로벌 종합 소재 공급사로 자리매김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정 회장은 대우인터내셔널 임직원과의 간담회에서 자신이 취임하고 나서 가장 잘한 일이 대우인터내셔널 인수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구체적으로 자원개발 익스플로러(탐험가)와 신수종 사업 수출과 관련해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김정욱 하나대투증권 철강 애널리스트는 “포스코가 지속가능하려면 해외 진출을 통한 대형화로 글로벌 철강사로서의 지위를 굳혀야 한다”며 “그런 점에서 인도네시아, 인도 등에서 포스코가 벌이고 있는 활동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우리나라는 1인당 철강 소비량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현대제철이라는 경쟁사가 생겼지만 철강 수요가 왕성해 여전히 공급 부족인 상황입니다. 철강은 태생적으로 공해 산업인데 파이넥스 공법 개발 등 친환경 기술 개발에 적극적인 게 포스코의 지속가능성을 높여 줄 것으로 봅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애플의 中 사랑?…팀 쿡, 올해만 세 번 방중
2 “네타냐후, 헤즈볼라와 휴전 ‘원칙적’ 승인”
3“무죄판결에도 무거운 책임감”…떨리는 목소리로 전한 이재용 최후진술은
4中 “엔비디아 중국에서 뿌리내리길”…美 반도체 규제 속 협력 강조
5충격의 중국 증시…‘5대 빅테크’ 시총 한 주 만에 57조원 증발
6이재용 ‘부당합병’ 2심도 징역 5년 구형…삼성 공식입장 ‘無’
7격화하는 한미사이언스 경영권 갈등…예화랑 계약 두고 형제·모녀 충돌
8“이번엔 진짜다”…24년 만에 예금자보호 1억원 상향 가닥
9로앤굿, 국내 최초 소송금융 세미나 ‘엘피나’ 성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