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미생활에 빠진 중년남 >> 자아실현·취미 두 토끼 잡다

#1. 5월 3일 저녁 7시. 개인사업을 하는 김정현(47·가명) 사장은 슈트를 차려입고 서울 청담동 와인바에 도착했다. 와인 수업이 있는 날이다. 프랑스 특1등급 와인인 샤토 무통 로칠드에 대해 공부한다. 그는 비즈니스 때문에 와인을 마실 기회가 많아 좀 더 알아야겠다고 느꼈다. 배우면 배울수록 와인에 빠져들었다.
와인에 대한 흥미는 수집으로 이어졌다. 집에 모아둔 고급 와인만 수십 병이다. 김 사장은 “이곳에 오면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와인을 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애호가와 친분을 쌓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2.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이문호(58) 대표는 5월 12일 서울 용산에 위치한 아이파크몰 뮤직아카데미를 찾았다. 7개월 전 구입한 색소폰을 배우기 위해서다. 아직 색소폰이 무겁고 손에 익숙하지 않지만 그의 표정은 여느 뮤지션 못지않게 진지하다. 그는 자주 들르진 못하지만 한번 가면 2~3시간씩 연습에 열중한다. 그날 배운 건 집에 가 꼭 복습한다. 그는 이제 가족 앞에서도 간단한 연주 정도는 가능하다고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이 대표는 “짙은 호소력으로 심금을 울리는 색소폰 소리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며 “앞으로 열심히 배워 공연도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남성 취미생활 관련 매출 급증40~50대 중년 남성이 다양한 취미에 푹 빠졌다. 특히 예전과 달리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늘었다. 베이비붐 세대인 50대는 더욱 그렇다. 은퇴 시기를 맞아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많아 건강을 다지고 취미생활을 찾는 이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방송된 MBC의 ‘놀러와-세시봉 콘서트’는 중년 사이에 통기타 열풍을 몰고 왔다. 세시봉은 1970~80년대 청년 문화의 산실인 음악 감상실. 서울 종로에 위치했던 다방 세시봉을 중심으로 한 세대를 풍미했던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이 들려준 아름다운 선율은 중년층의 향수를 자극했다. 이 같은 ‘세시봉 열풍’에 통키타·색소폰 등의 악기를 배우려는 남성이 급증했다.
현대아이파크몰 멤버십 카드를 보유한 40~50대 남성 가운데 악기·음향기기 구매자는 올 들어 4월까지 294명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89명보다 55% 증가했다. 현대아이파크몰 홍보마케팅팀 관계자는 “지난해 세시봉 열풍이 분 후 악기에 빠진 사람이 많아지면서 매출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악기를 구입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음악을 배우려는 남성도 눈에 띄게 늘었다. 아이파크몰은 음악에 빠진 사람이 늘자 백화점 문화관 명품악기 매장에서 ‘무료 색소폰 교실’을 수시로 열고 있다. 지난해 2월 시작한 이 강좌는 현재 80여 명 규모의 동호회로 이어졌다.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의 95%가량이 40~50대 중년 남성이다.
남성이 주력 소비층으로 떠오르는 와인도 중년 남성 사이에서 하나의 문화로 뿌리내리는 모습이다. 특히 와인은 단순한 음주문화를 넘어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어 더욱 인기다. 와인나라에 따르면 자사 와인 구매자의 60%는 남성이었다. 와인 소비량도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개인별 평균 구매액은 2010년 324만원으로 2009년(255만원)보다 크게 늘었다. 와인나라 리테일사업부 박민숙 과장은 “40~50대이면서 사회적 지위가 있는 고객을 대상으로 만든 와인강좌에서 자연스레 네트워크와 커뮤니티가 형성돼 와인문화가 널리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와인 매니어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속속 나오고 있다. 와인나라아카데미는 세계와인명가협회 후원으로 CEO를 위한 와인&다인 마리아주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총 8회 수업 중 5회를 만찬과 함께 진행하며 2회는 레스토랑에서 와인파티를 연다.

억눌린 자아실현 욕구 분출프랑스 와인 샤토 무통 로칠드, 이탈리아 최고의 와인 명가 안티노리의 솔라이아, 사시카이아 등 프랑스와 이탈리아 명품 와인을 시음할 수 있다. 명품시계 업체를 운영하는 권영대 대표는 “업무상 비즈니스 미팅이 많은데 와인 스터디를 통해 와인의 종류와 매너를 익힐 수 있어 유익하다”며 “명함을 넉넉히 챙겨와야 한다”고 귀띔했다.
골프 역시 중년층의 대표적 취미활동 가운데 하나다. 스크린골프 업체 골프존이 골프전문채널 J골프와 함께 전국 남녀 649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지난해 골프장 남녀 이용객 비율은 76% 대 24%로 남자가 월등히 많았다. 골퍼들이 1회 라운드를 하면서 쓰는 액수는 평균 24만3000원이었다. 서울(26만8000원)과 인천(27만6000원) 지역 거주자가 다른 지역보다 돈을 더 많이 썼다.
이처럼 중년층이 즐기는 와인, 레저, 음악 등의 취미활동은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돼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취미생활에는 수천만원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도 지갑을 열고 있는 걸 보면 근검절약을 미덕으로 여기던 과거 중년층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 같은 변화는 여유와 건강을 바탕으로 능동적 삶을 추구하는 중년층이 늘고 있어서다.
특히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중반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에서 이 같은 성향이 두드러진다. 이들은 수동적이던 이전 세대와 달리 경제력과 건강, 그리고 충만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삶을 추구한다.
청년 시절 포크음악과 문화에, 학창 시절 학생운동에, 사회인이 되어서는 ‘산업전사’의 에너지에 노출된 세대다. 지금껏 사회와 가족을 위해 살아온 이들이 억눌려 왔던 자신을 위해 ‘꽃을 피우고 싶다’는 의욕을 품고 인생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LG경제연구소 박정현 책임연구원은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다양한 취미·여가활동을 즐기는 사람이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성희 기자 bob28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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