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100대 코스 선정위원 김운용이 만난 명사들] 데이비드 V 스미스 골프 컨설턴트

[100대 코스 선정위원 김운용이 만난 명사들] 데이비드 V 스미스 골프 컨설턴트

내가 데이비드 V 스미스 위원을 처음 만난 것은 제주 나인브릿지가 완공될 무렵인 2001년이었다. 나인브릿지는 구상 단계부터 세계 명문 클럽을 지향했기에 코스 설계나 부대시설은 최고 수준이었다. 문제는 소프트웨어였다. 골프장 CEO를 처음 맡은 나로선 세계 명문 클럽들의 브랜드 파워와 운영 노하우가 절실했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물이 스미스 위원이다.

그는 미국 현지에서 이재현 CJ 회장의 요청을 받고 직접 한국을 찾았다. 세계적인 골프장 전문가라고 했지만 처음엔 컨설팅비만 챙기고 떠나는 부류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하지만 만남이 거듭될수록 그의 진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단순한 골프장 컨설턴트가 아니었다. 전 세계 명문 클럽들이 가진 가치들을 우리에게 전해줬고, 인맥을 동원해 우리 골프장을 세계에 알렸다.

그의 조언과 노하우를 통해 나인브릿지는 2005년 한국 최초로 미국 골프매거진이 선정하는 ‘세계 100대 골프클럽’에 오를 수 있었다. 골프업계에서 그의 파워와 함께 눈길을 끄는 것은 골프와 얽힌 그의 인생사다.



김운용 우리가 처음 만났던 때가 2001년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엔 어떻게 오시게 됐나요?



스미스 어느 흐린 수요일 오후였어요. 당시 미국 LA에서 함께 일하던 한국 여자 프로골퍼가 이재현 회장을 소개해주더군요. 이 회장은 자신이 제주도에 독특한 골프장을 짓고 있다면서 여러 가지를 물어봤습니다.

제 의견을 듣더니 갑자기 한국에 3~4일 머물며 구체적인 조언을 해달라고 제안하더군요. 전 이 회장이 나인브릿지를 세계적인 골프장으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높게 봤습니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바람일 뿐만 아니라 한국 골프를 위한 꿈이라고도 했습니다. 이틀 뒤인 금요일, 저는 이 회장을 따라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내내 우리는 골프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김운용 나인브릿지 골프장을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스미스 골프장 코스나 시설은 누가 봐도 최고였습니다. 문제는 마케팅이었어요. 당시 세계 골프업계에선 한국 골프장에 대해 알려진 게 거의 없었죠. 한국 최고 명문이라는 안양 베네스트의 이름을 아는 사람도 드물죠. 전 나인브릿지를 보면서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 텍사스에 있는 골프장 회원들에게 아시아의 골프장을 아느냐고 물어보면 ‘나인브릿지’라는 대답이 나오도록 하겠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김운용 처음 우리에게 제안했던 것이 세계 100대 클럽 대항전인 ‘월드클럽챔피언십’(WCC)을 개최하자는 것이었지요? PGA나 LPGA 같은 프로 경기가 아니라 아마추어 경기를 열자고 해서 의아했습니다.



스미스 최근 한국과 일본, 중국에서도 세계적인 프로 경기가 매년 열립니다. 그런 대회는 타이거 우즈 같은 참가 선수나 스폰서만 주목 받습니다. 하지만 의미 있는 아마추어 대회를 열면 선수나 스폰서보다 골프장이 주인공이 되죠. 특히 WCC는 세계 100대 코스 선정위원을 포함해 골프계 유력 인사들에게 한번에 나인브릿지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실제 경기를 주최하자 유력 인사들이 찾아온 것은 물론 ESPN과 같은 방송사도 중계를 했죠.



김운용 지금도 해외에 나가면 그 위력을 실감합니다. 미국 명문인 LA 컨트리클럽을 방문했을 때였어요. 클럽 내에서 기념품을 사려는데 회원이 아니면 못 산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전 한국의 나인브릿지라는 골프장 대표 자격으로 방문했는데 안 되겠느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갑자기 TV에서 저를 봤다며 환대하더군요. 기념품은 물론 자긍심까지 챙길 수 있었습니다.

WCC는 나인브릿지가 세계 명문 클럽 간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위해 창설한 대회다. 2002년 첫해 6개국 18개 클럽 회원들이 참가한 이 대회는 해를 더할수록 발전했다. 2004년 골프 양대 협회 중 하나인 영국왕실골프협회의 승인을 받고 미국 골프매거진 후원으로 치러지면서 그 권위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2005년까지 4년 연속 나인브릿지에서 열린 이 대회는 현재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나인브릿지와 해외의 세계 100대 코스에서 번갈아 열리고 있다. 나인브릿지는 세계 유수의 골프 매체로부터 ‘퇴색돼 가는 아마추어 골프 본연의 정신을 일깨우고 있다’는 찬사를 받았다.

회원이 회원 모집해 사교의 장 돼야



김운용 명문 클럽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입니까?



스미스 무엇보다 회원입니다. 한국 대부분 골프장에서 강조하는 멤버십은 진정한 멤버십이 아닙니다. 4주 전에 라운드를 예약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에 불과합니다. 이럴 경우 회원들은 골프장을 단순히 골프를 치고 폭탄주를 마시는 곳으로 생각하죠. 하지만 미국과 유럽 클럽들은 회원들 사이 교감이 이뤄지는 사교의 장입니다. 기념품 가게에서 비회원이 제품을 사지 못하게 할 정도로 회원만의 특전도 중시합니다.



김운용 회원들이 멤버십을 중시하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 같습니다.



스미스 한국인들은 골프 회원권을 투자나 접대 목적으로 여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한국 최상위 소득을 가진 사람들은 여러 골프장의 멤버십을 갖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미국에선 10년 동안 1~2개 클럽을 다니지만, 한국에선 1년 동안 10개의 클럽을 다니는 셈이죠. 골프장으로선 회원들의 방문이 적다 보니 수익을 올리기 위해 주중 회원권도 팔고 비회원들에게도 골프장 문호를 개방하죠. 그것이 문제의 시작입니다. 회원을 더 자주 찾게 만들어야지, 주중 회원권을 팔거나 비회원의 플레이를 받아들이면 그 클럽의 권위는 추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한국에선 명문 클럽 중 5~6개만 생존하리라 봅니다. 나머지 골프장들은 퍼블릭 골프장과 경쟁해야 할 것입니다.



김운용 회원들의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미스 한국에선 골프장을 처음 열면 대부분 외부에서 영업하는 사람이 회원권을 파는 시스템입니다. 그렇게 되면 회원들 사이에 유대감이 없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회원이 회원을 모으는 방식이 중요합니다. 골프장에선 골프 외에 와인이나 자동차 등 회원 대상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회원 간 친목을 높여야 합니다. 특히 회원 가족을 위한 이벤트나 공간도 필수적입니다. 직원들의 마인드도 중요합니다. 한국 골프장 직원들은 친절할지 몰라도 서비스가 메마른(dry) 편입니다. 미국 명문 클럽에 가면 직원들이 회원 기호는 물론 아이들 이름까지 알 정도로 가족적입니다. (언젠가 미국 명문 클럽의 한 회원에게 ‘왜 그 클럽에 속해 있느냐’고 물어보자 ‘난 이 클럽에 속한 것이 아니다. 이 클럽은 내 인생의 일부’라고 답하더군요.) 전 그런 클럽 문화를 한국에서 보고 싶습니다.



김운용 한국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처음 온 게 언제인가요?



스미스 88년 이건희 삼성 회장을 만난 것이 한국과 첫 인연이었습니다. 당시 전 LA에 위치한 셔우드(Sherwood) 클럽의 책임자였는데 이 회장이 그 회원권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나중에 회원권을 보내자 한국에 있는 자신의 골프장인 안양 베네스트로 초대하더군요.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당시 장난감 말을 타고 다녔을 정도로 어렸던 것이 기억납니다.

프로 골프선수였던 스미스가 비즈니스에 본격 뛰어든 것은 87년 미국 골프계의 거물인 데이비드 머독을 만나면서였다. 스미스는 “머독의 이름을 대고 연결을 원한다면 전 세계 골프업계에 종사하는 그 누구도 전화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머독은 당시 스미스에게 LA에 세계 최고의 클럽을 지어 달라고 의뢰했다. 스미스는 코스 설계를 세기의 골퍼 잭 니클라우스에게 맡겼고, 자신은 머독의 전용기를 타고 미국 63개 명문 클럽을 다니며 아이디어를 찾았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셔우드 클럽이다.

셔우드는 케니 로저스 등 스타들을 비롯해 미국 유력 정치인들이 회원으로 있는 골프장으로 명성이 높다. 스미스는 “셔우드에서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 시니어, 제럴드 포드 등 전직 대통령들과 골프를 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스미스는 셔우드의 성공을 발판으로 골프 플랜 인터내셔널(GPI)을 세웠다. 지금은 사업 영역을 골프장 개발에서 건설, 마케팅, 매지니먼트까지 확대했다. 시장도 일본과 아시아로 넓히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숀 코너리가 들려준 골프 교훈 ‘경청하라’



김운용 일본 시장은 어떻게 진출했나요?



스미스 80년대 후반 일본인들은 페블비치(Pebble Beach) 같은 미국 명문 클럽들을 사들이며 회원권을 일본 현지에서 100만 달러에 팔았죠. 당시 일본은 골프가 붐이었습니다. 전 페블비치의 오너를 통해 일본에 진출한 후 처음 3년 동안 일본 골프 최대 호황기를 함께 누렸습니다. 하지만 거품이 곧 걷힐 것을 알고 있었어요. 일본인들은 골프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고, 즐기기엔 회원권 가격이 너무 비쌌어요. 경쟁도 치열했습니다. 90년대 중반이 되자 100만 달러였던 회원권 가격이 10만 달러로 폭락했고, 부도가 나는 골프장도 속출했습니다. 현재 한국 상황과 비슷합니다. 10년 전 한국에 왔을 때 만나는 골프장 오너들에게 절대 일본 모델을 따라가지 말라고 충고했어요. 하지만 이미 우려하던 상황이 제주에서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김운용 미국 골프업계가 타이거 우즈 덕택에 90년대 후반부터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지요.



스미스 2000년 타이거 우즈가 페블비치에서 15타 차로 우승할 때가 절정이었어요. 전 당시 일본의 부도난 골프장 매각을 컨설팅하면서 90년대 말부터는 미국 사업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안방과 같은 캘리포니아에서 우즈가 연이어 우승을 차지하면서 저로선 수많은 사업 기회를 얻었습니다. 당시 미국 골프는 고급 스포츠로 탈바꿈하고 있었는데, 전 퍼블릭 골프장 안에 멤버십 공간을 만들어주는 사업도 했었죠. 돌이켜보면 운이 좋았어요. 일본, 미국, 한국이 번갈아 골프 호황기를 맞을 때마다 제가 있었거든요(웃음).



김운용 미국인들은 골프장에 대한 개념이 우리와 상당히 다른 것 같습니다.



스미스 미국인의 28%가 골프클럽을 다니지만 대부분 사교와 휴양을 위해서입니다. 미국인들은 골프 클럽을 제 2의 집으로 여기고 골프장 근처에 별장을 삽니다. 부동산 개발 회사들도 골프 코스를 주변 집을 팔기 위한 부대시설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김운용 LA 최고 명문 클럽들을 맡으면서 할리우드 스타와의 인맥도 화려하다고 들었습니다.



스미스 75년 처음 프로가 됐을 때입니다. 당시 대회가 열리기 전 선수들과 아마추어가 함께 경기하는 프로암 대회에 나갔어요. 하지만 신인이다 보니 새벽 첫 번째 티오프 타임에 모르는 사람들과 경기를 했죠. 경기가 끝나고 클럽하우스에서 쉬는데 당시 최고의 선수였던 토니 재클린이 찾아왔어요. 팔에 부상을 입었는데 자기 대신 경기에 다시 나가 달라는 거였어요. 요청을 수락해 필드에 나갔는데 당시 제임스 본드였던 숀 코너리가 기다리고 있더군요. 전 너무 기쁜 나머지 골프 치는 내내 그에게 질문을 쏟아부었습니다. 경기가 끝나자 숀이 저에게 한마디 해주더군요. “넌 나에게 질문만 했지, 정작 내 이야기를 듣지 않더라. 인생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선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은 이후 제 인생에 큰 교훈이 되었습니다.



김운용 재미있는 일화도 많을 것 같습니다.



스미스 벨 에어라는 클럽에서 당대 최고 배우였던 존 웨인, 조지 스콧 등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어요. 톰 크루즈가 갑자기 우리 자리에 끼어들었어요. 그는 아직 신인이었는데 대선배들 앞에서 자신의 인기에 대해 자랑을 하더군요. 그가 자리를 떠난 후 우리는 그를 놀려줄 계획을 세웠습니다. 당시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 할리우드 스타의 집을 투어 하는 게 유행이었습니다. 우리는 미리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톰 크루즈가 골프장에 오는 시간을 알려주면서 ‘할리우드 대스타가 나타날 것’이라고 귀띔했습니다. 다음날 관광객들이 골프장에 왔을 때 마침 톰 크루즈가 등장했고, 일본인들은 사진을 찍기 바빴죠. 그때 여행사 직원이 일본인 관광객들을 향해 ‘저 사람은 스타가 아니다’라고 하자 모두가 사진을 그만 찍고 다시 차에 타버렸어요(웃음).



김운용 다루기 힘든 회원들은 없었나요?



스미스 세계 최대 부자 중 한 명인 워런 버핏이 기억납니다. 그는 당시 클럽 내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타고 싶었는데 어느 회원의 아들이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어요. 그 회원의 아들이 계속 자리를 비키지 않자 버핏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사무실로 찾아왔어요. 그러곤 그 회원을 탈퇴시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클럽 입장에선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버핏은 아이는 2년, 아이 아버지인 회원은 1년간 회원 자격을 정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하지만 우리는 상대방의 입장을 들었어요. 결국 아이는 6개월, 아버지는 3개월간 자격이 정지됐습니다. 버핏은 그 뒤로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어요. 이처럼 힘 있는 사람들이 이유 없이 그들의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고 싶어 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클럽은 반드시 소명 절차를 거쳐 회원을 보호해야 합니다.



김운용 당신에게 골프는 무엇인가요?



스미스 제 아버지는 영국의 광부이자 스트리트 파이터였습니다. 변변치 못했던 가정환경에서 자랐던 저는 15살에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죠. 이때 저에게 유일한 희망이 골프였습니다. 처음엔 돈을 벌기 위해, 그 후엔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골프를 쳤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골프에 대한 재미가 열정으로 이어졌고, 지금은 인생 자체가 됐습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트럼프 2기 앞두고…美, TSMC에 최대 9.2조원 보조금 확정

2종로학원 “서울대 의예 294점·경영 285점…눈치작전 불가피”

3의대생 단체 "내년에도 대정부 투쟁"…3월 복학 여부 불투명

4‘5만 전자’ 탈출할까…삼성전자, 10조원 자사주 매입

5하나은행도 비대면 대출 ‘셧다운’…“연말 가계대출 관리”

6 삼성전자, 10조원 규모 자사주 매입 “주주가치 제고”

7미래에셋증권, ‘아직도 시리즈’ 숏츠 출시…“연금 투자 고정관념 타파”

8대출규제 영향에…10월 전국 집값 상승폭 축소

9“하루 한 팩으로 끝”...농심, 여성 맞춤형 멀티비타민 출시

실시간 뉴스

1트럼프 2기 앞두고…美, TSMC에 최대 9.2조원 보조금 확정

2종로학원 “서울대 의예 294점·경영 285점…눈치작전 불가피”

3의대생 단체 "내년에도 대정부 투쟁"…3월 복학 여부 불투명

4‘5만 전자’ 탈출할까…삼성전자, 10조원 자사주 매입

5하나은행도 비대면 대출 ‘셧다운’…“연말 가계대출 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