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oul Serenade] 문학으로 한국과 소통하다

KARI SCHENK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그 덕분인지 대학에서도 영문학을 복수 전공했다. 영어 강사로 처음 한국에 왔을 때도 곧장 서점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한국문학 영역본을 구입해 읽고 또 읽었다. 픽션에서 나타나는 정교한 사건묘사로 한국을 배우는 즐거움이 컸다. 하지만 가장 큰 배움은 작가가 소설 속의 사건을 통해 제시하는 관점에서 왔다. 한국 작가의 렌즈, 다시 말해 작가 특유의 인식을 통해 이 나라의 문화를 들여다보고 뜻밖의 깨달음도 덤으로 얻었다. 그 소설들이 나 자신과 내가 속했던 문화를 보는 새로운 가르침을 줬다.
이 책들은 캐나다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데도 유용했다. 그들이 한국문학 속의 등장인물들에 친숙해지면서 내가 왜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게 됐는지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문학에 관심을 갖는 일차적인 이유는 ‘문학 자체의 위대함’이나 베스트셀러가 가져다 주는 현실도피적인 즐거움이 아니다. 무엇보다 현재 내가 머무는 문화를 배우고 이곳에서 소통하고자 하는 목적이 우선이다.
한국에서 머물게 된 지 7년째가 되면서 나의 한국문학 읽기도 한글원본 책으로 발전했다. 최근에는 현대소설 세 편을 흥미롭게 읽었다. 이 책의 작가들은 소비지상주의와 도시인의 소외, 동조성(同調性)등 서구화된 현대 한국사회의 모습을 그렸다. 김영하의 ‘빛의 제국’에서 아버지 기용은 동정적인 인물이다. 어린 시절의 북한 생활과 공작원 훈련을 받던 시절의 기억이 남한의 현대 소비문화의 묘사와 대조를 이룬다. 일부 남한 사람은 다양한 이성관계를 통해 권태로움을 해소한다. 하지만 그 권태로움은 그에게 사치일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캐나다의 소비사회가 떠올랐다. 시청자가 따분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려는 몸부림으로 캐나다의 TV 방송국들은 뉴스를 ‘인포테인먼트(정보와 오락의 결합)’로 대체했을 정도다.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는 도시에서 독립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일상에서 겪는 수모를 그렸다. 이 소설을 통해 한때 그토록 집단지향적이었던 한국문화가 갈수록 파편화되는 현상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각각의 등장인물에게 돋보기를 갖다 댄다. 단조로운 삶을 이어가는 등장인물들을 부적절한 소재로 일축할 법도 한데 말이다. 그녀의 작품을 읽으면서 모든 생명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은희경의 ‘소년을 위로해줘’는 남성적인 행동규범에 부담을 느끼는, 그러나 동성애자는 아닌 어느 십대 소년에 얽힌 이야기다. 이 책에서 많은 한국인이 사회 규범에 동조하라는 압박을 받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동시에 남성의 행동을 지배하는 사회규범은 캐나다 쪽이 더 엄격하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의 영역판이 출간돼 캐나다의 젊은 남성들도 읽게 되기를 희망한다.
위에 소개한 책들을 보고 내가 선진국 사회에 보편화된 소비지상주의와 소외감 같은 문제에 천착하는 현대작가만 골라 읽는다고 오해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실제로 한국의 더 오래된 소설도 상당히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영어 번역판 출간)에서 등장인물은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들이다. 그곳의 책임자들이 잇따라 이들 환자의 삶을 개선하려 노력하지만 그들에게 자존감을 불어넣어줄 외부인은 아무도 없다. 그들이 맞닥뜨리는 장애물은 자신의 열등감과 스스로에게 가하는 제약뿐이다.
이외수의 ‘훈장’에선 ‘미친개’ 아버지의 불행한 기억을 마음속에 안고 살다가 마침내 예술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학생이 해설자로 등장한다. 1970년대에 쓰인 이 소설들은 한국 독자들에겐 국가·사회적 차원에서 중요성을 느낄 듯하지만 캐나다 독자 입장에서는 등장인물에 더 공감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문학이 이렇게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었는데도 왜 한국 작가의 책은 북미 독자에게 미지의 문학으로 남아 있을까? 나름대로 분석해 보면 문체의 문제가 있을 듯하다. 북미의 현대적 저작 스타일은 짧은 문장과 강렬하고 엄선된 동사를 요구한다. 그리고 완성된 문장은 가능한 한 구체적이고 시각적인 이미지를 수반해야 한다. 역사를 통틀어 볼 때 대부분의 저술이 이 공식을 따르진 않는다. 하지만 이런 글쓰기 스타일을 따르는 김영하의 경우는 타 작가에 비해 북미에서 더 많은 독자를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어 독해능력이 조금씩 향상되면서 내 눈앞에 한국문학의 방대한 세계가 펼쳐진다. 새로운 소설을 집어들 때마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고 또 배우게 된다. 한국 문화뿐만 아니라 캐나다 문화도 다시금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된다.
[필자 카리 쉥크는 캐나다 출신으로 2004년 서울에 왔으며 한국문학번역원에서 부정기적으로 한국문학을 번역한다. 현재 고려대 영어 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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