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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ss] 국방예산 삭감이 능사는 아니다

[Compass] 국방예산 삭감이 능사는 아니다


‘재정을 의식한 고립주의’엔 큰 대가 따라

미국 정치의 양극화 현상을 생각할 때 해외 주둔군 철수 문제를 둘러싼 진보와 보수 진영의 의견 일치는 불가사의에 가깝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최근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병력 감축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말까지 1만 명, 내년 여름까지 2만 명을 더 철수시킨다는 계획이다.

이는 승리의 선언이 아니라 파산 선언이다. 미국 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재정적인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간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쏟아붓는다. 일각에서는 이 비용이 정부 지출을 너무 많이 깎아먹는다고 믿는다.”

예전 같았으면 공화당 의원들(그리고 상당수 민주당 의원)은 이 같은 철군 계획에 실망감을 나타냈을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발표가 있기 며칠 전 공화당 대선 예비주자들은 TV 토론에서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오바마보다 한술 더 떠 철군을 강하게 주장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로 가장 유력시되는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먼저 시작했다. “가능한 한 신속하게 미군을 철수시켜야 할 때다. 아프간 주둔 미군 장군들의 말처럼 미국이 탈레반 군부에 아프간을 넘겨주고 그들 스스로 나라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아니, 탈레반이 아니라 아프간 군부에 넘겨주고 그들 스스로 탈레반으로부터 나라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본심을 드러내는 듯한 실언이었다.

대다수 미국인이 국방예산 삭감을 주장하지만 고립주의에는 대가가 따른다.
론 폴 하원의원도 그에 뒤질세라 이렇게 말했다. “아프간 주둔 미군을 가능한 한 신속하게 철수시키겠다. 이라크 주둔군 역시 철수시킬 생각이다. 또 리비아에서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 예멘과 파키스탄 폭격도 중단하겠다.” 보수 유권자 정치단체인 ‘티파티’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미셸 바크먼 하원의원도 미국의 리비아 사태 개입에 반대했다. “미국은 (리비아로부터) 공격을 받거나 공격의 위협을 받지 않았다. 중대한 국익이 걸린 문제도 아니다. …리비아 사태 개입은 오바마 대통령의 명백한 실책이다.” 발언 기회를 노리던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이 끼어들었다. “미군의 안전을 도모하면서 가능한 한 신속하게 빠져나올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 자리에서 ‘미군이 아프간에 주둔하게 된 이유는 알카에다가 그곳에서 9·11 테러 음모를 꾸몄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듯한 사람은 팀 폴렌티 전 미네소타 주지사와 릭 센토럼 전 상원의원뿐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다수의 의견에 본격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진 않았다. 미국은 (론 폴의 말에 따르면) 해외 주둔군 철수로 “수천억 달러를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뒤늦게 공화당 대선 후보 출마 의사를 밝힌 존 헌츠먼 전 중국 주재 대사도 폴의 견해를 지지했다.

국가 재정을 국제 전략보다 우선시하는 이른바 ‘재정을 의식한 고립주의(IOU-Solation)’다.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의 말마따나 앞으로 10년 안에 미 연방정부의 부채에 따른 이자가 국방지출을 능가할 전망이다. 또 의회 예산국에 따르면 2015년까지 전투태세를 갖춘 병력을 4만5000명으로 줄일 경우 4000억 달러 이상이 절약된다.

미국은 확실히 재정 상태를 재점검하고 정상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국방비 삭감으로 얻어지는 이득을 따질 때 미군이 아프간이나 이라크 같은 나라에서 철수할 경우 어떤 대가가 따를지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급진적인 이슬람주의가 사양길에 접어든 듯한 기미는 전혀 없다. 게다가 “부시의 대테러 전쟁”이 현재 미국 재정 불안의 주요인이라는 주장은 명백히 틀렸다. 지난해 미국 국방예산은 국내총생산(GDP)의 4.7%로 부시 정부 시절 어느 때보다 더 높았다. 하지만 사회보장과 노인의료보험 및 저소득층 의료보험 비용은 GDP의 10.3%에 달했다.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두 가지 명백한 현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을 파산 위기로 몰고 가는 주요인은 국방 지출이 아니라 베이비붐 세대가 퇴직하면서 꾸준히 늘어나는 복지 비용이다. 한편 국외 정세는 점점 더 불안해진다(예멘 사태가 한 예다).

‘재정을 의식한 고립주의’는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를 받을지 모른다. 하지만 제대로 된 지도자라면 그런 잘못된 예산절감 정책을 받아들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필자는 하버드대 역사학자로 뉴스위크의 고정 칼럼니스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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