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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論濁論] 가계부채 뇌관은 대출구조

[淸論濁論] 가계부채 뇌관은 대출구조

이건호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가계부채 논란이 뜨겁다. 한편에서는 올 1분기 가계신용(가계대출+판매신용)이 800조원을 넘어서 가계부채 문제에 경고등이 켜졌다고 우려한다. 반대로 한국은행 김중수 총재는 “위험 수준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고 예상된 위기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은 총재의 말이 사실이라도 국민은 불안하다. 위기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반드시 큰 문제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든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야 올바른 대응이 가능하다. 일부에서는 지난 수년간의 저금리-고환율 정책이 가계부채를 늘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 와서 고금리-저환율 기조로 정책을 바꿔도 가계부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가 관리를 위해 금리인상이 불가피하겠지만 속도를 신중하게 조절할 필요가 있다. 빠른 금리인상이 가계대출의 연체율 증가를 유발하면 금융회사가 대출회수에 나서면서 연쇄적인 가계부도가 나타날 수 있다.

대출의 총량규제도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킬 공산이 크다. 가계부채 문제의 해법은 총량이 아니라 대출구조에서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가계부채의 증가 추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는 이유가 금융회사와 소비자의 왜곡된 욕구에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가계부채가 명목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을 크게 웃돌면서 빠르게 증가한 배경에는 1차적으로 국내 금융회사, 특히 은행의 영업전략이 있었다. 은행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가계 부문에 대한 밀어내기 식 대출 확대를 지속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대출 대부분이 “상환기일이 도래해도 연장이 가능하다”는 은행과 차입자의 압묵적 합의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차입자는 이자를 낼 수 있으면 원금상환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은행은 대출자산이 줄어들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양쪽 모두 좋은 일이다. 그러나 원금 상환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가계부채의 총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시상환형 혹은 거치식 주택담보대출의 계약상 만기가 단기라는 점도 문제가 심각하다. 대출 만기가 무한정 연장된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무슨 이유로든 만기연장이 거부되면 차입자가 살던 집을 팔거나 부도 위험에 몰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주택담보대출은 90%가량이 변동금리부대출이다. 시장금리가 상승하면 이자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연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연체가 발생한 대출은 만기연장이 불가능한 탓에 가계부도 가능성이 더 커지게 마련이다.

주택담보대출의 금리 및 만기구조가 이처럼 취약해진 것은 차입자가 리스크에 둔감한 탓도 있다. 하지만 장기보다 단기대출이, 고정금리보다 변동금리대출의 금리가 낮아 금융회사가 보다 쉽게 판매할 수 있는 구조 또한 문제다.

가계부채가 부실해지면 가장 큰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이런 점에서 낮은 금리를 앞세워 위기에 취약한 구조의 대출을 양산하는 금융회사의 영업 관행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분할상환대출의 비중을 확대해 채무자가 점진적으로 부채를 상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 금리인상에 따른 충격이 상환부담 증가로 이어지지 않도록 고정금리대출의 비중을 늘려나가는 것도 올바른 접근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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