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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위기대응 매뉴얼] 지진 나면 우리 회사는?

[기업의 위기대응 매뉴얼] 지진 나면 우리 회사는?

강진이 발생한 일본 도호쿠 지방은 농업과 어업이 발달한 지역이라 상대적으로 경제적 타격이 작지만, 일부 주요 산업시설은 지진 여파로 조업을 중단한 상태다.

지바현 이치하라에 있는 정유업체 코스모의 공장은 화재가 발생해 연쇄폭발을 일으키며 불기둥이 치솟았다. 일본 정유 설비의 43%, 석유화학 설비의 48%가 밀집된 도카이 지역에서도 지진이 발생해 JX니폰, 오일앤드에너지 등 일본의 주요 정유 업체가 가동을 중단했다. 설비에 직접적인 피해를 보지 않았더라도 전력 공급 차질과 항만 등 운송을 위한 교통시설이 파괴돼 정상화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생산을 멈춘 것은 철강사도 마찬가지다. 신일본제철, 스미토모, JFE의 고로 가동이 중단됐다. 전력 공급 차질로 전기로도 멈췄다. 일본 철강업계의 생산 차질 피해 규모는 3000만t으로 전 세계 조강생산의 2%에 해당된다. 일부 회사는 가동을 재개하고 있지만 침수 피해가 심각한 곳은 정상화에 차질을 빚고 있다.

자동차 회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도요타자동차는 조업 중단을 3월 22일까지 연장했다. 도요타의 이와테현 생산공장은 쓰나미의 직접적인 피해를 보았고 자회사가 운영하는 곳을 포함해 5개의 공장이 생산을 멈췄다. 도요타가 혁신의 상징으로 19년 만에 건설한 미야기현 완성차 공장도 준공 한 달 만에 가동을 중단해야 했다. 도요타는 이번에 가장 피해가 컸던 미야기 지역을 주력 수출기지로 육성하던 차라 추가 손실도 예상된다.

진동에 민감한 장비를 갖춘 반도체 업계도 타격을 입었다. 웨이퍼 시장의 60%를 점유한 신에츠화학과 SUMCO(섬코)의 가동 중단이 길어지고 있다. 직접적인 피해를 본 곳은 없지만 재가동과 불량률 감소에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최소 10곳 이상의 생산 라인이 이번 지진으로 손실을 입어 일본 반도체 시장의 공급망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지진에 철저하게 대비하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 기업들도 대재앙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이번 대지진을 계기로 재해와 재난에 대한 국내 기업의 위기 대응 매뉴얼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정유업계의 경우 일본은 지진을 우려해 소규모로 건설되지만 우리나라는 대규모 공장을 갖추고 있다. 단일공장 규모로 세계 둘째로 큰 SK에너지 공장과 넷째 규모인 GS칼텍스 공장이 각각 울산과 여수에 있다. 업체 관계자들은 “이번 일본과 같은 규모 9의 지진이 우리나라에 일어날 확률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매뉴얼보다 운영 경험이 중요그러나 대규모 시설이 특정 지역에 밀집돼 있는 만큼 예측 불가능한 재해와 재난이 해당 지역에 닥칠 경우 일본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피해가 우려된다. GS칼텍스가 있는 여수국가산업단지는 7.0 규모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내진 설계됐다. SK에너지 공장 역시 7.0 규모 내진 설계를 갖췄다. SK에너지 관계자는 “가장 민감한 부분은 역시 화재 가능성”이라며 “안전관리 담당 부서가 이 부분을 매뉴얼에 따라 위기 시 대응하게 된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는 공장별로 재해예방관리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날씨 관련 재해가 많은 만큼 해당 정보를 시설물 관리자와 빠르게 공유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재해 발생 시 피해 상황을 종합하고 복구 계획을 세우는 것은 재해대책본부가 현장에서 담당한다. 비상상황이 예견되면 등급별로 단계별 조치를 취한다. 생산부문은 사업부별로 조치를 점검하고 비생산부문은 공장지역 순찰을 강화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화재와 정전에 대비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안전훈련과 점검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대지진 이후 포스코 정준양 회장은 강진과 쓰나미 대응 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모든 제철소와 설비공장에 대한 설계 표준을 만들라는 내용이었다. 포스코의 설비와 건축물은 초속 45m의 바람을 버티고 규모 6.3~6.7의 지진을 견딜 수 있다. 태풍이 집중되는 6월부터 10월까지는 풍수해 상황실이 가동된다. 배수로 관리와 시설 점검을 하며 공장과 부서마다 한 명의 책임자가 정해진다. 이번 지진에서 기업은 침수 피해의 두려움을 다시 확인했다. 포스코는 인근 바다 수위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등 최근 지진과 쓰나미 대비 행동요령을 보완했다.

이번 대지진 발생 당일 진앙에서 1500㎞ 떨어진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서 미세한 진동에도 반응하는 포토 장비가 2시간가량 멈췄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정전사태다. 공장이 24시간 가동하는 데다 전력이 끊긴 후 재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모든 공정 설비는 항상 가동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하이닉스는 한전으로부터 우선적으로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받고 있다. 만약의 사태로 인해 정전이 발생하면 비상발전기와 열병합발전소가 가동된다. 사고 시 전력은 장비 중요도에 따라 순차적으로 공급된다.

재해를 대비해 기업은 각자 위기 대응책을 마련해둔 상태다. 그러나 한 대기업 관계자는 “매뉴얼이 아무리 그럴싸해도 중요한 것은 실제 상황처럼 시스템을 운영해 보는 경험”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기업 관계자들은 “기업이 대비책을 마련해도 전력이나 교통 인프라 등 국가 기반시설이 무너지면 소용없다”며 정부의 대책을 주문했다.

박미소 기자 smile8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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