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any] ‘독한 경영’만으론 2% 부족했다
[Company] ‘독한 경영’만으론 2% 부족했다
어렵다. 정말 어렵다. 구원투수로 오너까지 재등판했는데도 아직 ‘한 방’이 없다. 기다리는 관중은 속이 탄다. 의견도 분분하다. 가을께 되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란 낙관과 4분기가 돼도 별 수 없을 거란 비관이 한데 섞여 있다. LG전자 이야기다.
LG전자는 7월 27일 2분기 성적표를 공개했다. 매출 14조3851억원에 영업이익 1582억원. 선방했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여의도 증권가에서 영업이익 예상치를 1100억원대 초반까지로 앞다퉈 낮춰 잡고 있었던 터라 영업이익은 도드라져 보였다.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꼭 그렇진 않다. 미소를 지을 수 없는 게 LG전자의 냉혹한 현실이다. 1분기(매출 13조1599억원, 영업이익 1308억원)와 나란히 놓고 보면 2분기에 매출은 9%, 영업이익은 21%나 늘어났다. 하지만 2분기에 전통적인 IT(정보기술) 기업의 성적이 좋았던 걸 감안하면 기대치에 못 미친다. 올 1분기에 3분기 연속 적자라는 오명을 털어낸 데 이어 ‘구본준 부회장 효과’가 계속되리라고 기대한 시장은 실적 발표 직후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낮춰 잡은 실적 전망에는 부합LG전자 경영을 맡고 있는 구본준 부회장은 직설적 화법을 구사하는 CEO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동생인 그는 지난해 10월 LG전자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그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조업의 기본이 무너졌다. 항공모함의 방향을 바꾸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그가 선택한 건 ‘독한 경영’이었다. 1등이 아니어도 된다는 물렁한 생각을 버리고 독한 유전자와 기업문화를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문화를 바꾸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건 사업이었다. 애플이 장악한 스마트폰 시장에서 LG전자는 애플과 한판 붙을 만한 승부수를 띄우지 못했다. 6월엔 구 부회장이 직접 기자들에게 휴대전화 사업 흑자 전환이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휴대전화 사업을 담당하는 MC(모바일커뮤니케이션)사업본부는 2분기에도 593억원의 적자를 냈다. 5분기 연속 적자 행진이었다. 1005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던 1분기보다 적자폭이 줄고 스마트폰 판매량이 전분기보다 50%가량 늘었지만 휴대전화 부문의 3분기 전망은 밝지 않다.
정도현 LG전자 CFO(최고재무책임자)조차 3분기 전망에 대해 “휴대전화 사업은 일반폰(피처폰) 제품 축소로 2분기 대비 매출 감소가 예상된다”고 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LG전자의 전략은 애플이나 삼성전자와 확연히 구분된다. 애플은 1년에 한 번꼴로 내놓는 아이폰과 태블릿PC인 아이패드로, 삼성전자 역시 갤럭시S와 갤럭시탭으로 브랜드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LG전자는 ‘옵티머스’ 시리즈로 다양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지금까지 출시된 스마트폰은 옵티머스 2X, 옵티머스 블랙, 옵티머스 빅, 옵티머스 3D 등으로 다양하다. 올 하반기에도 프라다 스마트폰과 LTE(Long Term Evolution·4세대)폰 등을 내놓으면서 물량공세 전략을 이어갈 예정이다.
LG전자는 하나의 브랜드로 다양한 소비자층을 겨냥한 제품을 내놓으면서 올 상반기 4900만 대에 이르는 매출을 올렸지만 애플처럼 두터운 팬층을 형성할 정도로 소비자의 마음을 얻진 못했다. 애플이 선점한 스마트폰 시장에서 정면승부할 수 있는 ‘킬러 제품’을 아직 내놓지 못했다.
시장의 룰이 급격히 달라지고 있어 머뭇거리다간 더 큰 위기에 놓일 수도 있다. 지난 20여 년간 세계 1위 휴대전화 업체로 군림하던 노키아는 최근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로부터 신용등급 하락이라는 굴욕을 겪었다. 스마트폰 판매량에서도 1위 자리를 휴대전화 사업에 뛰어든 지 3년밖에 되지 않은 애플에 빼앗겼다. 시장은 노키아의 추락이 계속될 것이란 점에 이견을 달지 않는다. 스마트폰 시장의 후발주자인 LG전자가 반면교사로 삼을 대목이다.
휴대전화 사업은 근심의 한 자락일 뿐이다. LG전자의 TV와 가전사업도 걱정거리다. 올 초 선보인 FPR(편광필름 안경방식)의 3D TV인 ‘시네마 TV’로 세몰이를 하면서 LG전자 HE(홈엔터테인먼트)사업본부는 실적을 개선했다.
HE사업본부는 역대 최대인 680만 대의 평판 TV를 팔았다. 영업이익도 903억원에 달해 세계 2위 TV업체의 체면을 살렸다. 하지만 미국의 더딘 경기회복과 유럽의 재정위기로 TV 시장이 좀처럼 침체에서 벗어날 기미가 없는 게 문제다. 유럽과 북미는 TV 업체가 톱3로 꼽는 거대 시장이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과 같은 3대 가전사업도 순탄하지 않다. 생활가전을 만드는 HA(홈어플라이언스)사업본부는 2분기에 2조884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사상 최대였지만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2.6%나 줄어든 507억원에 불과했다. 수익성이 크게 하락한 원인은 가격이었다. 통상 가전제품 시장은 마진이 높지 않은 데다 마케팅 비용이 많이 든다. 가전업체들은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프리미엄 제품으로 승부를 거는데 올해는 소비자가 쉽사리 지갑을 열지 않았다. 경기침체 탓이 컸다.
애플·삼성의 스마트폰에 여전히 밀려그러다 보니 업체 간 가격경쟁이 치열해지고 철강재와 같은 원자재 값이 상승하면서 발목을 잡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LG전자는 공격적 사업정비로 성장동력을 확보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TV와 휴대전화 가전 외에도 프린터, PC, 정수기, 안마의자, 승마기에 이르는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정작 성장동력으로 삼을 만한 현금 창출원(캐시카우)이 없다는 뜻이다.
비관적 소식만 있는 건 아니다. 구본준 부회장은 최근 태양광 사업을 담당하는 ‘솔라사업팀’을 CEO 직속 조직으로 격상했다. 본격적으로 태양전지 양산에 들어간다. 투자도 지속해 11만 가구가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규모인 330㎿급으로 생산능력을 높인다. 수처리 사업에도 뛰어든다.
일본 히타치플랜트테크놀로지와 함께 10월 국내에 사업 합작법인 ‘LG-히타치 워터 솔루션’을 세우기로 했다. 수처리 사업은 독일 지멘스, 미국 GE(제너럴일렉트릭)가 신수종사업으로 밀고 있는 분야다. LG전자는 수처리 기술 연구와 함께 공공하수처리와 재이용, 산업용수 공급과 플랜트 건설업에 뛰어들 예정이다. 정도현 LG전자 부사장은 “올 3분기에는 2분기보다 매출은 부진하겠지만 TV와 휴대전화 등을 중심으로 수익성 위주의 사업 전략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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