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urn] ‘나는 카다피의 간호사였다’
[My Turn] ‘나는 카다피의 간호사였다’
무아마르 카다피의 간호사로 일하러 갔을 때 내 나이 스물하나였다. 그의 다른 젊은 간호사처럼 우크라이나에서 자랐다. 아랍어는 한마디도 못했다. 레바논과 리비아가 어떻게 다른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파픽’(우리가 카다피에게 붙인 별명으로 러시아어로 ‘작은 아버지’라는 뜻이다)은 우리에게 늘 관대했다. 가구가 딸린 침실 두 개짜리 아파트, 부르면 언제나 오는 운전기사 등 꿈꾸던 모든 호사를 누렸다. 하지만 아파트는 도청되고, 개인생활은 철저히 감시 받았다.
첫 석 달 동안은 대통령궁 출입이 허락되지 않았다. 파픽이 아내 사피아의 질투를 우려했던 듯하다. 하지만 곧 파픽을 곁에서 돌보기 시작했다. 그의 건강을 유지해주는 일이 우리의 임무였다. 그의 심박수와 혈압은 건장한 젊은이의 수준이었다. 그가 차드와 말리를 방문할 때 우리는 열대병 감염을 우려해 그에게 늘 장갑을 끼도록 했다. 우리는 그가 매일 관저 둘레길을 걷고, 예방주사를 맞도록 신경 썼고, 시간에 맞춰 혈압을 쟀다.
우크라이나 언론은 우리를 카다피의 ‘첩’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다. 우리 간호사 중 누구도 그의 애인이 아니었다. 혈압을 잴 때만 그의 몸에 손을 댔다. 실제로 파픽은 그의 바람둥이 친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보다 훨씬 점잖다. 카다피는 매력적인 우크라이나 여성만 간호사로 고용했다. 외모가 기준인 듯했다. 그는 아름다운 물건과 사람들에 둘러싸이기를 좋아했다. 면접을 볼 때 그는 내 손을 잡고 내 눈을 빤히 쳐다본 뒤 여러 지원자 중에서 나를 택했다. 그는 첫 악수로 사람을 판단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파픽은 뛰어난 심리학자다.
파픽의 습관은 특이했다. 낡은 카세트 플레이어로 아랍 음악을 듣고, 하루에도 여러 번 옷을 갈아입었다. 의상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그를 보며 1980년대의 록스타를 떠올렸다. 때로는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어도 자기 방으로 돌아가 다시 옷을 갈아입고 왔다. 가장 좋아하는 흰색 정장으로 말이다. 가난한 아프리카 나라를 둘러볼 때는 방탄 리무진의 창을 열고 행렬을 뒤쫓는 아이들에게 돈과 과자를 던져주었다.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았다. 병을 옮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천막에선 잠을 잔다는 이야기는 헛소문이다. 천막은 공식 회의장으로만 사용했다.
우리는 호화로운 해외여행을 했다. 파픽을 따라 미국, 이탈리아, 포르투갈, 베네수엘라에 갔다. 그는 기분이 좋으면 우리에게 부족한 게 있는지 물었다. 때로는 쇼핑을 하라며 보너스를 줬다. 매년 파픽은 모든 수행원에게 자신의 사진이 박힌 금시계를 선물했다. 리비아에서 그 시계만 보여주면 어디든 출입이 허용되고 어떤 문제든 쉽게 해결됐다.
리비아 인구의 약 절반은 파픽을 싫어하는 듯했다. 트리폴리의 병원 직원들은 우리를 시샘했다. 우리 월급이 그들의 세 배나 됐기 때문이다(월 3000달러 이상 받았다). 리비아에서 모든 결정은 파픽이 내렸다. 스탈린처럼 모든 권력과 모든 사치를 독차지했다. TV로 이집트 혁명 소식을 처음 접하면서 리비아에선 파픽에게 감히 반기를 들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튀니지와 이집트 다음에 리비아도 혁명에 휩쓸렸다. 파픽이 기회가 있었을 때 아들 사이프에게 권좌를 물려줬다면 지금 사람들이 죽어가는 이런 일은 없었으련만.
2월 초 트리폴리를 떠났다. 친구 두 명은 남았다. 이제 그들은 출국이 불가능하다. 트리폴리를 떠나야 했던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다. 임신 4개월로 몸이 표나기 시작했다. 파픽이 내 세르비아인 남자친구를 허락하지 않을까 겁이 났다.
파픽은 나의 배신을 절대 용서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내 선택은 옳았다. 친구들 모두 태어날 아기를 생각해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파픽의 최측근들도 그에게서 달아난다. 하지만 파픽은 자녀들, 그리고 남아 있는 내 우크라이나 동료 두 명에게 자기 곁을 떠나지 말고 함께 죽자고 강요한다.
[우크라이나 모길노예에서 옥사나 발린스카야가 한 이야기를 안나 넴초바 뉴스위크 기자가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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