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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많은 ‘불평등’ 건강보험료>> 고소득 ‘위장 직장인’ 무임승차부터 가려라

논란 많은 ‘불평등’ 건강보험료>> 고소득 ‘위장 직장인’ 무임승차부터 가려라

서울 송파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모(40)씨는 5월에 3만2000원 정도 오른 건강보험료 고지서를 받았다. 건보공단에 문의했더니 “전셋값이 올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씨의 아파트 전세는 올 초 1억1000만원에서 2억6000만원으로 올랐다. 집 주인의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 김씨는 은행 대출금 이자부담이 새로 생겼는데 건보료까지 오른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전셋값 폭등으로 건보료에 불똥이 튀었다.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779만 가구 중 전월세를 사는 사람은 344만 가구다. 건보공단은 올 4월 전셋값 변동을 조사했다. 344만 가구 중 5만5988가구의 전월세가 올라 건보료가 올랐다. 인상률은 평균 12.6%다.



전셋값 올라 건보료 평균 12.6% 인상전셋값이 오르는데 왜 건보료가 올라갈까. 집이 없어서 남의 집에 세를 사는데 거기에 건보료를 물리고, 소득이 오른 것도 아니고 전세가 올라 빚을 냈는데 건보료가 올라가는 걸 이해하기 쉽지 않다. 집값이 올라 건보료가 오른다면 그나마 재산 가치가 상승한 거라고 자위할 수 있지만 전세는 그럴 수가 없다.

건보료 부과 체계는 세금보다 훨씬 복잡하다. 특히 지역보험료가 그렇다. 직장인이야 월급의 5.64%(절반은 회사 부담)를 내면 되지만 지역가입자는 소득·재산·자동차에 연동해 각각 보험료를 내야 한다. 양쪽의 부과체계가 달라 불평등이 심해지고 각종 편법이 등장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전셋값 보험료는 재산 항목에 해당하는데 이게 가장 문제를 야기한다. 재산은 지방세 과세표준액이 기준이 된다. 전세는 실제 가격의 30%만 반영한다. 재산은 50개 구간으로 나뉘는데 구간별로 점수를 부여하고 여기에다 기준단가(165.4)를 곱하면 건보료가 나온다. 예를 들어 전세가 2억원이면 이것의 30%인 6000만원이 과표가 되고 여기에 해당하는 점수는 294점, 여기에다 165.4를 곱하면 4만8627원이 건보료가 된다. 건보공단이 4, 9월 두 차례 전세 변동을 조사해 반영한다. 부동산 전문회사의 시세표를 기준으로 직권 부과하고 가입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전세계약서를 보고 조정한다.

재산에다 건보료를 매기는 이유는 지역가입자들의 소득을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역가입자 중 소득자료가 있는 사람은 45%이고 이들도 소득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재산만큼 부담능력이 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이 재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거나 퇴직하면 건보료가 올라간다.

벤처기업에 다니던 이모(45)씨는 월급 500만원을 받으며 월 14만1000원(근로자부담분 기준)의 건보료를 내다 최근 실직한 뒤 건보료가 21만2370원으로 뛰었다. 102.3㎡(33평형, 과세표준액 4억1000만원) 아파트와 중형승용차(2200㏄) 때문에 보험료가 이렇게 많은 것이다. 이씨는 “소득이 없는데 보험료가 올라가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한다.

최근 은퇴한 경기도 안양의 김모(65)씨도 월 건보료가 직장인 때 11만원(근로자부담분 기준)에서 17만2010원이 됐다. 과표 2억400만원짜리 아파트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웬만한 아파트 한 채 있으면 월 건보료가 10만원을 훌쩍 넘는다. 2009년 직장에서 지역가입자로 옮긴 64만2917가구의 건보료가 증가했다. 소득이 없거나 소득을 제대로 신고하는 자영업자 입장에서도 억울하기 짝이 없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데 이웃집 직장인 김씨는 월급에만 보험료를 낸다. 하지만 호프집을 하는 박씨는 소득에도 보험료를 내고 아파트에도 보험료를 낸다. 박씨가 소득을 제대로 신고한다면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더 큰 불평등은 직장가입자에게 있다. 10년 전만 해도 다른 돈주머니를 찬 월급쟁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 요즘에는 근로소득 외 배당·이자·임대·사업·연금 소득이 있는 ‘부자 직장인’이 153만 명에 달한다. 이런 소득을 합하면 21조원이 넘는다. 하지만 직장인이라는 이유로 근로소득에만 보험료를 내고 다른 소득에는 건보료를 물지 않는다. 여기에는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이 많이 들어 있다. 현재 상시근로자 1인 이상이면 직장건강보험 사업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의사 홍모(57)씨는 고급빌라(재산과표 11억7000만원)에 살면서 아파트·토지(과표 21억원), 중형 승용차 2대를 소유하고 7억5100만원의 사업소득이 있다. 지역가입자로서 177만원의 건보료를 내다 병원에 취직해 직장건보 가입자가 되면서 월급 1130만원에 대한 31만8660원(본인부담분 기준)만 내도록 바뀌었다. 홍씨가 종합소득에 대해 보험료를 낸다면 176만4890원을 더 내야 한다.

직장인에게 월급에만 건보료를 매기는 규정을 악용하는 ‘위장 직장인’도 끊이지 않는다. 연간 이런저런 소득으로 25억원을 버는 사람(재산 315억원)이 아는 사람 회사의 직원으로 위장 취업해 월 1만원의 건보료를 내다 적발된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사람은 지역건보료로 월 175만원을 냈어야 한다. 연예인·운동선수·임대사업자 등 570명이 이런 행위를 하다 적발됐다.

직장가입자의 부모나 자녀 등 피부양자가 되면 건보료를 한 푼도 안 낸다. 무임승차다. 퇴직공무원 김모(65)씨는 월 380만원의 연금을 받는데도 아들 건강보험증에 피부양자로 얹혀 있다. 반면 월급쟁이 자식이 없는 노인은 지역건보 가입자가 돼 별도의 건보료를 낸다. 무자식 상팔자가 아니라 ‘월급쟁이 자식 상팔자’다. 연 3500만원 이상 연금을 받는 사람이 2만6000명에 달한다. 재산이 많은 피부양자도 있다. 6억원이 넘는 피부양자가 6만 명이 넘는다(9억원이 넘는 사람은 올해부터 피부양자 자격이 박탈돼 별도의 건보료를 낸다).

정부와 건강보험공단도 이런 불합리와 불평등을 잘 알고 있다. 우선 내년 7월께부터 종합소득이 있는 직장인 153만 명 중 연간 7000만원이 넘는 3만~4만 명부터 종합소득의 2.82%를 보험료로 물리기로 했다. 월급쟁이 중에서 약간의 임대소득이 있거나 주식 배당소득이 있는 경우는 부과 대상이 아니다. 고액의 연금소득이 있는 사람도 피부양자에서 제외해 별도의 보험료를 매길 방침이다.



복잡한 제도 개선 중장기 과제로 남아지역가입자는 재산보험료를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전세보험료를 매기는 전셋값의 상한선을 설정하거나 기본공제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전세금 중 빌린 돈을 빼고 순자산에만 보험료를 매기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1, 2금융권에서 빌린 돈에 한해 본인이 입증하는 방안이다. 이럴 경우 소유 부동산도 같은 혜택을 줘야 한다. 게다가 간당간당 매달린 건보재정 걱정도 해야 한다. 지역보험료 수입(2010년 기준)의 약 40%가 재산보험료(이 중 25%가 전세보험료)다.

하지만 잘못 접근했다가는 안 그래도 복잡한 제도만 더 꼬이게 만든다. 분명한 해결책은 지역과 직장의 부과기준을 통일하는 것이다.

지역가입자도 직장처럼 소득에만 부과하거나 직장가입자에게도 지역처럼 재산·자동차 건보료를 부과하는 것이다. 중장기적 과제일 뿐 당장 선택하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매우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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