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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necting the Dots] 미국인도 뿔났다

[Connecting the Dots] 미국인도 뿔났다


아랍권에 이어 유럽을 들끓게 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미국에서도 일어날까?
뉴욕의 시위대가 제이미 다이먼 JP 모건 CEO의 사진 위에 ‘월스트리트의 강도 금융업자’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시위 중이다.

미 일리노이주 쿡 카운티의 보안관 톰 다트의 일상을 하루만 들여다봐도 현재 미국인 사이에 일고 있는 분노의 감정(때때로 사나운 폭풍이 이런 국민 정서를 대변하는 듯하다)을 이해하게 된다. 보안관처럼 보이지 않는 그[차(茶)를 즐기고 출근길 차 안에서 로버트 케네디의 연설이 녹음된 CD를 듣는다]는 2006년부터 시카고 인근 지역의 주택압류와 강제퇴거 관련 업무를 감독해 왔다. 강제퇴거 과정엔 늘 어려움이 따른다. 얼마 전엔 한 퇴거 대상 주민이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는 사건이 발생했다. 총상을 입은 후에도 의식이 남아 있던 그 주민은 보안관보들이 그의 집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가자 그들에게 총을 겨눴다. 하지만 다트는 이런 극단적인 사건보다 평범한 사연들에 더 마음이 쓰인다.

최근 시카고 빈민가 사우스사이드의 한 강제퇴거 현장에서 그는 냉장고에 붙은 어린 소년의 사진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사진 좀 보세요. ‘도대체 일이 왜 이 지경이 됐을까?’라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대다수 미국인이 같은 생각이다.

전쟁이나 불경기 때에도 미국인은 이상할 정도로 낙천적이었다. 미국인의 행복감은 1970년대에 절정에 이르렀다. 베트남전과 워터게이트 사건, 석유파동, 인플레이션 등으로 국민의 사기가 떨어졌으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다. 퓨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심지어 요즘도 미국인 80% 이상이 ‘행복하다’ 또는 ‘매우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이 수치는 경기침체기 내내 유지됐다.

하지만 이제 미국인이 현실에 눈뜨기 시작했다. 유가와 식료품값이 계속 오르고 주택 가치가 떨어지면서 대다수 미국인이 ‘이 나라가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 결과는 슬픔과 좌절로 나타났다. 지난해 가을 중간선거 당시엔 피켓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는 정도의 정치적 분노를 넘어선 좀 더 깊은 분노가 표출되기 시작했다.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대의 심리학자 줄리 엑슬린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 중 3분의2가 신(神)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다.

뉴스위크는 이런 분노가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려고 미국인 6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미국인 사이에 불안감이 꽤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미국인 네 명 중 세 명은 현재 미국 경제가 침체됐거나 갈수록 나빠진다고 믿었다. 또 세 명 중 한 명은 결혼과 자녀출산, 내집 마련 등에 불안감을 나타냈다. 그리고 대다수가 경제난,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 그에 따른 공포와 불안감이 인간관계를 손상시켰다고 답했다.

이런 정서가 폭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을까? 최근 미국의 기업이익은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월스트리트도 자신감을 회복하고 다시 흥청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은 사정이 다르다. 실업률이 9%에 이르고, 노동부에 따르면 일자리가 풍족한 부문은 (고임금·고수익의 안정된 직종이 아니라) 서비스 직종뿐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다음 세대를 위해 좀 더 나은 삶을 꾸릴 수단을 획득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5월 한 타운홀 미팅에서 시인했듯이 “많은 미국인이 이제 더는 그런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이런 불안감은 최악의 경우 해외에서 이미 목격된 ‘분노의 날’(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지난주 스페인에서는 경제난과 긴축재정(현재 미국 정부에서도 이와 흡사한 긴축재정안을 고려 중이다)에 반대하는 폭력적인 시위가 발생해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다. 올봄에는 높은 실업률과 고학력 젊은이들의 좌절감으로 촉발된 대규모 폭동이 아랍권을 휩쓸었다. 요즘 많은 미국인이 이런 좌절감에 공감한다. 현재 25~54세의 미국인 남성 다섯 중 한 명은 일자리가 없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불만에 찬 실업자들이 “유해한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공식적인 수치에선 경기회복의 기미가 엿보이지만 이들의 분노가 여름 더위와 함께 고조될 가능성도 있다. ‘행복의 역사(Happiness: A History)’를 펴낸 플로리다 주립대의 역사학자 대린 맥마흔은 “역설적이게도 혁명은 상황이 호전될 때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18세기는 행복감이 넘치는 시대였지만 동시에 불만이 팽배했던 시대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더 많은 종교적 자유를 누리며 불의에 항거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와 현재 미국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이 점이다.” 불씨는 이미 댕겨졌다. 지난겨울 위스콘신주에선 반(反)공무원조노법에 반대하는 시위대 수천 명이 주청사를 점거했다.

불만의 밑바탕에는 고조된 기대가 숨어 있다.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혁명 이전 사람들의 삶은 고통에 차 있었다. 또 정치는 권력의 시녀요, 출산은 덧없는 성교의 결과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 후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에 대해 더 큰 이상을 품게 됐다. 미국인이 모든 걸 가졌으면서도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에 불타는 이유다. 미국은 “불행한 복권 당첨자들의 나라”라는 엘리자베스 콜버트(뉴요커지의 시사해설가)의 말이 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한편으로 기대는 미국의 은총이기도 하다. 미국인은 공공과 민간 부문을 불문하고 늘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분노했다. 하지만 미국인은 다른 어떤 선진국 국민보다 미래를 더 낙관적으로 본다. 사회운동 전문가인 컬럼비아대의 사회학자 토드 기틀린은 “미국인은 2중 장부를 가졌다”고 말했다. 하나는 현실적인 삶의 기록이고, 다른 하나는 “이 난관이 지나면 어떤 삶이 펼쳐질까”라는 기대를 담고 있다.

이런 못 말리는 낙관주의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우선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다. 그들은 ‘다른 어딘가엔 좀 더 나은 삶이 있다’는 신념으로 배나 기차에 오른다. 기틀린은 그들이 미국에 도착하면 그 신념이 문화를 형성한다고 믿는다. 톰 다트 같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도 그런 신념을 바탕으로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다트는 쿡 카운티의 500만 주민 중 많은 이에게(각자의 상황과 상관없이) 포근한 담요와 한 잔의 따끈한 차 같은 역할을 해 왔다. 그는 가난한 사람이 사망했을 때 다른 사람의 유해가 들어 있는 관에 넣어 묻는 잔인한 관행에 맞서 싸웠다. 시카고시의 주택압류 강제퇴거 총책임자로서 그는 비가 오거나 날씨가 몹시 추운 날에는 퇴거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부득이하게 강제퇴거를 실시해야 할 경우는 사회복지사가 퇴거 당사자의 심리적 충격 회복을 도울 수 있도록 했다.

다트의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데는 정치적 실용주의가 확실한 도움이 되지만 미국의 뿌리 깊은 낙관주의도 한몫한다.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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