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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벤처도 구글 이길 수 있어요

국내 벤처도 구글 이길 수 있어요

천양현(45) 전 NHN재팬 회장이 국내에서 소셜 러닝(social learning) 서비스를 시작한다. 소셜 러닝은 트위터·페이스북·싸이월드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교류하듯이, 소셜 러닝 사이트를 기반으로 회원들끼리 소통하면서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 전문 강사의 동영상 강의를 일방적으로 시청하는 e 러닝과는 다르다. 학습 욕구를 지닌 사람들끼리 사이버 공간에서 대화하면서 공부하기 때문이다. 일본 게이오대 유학 시절 인지언어학을 전공한 천 회장은 외국어 학습 서비스를 소셜 러닝 방식으로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이미 일본에서는 2008년 코코네라는 회사를 설립해 영어 학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봄 한국법인 코코네코리아를 만든 그는 지난 2월 일본어 학습 서비스를 시작했다. 가장 큰 특징은 소셜 게임 사이트에서 온라인 게임을 하듯이 회원들끼리 게임을 통해 일본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한 것. 한게임재팬을 일본 최대 온라인 게임회사로 키운 자신의 장기를 십분 활용한 셈이다. 10년 전 일본에 건너가 온라인 게임 시장을 평정한 그는 “우리나라 벤처도 열심히 하면 구글을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벤처 1세대인 그는 이해진 NHN 이사회 의장,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전 NHN 공동대표이사 사장)과 함께 NHN의 전신인 네이버컴을 창업했다.

“애플, 구글, 어도브에 가봤습니다. 네이버와 일하는 방식이 너무 닮았습니다. 콘텐트 경쟁력은 우리가 뒤지지 않습니다. 차이점은 우리는 동양의 변방에 있다는 거죠. 미국 기업은 영어라는 인프라 덕에 서비스를 오픈하면 곧바로 글로벌이잖아요? 사람들이 한국어를 영어만큼 많이 쓴다면 네이버의 위상이 지금과 많이 다를 겁니다. 그때 반도체를 몰라서 삼성은 이길 수 없지만 구글은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시아에서 발신하는, 아시아가 모태인 글로벌 서비스를 떠올리게 됐죠.” 천양현 회장을 3월 9일 코코네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났다.



코코네의 승부수가 뭔가요?“일본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한국인과 한국어에 관심 있는 일본인이 만나는 대화 공간(유징 스페이스)을 제공하는 겁니다. 일본 사람이 일본어 네이티브 스피커(원어민)이듯이 우리는 한국어 원어민이에요. 언어 공부가 목적인 두 나라의 네이티브끼리 사이트에서 만나 각자 학습한 것을 상대방과 함께 연습하고 채팅도 하는 겁니다. 외국어 학습 욕구가 강한 사람도 대부분 자기 나라에서는 모국어로 생활합니다. 외국어를 배우는 궁극적인 목적이 소통인데 일상적으로 네이티브와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이 결핍돼 있어요. 그래서 코코네가 상대국 언어와 문화에 관심 있는 네이티브끼리 만나는 공간을 만들기로 했죠. 이런 사이트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개발했고 앞으로 계속 진화할 겁니다. 장차 중국까지 포함해 한국·일본·중국 세 나라 사람들이 상대국 언어를 학습하는 사이트로 만들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도 세 나라는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쌓고 있습니다.”

코코네코리아의 일본어 학습 서비스 화면.



한·중·일은 언어 면에서 한자를 공유하는 문화권입니다. 문자언어로서의 한자는 동북아권 의사소통 인프라라고 할 수 있죠. 먼저 서비스를 시작한 일본에서 성과는 어떤가요? 수익 모델은 뭔가요?“일본 사이트 가입자는 4만여 명이고, 영어를 학습하는 약 5000명의 코어 유저가 있습니다. 일본도 영어를 배우려는 사람은 많은데 온라인에서 영어를 공부하려는 층은 엷은 편입니다. 일본의 언어학자들은 코코네의 이런 시도를 흥미로워합니다. 하버드대에서 온 게이오대 객원교수도 두 나라 네이티브끼리 소통하는 서비스는 본 일이 없다고 하더군요. 국내의 경우 게임을 통해 일본어를 배우는 러닝 스페이스는 오픈했고, 유징 스페이스는 하반기에 오픈합니다. 스마트폰용으로 준비하고 있죠. 지금은 무료지만 수익 모델로 부분 유료화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커뮤니티에서 아바타를 꾸밀 수 있는데 이 아바타를 유료화할 수도 있겠죠.”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

코코네코리아는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할 수 있다. 이해진 의장과는 NHN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백과사전에 투자하듯이 외국어 학습은 유학을 가지 않고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한다.

영어 학습 서비스를 하는 코코네 일본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학교, 병원 등의 상황이 설정돼 있었다. 학교에선 때가 되면 입학식·졸업식도 열리고, 운동장에선 아바타가 벤치에 앉거나 철봉에 올라갈 수도 있다. 교정에서 만난 다른 사람에게 ‘브라보’라고 인사를 건네면 포인트를 받을 수 있다. 이 포인트는 영어 공부를 할 때 사용할 수 있다. 애완견도 동반할 수 있는데 이 개는 영어로 명령해야 움직인다. 리스닝 게임은 착실히 득점을 해 타워를 완성해야 한다. 토익 시험 리스닝 연습에 도움을 받았다는 한 사용자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그는 “리스닝 시험 문제가 굉장히 천천히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며 코코네 덕분이라고 했다. 다른 사용자는 “요금을 받는 수납 창구가 있으면 알려주기 바라고 그게 없으면 기부라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글을 남겼다. 천 회장은 이런 댓글을 접하면 10년 전 한게임재팬이 한창 어려웠던 시절 생긴 ‘배너 광고를 클릭해 주는 사용자 모임’이 오버랩된다고 말했다. “수익 모델이 잘 안 보이는 이 사이트가 문을 닫으면 우리가 여기서 만날 수 없으니 배너 광고를 클릭해 주자”며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돈도 인맥도 브랜드도 없었을 때입니다. 하지만 인터넷 사업은 한국이든 일본이든 사용자의 마음을 읽어 내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계속 지켜봤습니다. 마침내 알아낸 게 일본 사람들은 게임을 하면서 계속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이었죠. 그래서 채팅, 서클, 쪽지 기능을 강화했는데 그 결과 한게임재팬은 한국엔 없는 게임 커뮤니티로 변신했습니다.”



공대 출신인 이해진·김범수 의장과 달리 학부 땐 법학, 유학 가서는 언어학을 전공했습니다. “애플은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로에 서 있다”고 한 스티브 잡스 애플 CEO는 전공인 물리학에 흥미를 못 느껴 대학을 중퇴한 후 철학과 문학에 심취했던 전력이 있죠. 인터넷 사업도 인문학적 접근이 필요한가요?“사용자들은 어떤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어떤 기술이 들어갔는지 관심도 없고 이들에겐 사실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서비스가 만족스러우면 되는 거죠.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하는데 그러자면 사람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바로 인문학의 영역이죠. 인터넷 서비스 초기엔 개발자들이 기획을 했는데 지금은 디자이너들이 기획을 하고 심리학·인지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참여합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초점을 맞추고 그 변화에 따라 디바이스들이 어떻게 바뀌는지에 주목한다면 새로운 비즈니스를 계속 내놓을 수 있을 거예요.”

SNS는 일시적 유행 아니다



SNS를 기반으로 한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이 약진하고 있습니다. SNS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요?“소셜 러닝 서비스에 이제 게임도 소셜 게임(SNG) 시대가 열렸습니다. 과거엔 리얼 타임으로 온라인 게임을 했지만 이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접속해 시차를 두고 다른 사람과 게임을 할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을 방해하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서로 만나지 않고도 게임을 하는 시대입니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도 남길 수 있는 문자처럼 말이죠. 마치 ‘당신이 편한 시간에 하십시오’라고 말하듯이…. 저마다 자신이 중심이 되고 타인은 그 주위를 도는 행성이 되는 거죠. SNS 시대가 열리면서 저마다 세상이 자신의 페이스대로 움직이는 소우주가 된 겁니다. 가입자가 100만 명이라 하더라도 각자가 세계의 중심이죠. 이건 엄청난 변화고 도도한 흐름입니다. SNS는 한때의 유행이 아닙니다.”



애플의 미래는 어떻게 보나요?“과거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했던 소니처럼 애플은 자기 서클이 견고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뚫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죠. 그 속에서 스티브 잡스는 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지금까지는 밸런스가 좋아 잘 유지되고 있지만 그가 발휘하는 이런 마력은 정상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어요.”

천 회장은 인터뷰 다음 날인 3월 10일 일본으로 돌아갔다. 코코네는 일본에 본사가 있고 그는 연중 일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규모 9.0의 강진이 일본 열도를 강타한 11일 그는 한때 지진을 피해 사무실을 비웠다. 아수라장이 된 일본에서는 카카오톡이 비상 통신수단으로 각광을 받았다. 이날 하루 동안 가입자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카카오톡은 휴대전화와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던 서비스를 스마트폰 환경에 맞게 변형시킨 것이다. 카카오톡에 대해선 모바일 시대의 NHN이 될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도 있다.



김범수 의장이 카카오톡으로 두 번째 신화를 쓰고 있습니다. 김 의장과는 어떤 사이인가요?“초·중·고 동기동창입니다. 가끔 연락하는 사이였는데 일본 대학원 유학 시절 귀국했다 우연히 만나 의기투합해 함께 한게임을 시작했죠(2000년 한게임은 네이버컴에 합병된다).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을 각각 일본어와 한국어로 읽었는데 피차 공감하는 게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인터넷을 잘 몰랐고 김 의장은 일본을 몰랐어요. 인터넷 사업은 기초가 꼭 필요한 게 아니라는 그의 이야기에 힘을 얻었죠. 그가 ‘성공한 히스토리가 오히려 새로운 시도를 방해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돌이켜보면 PC통신 기업들이 인터넷에서는 성공을 못했어요. 사용자를 많이 확보하고 있다 보니 현실에 안주한 거죠.”



NHN의 약진으로 40대 중반에 거부가 됐습니다. 남은 욕구가 뭡니까? 코코네의 비전이 뭔가요?“얼마 전 일본에서 만난 한 고위 공직자가 ‘일본 사람들도 안 하는 일인데 왜 일본어 학습 서비스를 글로벌하게 하려고 하느냐’고 묻더군요. 내가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한국어로는 소통할 수 있는 나라가 별로 없지 않습니까? 저도 일본에서 태어났다면 그런 니즈를 못 느꼈을 거예요. 일본에 공부하러 왔고, 공부하기 위해 일본말을 배웠는데 그 과정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영어권에 한번 확산시켜 보고 싶습니다. 인터넷 서비스로도 삼성·LG처럼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설사 성공을 못하더라도 1세대로서 후배들이 등을 밟고 세계로 나아가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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