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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Report] 적자의 수렁에 빠진 캘리포니아

[First Report] 적자의 수렁에 빠진 캘리포니아



DASHKA SLATER, GARY RIVLIN기자예산 책정은 어려운 선택의 연속이다. 세금 인상 대(對) 예산 감축, 공원 대 교도소, 건강보험 대 학교 중 택일해야 한다. 청각 장애인에 가까운 47세의 토니 세브척도 이를 잘 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의 새로운 긴축 예산안이 집행되면서 혼자서 자녀를 키우는 세브척은 자신의 선택권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게는 선택권이 없다”고 세브척이 말했다. “선택할 돈 자체가 없다.”

2009년 캘리포니아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험) 프로그램 ‘메디-캘(Medi-Cal)’이 치과 치료 지원을 중단하면서 세브척은 어금니 4개를 치료 받지 못하고 발치해 버렸다. 이제 다섯째 치아마저 잃을 지경이다. 지난 7월 세브척의 복지·장애 급여가 각각 8%씩 줄어, 이제는 매달 1160달러의 생활비 지원과 200달러의 식품배급권 밖에 받지 못한다. 세브척은 월세를 내고 남는 돈 310달러로 자동차 할부금 237달러를 비롯한 각종 청구서를 해결해야 한다. 결국 대부분의 요금을 미납한다. 줄어든 생활비 보조금 44달러는 “다른 사람에게는 푼돈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요금을 납부할 수 있는 귀한 돈”이라고 세브척이 말했다.

세브척처럼 선택권을 빼앗긴 사람은 캘리포니아 도처에 널려 있다. 가족 중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했다는 자부심을 가진 22세의 캘리포니아 대학 4학년생은 입학 후 80%나 오른 등록금 때문에 절망에 빠졌다. 오렌지 카운티에 거주하는 49세의 사지마비 환자는 정부 지원 간병인의 도움을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움에 떤다. 일상 생활이 불가능한 그는 간병인이 없다면 꼼짝없이 요양원 신세를 져야 한다. 잉글우드에 사는 55세의 회계사는 교사직 은퇴 후 중증 치매에 걸린 75세의 어머니를 양로보건센터에 맡기지 못할지도 모른다. 정부 보조금 중단으로 센터가 문 닫을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정부지출 축소는 취약 계층에 연속적인 타격을 준다”고 캘리포니아 노인복지센터 리디아 미셀라이데스 행정국장이 말했다. “고통 분담이 아니라 고통 축적이다.”

미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경제 규모가 세계 8위에 이르는 캘리포니아는 뭐든지 적당한 법이 없다. 이곳에서는 꿈도 더 크고 화려하다. 그래서 깨질 때도 여파가 상당히 크다. 캘리포니아 주민 1인당 주택 압류율은 네바다주를 제외한 다른 어떤 주보다 높다. 실업률은 전국 평균보다 3%포인트 높은 12%에 육박한다. 올해 거의 모든 주정부가 재정 적자를 기록했지만, 캘리포니아의 재정 적자는 무려 266억 달러에 달한다. 전국 최대 규모다. 그 결과 지난 2년간 225억 달러의 예산이 삭감됐고, 그후 추가로 150억 달러의 예산이 감축됐다. 비근한 사례와 비교해 보자면, 그리스 아테네에서 성난 군중을 거리로 내몰았던 긴축 예산과 증세 규모는 3년간 400억 달러였다. 시위가 시작됐을 당시 긴축 예산안은 집행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캘리포니아의 적자 규모가 극적이긴 하지만, 다른 주 또한 예산 부족으로 휘청댄다. 끈질긴 경기침체로 공공 서비스 수요는 증가한 반면, 막상 이를 공급할 세수는 감소했다. 소득세와 판매세 세수만 줄어든 게 아니다. 주가 하락으로 자본소득세가 대폭 감소했고, 주택 압류로 신규 주택 건설과 매수가 줄면서 부동산 세수 또한 크게 감소했다. 이와 함께 지난 2년간 세수와 지출의 간극을 메워줬던 연방정부의 경기부양 예산이 바닥나간다. 그러나 그 자리를 대신할 세수는 불경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경제학자들은 2014년까지 세수가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런 불확실성에 더해 최근에는 향후 10년간 9000억 달러의 지출을 줄이는 연방정부 부채한도 증액 협상안이 타결됐다. 이에 따라, 육아지원 시책의 하나인 ‘헤드 스타트(Head Start)’나 저소득 여성과 영·유아 영양 개선을 위한 WIC(Women, Infants and Children)를 비롯한 각종 빈곤퇴치 프로그램 지원금 또한 대폭 삭감될 가능성이 크다. 연방정부의 지출 삭감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의회가 1조5000억 달러의 추가 예산 삭감안을 찾고 있는 만큼 긴축 재정은 정부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많은 지역이 고통받지만, 캘리포니아가 느끼는 고통은 특히 심하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당파 싸움과 유권자의 감세 요구, 수십억 달러의 예산을 잡아먹는 방대한 교도소 운영 체계로 2001년 불경기 이후 계속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주정부는 긴축 정책이나 고통스러운 세금 인상안을 택하는 대신, 교묘한 회계 기법을 활용해 차입금이나 구제 금융으로 재정 적자를 메워왔다. 결국 2010년 스탠더드 앤 푸어스는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재정 취약성에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캘리포니아 채권 등급을 A-로 강등시켰다. 50개 주 중 가장 낮은 등급이다.

지난해 가을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재취임한(1979~83년 주지사 재임) 제리 브라운 민주당 의원은 재정 적자 문제를 끝장내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세금 인상에 대한 반대가 너무 강해선지, 주민투표 없이는 세금을 신설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이를 막았던 공화당의 노력을 수포로 돌리는 약속이었다. 세금 인상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진 브라운 주지사는 대신 150억 달러의 지출을 삭감하고 40억 달러의 추가 세입을 상정해 예산 균형을 맞추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굳이 세율을 인상하지 않아도 경기 회복으로 소득세와 판매세, 법인세 수입이 증가할 것이라는 가정이었는데, 지금까지 그가 예상했던 40억 달러는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주정부는 중간 예산 편성에서 25억 달러에 가까운 지출을 삭감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고등교육기관과 장애인 지원, 공공 안전 서비스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CEO는 “과거부터 계속된 많은 잘못된 결정과 예산 부족이 낳은 의도치 않은 결과가 우리를 짓누른다.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 의회가 과거 캘리포니아처럼 당파적 예산 싸움을 되풀이한다며 강력히 비난했다. “칼이 아니라 도끼로 사회 안전망을 난도질한다.”

지난 8월 런던에서 5일 동안 발생한 폭동과 약탈, 방화 사태는 사회 안전망으로 작용했던 복지 예산이 삭감되면서 분노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 수십 년간 빈부 격차가 심해진 미국에서도 영국과 비슷한 폭동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 연방정부 예산 삭감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과 아동, 노인, 장애인이다. 화가 난다고 동네 편의점으로 달려가 약탈을 시작할 계층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봄에는 주립대 예산 삭감으로 폭력 시위가 발생했다. 도심 빈민층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 관계자들은 소요 사태의 원인을 미리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깊은 좌절이 결국 분노로 변해 대규모 소요 사태를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로스앤젤레스(LA) 남부 지역연합 회장 마르퀴스 해리스-도슨이 말했다. LA 남부 지역연합은 1992년 로드니 킹 사건을 계기로 발발한 LA 흑인 폭동의 중심지 남부 지역에서 지역사회 개선을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다. “미국의 문제도 런던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사면초가라는 느낌은 빈곤층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캘리포니아 중산층 또한 예산 삭감으로 타격을 입었다. 유서 깊은 캘리포니아 공립 대학 학생들의 경우 특히 심하다. 캘리포니아 대학 등록금은 현재 1만3000달러로, 2005년 대비 갑절 이상 인상됐다. 이번 12월에 자동으로 예산 삭감이 이뤄지면 등록금은 더 큰 폭으로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 최고 인상률을 기록한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의 경우(4년 만에 등록금 2배로 인상) 상황은 더 심각하다. 5년째 대학을 다니는 아이사 칸촐라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졸업반이다. 풀러턴 캠퍼스에서 정치학과 미국학을 복수 전공한 그녀는 가족 중 처음으로 4년제 대학을 졸업한다. 그러나 부모님 모두 우체국에서 근무했기 때문에(아버지는 2학년 때 돌아가셨다) 저소득층 학생에게 지급되는 펠그랜트 장학금을 신청하기에는 가계 소득이 높다. 그래서 연간 6400달러에 달하는 등록금을 감당하려고 주 40시간씩 일한다. 그러나 이렇게 뼈빠지게 일해도 졸업한 뒤 2만2000달러의 융자금을 상환해야 한다. “빚을 지고 대학을 졸업하는 것도 우울한데 학사 학위만으로는 캘리포니아에서 제대로 된 일을 찾기가 힘들다”고 칸촐라가 말했다.

재정 적자의 여파는 더 여유로운 중산층에도 퍼졌다. 다니엘 빅터와 노마 실버맨은 부유층이 거주하는 LA 서부의 한 고등학교에서 함께 교사로 근무한다. 빅터는 영어를 가르치고, 노마는 행정학과 역사를 가르친다. 지난 3년 동안 이들의 소득은 총 25% 감소했다. 다섯 번이나 강제 휴가를 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교사 봉급을 보충해줬던 여름방학 보충 수업이나 특별 수업이 줄었기 때문이다. “수업이 줄면서 수입이 얼마나 감소했는지 계산하기도 힘들다”고 빅터가 말했다. 반면 그가 가르치는 영어 수업의 학생 수는 20명에서 40명으로 늘었다.

그래도 빅터의 경우는 그나마 낫다. 집과 직장, 저축한 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의 노인이나 장애인 다수는 폭풍을 견딜 어떤 힘도 없다. 장기간호와 치료비는 이들의 저축을 야금야금 갉아먹었고, 이제는 예산 삭감이라는 치명타까지 왔다. 수년간 유예됐던 양로보건센터 지원 중단이 드디어 실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양로보건센터는 뇌 손상과 뇌졸중, 알츠하이머 등 심각한 의료·인지 문제로 치료가 필요한 이들에게 낮 동안 신체·물리 치료와 정서적 지원을 해주고 혼자 외롭게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도와주는 복지 센터다. 이는 양로원에 고립돼 멍하니 시간을 보내야 하는 비참한 처지에서 노인을 구해주고, 자녀와 부모를 동시에 돌봐야 하는 소위 ‘샌드위치 세대’가 낮 동안 직장 생활을 하거나 자녀를 돌보도록 도와주는 대안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그런 프로그램에 대한 메디-캘 지원이 올 12월부터 중단된다. 주정부 지원이 사라지고, 주정부와 절반씩 비용을 분담하던 연방정부의 지원까지 사라지면서 캘리포니아의 300여 개 양로보건센터가 문닫는다. 노인과 장애인 3만5000명의 미래가 불확실해지게 된다.

75세의 어머니를 모시는 회계사 칼 하미엘은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교사로 은퇴한 어머니 조안은 중증 치매 환자다. LA 남부에 있는 한 양로보건센터(Graceful Senescence)에서 치료를 받는다. 55세인 하미엘은 작은 회계 사무소를 운영하며 자기 집도 있다. 그러나 불경기 중 그의 사업은 큰 타격을 받았다. 그에게는 아직 어린 자녀가 둘이나 있고, 어머니도 혼자 돌봐야 하는 처지다. 하루 종일 간병인을 고용할 돈이 없는 하미엘은 양로보건센터가 문을 닫으면 어머니를 사무실로 모셔와 직원들의 친절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어머니를 양로원에 두기는 싫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With ANDREW MURR in Los Angeles

번역 우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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