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ANDAL] 머독 게이트: 수렁에 빠진 미디어 제국
[SCANDAL] 머독 게이트: 수렁에 빠진 미디어 제국
Rupe’s Hacks Dodge Flak
여름 휴가 지나면 분노도 사라진다
GEOFFREY ROBERTSON호주에선 루퍼트 머독의 젊은 시절에 얽힌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당시 호주에서 지방 신문을 운영하던 머독은 자신의 비위를 거스르는 한 정치인에게 이렇게 물었다. “매일 장미꽃 한 다발을 받는 쪽과 똥 한 양동이를 받는 쪽 중 어느 쪽을 원하시오?”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지어낸 말인지는 모르지만 영국 하원의 한 위원회에서 열린 청문회에 밝은 표정으로 출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위원회는 최근 폐간된 타블로이드판 일요 신문 ‘뉴스 오브 더 월드(NotW: 머독의 미디어 제국 ‘뉴스 코퍼레이션’의 영국 내 법인 ‘뉴스 인터내셔널’의 자회사다)’의 조직적이고 불법적인 전화 해킹 관행을 조사 중이다. 청문회에서 머독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자신을 다우닝 스트리트의 총리 관저로 초청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자신이 소유한 신문들이 캐머런을 위해 정치 선전을 해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감사의 표시는 은밀히 이뤄졌다(캐머런은 머독을 뒷문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정치인들이 언론계 거물에게 진 빚을 어떤 식으로 갚는지를 대중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미국과 영국, 호주에서는 정치인들이 루퍼트 머독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일이 정계의 관행처럼 굳어졌다. 그런 관행이 유난히 심한 곳이 영국이다. 사람들은 머독이 소유한 타블로이드판 신문들이 근로 계층의 표를 끌어모으는 능력이 노조보다 더 뛰어나다고 믿는다. 뉴스 코퍼레이션에 고용된 사람들의 부도덕한 행동으로 머독이 의회 청문회에 불려나올 정도가 됐으니 그만큼 영국 국민의 분노가 컸다는 말이다. 머독은 아들 제임스와 함께 하원 청문회장에 섰다. 그로서는 매우 굴욕적인 일이다.
하지만 머독 부자는 운이 좋았다. 청문회 질의자로 나선 의원들이 하나같이 영향력이 신통치 않은 이류였다. 일부러 그렇게 고른 듯한 느낌을 줄 정도였다. 그들은 지난 10년 동안 NotW에서 어떤 잘못이 저질러졌는지 알지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는 머독의 주장을 그냥 듣고 넘겼다. 그가 편집자들에게 수시로 전화해 농담을 주고받으며(머독은 이 일을 무척 즐겼다) 기사 취재에 쏟아부은 돈이 그 가치를 제대로 발휘하는지 확인한다는 사실을 언론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도 말이다.
청문회장에서 한 방청객이 머독에게 면도 크림이 담긴 접시를 던진 일도 그에겐 행운이었다. 청문회장의 분위기가 산만해지면서 (해킹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머독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는지 여부를 단단히 짚고 넘어가지 못했다. 뉴스에서는 머독의 뒷자리에 앉았던 그의 부인 웬디 덩이 남편을 공격하려는 방청객에게 달려들어 그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세게 내려치는 장면이 수없이 방영됐다. 이 장면을 보면서 뉴스 코퍼레이션의 투자자들은 그 순간 청문회장에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사람은 루퍼트 머독뿐이었다는 사실을 눈치챘을지 모른다. 그는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 같았다. 이런 모습이 (해킹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지는 몰라도 그가 뉴스 코퍼레이션 같은 큰 기업을 이끌어 가기엔 너무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듯했다.
머독 부자는 유명인사들의 성생활을 다룬 자사의 기사가 부패한 경찰관들로부터 사들인 정보나 불법 전화 해킹으로 확보한 정보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증언은 주로 아들 제임스가 했는데 그는 디즈니 만화 캐릭터 도널드 덕을 연상케 하는 목소리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머독은 스캔들 기사라면 신문이 나오기 전에 그 내용을 꼭 듣고 싶어 할 정도로 좋아했다. 정보의 출처나 그 정보를 얻으려고 얼마나 많은 돈이 불법적으로 지불됐는지는 절대 묻지 않았다. 그는 청문회에서 그런 비용의 지불을 승인한 간부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난 내가 믿는 사람들로부터 배신당했고, 그 사람들은 또 자신들이 믿는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한 듯하다.” 사건에 연관된 사람 모두가 청문회 전 주에 뉴스 코퍼레이션을 떠났다. 정말 놀라운 우연의 일치다.
청문회에서 정곡을 찌른 질문이 딱 하나 있었다. 그 자리에서 머독 부자는 글렌 멀케어(NotW와 독점 계약을 맺고 왕실과 유명인사의 휴대전화를 해킹한 혐의로 체포됐다)가 저지른 전화 해킹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뉴스 코퍼레이션이 멀케어의 법적 비용을 지불했습니까? 혹시 아직도 지불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이 나오자 머독 부자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회사가 아직도 그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야 알았다.
청문회 다음 날 뉴스 코퍼레이션 측은 멀케어의 법적 비용 지불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뉴스 코퍼레이션이 멀케어에게 아직도 돈을 대준다는 사실은 멀케어의 행동에 대한 머독 부자의 사과가 진심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한다. 그들이 투명성과 진실을 원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진심으로 투명성과 진실을 원한다면 멀케어로 하여금 그의 해킹 대상자 4000명이 누구인지를 자백하고, NotW에서 그에게 그런 부도덕한 일을 시키고 돈을 지불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밝히도록 해야 한다.
NotW의 전 편집장 콜린 마일러와 그의 변호사는 제임스가 청문회에서 “해킹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를 본 적이 없다”고 거짓 증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머독 부자는 증언 전에 ‘진실만을 말하겠다’는 선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증 혐의로 기소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의회에서 거짓 증언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그 사람은 평생 그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머독 부자가 위성방송 ‘B스카이B’의 인수 시도를 재개할 경우 그 회사를 인수할 ‘적격자’임을 증명하기 어렵게 된다. 게다가 현재 소유한 39%의 지분마저 처분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될지 모른다.
미국 경찰은 런던 경찰청의 정보를 믿지 못한다. 영국 하원의 또 다른 위원회는 NotW의 제1차 해킹 수사의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보고했다. 경찰이 멀케어에게 전화 해킹을 당한 피해자들의 말을 무시했을 뿐 아니라 머독의 심복들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았기 때문이다. ‘위팅 작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2차 수사도 별로 나아 보이지 않는다. 뉴스 인터내셔널의 전 CEO 레베카 브룩스를 청문회 증언 전에 체포함으로써 그녀가 어려운 질문에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꼴이 됐다. 또 검찰 측에서 가장 기대를 걸었던 증인(뉴욕 타임스지에 브룩스의 불법행위를 고발한 NotW의 전 연예담당 기자)이 브룩스가 체포된 다음 날 사망한 채 발견됐다. 경찰은 (그의 사망이) “해킹 사건과는 연관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지만 이제 누구도 경찰의 말을 믿지 않는다.
이 사건의 끝은 어디일까? 요즘 영국의 분위기는 ‘신들의 황혼(신과 악신의 싸움으로 전 세계가 멸망한다는 내용의 튜턴족 신화)’을 연상케 한다. 머독 일가는 수사의 진전을 지켜보면서 전전긍긍하고, NotW의 기자들이 런던 경찰청의 공보실 직원으로 임명되는 제도적인 부패가 노출되면서 경찰청 고위 간부들이 줄줄이 사임한다. 사법부의 조사가 시작되면 더 많은 스캔들이 폭로될 듯하다.
하지만 이제 길기로 유명한 영국의 여름 휴가철이 시작됐다. 의회는 3개월 동안 휴회에 들어갔다. 10월 중순 의회가 다시 열릴 즈음엔 머독 일가에 대한 국민의 분노도 사그라질 것이다. 만약 머독이 청문회에서 (자신이 경멸하는) 이류 의원들에게 진심을 말할 마음이 있었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NotW가 400만 명의 독자를 확보한 비결은 일요일 아침 다른 사람의 성생활 기사를 읽으며 킬킬거리기 좋아하는 음란한 영국 사회의 취향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뇌물증여와 부패 등 불법행위를 바탕으로 한 기사 중에 대중에게 진정 중요한 의미를 갖는 기사는 하나도 없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10월에 긴 여름 휴가를 끝내고 돌아오면 자신들이 ‘세계의 섹스’라고 부르던 신문(NotW)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서운한 생각이 들지 모른다. 루퍼트 머독은 모든 업보가 용서되는 그때에 다시 돌아오면 된다. 사람들은 청문회에서 그가 보여준 겸손한 태도와 남편을 지킨 웬디의 날카로운 펀치만을 기억하지 않을까?
[필자는 영국 최대 인권전문 변호사 사무실의 대표다.
번역 정경희]
Big Red Passes Buck
오리발 내미는 편집장
CLIVE IRVING 기자 영국의 대표적 일요 신문 ‘뉴스 오브 더 월드’ 편집장은 아무 생각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인가 보다. 레베카 브룩스의 증언에 따르면 그렇다. 의회에 출두한 브룩스 편집장은 다른 신문 편집장들은 이해하지 못할 새로운 방식의 명령 체계를 설명했다.
가장 이해가 안 가는 건 돈 문제다. 해킹으로 정보를 수집하려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를 승인한 사람이 당연히 존재한다. 승인자는 과연 누구인가?
브룩스는 수석 편집장이 전체 편집 예산을 “획득”하면 “각 부서 편집 부장이 할당을 받는다”고 진술했다.
그렇다면 실종 후 살해된 13세 소녀 밀리 다울러의 휴대전화를 해킹해 보도한 특종 기사는 어떤 절차를 거쳤나?
뉴스 오브 더 월드 같은 타블로이드 신문은 그런 튼 사건을 어떤 식으로 취재하나? 브룩스는 “현장 기자부터 부편집장, 편집장에 이르는 다양한 단계가 있다”고 침착하게 답했다. 그리고 부편집장은 “기자와 함께 기사를 의논하고 직접 수정한다.”
브룩스의 증언에 따르면 이 끔찍한 사건을 취재하는 어떤 단계에서도 편집장은 “정보원이 누구며 어디에서 정보를 얻었는지”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심문을 맡았던 테레즈 코페이는 브룩스가 변명하기 힘든 구체적 사항을 언급했다. 뉴스 오브 더 월드가 다울러 실종 6일 후 그녀의 휴대전화에 남겨진 음성 메일의 내용을 알았다는 점이다.
해당 정보의 출처를 물어본 적은 있나?
“그렇다”고 브룩스는 증언했다. 기자와 담당 편집자에게 확인절차가 있었고 “야간 근무 편집자와 변호사가 출처를 확인했을 것이다.”
전형적인 방어적 답변이다. 수석 편집장만 정보원에 대해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자신은 계속 올바른 일만 했다는 주장이다. “뉴스 오브 더 월드 편집장으로서 내가 집중했던 부분은 성범죄 법안을 개정하도록 의회를 설득하는 일이었다”고 브룩스가 말했다. “해당 사건을 보도하는 데 관여했다면 모두 독자의 알 권리를 위해서였다.”
그 밖에 다른 ‘조사’ 활동에서 브룩스는 자신이 관여한 점이 없다며 거리를 뒀다. 부도덕한 취재 행위가 있었다면 모두 아랫선에서 이루어졌다는 주장이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밀리 다울러의 음성 메일 도청을 알고 이를 승인하는 일은 없다.”
Citizen Rupert
자신이 놓은 덫에 걸린 머독
CARL BERNSTEIN장장 세 시간에 걸쳐 진행된 7월 19일의 의회 청문회는 영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휴대전화 해킹 사건에서 뉴스 인터내셔널 임원과 루퍼트 머독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영국 의회의 역사적 순간이었다. 덕분에 교활한 언론사 수장과 폭력배나 다름없는 행동대원들이 언론주의라는 고매한 정신으로 위장해 현대 영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3대 요소, 즉 정치와 언론, 사법 제도를 통제하고 유린한 역사를 명확히 알게 됐다. 경악을 금치 못한 수백만 명의 시청자는 활자 매체와 위성 TV 네트워크를 소유한 구시대적 수장이 강압을 통해 어떤 식으로 영국의 시민 계약을 위반해 왔는지 깨달았다.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으면서도 마음이 불편했던 폭로였다.
머독의 사회적 지위는 대단히 높다. 그는 뛰어난 수완과 직감을 발휘해 야망을 실현한 입지전적 인물로, 정치인이나 경찰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휘두르며 이들을 손쉽게 매수해 왔다. 그러나 의원들 앞에 앉아 기억나지 않는 사실을 떠올리려 애쓰며 더듬더듬 말하는 머독의 모습은 그가 자신이 만든 덫에 걸려들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청문회 중 그는 자신이 만들고 시동을 건 자동차의 밝은 헤드라이트에 잡혀 꼼짝 못하는 불쌍한 사냥감이 됐다. 전성기가 지난 그는 성가신 파파라치 무리와 자신의 영향으로 억척스러워진 기자들에게 시달리며, 한때 그와 뉴스 코퍼레이션의 지지를 얻으려고 간청하던 정치인들에게 “날 좀 그냥 내버려두라”고 웅얼거리는 처지로 전락해 버렸다.
머독과 뉴스 코퍼레이션의 권력 남용과 위법 행위는 예견된 일이었다. 그는 선정적 기사만 취급하는 타블로이드 신문을 사들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쓰레기통을 뒤지도록 했다. 그 결과 공정성과 앞뒤 맥락을 고려하는 시각, 진실에 가까운 보도 등 저널리즘의 올바른 자세를 깡그리 무시하는 관행이 만들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그나마 남은 진정한 저널리즘에 의해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건 인과응보이고 예상 가능한 결말이다. 가디언의 닉 데이비스 기자는 장장 5년에 걸쳐 뉴스 코퍼레이션을 조사했고, 2010년에는 뉴욕타임스의 결정적 도움을 받았다. 구식처럼 보이는 우직한 노력 끝에 머독 왕국의 뿌리 깊은 부패가 만천하에 폭로됐다.
루퍼트 머독의 둘째 아들 제임스 머독은 의회 청문회 전 아버지 옆에 앉아 더 이상의 은폐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마음이 놓이진 않는다. 그의 주장이 의심되는 증언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며칠 후 뉴스 인터내셔널 전임 간부들은 제임스 머독이 2008년 휴대전화 해킹 사건과 희생자에게 지급한 보상금과 관련해 의회에서 증언한 사실에 ‘착오’가 있었다며 그의 주장을 반박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또한 머독에게 더 이상 휘둘리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하려고 “제임스 머독은 의회에 출두해 추가 조사에 응해야 한다”고 발언하며 그의 주장이 의심스럽다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 상황에서 루퍼트 머독은 7월 19일 의회와 영국 국민을 향해 “이 일을 수습할 적임자는 바로 나”라는 발언을 했다. 심각하게 한 말은 아니었지만, “이 일”은 그의 언론 제국을 더럽힌 스캔들을 의미한다. 이는 리처드 닉슨이 1973년 4월 자신이 놓은 덫에 걸린 뒤 워터게이트 사건 조사를 책임지겠다고 다짐한 일과 비슷하다. 머독은 철석같이 믿었던 부관들이 자신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주장했다. 이 또한 닉슨이 “내가 만난 공무원 중 가장 훌륭하며, 친구라서 영광”이라고까지 했던 최측근 밥 할더맨과 존 에리히만을 해고한 일과 흡사하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역사가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엄청난 권력을 휘두르는 기관이 자체 조사를 실시하면, 스스로를 평가하는 개인보다 더 형편 없는 판정을 내릴 수 있다. 기관 스스로 비리를 조사하도록 하면, 책임자들은 위법 행위를 은폐하고 진실을 조작할 것이 뻔하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 사회에서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책임감 있는 언론이 사건을 깊이 파헤쳐야 한다.
그러지 못한 사회는 경박함과 타락, 천박함으로 얼룩지고 결국 끝없는 추락이 이어지게 된다.
[필자의 근저로 ‘힐러리의 삶(A Woman in Charge: The Life of Hillary Rodham Clinton)’이 있다.]
Deng! The True Story of
Wonder Wendi
머독의 수호천사
MELINDA LIU 기자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의 부인 웬디 덩 머독(42)은 지난주 ‘젊은 여자가 자신보다 나이가 두 배나 많은 억만장자와 결혼하는 이유는 돈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여봐란듯이 반격을 가했다.
그녀는 7월 19일 영국 하원의 청문회장에서 자신의 남편에게 면도 크림이 담긴 접시를 던지려는 한 남자 방청객의 머리를 손으로 세게 내려쳤다. 졸지에 펼쳐진 이 장면은 올 들어 TV에서 본 어떤 액션 장면보다 더 용감하고 충성심이 엿보이는 동시에 우아했다. 이 청문회는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루퍼트 머독을 미디어 제왕의 자리에서 끌어내려 ‘때려눕힐’ 의도로 마련된 자리였다. 하지만 그날 아침 누군가를 ‘때려눕힌’ 사람은 바로 머독이었다. 가늘고 긴 다리에 반짝이는 검은 머리카락, 불거진 광대뼈가 매력적인 (웬디) 머독 말이다. 그녀는 ‘돈을 목적으로 결혼한 여자’라는 이미지를 단 한 방의 주먹으로 날려버리고, 남편을 필사적으로 지키는 영웅적인 아내로 거듭났다.
뉴스 화면에는 웬디가 그 남자를 때린 뒤 바닥에 쓰러지는 장면까지만 나왔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 목격자에 따르면 웬디는 다시 일어나서 면도 크림이 담긴 접시를 빼앗아 그 남자의 얼굴에 문질렀다. 그 남자는 나중에 웬디의 눈에서 ‘분노’가 이글거렸다고 말했다. 그 남자가 경찰에 끌려가는 도중에도 웬디는 그를 몇 대 더 때렸다. 그런 다음 남편을 포근하게 감싸안으며 안심시키고 그의 양복 윗도리에 묻은 면도 크림을 닦아주었다.
패션 디자이너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는 사건 직후 웬디에게 e-메일을 보내 그녀의 용감한 행동에 찬사를 보냈다고 말했다. “웬디는 곧바로 ‘주변에 많은 친구들이 있어 멋진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폰 퍼스텐버그는 “이번 일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녀는 성미가 불같은 행동파로 남편에게 매우 충실한 아내다. 난 그녀가 수줍음을 타는 여인에서 활력 넘치는 놀라운 여성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자연스럽게 나온 그녀의 용감한 행동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베이징의 한 네티즌은 “이 일이 중국 아내들의 이미지를 격상시켰다”고 말했다).
웬디는 오랫동안 (주로 좋지 않은 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왔다. 그녀가 루퍼트와 결혼한 직후 진지한 기사로 정평이 난 월스트리트저널에 그녀에 관한 선정적인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루퍼트를 만나기 전 그녀의 삶을 자세히 다뤘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자랑하는 심층보도 방식을 이용해 그녀가 중국의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여성에서 언론계 거물의 세 번째 부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이 기사는 출세지향적인 여성이라는 그녀의 평판을 굳히는 데 다른 무엇보다 더 큰 역할을 했다. 그녀가 열아홉 살 때 중국 광저우(廣州)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는 데 도움을 준 미국인 부부와 친분을 맺게 된 과정도 자세히 묘사됐다. 미국에 도착한 그녀는 그 부부의 집에서 살았다. 그들의 다섯 살짜리 딸의 방에서 기거하면서 캘리포니아 주립대 노스리지 캠퍼스에서 공부했다. 하지만 웬디가 자신보다 서른한 살 위인 그 남편(제이크 체리)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실을 부인이 알게 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체리 부부는 이혼했고 웬디는 제이크와 결혼했다. 제이크는 월스트리트저널에 “난 웬디를 사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자신에게 아버지같은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다.” 웬디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영주권을 얻은 뒤 그와 이혼했다.
웬디를 무척 아끼는 루퍼트는 이 기사를 보고 노발대발하며 신문사에 전화해 항의했다. 그 시절 배우자를 보호해준 쪽은 루퍼트였다. 제이크와 이혼한 웬디는 예일대에 진학해 MBA 과정을 마친 뒤 스타 TV(머독이 소유한 뉴스 코퍼레이션의 자회사다)의 아시아 지부에 취직했다. 그녀는 1997년 홍콩에서 열린 회사 행사에서 루퍼트를 만났다. 루퍼트는 당시 차분한 성격의 애나 토브와 30여 년 동안 결혼생활을 해오던 터였다. 애나는 루퍼트와의 사이에 엘리자베스(42)와 래클런(40), 그리고 제임스(38), 세 명의 자녀를 두었다. 루퍼트는 나중에 인터뷰에서 (웬디와의 관계가) “폭풍 같은 사랑”이었다고 말했다.
루퍼트는 애나와 이혼(애나는 위자료로 10억 달러 이상을 받았다고 알려졌다)한 지 17일 후에 웬디와 결혼식을 올렸다. 뉴욕의 스카이라인이 바라다보이는 곳에 정박한 자신의 요트 ‘모닝 글로리호’ 위에서였다. 당시 루퍼트는 68세, 웬디는 30세였다. 그들의 두 딸 그레이스와 클로에는 2001년과 2003년에 태어났다[그레이스와 클로에는 지난해 요르단 강가에서 요르단의 라니아 여왕과 대부모(휴 잭맨과 니콜 키드먼)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례를 받았다. 이 세례식 장면은 잡지 ‘헬로’의 표지에 실렸다].
루퍼트의 가족은 그가 웬디와 결혼하는 일에 전적으로 찬성하진 않았다고 알려졌다. 올해 102세가 된 루퍼트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머독(호주에서 산다)은 아직도 이 결혼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그녀는 지난해 잡지 ‘뉴욕’과 가진 인터뷰에서 머독의 기업에서 웬디와 그녀의 어린 두 딸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뉴스 코퍼레이션의 간부를 지낸 한 인사는 “루퍼트의 장성한 자녀들이 웬디를 공손하게 대한다. … 제임스는 언제나 진중하게 행동한다”고 말했다.
1968년 중국의 해안 지방에서 태어난 웬디는 격동기인 문화혁명기에 성장했다. 열렬한 공산당원이었던 그녀의 부모는 처음에 그녀의 이름을 ‘원거(文革: 문화혁명을 뜻한다)’라고 지었다. 그리고 나중에 혁명의 분위기가 사그라진 후에는 좀 더 듣기 좋게 ‘원디(文迪: 문화계몽을 뜻하며 ‘웬디’는 이 이름의 미국식 발음이다)’라고 바꿨다. 공장 감독이었던 아버지와 기술자였던 어머니는 두 사람의 월급 43달러로 아들 한 명과 딸 세명을 양육했다. 나중에 웬디는 당시 집안 형편이 “몹시 어려웠다”고 말했지만 당시 기준으로 보면 화이트칼라 생활이었다.
웬디는 중국인의 기준으로 봐도 말이 빠른 데다 그녀의 유머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할 때가 있다. 얼마 전엔 왜 경호원을 두지 않느냐는 한 친구의 질문에 “난 못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녀가 중국을 떠난 지 20년이 넘었지만 그녀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오간다. 한마디로 존경과 증오를 한몸에 받는다. 유명한 중국인 블로거 훙황(洪晃)은 중국인들은 그녀를 ‘부러움과 질투와 증오’가 뒤섞인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말했다. 그녀가 청문회에서 남편을 지키려고 날린 주먹 한 방은 그녀에 대한 여론을 좋은 쪽으로 돌려놓았다. 중국의 한 웹 조사에서 응답자들의 절반 가까이가 그녀의 행동이 “사랑에 대한 믿음”을 회복시켜줬다고 답했다.
중국에서는 상류계층 사람들이 부(富)를 드러내 보이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적대감을 유발할지 모른다는 우려 탓이다. 하지만 웬디와 루퍼트는 2004년 중국의 대형 전통가옥을 440만 달러에 사들였다. 당시 베이징에서 팔린 전통가옥 중 최고가였다. 중국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그 집에는 지하 수영장과 미니 영화관, 그리고 “공산당 정치국원들을 모두 초대해 연회를 베풀 만한 대연회장”이 있다. 올해 초 기자는 이 집에서 열린 칵테일 파티에 참석했는데 웬디는 손님들에게 일일이 신경을 써가며 친절한 안주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러면서도 주변에서 다른 아이들과 뛰노는 두 딸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자상한 어머니의 면모가 엿보였다.
머독 부부의 친구들에 따르면 웬디와 루퍼트는 큰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사이가 아주 좋다. 루퍼트가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러 갈 때면 웬디는 그의 수행원에게 전화해 그의 넥타이가 똑바로 돼 있는지 확인하라고 누차 당부한다고 알려졌다. 두 사람 다 뉴스 매니어로 정보가 풍부할 뿐 아니라 각각의 사안에 뚜렷한 입장을 취한다. 그들의 관심 분야는 매우 다양하며, 특히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이들 부부는 늘 다정하며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 경청한다. 그리스 부채 위기든, 다가오는 미국 대통령 선거든, 중국의 최신 뉴스든, 최근 뉴욕에서 회자되는 가십이든, 어떤 주제라도 마찬가지다. 중국인 작가 미안미안(웬디가 제작에 참여한 영화에서 단역을 맡았다)은 “유대감이 대단한 부부”라고 말했다.
결혼 초기에 웬디는 루퍼트의 사업(특히 중국의 사교 사이트 MySpace)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하지만 머독의 전 측근에 따르면 최근 몇 년 동안은 두 딸과 모성 건강 증진을 위한 모금행사, 나이 들면서 “기력이 전만 못한” 남편을 돌보는 일에 관심을 집중했다.
당분간 웬디는 자신이 주도하는 프로젝트에 관심을 쏟을 듯하다. ‘조이 럭 클럽’과 ‘스모크’로 유명한 웨인 왕(王穎) 감독의 영화가 그중 하나다. 중국계 미국인 작가 리사 시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설화와 비밀의 부채’는 19세기 중국의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 반발하는 두 여인의 이야기로 중국의 메릴 스트리프로 불리는 리빙빙(李氷氷)과 한국 여배우 전지현이 주연을 맡았다. 두 주인공은 부채에 암호로 쓴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키워나간다.
웬디는 최근 영화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녀는 중국 정부로부터 중국 현지 촬영 허가를 받고, 휴 잭맨을 설득해 영화에 출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시에 따르면 촬영을 얼마 앞두고 리빙빙이 갑자기 출연을 못하겠다고 했을 때 웬디는 “리빙빙에게 전화해 24시간 후에 영화 촬영을 시작할 테니 합류하라”고 말해 그녀를 촬영장으로 불러냈다.
웬디는 또 웹 프로젝트 Art.sy에도 남다른 정열을 쏟는다. 웹에서 미술품 관련 소식이 퍼지고 작품이 팔리는 방식에 혁명을 일으키려는 프로젝트다. 그녀는 최근 1년 남짓 동안 미술에 매료된 또 다른 억만장자 부인 다샤 주코바의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유명한 화랑 소유주 래리 개고시언의 협조와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데이비드 티시(창업지원 회사 테크스타의 간부) 등의 투자를 이끌어냈다(뉴스위크와 크레디 스위스는 올해 바젤 아트페어에서 이 프로젝트를 홍보하는 시사회를 공동으로 개최했다).
웬디의 한 가까운 친구는 웬디를 가리켜 “의욕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인생의 계획이 뚜렷하게 서 있는 듯하다. 사람들 대다수가 그런 계획 없이 살아가는데 말이다.” 그는 또 루퍼트보다 훨씬 젊고 진보적인 그녀가 보수적인 남편의 생각을 완화해 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난 늘 웬디가 루퍼트의 인맥과 그의 세계관에 온기를 불어넣어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녀 덕분에 루퍼트는 가수 보노,영화·음반업계의 거물 데이비드 게펜 같은 사람들과 어울린다. 루퍼트는 우파적인 시각 탓에 비난의 ‘강타’ 세례를 받곤 하는데 이들의 비난 강도는 보통에 비해 훨씬 약하다.”
지금은 뭐니뭐니 해도 청문회장에서 남편을 지켜낸 웬디의 ‘강타’가 제일 세지 않을까?
[With ISAAC STONE FISH in Beijing, LLOYD GROVE in New York, and CHRIS LEE and ISABEL WILKINSON in Los Angeles
번역 정경희]
The Empire Strikes Back
제국의 역습
HOWARD KURTZ 기자 집요한 의회 심리가 계속되면서 루퍼트 머독은 지칠 대로 지쳤다. 충성스러운 부하 레베카 브룩스와 함께 의회에 출두한 머독은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하는 일조차 힘들어했다. “아파트를 나서자 사람들이 코앞에 20개의 마이크를 들이댔다”고 머독은 말했다.
이는 머독의 타블로이드지 기자들이 카메라를 교묘히 피해 다니는 스타를 취재할 때 자주 사용하던 방법이다. 황혼기에 이르러 사냥꾼에서 사냥감으로 전락한 머독은 자신이 만들어낸 천박한 저널리즘에 의해 해부됐다.
그러나 의회에서 공식적인 사과를 하면서도 80세의 언론 재벌은 “더러운 손으로 광란을 부추기는” 경쟁 언론사를 향한 공격을 참지 못했다. 뉴스 코퍼레이션 휘하의 많은 언론 매체에서도 이러한 논조의 비난을 계속하며 휴대전화 해킹으로 촉발된 위기를 타개하려고 노력했다. 머독 제국이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머독의 오랜 친구로 그와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로저 에일스 폭스 회장은 뉴스 코퍼레이션이 공격에 나서야 한다고 믿는다. 적어도 그의 생각을 잘 아는 측근에 따르면 그렇다. 에일스는 뉴스 코퍼레이션이 머독의 수난을 지켜보며 다른 언론 기관의 비도덕적 관행을 보도하지 않는다면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폭스 TV 진행자 스티브 두시는 비평가들이 사건을 “과장한다”고 비난했고, 다른 진행자 빌 오라일리는 뉴욕 타임스가 “이데올로기”적 이유로 해당 사건을 “악의적으로 보도”하며 “날뛴다”고 공격했다. 머독이 소유한 더 타임스는 “우선순위”라는 제목으로 “전화기 해킹 소식은 충분히 들었어요”라고 말하는 피골이 상접한 소말리아 난민 만화를 게재했다. 역시 머독이 소유한 월스트리트저널은 모든 언론사가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데 “모든 도덕적 비난이 하나의 언론 기업에 쏠리는 얄궂은 상황”을 비난하며 비슷한 논조의 칼럼을 실었다.
뉴스 코퍼레이션의 기사들은 공식적으로 사과에 나선 머독의 모습과 대비된다. 폴 지고트 수석 언론 편집장이 뉴스 코퍼레이션 경영 간부들과 공식 입장을 조율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에 따라 머독 회장은 공식 사과를 통해 회유에 나서는데 언론사는 그를 대신해 반격을 가하는 이중 대응이 시작됐다. 뉴스 코퍼레이션 간부들은 통일된 반응을 하지 못한 게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이를 두고 “결정을 내릴 사람이 없었다”는 해석도 있어 루퍼트의 아들 제임스 머독이 제대로 진두 지휘 중인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간부들은 머독이 지난 한 주 동안 힘든 일을 많이 겪었으며, 밀리 다울러의 부모와 만나면서 그런 어려움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머독이 제대로 증언을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밀리 다울러는 납치 후 살해된 십대 소녀로, 머독이 소유한 언론사가 다울러의 휴대전화를 해킹한 일이 나중에 들통났다. 뉴스 코퍼레이션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사람은 머독이 다울러의 부모와 만나며 “특히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진심으로 이해했다.”
거친 성격을 가진 머독에겐 아직 활용할 무기가 남아 있다. 그는 오랜 세월 강자로 군림하며 많은 정치 동맹을 맺었고 정적들을 벌주기도 했다. 그가 소유한 뉴욕 포스트지는 수년간 클린턴 부부를 무자비하게 공격하다가 갑자기 화해를 하기도 했다. “정말로 머독의 반지에 키스를 해야 했다”고 클린턴의 측근이었던 한 사람은 말했다.
머독과 뉴스 코퍼레이션은 2001년부터 미국 정치인과 정치 단체에 5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머독이 소유한 하퍼콜린스 출판사는 뉴트 깅리치(450만 달러, 논란이 일자 취소)와 세라 페일린(700만 달러)을 포함한 정치인들의 책을 출판해주며 상당한 돈을 지급했다. 폭스 뉴스 또한 마찬가지다. 폭스 뉴스는 깅리치(선거 운동을 시작하면서 그만둠), 페일린(연간 100만 달러), 마이크 허커비(50만 달러) 등 대통령 후보가 될 가능성이 있는 정치인들에게 프로그램을 맡기고 돈을 지원한다.
당근과 함께 채찍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리드 헌트는 미 연방통신위원회 위원장 시절 머독을 화나게 한 적이 있다. 뉴스 코퍼레이션이 폭스 TV를 발족하는 과정에서 연방 규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조사했기 때문이다. 머독의 수석 로비스트는 헌트 위원장의 비서실장에게 “당신 상사는 양복 입을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헌트는 이렇게 말했다. “규제 당국자의 임기는 한정돼 있지만, 루퍼트는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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