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 규제 풀어야 산다 >> 규제 묶인 의료계 `우물 안 개구리`

글로벌 인터넷 기업 구글은 2008년 헬스케어 시장에 진출했다. 구글이 2008년 만든 구글헬스는 의사와 환자가 정보를 공유하는 의료 포털 사이트다. 구글헬스 이용자는 진찰 결과·약품 명칭·보험 정보 등을 컴퓨터에서 확인·관리할 수 있다. 구글은 또 지난해 3월 온라인 처방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 슈어스크립트와 손잡았다. 이 결과 슈어스크립트 회원은 구글헬스를 통해 처방전 이력까지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인터넷 기업 구글은 지금 세계 헬스케어 시장의 강자를 꿈꾼다.
일본 보안업체 세콤은 1980년대 말 의료산업에 뛰어들었다. 1991년 6월 일본 최초로 ‘재택 의료 서비스’를 시작했다. 세콤이 운영하는 약국에서 제조한 약을 병원 치료 후 요양 중인 환자에게 배달하는 사업이었다. 세콤은 재택 의료 서비스를 발판으로 간병, 건강식품 개발 및 판매, 양로원 운영, 병원 컨설팅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2002년 5월에는 고령자·장애인의 식사를 도와주는 로봇 ‘마이스푼’을 개발해 유럽시장에 진출했다.
의료기업 발돋움하는 세콤2013년부터는 신흥국 부유층 환자를 대상으로 의료관광 서비스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1962년 설립된 보안업체 세콤은 지금 의료 서비스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세콤의 앞길을 막는 규제는 많지 않다.
구글과 세콤은 드문 사례가 아니다. 미국·일본 등 해외 각국이 의료 규제를 풀어놓은 바탕에서 서비스를 확대했다. 해마다 커지는 의료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공공의료 성격이 강한 유럽에서도 영리병원이 증가한다. 소득수준이 향상되고 고령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다양한 의료 서비스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공공의료기관의 민영화 작업을 시작한 독일은 전체 병원 중 민영화 비율이 30%에 이른다. 독일 공공의료기관이 영리병원으로 전환할 경우 이를 막는 규제는 없다. 독일에 대규모 자본이 들어간 체인병원이 쉽게 세워지는 이유다.
한국은 다르다. 영리법인은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다. 의료기관이 돈을 벌 수 있는 부대사업은 주차장·장례식장 운영 등으로 제한적이다. 그래서 국내 의료산업에 자본이 투입될 여지는 거의 없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국내 의료기술은 ‘우물 안 개구리’ 신세다. 그래서 의료 서비스 비중이 확대되지 않는다. 국내 서비스산업에서 보건의료 부문 비중은 5.2%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낮은 편이다. 독일은 9.4%, 미국은 8.9%다.
해외 각국이 선점하려는 첫째 의료산업은 U헬스케어다. 2009년 1431억 달러였던 세계 U헬스케어 시장은 2013년 2540억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U헬스케어는 유무선 네트워크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질병예방·진단·사후관리가 가능한 서비스다. 이 때문에 U헬스케어가 원활하려면 원격의료를 막는 규제가 없어야 한다.
울릉도에 사는 당뇨병 환자 A씨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당뇨병 치료를 받던 A씨는 원격진료를 시작했다. 치료시간과 교통비 등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였다. 원격진료는 절차가 간단하다. PDA·PC 등 IT기기로 A씨의 건강을 확인하면 관련 데이터가 서울 병원의 주치의에게 전송된다. A씨로선 진료 받기 위해 서울까지 갈 필요가 없다. 환자 입장에선 최상의 의료 서비스다.
미국은 원격의료 규제를 조금씩 풀고 있다. 올 6월 현재 23개 주에서 원격의료가 허용되고 원격의료보험이 인정된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009년 U헬스케어를 이용한 원격의료시스템 구축에 약 8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독일과 영국은 2005년과 2007년 원격건강관리법을 제정했고 노르웨이의 원격의료 비중은 20%에 이른다. EU(유럽연합)와 싱가포르는 각각 2011년, 2015년까지 원격의료 인프라 구축에 대규모 투자를 추진할 방침이다. 일본도 원격의료에 보험수가가 적용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일본의 병원·의료기기업체가 U헬스케어에 뛰어들 수 있는 환경을 정부가 나서 조성한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원 이승철 연구원은 “U헬스케어산업은 IT·의료 외에도 관광·생명공학 등 다양한 분야와 융합이 가능하다”며 “의료산업 활성화에 방해가 되는 규제는 서둘러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현실은 이와 다르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환자와 의료인의 원격진료가 불가능하다. U헬스케어 서비스를 수가로 인정하는 의료건강보험은 없다. 이승철 연구원은 “U헬스케어에 보험수가가 적용되지 않으면 관련 산업이 성장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U헬스케어만 규제의 늪에 빠져 있는 건 아니다. 미래 황금알로 불리는 의료관광산업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관광진흥법(2009년 3월)·의료법(2009년 5월) 개정으로 외국인 환자 유치가 허용됐지만 외국 의료인의 국내 병원 취업 길은 막혀 있다. 익명을 원한 병원 관계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의료법과 의사면허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한국을 찾은 외국인 환자가 자국 의료인에게 치료 받을 수 있다면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규제는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 룰에 막힌 외국인 환자 유치의료관광산업의 성장을 막는 규제는 더 있다. 경제규모가 작은 국가의 국민은 의료용 비자를 쉽게 받을 수 없다. 우리들병원 이미정 홍보팀장은 “경제규모가 작은 국가에서 왔더라도 한국에 치료를 위해 올 정도라면 그곳에선 상류층”이라며 “그런 사람들이 국내에 불법 체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못박았다. 삼성서울병원 홍보팀 송훈 과장은 “미국이 한국인의 의료관광 무비자를 단계적으로 허용한 조치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제력이 약한 국가의 국민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의료용 비자 발급은 까다롭다. 외국인이 국내에서 3개월간 유효한 의료용 비자를 받으려면 서류 10여 가지를 제출해야 한다. 인도는 1년간 유효한 의료비자를 바로 내준다. 일본도 올해 초부터 외국인 환자가 최대 6개월 동안 머물 수 있는 의료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외국인 환자가 점유할 수 있는 병상이 전체의 5%를 넘을 수 없다’는 규제도 문제다. 보다 많은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해 힘을 쏟는 외국에선 찾아볼 수 없는 규제다. 싱가포르의 영리병원 파크웨이그룹은 말레이시아·브루나이·인도 등 동남아 국가에서 환자 유치 사무실을 운영한다. 이곳 환자를 자신들의 병원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이다. 환자 유치 규모의 제한은 없다. 파크웨이병원의 외국인 환자 비율은 50%에 달한다. 이 병원은 2012년까지 외국인 환자 100만 명을 유치해 2조1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의료산업 10억원당 20명 고용 창출2005년 샴 쌍둥이 분리수술을 성공해 유명해진 태국의 범룽랏 병원은 한국어를 포함한 14개 언어로 만든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통역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환자 가족 편의를 위해 숙소도 별도로 만들었다. 범룽랏 병원은 연간 100만 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한다. 이 중 43만 명이 외국인이다.
캐나다의 외국인 환자 유치전략은 범정부적으로 진행된다. 미국과 인접한 밴쿠버시 일대에 있는 밴쿠버 병원·브리티시 컬럼비아 병원 등 5개 병원을 묶어 ‘밴쿠버 코스탈헬스’를 구축했다.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한 병원 클러스터로 이해하면 쉽다.

보건복지부는 6월 8일 제11차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의료관광산업 활성화 대책(박스기사 참조)을 발표했다. 여기엔 외국인 환자 배상 시스템 도입, 외국인 환자 병원 내 조제 허용, 의료기관의 숙박시설 신·증축 시 용적률 완화 등 7대 중점과제가 포함됐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한동우 국제의료정책팀장은 “이번 대책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그는 “U헬스케어·의료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선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규제가 사라져야 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류희삼(국제관광과) 주무관은 “아시아 의료관광을 선도하는 태국·싱가포르에 비해 한국의 실적은 부진했다”고 전제한 뒤 “이번에 마련된 대책을 통해 2015년 외국인 환자 30만 명 유치의 발판이 마련됐으면 한다”며 바람을 내비쳤다.
의료산업이 성장하면 국가경제에 큰 도움을 준다. 의료산업의 일자리 창출은 투입비용 10억원당 19.5명으로, 제조업 12.1명보다 훨씬 크다. 국내 산업 평균은 16.9명이다. 반면 국내 의료산업의 고용 비중은 3%에 불과해 미국 7.6%, 영국 6.7%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만큼 고용 잠재력이 크다는 소리다. 해외 각국이 의료산업 육성을 위해 규제를 풀고 투자 확대를 모색하는 이유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은 한 발짝 뒤처진 게 사실이다.
세계 최고 수준인 국내 의료기술은 규제에서 벗어나면 날개를 달 수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이철행 기업정책팀장은 “한국의 암치료·장기이식·성형수술 수준은 세계 최고”라며 “비행거리 2시간 내에 인구 500만 명이 넘는 도시가 18곳이나 있어 대형병원이 들어설 만한 입지도 많다”고 말했다. 규제 빗장만 풀면 국내 의료산업의 성장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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