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w] 부부 사이 돈 문제 계약으로 해결

서로 죽고 못 사는 남녀라도 막상 혼인하려고 하면 복잡한 문제에 부닥칠 때가 많다. 혼인 후 부부의 재산관계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하는 것도 그런 문제 중 하나다.
옛날처럼 부부간의 모든 재산은 남편의 것이고, 아내는 그냥 남편이 주는 생활비만 가지고 아이를 키우며 살림만 하는 세상도 아니다. 외국에서는 유명 인사들이 혼인하기 전에 변호사를 통해 혼인 중의 경제생활에 관해 세밀하게 약정해 두는 게 일반화돼 있다. 약정대로 각자 재산을 소유하고 생활비 및 양육비 부담을 하며 혼인생활을 꾸려 나가고 이혼할 때에도 약정에 따라 재산을 분배하고 위자료를 받고 자녀의 친권을 결정한다.
친권과 위자료까지 계약우리도 혼인하려는 남녀가 혼인 후에 생길 수 있는 재산에 관한 여러 가지 법률문제를 혼인 전에 미리 약정해 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혼인 전에 각자 가지고 있던 재산은 어떻게 할 것인가, 생활비와 자녀양육비는 누가 부담할 것인가, 혼인 중에 남편이 마음대로 재산을 처분하거나 함부로 보증 서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가, 이혼할 때는 혼인 중 모은 재산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하는 문제 등이 대상이다. 나아가 그런 약정을 공적 장부에 등재해 두고 상대방이 이를 무시하면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3자에게까지 주장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 둔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민법이 만들어 둔 부부재산계약제가 바로 그것이다.
부부재산계약이란 부부가 혼인하기 전에 재산에 관해 미리 맺어두는 약정을 말한다. 민법은 부부가 혼인하기 전에 부부 재산에 관해 따로 약정한 때, 즉 부부재산계약을 했으면 그에 따르고, 그런 약정이 없을 때에는 법정재산제에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정재산제란 부부의 일방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 재산과 혼인 중 자기의 명의로 취득한 재산을 특유 재산으로 하고, 부부의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 분명하지 아니한 재산은 부부의 공유로 추정하는 것을 말한다. 부부재산계약제가 우선이고 그것이 없으면 법정재산제에 따른다. 법정재산제와 다른 방식으로 재산을 소유하기 위해 따로 약정을 하는 게 부부재산계약이다.
부부재산계약은 부부가 될 남녀가 체결하는 계약이다. 재산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두 사람 각자에게 행위능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미성년자, 한정치산자, 금치산자의 부부재산계약 체결에 대한 동의는 혼인에 대한 동의와는 별도로 있어야 할 것이고,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체결한 부부재산계약은 이를 취소할 수 있다. 부부재산계약은 혼인성립 전, 즉 혼인신고 전에 체결해야 한다. 혼인성립 후에도 부부재산계약을 맺도록 하면 애정에 휩쓸리거나 압력에 의해 공정한 계약을 체결할 수 없게 되어 배우자, 특히 처에게 불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부재산계약을 체결할 것인가 말 것인가, 체결한다면 어떤 내용으로 할 것인가는 계약자유의 원칙상 오로지 당사자의 의사에 달려 있다. 다만, 그 계약의 내용이 혼인의 본질적 요소에 어긋나고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 및 강행법규에 반하면 무효다. 예컨대 부부 사이의 부양의무를 없애기로 한다든지, 처의 재산을 모두 남편의 재산으로 한다든지, 처는 남편의 동의를 얻어야만 모든 법률행위를 할 수 있다든지 하는 약정이 이에 해당한다.
부부재산계약제의 몇 가지 형태를 예시해 본다.
① 남편(아내)이 혼인 전부터 소유하는 고유 재산 또는 혼인 중 취득하는 재산을 부부의 공동 재산으로 하고 나아가 공유 지분 비율까지 정하는 약정.
② 남편(아내)이 혼인 전부터 소유하는 고유 재산과 여기에서 발생하는 소득과 혼인 중 취득하는 재산을 남편(아내)에게 단독으로 귀속시키기로 하는 약정.
③ 공동 재산의 관리자로 남편(아내)을, 남편(아내) 단독 재산의 관리자로 남편(아내)을 지정하는 약정.
④ 남편(아내)이 혼인 전부터 소유하거나 혼인 중 새로 취득하는 재산을 아내(남편)의 동의 없이 처분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약정.
⑤ 부부재산계약에 따라 자녀의 양육비 등 생활비용의 분담 비율을 정하는 약정.
한번 정해진 부부재산계약은 원칙적으로 변경할 수 없으나 정당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법원의 허가를 얻어 변경할 수 있다. 혼인 중 부부재산계약의 변경에는 당초 부부재산계약에 존재하지 않는 내용의 추가 및 부부재산계약의 해지도 포함된다.
각박해 보이지만 가정평화에 크게 기여부부재산계약은 부부 사이에서는 항상 효력을 갖는다. 그러나 그 계약으로서 제3자에게도 효력을 주장하려면, 즉 제3자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이를 부부재산계약 등기부라는 공부(公簿)에 등기해야 한다. 그 취지는 거래관계에서 부부가 부부재산계약에 따라 제3자에게 손해를 가하고 거래의 안전을 해하는 것을 방지하자는 것이다. 부부재산계약의 등기는 남편이 될 자의 주소지에 가까운 법원이나 등기소에 부부재산계약등기 신청을 해야 한다. 등기소는 부부재산계약 등기부를 항상 비치해야 한다.
부부재산계약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 부동산 거래를 하려는 사람은 부동산 등기부를 열람하는 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게 된다. 그 부동산이 부부재산계약의 결과 부부의 공유로 되어 있어 그 사실이 부부재산계약 등기부에 등기돼 있다면 예상 밖의 손해를 볼 우려가 있다. 남편이 처의 동의를 얻어야만 부동산을 처분할 수 있다는 약정이 있고 이것이 부부재산계약 등기부에 등기된 경우 부동산 등기부만 믿고 남편으로부터 위 부동산을 취득한 제3자는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하게 된다. 부동산 등기부와 부부재산계약 등기부가 이원화돼 있기 때문에 부동산에 관한 거래를 하려면 부동산 등기부 이외에 부부재산계약 등기부의 존재 및 내용도 살펴봐야 한다. 거래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부동산에 관해서는 부부재산계약 등기부의 내용과 부동산 등기부의 내용이 서로 저촉되는 경우 부동산 등기부의 내용이 우선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입법론적으로 부동산 등기부와 부부재산계약 등기부의 일원화가 필요하다.
이 제도가 언뜻 신성한 혼인의 성립에 장애가 되고 사랑으로 맺어진 가정을 모독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제도가 혼인 중 부부간의 재산관계를 명확히 해서 다툼을 예방하고, 이혼할 때 원만한 재산분할 협의를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가정을 보호하고 가정 평화에 기여하는 측면이 더 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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