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은 인간과 말의 협업을 이용한 마지막 전쟁이었다. 하지만 그 효과는 형편없었다. 기병대의 유용성은 기관총의 등장 앞에 힘없이 무너졌지만 그 명성은 그 후로도 오래도록 살아남았다. 크림전쟁(1853~56) 당시 영국군 기병대가 러시아군 포병진지로 돌격하다 전멸당한 사건이 교훈이 되지 못한 듯했다. 최근 뉴욕 비비언 보몬트 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워 호스(War Horse)’가 그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이 연극은 런던에서 지난 몇 년 동안 상연됐고 상도 여럿 받았으며 스티븐 스필버그가 최근 영화화하기도 했다. 마이클 모퍼고의 동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1차대전 중 군마로 팔려 영국군과 독일군의 전투에 끌려 나간 혈통 좋은 말 조이의 이야기다. 실제로 당시 전쟁에 끌려나간 말이 수백만 마리에 이르렀다. 그들은 결국 전쟁터에서 포탄에 맞아 처참하게 죽거나 푸줏간의 도마 위에 올랐다.

제1차 세계대전은 극화하기가 쉽지 않다. 제2차 세계대전과 달리 영웅과 악당들이 극명하게 갈리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에게 희화적이거나 미치광이 같은 요소가 없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카이저(과거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황제)는 히틀러와 달랐고, 차르(러시아 황제)도 스탈린과는 달랐다. ‘워 호스’는 군마를 구입하려고 깃발을 휘날리며 데번주의 한 마을에 들이닥친 영국군들의 순진한 애국심을 보여준다. 그리고 기계화된 전쟁에서 인간과 말이 겪는 충격과 공포를 표현한다. 또 전쟁터에 난무하는 무의미한 영웅심과 무차별적인 잔인성을 초현실적으로 묘사한다.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보다 기계(무기)와 말의 충돌이 더 눈길을 끈다. 말들은 마치 악몽 속의 괴물처럼 무대 위를 어슬렁거린다. 하지만 때때로 조용하고 귀여우며 진짜 살아있는 동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말 한 마리를 세 명의 인형조종사가 움직인다. 두 명은 인형 안쪽에서 움직이고, 다른 한 명은 밖에서 머리의 동작을 조종한다. 인형조종사들은 말이 먹이를 먹고, 주변을 살피고, 인간의 친절함과 잔인함에 반응할 때마다 킁킁거리는 콧소리와 씩씩거리는 숨소리를 낸다. 공동연출 톰 모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말들이 진짜 동물처럼 관객과 소통하기를 원했다. 관객은 인형조종사들을 훤히 볼 수 있다. 그들은 동물과 새 인형뿐 아니라 무대장치를 들고 서있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관객은 동물과 인간을 불문하고 모든 등장인물의 삶을 상상하게 된다.”

이들이 무대 위를 돌아다니는 광경을 보면 인형극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있어 왔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형들은 에이드리언 콜러와 베이질 존즈가 제작했다. 1970년대 초 군징집을 피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보츠와나로 탈출한 게이 커플이다. 말리의 바마나 인형극 등 아프리카 전통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인형극이 말로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인간의 무의식에 접근한다고 믿는다. 또 진짜 동물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워 호스’에서 말의 눈은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해 정말 살아있는 듯 보인다. “관객은 말의 눈을 보면서 그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고 콜러는 말했다. “눈의 홍채는 틀로 찍어 형태를 만들고 그림을 그려넣은 다음 그 위에 투명렌즈를 씌워 조명이 비치면 살아있는 듯 보이게 했다.” 그 효과는 정말 신기하다. 말 못하는 말이 인간보다 더 감동을 주고 관객을 사로잡는다. 동물의 세계는 인형극을 통해 우리에게 더 생생하고 재미있게 다가오지만, 인간이 만든 전쟁은 갈수록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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