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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남자의 낭만에 대하여

50대 남자의 낭만에 대하여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와 잔잔한 행복을 얻었지만 왠지 헛헛하다. 희끗희끗해진 머리와 일상의 지루함 탓일까.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문득 가슴 한편에 외로움이 밀려든다. 이럴 때 한발 속도를 늦추거나 샛길로 빠지는 남자들이 있다. 치열함에서 벗어나 나를 돌아보는 50대 남자들의 절절한 낭만 찾기다.
김철호 대표와 최복이 소장이 서울 인사동 찻집에서 추억을 얘기하고 있다.



김철호 본아이에프 대표



포장마차로 아내 불러 ‘고마워’‘복이,

예쁘고 순진한 소녀로 나에게 다가와

나만 믿고 사랑해준 것 고마워.’

김철호(49) 본아이에프 대표가 2년 전 아내인 최복이(47) 본아이에프연구소장 생일에 건넨 카드 문구다. 카드를 주는 방법이 예사롭지 않다. 안방 천장에 풍선을 가득 띄우고 12개의 카드를 풍선 줄에 매달아둔 것. 일 년 열두 달 고맙다는 뜻으로 준비한 김 대표의 생일 이벤트였다.

“한창 몸이 좋지 않을 때였어요. 갱년기가 온 것인가 해서 무척 우울했죠. 남편의 정성에 다시 행복을 되찾았습니다.” 최 소장은 이날 참 많이 울었다.

김 대표와 최 소장은 1983년 대학 선후배로 만나 4년 열애 끝에 결혼했다. 최 소장은 신입생, 김 대표는 과 대표였다. 서로에 대한 호감을 확인한 것은 최 소장이 입학한 해에 떠난 학술답사에서다.

“달이 참 밝은 밤이었어요.” 최 소장이 먼저 추억의 서랍을 열었다. “친구와 벤치에 앉아 있는데 누가 옆에서 가곡을 멋들어지게 부르더라고요. 저 들으라고 일부러 그랬다는 건 결혼하고 알았지요.”

쑥스러운 듯 듣고만 있던 김 대표가 말문을 열었다. 그는 최 소장을 “조그맣고 눈이 똘망똘망한 소녀”로 기억했다. “겨울방학에 보고 싶어 무작정 처가로 찾아가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때 아내 집에서는 연애하는 것을 몰랐어요. 결국 완고한 장인어른의 불호령에 발도 못 들이고 쫓겨났습니다. 읍내 여인숙에서 동이 틀 때까지 장모님께 장문의 편지를 쓴 기억이 나네요.”

이때 최 소장이 하얀 종이봉투에서 뭔가를 꺼냈다. 요즘은 보기 어려운 카세트테이프였다. 김 대표가 직접 기타를 치며 부른 노래가 담겨 있다. 열두 번 이사를 하면서도 잊지 않고 챙긴 최 소장의 보물 1호다. “늘어날까 봐 CD에 복사해 뒀다”고 하니 얼마나 아끼는지 알 수 있다.

“남편이 준 첫 선물입니다. 충남 서천에 있는 시댁에 인사 드리러 간 날 주더라고요. 그때 담장 앞에 하얀 들꽃이 만발했는데 알고 보니 시어머니와 남편이 저 온다고 심은 거였어요. 그때 ‘아, 이 사람이다’ 확신했지요.”

부부의 추억은 풀린 실타래처럼 계속 이어졌다. “방학 때 한 달 만에 ‘로방’이라는 다방에서 아내를 만나기로 했어요. 눈이 많이 와서 2시간 반이나 늦었는데 연락할 길이 없잖아요. 이 사람이 제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을 펑펑 쏟더군요. 그때 빨강, 검정이 섞인 체크무늬 치마를 입고 있었지, 아마?” 김 대표의 말에 최 소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번에는 최 소장 차례. “대학 때 남편이 술을 많이 마셨어요. 연락이 잘 안 되면 교문이 보이는 높은 다리에 올라가 노심초사 남편을 기다렸습니다. 며칠 만에 남편 얼굴이 보이는데 또 눈물이 왈칵 쏟아진 거예요. 그 뒤로는 수업이 끝나고 나가면 항상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김 대표는 “그때는 아내가 어린아이 같아 내가 키우다시피 했지만 요즘은 내가 기댈 수 있는, 나를 가장 잘 아는 친구”라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서로 요구하는 것이 많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있는 그대로 존중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사업 실패로 힘들었던 때는 왜 이렇게밖에 못하나 아내한테 서운한 적도 있었어요.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옆에서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습니다.”

김 대표는 밖에서 술을 마신 날이면 어김없이 동네 포장마차로 최 소장을 불러낸다. 남편이 혼자 소주 세 병을 다 비울 때까지 술 한 잔 입에 대지 못하는 최 소장은 묵묵히 그의 얘기를 들어준다. 부부는 이렇게 아픔과 고민을 나눠왔다.

올해 10월 3일, 부부는 25주년 결혼기념일을 맞는다. 김 대표는 “결혼식 전날 고향에 내려온 아내가 친지들 틈에 끼어 쪽잠을 자고, 다음날 시내버스를 타고 혼자 웨딩드레스를 입으러 간 것이 늘 맘에 걸렸다”며 “25주년 이벤트를 구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더니 연애할 때 최 소장을 위해 지은 것이라며 대뜸 시를 왼다.

색소폰을 연주하는 이상엽 지사장.
‘당신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외로운 섬, 나는 그 섬을 지키는 파도요’. 최 소장은 “이보다 더 낭만적인 순간이 어디 있겠느냐”며 활짝 웃었다.



이상엽 IDT코리아 지사장



색소폰 불며 카타르시스 느껴‘따~라~라~~따라라라~’ 

이상엽(51) IDT코리아 지사장의 휴대전화 번호를 누르면 익숙한 재즈 음악이 흘러나온다. 통화연결음으로 지정된 척 맨지오니의 ‘필 소 굿’이다. 이 지사장은 9년 전 색소폰 학원에 등록했다. 직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열정을 분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왕 시작한 취미를 제대로 누리고 싶어 일주일에 한두 시간씩 레슨을 받으며 꾸준히 실력을 쌓아왔다.

IDT는 미국 통신용 반도체 제조업체로 1996년 한국법인을 냈다. 이 지사장은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삼성전기, 래티스, GEC플레시, SGS톰슨, 싸이프레스코리아를 거쳐 2006년 지사장으로 취임했다. 20년 넘게 반도체 회사에서 일한 셈이다.

“살아가는 데 직장 이외에 두 가지 정도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제게는 취미와 종교입니다.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50대 들어 일 외적인 것에 더 관심을 갖는다고 해요. 인생의 절반을 넘겼지만 하루하루 죽어가는 게 아니라 살아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싶어 그렇죠. 저도 쉰 살이 되니 혼자 하는 취미 이상의 것을 원하게 되더군요.”

‘앙상블.’ 이 지사장은 이제까지 쌓은 실력을 다른 사람과 나누기를 원했다. 그런 이유로 2009년 실용음악학원 동기생들과 밴드를 꾸렸다. 보컬과 악기는 드럼, 알토 색소폰, 콘트라베이스, 전자오르간 그리고 이 지사장이 맡은 테너 색소폰이다.

“드럼, 알토 색소폰 연주자는 저처럼 50대고 나머지 세 명은 30대 초중반입니다. ‘올드 앤 뉴’지요.”

이들은 매주 월요일 저녁 8시쯤 만나 1시간 정도 공연 연습을 한다. 재즈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 카니발의 ‘그땐 그랬지’ 같은 가요도 연주한다. 이 지사장은 “혼자 연주할 때보다 더 신나고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오랜 시간 공들여 쌓아온 실력이 열매를 맺은 것이다.

그가 많은 악기 가운데 테너 색소폰을 고른 것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잘 발산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대학 때 클래식 기타를 배웠지만 스트레스를 풀기에 현악기는 너무 여성적이었다. 2009년에는 드럼도 시작했다. 역시 일주일에 하루 레슨을 받고 토요일에 따로 연습한다.

취미로 즐긴다기에는 일정이 빡빡해 보였다. 악기 연주가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지는 않을까. 그는 “마냥 좋아한다고 취미는 아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음악을 들으며 흥얼거리는 것, 직접 연주하는 것 모두 음악을 즐기는 것입니다. 저는 연주하는 쪽을 택했고요. 낭만을 즐기려면 매개체가 필요하고, 이것을 내 것으로 간직하려면 실력을 쌓아야죠. 그래야 재미가 붙습니다.”

이 지사장은 낭만을 ‘자기만족’이라고 정의했다. 그에겐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 그것이 낭만이다. “지금은 서로 소리를 맞추는 데 급급하지만 더 잘하게 되면 음악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그럼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겠죠?”

미국 모뉴먼트 밸리에서 포즈를 취한 박현식 원장.


박현식 하임치과 원장



요트에 누워 석양을 바라보다

평일에는 오전·오후 진료, 주말에는 강의와 세미나, 틈틈이 원고 작업. 박현식(50) 하임치과 원장은 40대 중반까지 ‘월화수목금금금’을 살았다. 없는 시간을 쪼개 쓴 책이 10권을 넘었으니, 당시 그는 완전 워커홀릭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미국 미시간대학 교환교수로 있던 2006년, 그는 책을 덮었다. 세상을 보기 위해서였다. 뜻 맞는 친구들을 모았다. 모임 이름은 ‘사대천왕’이라고 지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던 세상 ‘밖’으로 나갔다.

박 원장과 친구들은 그해 6월 보름 동안 미국 대륙을 횡단했다. 밴을 빌려 눈앞에 보이는 길을 따라 달렸다. 경치 좋은 곳이 나타나면 쉬어 갔다. 서부 영화에서나 보던 유타주의 모뉴먼트 밸리에서 일출을 바라봤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협곡인 그랜드 캐니언도 걸었다. 40도가 넘는 폭염과 영하의 기온을 오가며 인생을 돌아보고 우정을 나눴다.

대륙 횡단 이후 전보다 삶이 조금은 여유로워졌지만 여전히 바쁘게 살았다. 그러다 또 한 번 삶을 바꾸는 계기를 맞는다.

‘버킷 리스트.’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두 주인공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리스트로 만들어 하나씩 실행에 옮기는 내용의 영화다. ‘장엄한 것 직접 보기’ ‘눈물 날 때까지 웃기’ ‘문신하기’ ‘스카이다이빙 해보기’ ‘정신병자 되지 말기’ ‘모르는 사람 도와주기’ 같은 일들이다. 박 원장은 이 영화를 보고 메모지를 찾았다.

“문득 삶을 돌아보니 인생의 전반전을 뛰고 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숨이 가빠왔어요. 쉬는 시간이 필요했던 거죠.”

현재까지 그의 메모지에 작성된 리스트는 이렇다. 우선 2008년 설 연휴에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해발 4300m를 등정했다. 대학 때 즐겼던 등산을 사회에 나와서는 통 하지 못해 아쉬웠기 때문이다. 또 2년 전부터 여름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요트를 탄다. 평일에 진료를 마치고 한 시간씩 즐기는 그만의 휴식이다.

“바쁘게 살다 보면 매일같이 뜨고 지는 해를 바라보기도 쉽지 않잖아요? 요트 위에서 석양이 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마치 한발 물러서서 내 삶을 바라보는 것 같아요.”

한 달에 한 번 카레이싱 동호회에도 참석한다. 남아메리카 남단에 있는 마젤란 해협 트레킹도 다녀왔다. 스킨스쿠버를 한 지는 3년째다. 아직 실행하지 못한 리스트도 많다. 박 원장은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생각날 때마다 메모해 둔다”고 말했다. 올해는 경비행기를 배울 계획이다.

“땅, 바다에서 즐겼으니 이제 하늘로 가볼까 해서요.”

일할 때 못지않게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지만 박 원장은 “정신 건강을 위해 일부러 활동적인 운동을 한다”고 말했다. 다음 리스트를 실행하려고 평소에 더 열심히 일하는 효과도 있단다. 그는 평일에 술 약속 한 번 줄이고, 주말에 골프 한 번 덜 치면 충분히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했다. 또 하나, 박 원장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리스트를 작성하면서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된 자신을 발견했다.
이전영 대표는 시를 즐겨 읽는다.



이전영 포스텍기술투자 대표



삶의 여백에 시를 채워넣다

“왜 꼭 산에 올라갔다 내려와야 하지요? 그냥 산 둘레를 걸어도 됩니다. 산에서 계곡 소리를 듣고 시집을 읽으며 사랑의 설렘을 느껴도 좋습니다. 얼마 전에는 누군가 30년 동안 잊고 살던 애송시를 낭송하기에 곧장 내려와 서점으로 달려갔어요.”

이전영(57) 포스텍기술투자 대표는 삶에 여백을 남겨둔다. 빈 공간을 다양한 문화로 채우기 위해서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즐기는 음악, 미술, 시가 일과 균형을 이룰 때 삶이 풍요로워진다”고 말했다.

이런 삶의 방식은 그의 업무와도 무관하지 않다. 포스텍기술투자는 포스코 그룹에서 신사업 개발을 담당하는 벤처캐피털이다. 신기술을 보유한 벤처회사에 투자하는 일을 한다. 1997년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이 대표가 이끌고 있다.

“10년 후 우리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기술의 미래 가치를 판단하려면 냉철한 이성뿐 아니라 창조력이 필요합니다. 시는 창조력을 길러주지요.”

이 대표는 신사업 개발과 관련한 강의에서 발표 자료 마지막에 꼭 이 시를 첨부한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나아간다(중략)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의 ‘담쟁이’는 신사업을 개발하며 이 대표가 느낀 감정을 대변하는 시다.

올해 2월에는 삼성경제연구소 SERICEO 회원들의 등산 모임인 ‘시애라(詩愛羅)’의 회장을 맡았다. 시애라는 시와 사랑이 있는 네트워크를 줄인 말이다. 그는 “시뿐 아니라 철학, 역사 같은 문화적 요소를 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1980년대 프랑스 유학 시절 그 나라의 문화, 언어, 예술, 역사를 배우며 삶의 여유와 균형을 찾았다. 정형화된 결혼식이 싫어 함께 유학 중이던 부인과 파리 에펠탑 앞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사람이 정해진 대로만 살 수는 없습니다. 산에 가면 산채를 먹고 바다에 가면 회를 먹으며 그렇게 사는 것이지요.”

이 대표는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다”며 “젊었을 때 성공은 불행의 한 가지”라고 했다. “30대에 60대까지 삶이 다 보이면 얼마나 재미없겠느냐”는 것이다. 정해진 대로 사는 안정된 삶이 꼭 좋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는 요즘 ‘치열하게’ 은퇴 전략을 짜고 있다. 잣나무가 많은 가평 휴양림과 서울을 오가며 살 계획이다. 현재 5개 국어를 구사하는 그는 이탈리아어를 배워 ‘피가로의 결혼’을 듣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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