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랜드마크가 흔들린다
전북 랜드마크가 흔들린다
전북 군산시 대명동에 건설 중인 A메트로타워. 대형 상가동과 아파트 4개 동(614세대)으로 이뤄져 있다. 아파트는 33층·31층으로 전북에서 가장 높다. A타워를 두고 ‘전북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A타워의 총 사업비는 692억원. 이 가운데 500억원은 국민주택기금이다. 시공사는 지역 건설사 B주택건설이다. 2009년 착공한 A타워는 외형이 갖춰졌다. 공사 완료 예정일은 올해 9월, 분양은 이르면 5월 중순 시작할 계획이다.
겉으론 별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속은 그렇지 않다. A타워의 시공을 감시하던 유영호 전 총괄감리단장은 해고됐고, 부실시공 의혹이 잇따르고 있다.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시민단체 공익제보자모임과 유 전 단장은 이르면 5월 둘째 주 군산시와 A타워의 건설기술자를 검찰에 고발할 방침으로 확인됐다. 공익제보자모임 김용환 대표는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건설사의 유착 고리를 끊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B주택건설은 대표 명의로 보낸 반박문에서 “실력 없는 감리단장이 무리한 민원을 제기해 공사 진행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북의 미래 랜드마크는 왜 흔들리는 걸까. 이코노미스트가 각종 소송 자료, 유 전 단장이 확보한 녹취록, B주택건설의 반박 서류를 바탕으로 양쪽 입장을 살펴봤다.
◇상가동이 기울었다 = A타워 논란의 첫째 쟁점은 상가동이 기울었는지다. 상가동을 실측한 유영호 전 단장은 “최소 2㎝ 기울었다”고 주장했다. 국토해양부의 ‘안전점검 및 정밀 안전진단 세부지침’에 따르면 건축물의 안전평가등급은 A부터 E까지 있다. 2㎝가 기운 건축물은 C등급에 해당한다. C등급은 해당 건축물에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D등급 이하는 재건축 대상이다.
B주택건설 측은 “상가동이 기울었지만 (건축법 등이 규정하는) 오차 범위 안에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건축법(제26조)에는 건축물 기울기의 허용오차 규정이 없다. 이에 대해 P 총괄감리단장(유영호 전 단장의 후임)은 “국토해양부의 가설공사 표준시방서(설명서)는 거푸집(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일시적으로 설치하는 것)의 선·면·모서리가 2㎝가량 기울었을 경우, 이를 수직오차 범위로 보고 있다”고 반박했다. P 단장은 이어 “기울기와 수직오차는 현장에서 같은 개념으로 사용된다”고 주장했다.
검찰 “A타워 상가동 기울어”유 전 단장은 지난해 10월 ‘A타워 상가동이 기울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는 이유로 검찰의 내사를 받았다. 진정인은 B주택건설이었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검찰의 ‘진정·내사사건 처분결과 증명서’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A타워 상가동의 기울어짐은 인정된 것으로 보인다. B주택건설과 감리단은 이 기울기가 허용오차 범위 안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울기에 대한 허용오차 범위를 규정한 관련법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유 전 단장이 소문을 냈더라도 허위라고 볼 수 없다.”
문제는 상가동 옆에 있는 아파트 단지의 안전성이다. 유 전 단장은 “상가동과 아파트 단지는 같은 조건(지반 등)에서 건설됐다”며 “상가동이 기울었다면 아파트 단지의 안전성도 검토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려대 이우진(토목공학과) 교수는 “건축물이 기울었다면 기초공사가 부실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안전시험 제대로 거쳤나 = 건축물을 지을 땐 지반이 강한지 약한지, 건축물을 받치는 말뚝(파일)은 단단한지 등을 각종 시험을 통해 따져 본다. A타워도 각종 시험을 거쳐 건설됐다. 진행과정을 보자. 군산시청은 2009년 1월 A타워의 사업계획을 승인했다. 그로부터 3개월 후인 2009년 4월 B주택건설은 설계변경을 신청했다. 내용은 지하층의 기초 말뚝 전체(Ext파일→PHC파일)를 바꾸는 것이었다. Ext파일은 신공법으로 말뚝의 아랫부분을 두툼하게 만든 것이다. PHC파일은 일반적으로 콘크리트 말뚝으로 쓰인다.
당시 감리를 총괄했던 유 전 단장은 “말뚝을 교체하는 건 가능하지만 안전성 검토를 위해 재하시험을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하시험은 말뚝이 건축물의 하중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검토하는 것이다. 2009년 5월 유 전 단장, B주택건설 관계자가 입회한 상태에서 재하시험을 했고 관련 보고서가 나왔다. 결과는 불합격. 유 전 단장은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PHC파일의 안전하중은 120t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최종관입량이 1㎜로 나와 시공관리가 힘들 것으로 판단된다.”
다소 어려운 이 내용을 간단하게 풀어 보자. 앞서 말했듯 재하시험은 말뚝의 지지력을 따지는 것이다. 최종관입량은 ‘항타공식’을 통해 산출되는데 재하시험을 보완한다. 항타공식은 ‘수십t의 해머로 말뚝을 때렸을 때 해당 말뚝이 깨지지 않은 상태에서 얼마나 땅속에 박히는지(관입량)’를 판단하는 것이다. 말뚝이 깊게 박힐수록(관입) 안전하다는 뜻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시방서는 “항타공식으로 시험했을 때 PHC파일의 최종관입량은 5㎜”라고 규정하고 있다.
유 전 단장은 “2009년 5월 실시한 시험에서 PHC파일의 최종관입량이 1㎜에 불과했기 때문에 안전하지 않다고 분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를 대표하는 재하시험 권위자 이우진 교수는 “유 전 단장의 지적이 틀리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서 터졌다. 유 전 단장이 말뚝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자 A타워의 설계변경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B주택건설 측은 유 전 단장이 적용한 항타공식을 문제 삼았다. B주택건설은 “항타공식은 결과가 정확하지 않아 국내외 말뚝 시공 현장에서 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토지주택공사의 ‘공동주택 공사감독 시방서’는 “재하시험으로 확인한 후 항타공식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 전 단장은 자격 미달 = A타워의 설계변경이 유 전 단장 때문에 미뤄지자 B주택건설은 군산시에 총괄감리단장의 해고를 요청했다. “유 전 단장의 자질과 역량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B주택건설의 요청을 받아들인 군산시는 그해 7월 유 전 단장을 해고했다.
기술자는 초급·중급·고급·특급으로 나눈다. 유 전 단장은 건축구조·건축시공분야의 특급 기술자이자 건축공학 박사다. 전문공사에 참여한 일수는 8814일에 달한다. 원광대 외래교수(건축공학과)·서해대 겸임교수(건축과)도 지냈다. 익명을 원한 유 전 단장의 동료 교수는 “유 전 단장은 실무에 특화된 분이었다”고 말했다.
유 전 단장 제자들의 의견도 비슷했다. 원광대 건축공학과 졸업생 최진씨는 “주로 실무를 가르쳤기 때문에 전문가형 교수로 꼽혔다”고 말했다. 공익제보자모임 김용환 대표는 “유 전 단장을 경력이 일천한 감리자로 몰아 해고한 건 지자체와 지역 건설사의 유착관계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P 총괄감리단장도 이런 내용을 인정한 적이 있다. 유 전 단장과 P 총괄감리단장이 2009년 나눈 대화가 담겨 있는 녹취록을 공개한다. P 총괄감리단장의 말을 발췌했다. “…건설 기술자들은 B주택건설의 협력업체지 독립된 기관이 아니라니까…짜고 치는 고스톱이지….”
◇지자체 설계변경 편의 봐줬나 = 2009년 4월 B주택건설이 ‘기초 말뚝 전체를 바꾸겠다’며 설계변경을 요청하자 유 전 단장은 “사업계획변경을 승인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업계획변경은 중대한 설계변경을 의미한다. 유 전 단장은 군산시 건축 담당자에게 “A타워의 설계변경은 중대하기 때문에 공정하게 처리해 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군산시는 이를 경미한 설계변경으로 처리했다.
중대한 설계변경과 경미한 설계변경은 차이가 많다. 중대한 설계변경은 지자체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절차가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경미한 설계변경은 신고만 하면 된다. 군산시 관계자는 ‘중대한 설계변경을 왜 경미한 것으로 처리했느냐’는 질문에 “절차상 잘못한 게 없다”고 답했다. P 총괄감리단장도 “A타워의 설계변경은 법규에 의해 충실하게 이뤄졌다”고 밝혔다.
사실과 다른 말이다. 국민권익위원회 부패행위방지국과 전북도청은 지난해 이 문제를 각각 조사·감사했다. 본지가 입수한 국민권익위·전북도청 보고서의 결론은 같았다. “설계변경이 경미한 사항이 아닌 경우 사업계획변경 승인(중대한 설계변경)으로 처리해야 함에도 군산시 담당 공무원은 확인을 소홀히 했다. 관련 공무원을 문책해야 한다.” 광역자치단체(전북도청)의 처분요구가 타당하지 않으면 기초자치단체(군산시)는 처분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A타워의 설계변경은 문제가 없었다”고 밝힌 군산시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전북도 감사실 관계자는 “군산시의 이의신청은 없었다”고 했다. 군산시 서동완(민주노동당) 의원은 “관련 공무원들이 이 문제로 신분상 주의조치를 받았다”고 밝혔다.
◇깐깐한 단장 해고하고 부실시공했나 = 유 전 단장이 해고된 후 B주택건설의 설계변경은 받아들여졌다. 이 과정에서 공사기간이 40개월(2009년 4월~2012년 10월)에서 30개월(2009년 4월~2011년 9월)로 10개월 줄었다. P 총괄감리단장은 “A타워의 공사기간이 준 것은 맞지만 시공을 안전하게 못할 정도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특급 기술자 무능력 감리자로 전락B주택건설 관계자는 “설계변경 과정에서 재하시험 등 각종 안전시험을 다시 거쳤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시험이 제대로 진행됐는지 따져 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당시 재하시험을 현장에서 지켜봤던 A타워 건설 관계자는 “재하시험을 주관하는 토목품질시험 기술자가 현장에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토부의 ‘구조물 기초설계기준’은 “재하시험은 실시 기술자의 자질에 따라 신뢰도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시험 말뚝을 시공해 재하시험을 먼저 실시하고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하시험 기술자는 현장에서 직접 시험을 진행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와 전북도청은 A타워 관련 감사 보고서에서 “시공현장에서 기술자의 명의가 대여되는 등 불법행위가 있었다”고 못 박았다.
구조계산서와 실제 시공이 다르다는 의혹도 나온다. 구조계산서는 골조·기둥·슬라브 등이 들어가는 양을 계산한 건축물 가계부다. 구조계산서를 바탕으로 설계도면이 나오고, 시공이 진행된다. 본지가 법원에서 입수한 A타워 구조계산서(최종)의 지하주차장 기둥크기는 가로 1500㎜·세로 1500㎜다. 1차 구조계산서는 가로 500㎜·세로 700㎜였다. 유 전 단장이 안전문제를 제기하자 기둥크기를 가로 3배, 세로 2.1배로 늘렸다. 하지만 실제 시공에선 가로 500㎜·세로 700㎜ 기둥이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사진 참조). P 총괄감리단장은 “유 전 단장이 구조계산서를 오해해 비롯된 문제”라며 “구조계산서와 시공은 다르지 않다”고 반박했다.
A타워를 둘러싼 논란은 소송으로 번지고 있다. B주택건설 측은 “유영호 전 단장이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 전 단장은 “A타워는 국민의 돈으로 건설되는 전북의 랜드마크”라며 “기술자의 양심을 걸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누가 진실을 말하는 걸까. 답은 법정에서 나온다.
이윤찬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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