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하준 교수 ‘맞짱 토론’ 합시다

100만 대중을 거느린 스타 경제학자를 상대로 한 경제연구소장이 필마단기(匹馬單騎)로 논쟁을 걸고 있다.
스타 경제학자는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그가 지난해 낸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장 교수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사람은 김정호 자유기업원장. 김정호 원장은 6월 하순부터 인터넷 매체 데일리안에 ‘장하준에게 속은 23가지’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하고 있다.
김정호 원장은 “장하준 교수는 일절 반응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하준 교수를 지지하는 이들의 반응은 뜨겁다. 댓글 가운데엔 ‘부분만 보고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이 한 조직의 원장이라니…’ ‘김정호가 일자무식 바보임을 말할 수 있는 23가지’ 등 인신공격적 문구도 눈에 띈다.
대중의 역공을 무릅쓰고 장하준 교수 비판 글을 연재 중인 김정호 원장을 8월 2일 서울 여의도 자유기업원에서 만났다. 김 원장과의 인터뷰는 주로 무역을 중심으로 진행했다. 장 교수의 주장 가운데 ‘큰 정부’나 ‘복지’에 대한 대목은 현실에 적용해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반면 EU(유럽연합)와의 FTA(자유무역협정)가 7월 발효된 덕분에 무역에 대한 생각은 조만간 검증할 수 있게 됐다.
‘선진국과의 FTA는 우리에게 손해’라는 주장을 장 교수는 견지하고 있다. 그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평평한 국제무역 경기장은 실은 부자 나라에 유리하다”고 썼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는 “부자 나라들은 개발도상국들에 국경을 허물어 경제를 본격적으로 국제 경쟁에 노출시키도록 요구한다”고 비판했다.
장 교수는 지난해 말 국회의원들이 주최한 강연에서 “(EU나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 반도체, 조선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 적지 않은 분야에서 자극을 통한 경쟁력 강화보다는 우리 산업이 위축되거나 도태될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소득과 생산성의 측면에서 볼 때 유럽 선진국이나 미국에 비해 5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미 FTA에 대해 그는 2009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15등짜리 나라인데 1등 그룹에 들어가면 알아듣지도 못하고 졸다가 더 도태된다.”
김 원장은 “EU와의 FTA는 한국에 분명 득이 된다”며 장 교수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FTA 발효 이후 전보다 EU지역에 대한 수출이 증가하고 수입도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한·EU FTA로 EU 경제도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역을 어느 한쪽이 이기고 다른 쪽은 지는 게임으로 보는 시각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 예로 중국과의 무역을 들었다. 중국과 한국의 무역이 증가하면서 두 나라 경제가 모두 이익을 봤다고 설명했다. 그는 “장하준 교수 비판 연재를 마친 뒤 책을 낼 계획”이라며 “그때 장 교수에게 공개 토론을 제안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왜 논쟁에 나섰나.“가히 장하준 신드롬이라고 부를 만하다. 책 판매부수가 100만 부를 넘은 만큼 그의 주장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장하준 교수의 책에 감동 받은 사람들의 글이 지천이다. 그러나 장하준 교수의 역사 해석과 정책 처방에는 틀린 것이 많다. 그토록 영향력이 큰 주장이라면 누군가는 옳고 그름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나서서 그 역할을 맡기까지 많이 망설였다. 나보다 훨씬 더 실력 있는 경제학자가 많다. 그러나 이런 글은 나처럼 대중 설득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의 몫이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EU와의 FTA가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까.“수출이 이전보다 큰 폭 증가한다고 본다. EU와의 FTA는 반도체를 비롯해 비교우위를 갖춘 산업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수입도 늘어날 것이다. 무역 규모가 늘어나면서 두 경제 모두 이익을 볼 수 있다.”
한·EU FTA에 따른 법률시장 개방으로 유럽 로펌이 국내 법률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한국은 경쟁에 강한 나라다. 경쟁에 노출되면 달라진다. 강해진다. 삼성이 변신하고 성장한 과정이 이를 잘 보여준다. 삼성이 1990년대 중반에 추진한 신경영은 대외 개방을 앞둔 과감한 변신으로 이해해야 한다. 삼성은 이전에 생각하지도 못한 변신을 감행했고 성공했다. 국내 로펌 또한 법률시장 개방을 발전의 자극제나 계기로 삼을 수 있다고 본다.”
장하준 교수의 주장대로 선진국은 자유무역을 원하고 개도국에 강요하나.“그렇지 않다. 선진국은 개도국과 비교해 자유무역에 소극적이다. 오히려 보호무역적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미국의 자동차노조를 비롯한 노동계는 한국과의 FTA로 일자리를 잃을까 봐 우려한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이 2008년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한국과의 FTA 재협상’을 내걸지 않았나.”
장하준 교수는 수준 차이가 나는 나라 사이의 무역은 수준이 낮은 나라에 손해라고 본다.“한국과 중국의 무역을 살펴보자. 그의 말대로라면 산업이 낙후됐던 중국은 한국과 무역하면서 큰 손해를 봤어야 한다. 중국은 한국이 세계 첨단을 자랑하고 있는 전자나 조선 산업 같은 분야는 아예 일으키지 못했어야 한다. 실제는 그 반대였다. 중국은 한국에서 중간재와 부품과 기술을 들여다가 부가가치를 붙여 세계에 수출하면서 산업을 육성했다. 중국은 이제 몇몇 산업에서 한국이 경계할 수준으로 올라섰다.”
신자유주의에 따른 무역 확대로 1980년대 이후 개도국의 경제적 형편이 나빠졌다고 장 교수는 주장한다.“그가 말하는 방식의 가장 큰 문제점은 논거가 없거나 있더라도 ‘일화(逸話)적인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는 역사에서 대중이 좋아할 이야기를 끄집어내 들려준다. 그러나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전체가 아니라 부분일 때가 많다. 1980년대 이후 개도국의 경제 수준이 저하됐다는 주장은 사실에 근거를 두지 않은 부류다. 장 교수는 이와 관련해 어떤 자료도 제시하지 않았다. 1980년대 이후 개도국의 경제가 악화되기는커녕 발전했다는 사실은,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과 인도가 극명하게 뒷받침한다.”
장 교수는 FTA보다 WTO(세계무역기구) 체제를 더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WTO 체제는 100% 완전한 자유무역을 뒷받침하지는 않는다. 그렇더라도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인 WTO 체제로 이행하는 편이 쌍방 협정에 의한 FTA보다 훨씬 더 자유무역을 촉진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 같은 신자유주의자들이 FTA를 지지하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FTA라도 하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이상한 것은 WTO에 대한 그의 태도다. 그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는 자유무역을 촉진하는 WTO를 ‘악한’으로 몬다. 그런데 이제 FTA 때문에 WTO 체제로 가기 힘들어지니까 FTA에 반대한다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 WTO 체제는 어차피 물 건너갔으니 그렇게라도 말해 FTA를 막으려는 심산이 아닌가.”
몇몇 댓글은 논점이 아니라 논쟁자를 비교했다. ‘이 사람, 장하준 교수에게 태클 걸기에는 갖춘 지식과 스펙 차이가 너무 크다’는 식이다.“하하. 처음엔 댓글을 다 읽었는데, 이젠 보지 않는다. 댓글에서 제기된 쟁점은 나중에 책에 반영할 생각이다.”
장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2003년 뮈르달상을 받은 데 이어 2005년에 레온티에프상을 받았다. 올 7월에는 ‘포니정 혁신상’을 수상했다. 김 원장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숭실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김정호 원장의 꿈은 ‘대한민국을 바꾼 자유주의 학자’가 되는 것이다. 그 꿈의 실현과 관련해 이번 논쟁이 어떤 역할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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