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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바꾸자>> 낡은 껍질 벗고 선진 복지국가로

이제는 바꾸자>> 낡은 껍질 벗고 선진 복지국가로



껍질을 벗기는 것이 개혁이고 그래서 새로워지는 게 혁신이다. 아픔이 따른다. 그동안 우리가 입이 닳도록 말하고 귀가 따갑게 들었던 얘기가 있다. “우리나라는 교육이 문제다.” “정부가 문제다.” “부자가 문제다.” 국민의 인식 깊이 박혀 있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질 좋은 3만 달러 시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교육(특히 대학) 개혁이 없다면 지금보다 50%나 더 돈을 많이 버는 3만 달러 시대가 와도 그만큼의 돈을 사교육에 쏟아부어야 할지 모른다. 부자만 더 부자가 되는 사회라면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우리는 더 벌어진 양극화의 격차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런 사회에 들어서기 딱 좋은 게 포퓰리즘 정부다. 요즘 정치권이 그렇듯 정부 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복지를 확대하겠다며 선동하는 정치가가 판을 칠 것이다. 사회통합과 선진 복지국가로 가기 전에 모두가 못사는 나라로 전락할 수 있다.

18세기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개혁은 내부에서 이뤄지는 것이지 외부에서 초대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지금 당장 껍질을 벗길 과제를 4명의 전문가가 진단했다.


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지식보다 사고, 표준화보다 다양화


한국 교육은 지식 중심의 표준화 교육체제를 통해 산업화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창의와 혁신이 화두인 21세기에 걸맞은 인재를 키우기 위해선 현 교육체제를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새로운 교육방향은 지식보다 사고를, 표준화보다 다양화를 지향해야 한다.

우리 교육이 직면한 첫째 문제는 ‘지식비만’이다. 물론 창의적 사고의 기반은 지식이다. 그러나 통합적 사고를 생략한 채 일방적으로 단편적 지식을 과다 주입하면 창의적 사고를 막는다. 둘째, 우리 학생들이 도전회피라는 잘못된 가치를 학교교육을 통해 배운다는 것이다. 이는 시험점수가 척도인 상대평가체제에서 기인한 문제다.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KAIST 학생들의 자살도 개별적 능력보다 타인과 비교우위를 중시하는 교육이 만들어낸 극단적 결과다. 남을 이기도록 강조하는 교육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몰입하는 학생을 절대 키우지 못한다. 셋째 문제는 계열 편식이다. 고등학교부터 문과와 이과로 나눠 계열별 교육을 진행하는 방식은 편식을 강요하는 일과 다를 바 없다. 편식교육을 통해 창의적 교양을 키우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열려면 어떤 교육혁신이 필요할까. 먼저 지식비만형 교육을 줄여야 한다. 교과내용을 지금보다 축소해야 한다. 배운 내용을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토의하며, 이를 실제 상황에 적용해 그 결과를 경험할 수 있는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학기도 7~10주 단위로 운용되는 다분기제가 좋다. 배움과 실천을 연계하기 위해서다. 시험점수를 강요하는 교육시스템에 칼을 대야 한다. 점수로 학생을 줄 세우지 말고 학습활동의 이력을 평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학생의 학습선택권이 보장돼야 한다. 단위학교가 기반인 획일화된 교육체제를 넘어 다양한 기관을 통한 학점이수제 또한 도입해야 할 때다.

정부 과천청사 전경.

마지막으로 창의성의 기반이 되는 기초소양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현재 문·이과로 나눠져 있는 계열별 교육을 없애야 한다. 교과내용 선택권을 보장하는 틀 안에서 모든 학생이 인문사회와 자연과학의 기초소양을 두루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생존자였던 작가 프리모 레비는 자신의 삶을 소재로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는 소설을 썼다. 창의적 인재 양성을 위한 ‘경쟁력 있는 미래 교육체제 만들기 작업’은 바로 지금 시작해야 한다.



김관보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

정부 개혁 없이 선진국 ‘난망’


‘선진화를 통한 세계 일류국가’. 이명박 정부의 국가 비전이다. 선진화 정부 개혁은 단기 성과에 집착한 일회성 게임이 아니라 공정한 사회, 녹색성장, 국격 향상, 통일 등 선진 미래 정부의 가치를 존중하는 반복적·동태적 게임이다. 단기적 개혁은 논하기 쉽지만 대부분의 시스템 개혁은 시간이 경과해야 그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 3만∼4만 달러 수준의 선진국으로 진입해야 하는 단계에서 정부 개혁의 선결과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작지만 일 잘하는 세계 일류의 섬기는 정부’를 달성하기 위해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전략 수립과 실행의 국가전략기획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국가전략기획원(가칭 국가전략원)’ 신설이 필요하다.

광우병 사태, 세종시 건설, 4대강 사업,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무상급식, 과학벨트 선정 등 부처 간, 지역 간, 정당 간 이해관계에서 발생하는 정책 갈등을 효율적으로 대처해 나갈 종합적 국가전략 추진기구가 없다. 현재의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미래기획위원회 등으로는 그 기능이 미흡하다. 또한 국무조정실은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기에 한계가 있으며 예산권도 없다.

미래 정부는 전략기획성에 초점을 둬야 한다. 프랑스의 전략분석처, 일본의 국가전략실, 과거 영국의 전략적 국정운영 시스템, 미국의 관리예산처 등 선진국은 다원화된 전략추진 시스템에서 전략기획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국가전략원은 중앙정부 모든 부처 기능에 대한 조정과 함께 예산 기능까지 포함된 역량 있는 강한 추진력을 갖추어야 한다.

알뜰한 나라 살림을 위해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를 관리할 재정규율 강화대책 및 재정적자 감축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지난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영을 비판했듯이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는 정부는 결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하지만 현 정부도 재정운영 과정에서 유사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이를 막아야 한다. 재정적자와 국가채무에 대처할 국가 재정운영 계획의 재평가, 비효율적 공공조직과 인력 및 국가재정 사업을 진단해 감축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출연연구원을 재정비해 국가전략연구원과 부처 내 연구원으로 이원화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현행 정부출연연구원의 연구 기능 및 조직 재설계가 필요하다. 우리는 부처와 부처 소속 싱크탱크가 법률적·재정적 상하관계에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학습과 연구를 통해 공무원이 일을 시키는 시스템에서 공무원이 직접 일해 전문성을 키우는 시스템으로 혁신돼야 한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공무원 양성을 위해 고급 공무원 선발 방식인 고시제도의 획기적 개선(예를 들어 프랑스의 국가정책대학원제도 도입 등)이 필요하다. 선진국 공무원 인사제도는 전문성 강화와 경쟁 조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정부의 부처별 자율 채용제도의 개혁은 바람직하지만 현행 행정고시제도 자체의 근본적 개혁이 병행돼야 한다. 또한 국가 정책능력 제고를 위해 민관 협력을 강화하고 ‘정책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

끝으로 내실 있는 감사로 높은 공공부문 성과와 투명한 정부를 위해 국가 감사기능을 효율적으로 전환하고 감사원을 국회로 이관해야 한다. 합법성 및 일벌백계 위주의 현행 감사기능을 최소한의 필요 수준에서 유지하고 깊이 있는 정책평가 및 분석을 통해 각 부처의 정책결정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성과감사(현 수준의 외형적 성과감사 탈피)가 필요하다. 또한 ‘컨설팅’ 기능 중심으로 국가 최고 감사기구인 감사원의 기능을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 이에 맞춰 현재 행정부 소속으로 돼 있는 감사원을 국회로 이관해 행정부에 대한 실질적 외부 통제기관으로서 위상을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김정호 자유기업원장

부자의 노력이 ‘국부’ 키워


국민소득 3만 달러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 국민의 소득이 지금보다 평균 50% 많아진다는 말이다. 더 좋은 교육을 받고 더 멋진 곳을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국민 모두의 소득이 똑같은 속도로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 먼저 돈을 벌어야 그 물결이 국민 밑단까지 이어진다. 부자들의 경제적 역할은 생각보다 크다. 하지만 한국 부자들은 유독 질시의 대상이 되곤 한다.

물론 나보다 잘난 사람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건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질투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사회는 발전하기도, 정체하기도 한다. 한국인의 생활수준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1980년대만 해도 큰 부자들만 갈 수 있었던 해외여행을 이젠 웬만한 사람들도 갈 수 있다. 그러나 정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정당하게 돈을 많이 벌었어도 시기와 질투를 받는다. 나쁜 짓을 했기 때문에 부자가 됐을 거라고 치부하는 이도 적지 않다.

물론 부자들 탓도 크다. 자신의 위치가 사회적 관심을 받는다면 스스로 몸가짐을 조심하고 법과 도덕에 합당한 언행을 해야 한다. 그러나 부자일수록 불법 상속·증여를 많이 하고, 부자일수록 비자금 조성, 세금포탈 행위가 많은 게 현실이다.

우리 국민소득이 2만 달러 언저리를 맴돈 게 벌써 5년째다. 이 늪에서 벗어나려면 누군가는 앞서 나가야 한다. 수입이 많은 사람은 특히 그래야 한다. 농업·교육·의료·유통 등 모든 분야에서 기존 관행을 뿌리치고 혁신가치를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어서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성공 사례는 대표적이다. 그들의 성공은 다른 사람에게 일자리를 줬다. 중소기업에는 납품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우리 사회가 이병철, 정주영 같은 기업가 정신을 가진 부자가 있었기 때문에 성장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국민소득 3만 달러 목표를 달성하려면 부자들의 진실한 노력이 필요하다. 도덕적으로 성숙한 부자들이 국민의 존경을 받는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더불어 일반 국민은 부자들의 노력을 인정해야 한다. 이게 3만 달러 시대를 위해 뛰고 있는 우리가 가져야 할 새로운 자세다.

지속적인 재정 안정 없이 복지 확대는 어렵다. 정부 개혁의 제 1 과제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부 교수

복지 선진국 기반은 재정 안정


1987년 대한민국은 민주화에 성공했다. 집단적 판단보다 개인가치를 존중하는 민주화는 사회 전 분야의 분권화를 촉진했다. 반대로 권위주의 정부의 하향식 지휘통제 기능은 빠르게 약화됐다. 정부의 통제기능이 약해지면서 대한민국에는 위기의 쓰나미가 다가왔다.

그 중심에 ‘국가재정의 공유지’ 문제가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국가재정에서 더 많은 혜택을 얻기 위해 모든 사람이 투쟁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마치 공유지의 초원에 많은 가축을 방목해 모두가 공멸하는 ‘공유지의 비극’ 상황으로 가는 듯하다.

대형 국책사업을 놓고 벌이는 지역 간 갈등뿐 아니라 연금과 실업급여, 교육과 의료혜택 등 더 많은 복지를 위해 정치인을 부추기는 개인의 경쟁은 국가재정 공유지 문제의 핵심이다. 개인이 자신의 뜻에 따라 행동해도 사회적 갈등이 조화롭게 해결되는 경지를 과연 대한민국은 이룰 수 있을까.

이런 경지를 위해서는 모든 경제사회 정책의 최상위 목표가 ‘국민경제의 지속가능성’임을 인정해야 한다. 국민경제 내외부의 갈등과 충격에도 대한민국이 단일 국가로서 정체성을 유지하고 안정적으로 지속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국민경제의 지속가능을 위해서는 개개인의 창의와 활력을 극대화해 국민경제 전체의 소득과 부가 성장하고 안정적 수준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복지정책은 이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여러 정책수단 중 하나다.

정부가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보유하는 수단은 크게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그리고 규제다. 규제는 정부 부문의 거래가 개입하지 않고 민간 부문 내에서 경제적 부담과 이익이 교차하는 특징이 있다. 또한 규제는 시장기능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사회적 힘의 균형’을 도모하는 데 반해 재정과 통화정책은 시장기능이 근본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교정하는 수단이다.

그런데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에 대해서는 일정한 자원 제약이 존재한다. 정부가 강제력을 동원해 확보하는 조세수입과 발권수입이 바로 그 제약이다. 일반적으로 조세수입은 재정정책의 재원이고, 발권수입은 통화정책의 재원이지만 발권손익의 최종 귀착지는 재정정책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장기능을 교정하는 정부의 정책역량은 ‘재정의 지속가능성’이라는 전제하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

결국 복지정책은 국민경제의 지속가능성 그리고 재정의 지속가능성이라는 제약 내에서만 추구될 수 있다. 복지정책의 규모와 내용은 사회적 협약에 따라 서로 다르겠지만 복지정책의 근본 목표를 규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복지 선진국으로 불리는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의 경험에 비춰볼 때 복지정책의 근본 목표는 사회 전체가 위험부담을 나누는 ‘집합적 위험분담’으로 규정돼야 한다.

공업화, 도시화 등이 진전될수록 개인은 다양한 위험에 노출된다. 이에 대한 대비 시스템이 필요하다. 빈곤, 실업, 재해, 무주택, 질병 등의 위험에 대비한 시스템을 구축할 때 비로소 개인은 세계화, 개방, 경쟁 그리고 시장기능에 의한 구조조정을 보다 쉽게 수용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북유럽 국가처럼 높은 조세와 높은 복지지출에 합의하기 위해서는 정치와 정부 그리고 개인에 대한 높은 신뢰가 형성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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