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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iban] “당신들에겐 시계가 있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있다”

[Taliban] “당신들에겐 시계가 있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탈레반은 여전히 지구전을 펴며 미군의 철수만 기다려



SAMI YOUSAFZAI, RON MOREAU 기자 무자히드 라만(28)은 탈레반의 부지휘관 중 한 명이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동부 산악지대인 파크티카주의 진흙벽돌집에 숨어 지낸다. 미국인들과 싸운 지 얼마나 됐을까? 그는 잘 기억하지 못했다. 7~8년쯤 된 듯하다고 대답했다. 지난 3년이 특히 힘들었다고 했다. 2009년 초부터 2010년 8월까지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미군에 포로로 잡혀 있었고, 그 다음엔 아프가니스탄 국가정보부 심문소에서 한 달 반 동안 더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였다. 라만은 목숨을 잃거나 장애자가 되거나 포로로 잡혀간 동지들, 자신과 몇 안 되는 탈레반 전사가 본거지였던 인근 가즈니주에서 쫓겨난 일을 두서없이 돌이켰다. 너무 지쳐 이젠 아무런 생각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탈레반이 미군·카불 정부와 평화협상에 나설 생각이냐는 뉴스위크 기자의 질문에 곧바로 정색하며 외치듯이 내뱉었다. “천만에!” 얼마나 오래 걸리든, 어떤 희생이 따르든 미국인들이 패배할 때까지 전투는 계속된다고 단호히 말했다. 라만은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포로생활을 할 때 미군 간수가 귀국을 앞두고 들떠서 기뻐하던 일을 돌이켰다. 그 병사는 라만에게 작별 선물로 주스 한 병을 건네며 언제까지 포로로 잡혀 있으리라 예상하는지, 그 뒤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옥살이를 얼마나 하든 지하드(성전)를 얼마나 오래 치르든 우리는 상관치 않는다”고 그는 미군 병사에게 말했다고 돌이켰다. “당신 시계는 배터리가 닳으면 바늘이 멈춰 서겠지만 우리의 투쟁 시계는 멈추는 법이 없다. 결국은 우리가 이긴다.”

그의 말이 우리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발발 때부터 줄곧 취재해오면서 전쟁을 보는 양측의 시각이 너무도 다르다는 점을 늘 느꼈다. “당신네는 시계를 가졌지만 우리는 시간을 가졌다.” 포로로 잡힌 한 탈레반 전사가 했다는 이 말이 그들의 태도를 잘 설명해준다. 탈레반은 알라와 시간이 자신의 편이라고 확신한다. 나머지는 하찮은 세부사항일 뿐이다. 몇 주년이니 마감 시한이니, 일정이니 등등 말이다. 또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은 경제적, 재정적, 정치적 제약을 두고 고민하지만 탈레반은 그런 문제에 매달리지 않는다. 숫자나 통계, 일정은 그들에게 별 의미가 없다. 언젠가는 반드시 승리하리라 확신하며 그쪽에만 초점을 맞춘다.

물라 오마르가 이끄는 탈레반이 1994년 아프가니스탄의 잔혹하고 탐욕스러운 무자헤딘 군벌들에 맞서 투쟁을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언제까지 수도 카불을 함락시킬지 목표조차 잡지 않고 그냥 전투를 시작했다. 훨씬 오래 걸리리라는 예상과 달리 단 2년 만에 카불을 함락시켰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닫고 그들은 적잖이 놀랐다. 5년 뒤 미국이 공격해왔을 때도 그들의 예상은 또 빗나갔다. 탈레반 정권은 너무도 쉽게 무너졌다. 하지만 그들은 곧바로 결딴이 난 탈레반 운동을 다시 일으키기 시작했다. 역시 정해진 일정이 없었다. “우린 미국인과 달리 달력도, 시계도, 계산기도 없다”고 탈레반 정부에서 각료를 지냈고 현재 탈레반의 선전기구를 이끄는 인사가 말했다. “탈레반의 관점에서는 시간이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10월 7일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10주년을 맞는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긴 전쟁이다. 2001년 그날 미군의 폭탄이 쏟아지면서 탈레반은 궤멸됐다. 물라 오마르의 부하 수천 명이 사망하거나 부상했다. 대규모 공습에서 살아남은 전사들은 그 충격으로 비틀거리며 정처 없이 헤맸고 일부는 코와 귀에서 피를 흘렸다. 탈레반은 완전히 끝난 듯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투 중이다. 그 전쟁으로 미군 약 1800명이 희생됐고, 미 의회 조사국에 따르면 현재 매달 90억 달러 이상이 전비로 지출된다. 대다수 미국인은 끝이 보이지 않는 살육과 비용 지출에 진절머리를 낸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4년을 미군 대다수를 철수하는 시한으로 정했다. 하지만 그조차 너무 느리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이 많다.

미국 공화당은 부시 대통령 시절 전쟁 지지를 주도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내년 대선에서 오바마에 맞설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고 나선 인사 중 적어도 네 명은 더 신속한 철군을 촉구했다. 그중 한 명인 존 헌츠먼 전 유타 주지사는 올해 초 TV 토크쇼에서 “우리 국민은 가능한 한 신속히 그곳에서 빠져나오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결과도 그의 말을 뒷받침한다. 공화당 후보들은 국가안보를 경시한다는 비난을 사지 않으면서 국민의 그런 희망을 수용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애를 태운다. 이처럼 아프가니스탄 문제는 2012년 미국 대선에서 중요한 이슈가 될 전망이다.

그래서 백악관은 그 이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진정한 진전을 보여주려 애쓴다. 지난 6월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이임을 앞두고 아프가니스탄의 미군 기지를 둘러보며 병사들에게 올해 말까지 가시적인 진전을 기대한다고 누차 강조했다.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탈레반은 오랫동안 강세를 유지해오던 아프가니스탄 남부와 동부, 심지어 탈레반의 본고장인 칸다하르주에서도 대부분 쫓겨났다. 그러나 그런 승리도 탈레반의 산발적인 카불 공격이 기세를 올리면서 대부분 퇴색했다. 지난 6월 카불의 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났고, 9월 13일 미국 대사관 인근 건물이 20시간 동안 점령당했으며, 9월 20일 탈레반 특사를 가장한 인물이 아프가니스탄 평화위원회 의장 부르하누딘 라바니 전 아프간 대통령을 암살했다.

미국인들이 아프가니스탄을 지킬 가치가 있는지 따지는 동안 탈레반은 자신들의 본거지를 사수하려고 목숨 걸고 싸운다. 그중 일부는 1994년 탈레반 창설 때부터 전투를 치렀고, 적어도 몇몇은 1980년대 소련의 점령에 대항해 싸운 역전의 용사다. 이제 그들은 주둔 미군의 감축이 시작되면서 다시 힘을 얻었다. “우린 아직 몸도 풀지 않았는데 적은 이미 퇴각한다”고 헬만드주의 탈레반 부지휘관 물라 압둘 자바르가 말했다. 미국의 국방 관련 민간연구소 랜드 코퍼레이션의 세스 존스 연구원에 따르면 그런 성급한 출구 전략은 불길하다. 지난 5월 발표된 오바마의 철군 일정을 분석한 그는 이렇게 경고했다. “한 세기 전 인도 서북 전선에서 영국군이 고전하는 동안 윈스턴 처칠이 깨달았듯이 이곳의 시간은 몇 개월, 몇 년이 아니라 몇 십 년 단위로 인식된다. 서양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탈레반이 완강하긴 하지만 중대한 약점도 있다. 우선 그들은 거의 전적으로 파키스탄의 피신처에 의존한다. 또 파키스탄은 탈레반이 자금, 보급품, 탄약, 폭약을 얻는 주요 관문이다. 그런 지원 없이는 탈레반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 그런데도 파키스탄 당국은 탈레반 지도자들이나 그들의 작전에 간여하기를 꺼린다. 미국의 고위 관리들은 파키스탄이 탈레반과 연대한 아프간 무장단체 하카니를 지원한다고 지적했다. 하카니는 라바니 전 대통령 암살과 인터콘티넨털 호텔·미국 대사관 공격에서 주된 역할을 했다는 혐의를 받는 단체다. 파키스탄 당국은 그런 결탁을 완강히 부인했다.

리언 파네타 미 국방장관은 파키스탄에 ‘최후통첩’에 해당하는 경고를 거듭 보냈다. 카불의 미 대사관 공격 이틀 뒤 파네타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 군을 지키려고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지는 말하지 않겠다. 단지 이런 공격이 계속되도록 좌시하지 않겠다는 점만 분명히 해두겠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이미 파키스탄의 부족민 지역에서 준군사조직을 구축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들의 표적은 알카에다 지휘관들에게 국한됐다. 이제 그들의 표적에 하카니도 포함될까? 미국 정부가 과감히 미군을 파키스탄 국경 너머로 파견할까? 아프가니스탄에 정통한 한 미국 관리는 개인적인 판단으로 올해 말까지 파키스탄 국경 너머로 미군이 파견될 확률은 “50% 이상”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군은 탈레반이 파키스탄에서 신규 대원, 자금, 무기, 폭약을 들여오지 못하게 하려고 작전을 편다. 미군과 아프간 정부군은 파키스탄 국경을 순찰하며 은닉된 폭약(종종 1t 이상)을 찾아내 폐기한다. 그 폭약의 운송을 막지 못하면 아프가니스탄 깊숙이 옮겨져 연합군의 사상에 주된 원인이 되는 급조폭발물, 트럭 폭탄, 자동차 폭탄에 사용된다. 장갑차 한 대를 파괴하는 급조폭발물을 만드는 데 폭약 20kg이면 족하다. “지난겨울 발견된 폭약이 그 이전 겨울의 3배였다”고 카불의 연합군 작전관 마이클 G 크라우즈 호주군 소장이 말했다. “이제 적의 탄약과 보급품이 거의 바닥났다고 우리는 판단한다.” 미군의 고위 정보 장교도 동의했다. “정보에 따르면 탈레반 지휘자들이 탄약과 보급품이 없다고 난리다. 이제는 그들이 미군의 철수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고쳐 먹어야 한다.”

그러나 탈레반은 먼저 나가떨어지는 쪽이 미국이라고 주장한다. “미군이 이곳에 도착하면 바로 스톱워치를 눌러 귀국할 때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시간부터 잰다”고 전 탈레반 정부 각료가 말했다. 그런 미군과 달리 젊은 탈레반 대원들은 그리워할 고향집의 안락함이 없다고 그가 주장했다. “우리 젊은 전사들은 모터바이크, AK47 소총, RPG(로켓추진유탄), 긴 머리, 그리고 목숨을 걸 가치가 있는 성스러운 명분으로 이상적인 삶을 산다. 그들은 시간이나 희생을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승리를 향한 끝없는 투쟁만 생각한다.” 그는 젊은 전사가 시간을 잴 때는 머리카락 길이로만 잰다고 말했다. “머리가 50cm 정도 자라면 약 1년이 지났다는 사실을 안다.”

탈레반이 끊임없이 자랑하는 인내심은 심리적인 효과를 노리는 선전처럼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지적을 하면 전사들은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놓는다. 목숨을 잃고 부상하고 오랫동안 포로생활을 하고 자금과 음식, 의료가 부족하고 가족과 멀리 떨어져 엄격한 생활을 하지만 조직을 이탈하거나 배반한 탈레반 전사는 상대적으로 아주 적다는 사실이다. 어떤 어려움이나 고문을 당해도 전향하거나 투쟁을 포기한 탈레반 고위 지휘관은 없다. 하급 전사 기천 명만이 카불 정부의 사면과 재통합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뿐이다. “탈레반이 얼마나 오래 싸워야 하고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 걱정했다면 이미 이탈자가 많이 생겼을 것”이라고 전 탈레반 정부 각료가 말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지금도 필요한 만큼 신규 대원이 들어온다.”

이제 그 어린 신규 대원들이 탈레반의 생명선이다.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힌 전사가 많기 때문이다. 고참 전사들에 따르면 그들 대다수는 근래 역사도 모르고 과거나 미래에도 관심 없다. “우리 전사의 60%는 너무 어려 9·11이나 탈레반의 붕괴를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고 고참 탈레반 대원 자비불라(가명)가 말했다. “그들은 단지 침략자가 있고 그들의 앞잡이가 나라를 통치하며, 얼마나 오래 걸리든 그 적들을 격파해야 한다는 사실만 안다.” 그런 마음가짐이 탈레반의 힘이라고 그가 덧붙였다. 투쟁에 걸리는 시간과 불리함을 걱정했다면 탈레반은 이미 수년 전에 끝장났으리라는 설명이었다. “미국은 우리가 B52 전략폭격기, 무인 공격기, 네이비실, 끝없는 자금 공급에 맞서 이처럼 오래 버티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제반 여건의 불리함과 시간을 따진다면 탈레반의 존립은 불가능하다.”

탈레반 부지휘관인 자바르(26)도 겉으로는 패배하고 낙담한 전사처럼 보인다. 그는 파키스탄 국경 부근의 마을에 거주하며 편두통과 손가락 셋이 잘려나가 부분적으로 마비된 왼손을 치료받고 있다. 그런데도 자바르와 부하 일곱 명은 미군·아프간 정부군을 상대로 총격전을 벌인다. “지난 몇 년 동안 숱하게 적을 매복 공격했다”고 그가 말했다. “아무도 몇 번인지 정확히 모른다. 나도 열두어 차례만 기억한다.” 자바르는 수염을 기를 나이가 되자마자 탈레반에 합류했다. 그는 2007년 탈레반 지휘관 물라 다둘라 아쿤드가 목숨을 잃기 직전에 한 연설에 신규 대원으로 참석했다고 돌이켰다. 그에 따르면 1980년대 소련군과 싸우다가 왼쪽 다리를 잃은 다둘라는 그때 이렇게 선언했다. “이 전쟁을 이기는 데 정해진 시한은 없다.”

자바르는 미 해병대에 의해 부하들과 함께 고향 마르자에서 쫓겨난 2010년 2월 이래 아내와 세 자녀를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가끔 집에 전화를 걸지만 그런 일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전화 때문에 위치가 추적되면 미군 특공대나 무인 공격기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자바르는 큰아들과 통화하면서 자신이 전사하면 아들이 성장해 탈레반에서 자기 자리를 물려받기 바란다고 이야기했다. “내 아들이 남자가 됐을 때도 우리의 싸움은 계속되리라 확신한다”고 자바르가 말했다. “아들은 내 자리를 물려받으면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지금 그 아이는 겨우 여섯 살이다.

[With JOHN BARRY in Washington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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