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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청은 준다는데 기업은 주저

중기청은 준다는데 기업은 주저

지난해 9월 집중 호우로 침수 피해를 본 한 중소기업 공장 직원들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 홍수나 폭설로 재해를 입었다고 중소기업청(이하 중기청)에 신고한 중소기업·소상공인 100곳 중 4곳만이 정부의 긴급 자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최근 중기청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태풍, 홍수, 폭설 등으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4200곳, 피해 집계 금액은 약 1800억원이다. 하지만 중기청에 정책자금 대출을 신청해 지원 받은 기업은 160곳, 금액은 170억원에 불과했다. 지난해의 7%에 불과한 300개 기업이 피해를 보았다고 신고한 2009년에는 오히려 지난해보다 많은 166곳이 지원을 받았다. 긴급 재해복구 자금이 중소기업 피해 규모와 상관없이 운용된다는 뜻이다.

중기청은 재해를 입은 중소기업은 ‘긴급경영안정자금’으로, 소상공인은 ‘소상공인지원자금’으로 융자를 한다. 지난해 한가위 기습 폭우 때 중기청은 250억원의 재해복구 자금을 긴급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절차 번거로워 신청 안 한다250억원은 중기청이 재해 중소기업을 지원할 수 있는 1년 예산으로, 소진되면 추가로 자금을 조성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5년 동안 이 금액이 소진된 해는 없다. 중소기업이 꺼리기 때문이다.

올 2월 중순 강원 영동, 포항, 울산 지역은 100년 만의 폭설로 도시가 마비됐다. 주요 산업단지는 큰 피해를 보았다. 특히 물류가 막히면서 원자재를 수급 받지 못해 생산에 차질을 빚은 기업이 속출했다. 중기청은 즉각 “폭설 피해 기업에 250억원 규모의 긴급 재해복구 자금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피해 기업이 지방 중기청이나 지자체에 피해 사실을 신고하고 재해 확인증을 받으면 중소기업진흥공단(이하 중진공)이나 신용보증재단(이하 신보)에서 융자나 특례보증을 지원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중진공 강원 영동 지부에 따르면 3월 23일 현재 6곳의 기업이 7억7000만원의 피해를 보았다며 융자를 신청했다. 이 중 중소기업 3곳, 소상공인 1곳을 포함해 3억9000만원이 지원됐다. 지부 관계자는 “신보나 지자체에서도 융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공단 실적이 적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신보에 도움을 청한 기업이 많았던 것도 아니다. 강원 신보에서는 총 20건에 4억5000만원이 지원됐다. 이 중 중소기업은 1건(5000만원)뿐이다. 나머지는 소상공인이었다. 강원 신보 관계자는 “피해 기업 중 신청에서 탈락한 경우도 있고 중기청이 아닌 담보나 신용으로 직접 은행에서 빌리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시점을 지난해 여름으로 돌려보자. 9월 초순 서울과 경기도·중부 내륙 지역에 시간당 100㎜가량의 기습 폭우가 쏟아졌다. 중기청은 지난 폭설 때와 같은 250억원의 긴급 재해복구 자금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중소기업은 10억원, 소상공인은 5000만원 한도였다. 본지 취재 결과 136개 업체가 신청해 103개 업체가 146억원의 지원을 받았다. 조건은 금리 3.18~3.5%에 2년 거치 3년 상환이었다. 당시 수도권에서 1300여 곳의 공장과 상가가 침수됐다. 인천에서만 400여 곳의 중소기업이 직접적인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피해 규모에 비하면 지원을 받은 기업이 턱없이 적었다.

이 자금을 총괄하는 중기청 기업금융과의 류붕걸 과장은 “피해 기업이 모두 중기청에 지원을 신청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며 “중기청은 피해 기업이 신청하는 대로 가능하면 다 지원을 해준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아무래도 상환해야 하는 돈이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부담을 갖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상환 부담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지난해 여름 기습폭우 때 신한은행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피해복구를 위해 특별자금 3000억원을 조성해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신한은행은 금리를 1%씩 우대(차감)해줬다.

결과는 정부 지원과 딴판이었다. 신한은행에 따르면 9월 27일부터 10월 말까지 피해복구 자금을 빌린 기업은 1398곳, 금액은 2905억원이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중기청 자금을 빌린 재해기업의 9배에 달하는 실적이다. 은행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원래 거래하던 기업이 많고 더 편리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재해보험법안 발의신용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금리는 5.5~6% 정도다. 여기서 1%를 우대해줘도 중기청이 지원하는 이자보다 높다. 왜 중소기업은 정부보다 금리가 더 비싼 은행을 찾았을까?

지난해 폭우로 큰 피해를 본 인천 부평의 한 아파트형 공장 입주자대표회의 관계자는 “입주기업 500여 곳 중 200여 곳이 피해를 보았다”며 “정부로부터 지원 받은 곳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어차피 갚아야 할 돈인데 조건도 복잡하고 까다로워 그쪽(중기청)은 쳐다보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입주업체 대표는 “건물이나 기계, 완제품이 피해 본 것을 공무원이 눈으로 봐야 재해기업 확인증을 발급해 준다”며 “아파트형 공장의 경우 공기 압축기 같은 공동시설이 피해를 보면 입주기업 모두 생산에 차질을 빚는데 지원은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입주회사 관계자는 “생산시설을 가동하지 못해 적기에 납품을 못하는 2차 피해는 전혀 인정 받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어차피 빌려서 갚는 돈이면 거래은행으로 가는 게 훨씬 낫다”며 “정부가 빌려주는 게 아니라 직접 지원을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기청 관계자는 “중기청도 그런 제도가 있으면 좋겠지만 정부 재정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좋다 나쁘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펴낸 ‘최근 기상이변의 파급영향 및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재난 관리에 취약한 중소기업의 연간 피해액은 1200억원에 달한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10곳 중 3곳은 화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 중 절반이 각종 보험료 때문에 경영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3월 17일 한나라당 김재경 의원은 ‘중소기업·소상공인 재해보험법안’을 입법 발의했다. 농어민재해보험처럼 정부가 재해보험 가입 중소기업·소상공인의 보험료와 재해보험사업자의 비용을 일부 지원하는 내용이다. 김 의원은 제안 이유에 대해 “자연재해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증가하는 데 지원 대책은 미약해 경영난이 악화하는 실정”이라며 “집중호우 등과 같은 자연재해로 인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피해를 적정하게 보전해 줄 수 있는 재해보험제도를 도입해 경영안정과 생산성 향상에 이바지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취재에 응한 중기청 및 지방 중기청·중진공(지역 포함)·신보·중소기업중앙회 등 관계자 대부분은 법안 발의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김태윤·정수정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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