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赤과 白’ 라면전쟁 - 흰색 국물 라면의 뜨거운 반란

KBS 예능 프로그램 해피선데이의 코너인 ‘남자의 자격’에서는 3월 13일부터 3주 동안 라면을 이용한 요리를 선보였다. 출연자들이 라면 요리로 경연을 벌인 것이다. 개그맨 이경규씨는 닭 육수로 ‘꼬꼬면’을 만들었다. 맑고 담백한 국물로 느끼하지 않고 뒷맛도 칼칼했다. 세 곳의 라면회사 관계자가 심사했다. 한국야쿠르트의 최용민 차장(F&B마케팅팀)은 녹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밤새 고민했다. 그러다 남자의 자격 담당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작가에게 “꼬꼬면을 공식 제품으로 만들고 싶으니 이경규씨를 연결해달라”고 말했다. 두 시간 정도 후에 이씨에게 전화가 왔다. 진지하게 의논하고 싶다고 했다.
꼬꼬면 생산설비 확충 계획한국야쿠르트는 5월 꼬꼬면을 제품화하겠다고 밝혔다. 8월 2일에 정식으로 출시됐다. 여느 라면을 제품화하는 기간보다 짧았다. 보통 새로운 라면은 연구개발에만 3~6개월이 걸린다. 여기에 시제품 생산, 제품 마케팅 방안을 고민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야쿠르트 이승기 대리는 “이미 방송을 타서 제품의 정체성과 인지도가 확보돼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빨리 내놓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야쿠르트 측의 기대는 들어맞았다. 꼬꼬면은 8월에 900만 개, 9월에 1350만 개가 팔렸다. 한국야쿠르트 측은 “그동안 별다른 판촉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무척 잘 팔렸다”고 말했다. 이경규씨 표정도 밝다. 이경규씨는 꼬꼬면의 공장도 출고가를 기준으로 1%의 로열티를 받는다. 현재 공장도 출고가는 700원 정도다.
한국야쿠르트는 10월부터 본격적인 마케팅을 벌일 예정이다. 꼬꼬면이 제품 탄생 때부터 대중과 소통했던 브랜드인 만큼 마케팅 활동도 대중참여 형태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앞서 9월 23일부터 이경규씨가 딸과 함께 출연한 꼬꼬면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뜨거운 물을 부어 바로 먹을 수 있는 꼬꼬면 용기 제품도 10월에 내놓는다. 꼬꼬면 생산 설비도 올겨울에 더 확충할 계획이다.
빨간 국물 일색이던 라면시장에 흰색 국물 열기가 뜨겁다. 꼬꼬면이 인기를 끌면서다. 흰색 국물의 계보를 잇는 다른 제품도 덩달아 인기다. 삼양식품의 ‘나가사끼 짬뽕’이 주인공이다. 이 라면은 꼬꼬면보다 열흘 정도 일찍 나왔지만 꼬꼬면의 인기를 등에 업고 잘 팔리고 있다.
삼양식품은 2년 전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에서 맛볼 수 있던 나가사끼 짬뽕을 제품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나가사끼 짬뽕은 나가사키 지역의 중국인 요리사가 고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이 배를 곯는 것을 안타까워해 여러 재료를 섞어 국수를 만들어 나눠준 데서 유래했다. 돼지 뼈로 우린 육수와 해물 맛이 섞인 하얀 국물이 특징이다.

맛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삼양식품 직원들은 아파트 단지를 찾아다니며 시식 행사를 했다. 트위터, 페이스북을 통한 홍보도 계속했다. 하지만 출시 후 처음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중 꼬꼬면이 먼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어 8월 중순 인터넷을 중심으로 또 다른 하얀 국물 라면 나가사끼 짬뽕에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 애초 나가사끼 짬뽕의 생산 라인은 1개였다. 하루 12만 개 정도 생산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수요가 늘자 8월 중순 이후 주야간으로 라인을 돌려 하루 24만 개를 만들었다. 9월 14일부터는 다른 제품을 만들던 라인 한 개를 더 끌어왔다. 8월에는 300만 개, 9월에는 900만 개가 팔렸다. 삼양식품 최남석 실장은 “9월에 일반 소매점 공급 물량이 부족했을 정도”라며 “만들기만 하면 바로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삼양식품은 9월 초부터 편의점에 나가사끼 짬뽕을 공급했다. 최 실장은 “편의점에서 나가사끼 짬뽕을 공급해달라고 요청해 왔다”고 말했다. 편의점에서는 물을 부어 바로 먹을 수 있는 용기면이 주로 팔린다. 봉지로 된 라면은 아주 잘 팔리는 제품만 구색으로 갖춘 경우가 많다. 편의점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용기면 ‘나가사끼 짬뽕 큰 컵’도 9월 26일부터 팔고 있다. 베스트 셀러인 빨간색 국물 삼양라면의 판매에 악영향을 끼치진 않을까? 최 실장은 “아직 흰 국물 라면 시장이 작기 때문에 큰 영향은 없다”고 말했다.
흰색 국물 라면의 인기는 어디까지 이어질까. 현재 라면시장에서 부동의 1위 브랜드는 하루 평균 220만 개가 팔리는 ‘신라면’이다. 신라면을 만드는 농심은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에 대해 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긍정적이라는 반응이다. 농심 장재구 과장은 “그동안 침체돼 있던 라면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점에서 경쟁 제품이지만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내 라면시장은 연간 1조9000억원 정도다. 한동안 침체돼 있었다. 라면의 원재료 가격이 계속 오르는데 판매 가격은 올릴 수 없으니 이익 역시 늘어나기 어려웠다. 이에 따라 새로운 제품에 투자할 여력도 크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꼬꼬면과 나가사끼 짬뽕이 정체된 라면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성수기·비수기 모두 거쳐봐야다만 농심은 현재 흰색 국물 라면을 만들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농심에서는 보통 오랜 기간 연구를 거쳐 제품을 개발하는데, 갑자기 새로운 트렌드의 제품이 나왔다고 이와 유사한 제품을 출시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장 과장은 “단순히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는 소비자의 건강과 입맛을 생각해 제품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흰색 라면의 인기에 대해 “6개월 정도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판촉행사 등에 따른 호기심에 구입하는 소비자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수기와 비수기를 모두 거치며 재구매로 연결돼야 제대로 안착됐다고 할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진혁 수석연구원은 “방송의 영향과 호기심 때문에 흰색 국물 라면이 인기를 끄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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