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경제학, 대안은? - “가설 아닌 현실 설명하는 경제학 떠오를 것”
- 위기의 경제학, 대안은? - “가설 아닌 현실 설명하는 경제학 떠오를 것”

“세계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은 경제이론을 만든 학자들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주는 건 문제가 있다.” 금융위기는 예측·예방할 수 없다는 주장을 담은 책 『블랙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 뉴욕대 교수는 노벨경제학상을 이렇게 비판했다.
경제학 학설 중 하나에 불과했던 ‘투자위험 관리모델’ 개발자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수여해 이를 신뢰하고 투자한 기관·개인이 피해를 보았다는 주장이다. 탈레브 교수는 “1990년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 해리 마르코위츠(시카고대)·윌리엄 샤프(스탠퍼드대)·머튼 밀러(시카고대) 교수가 금융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이라고 지목했다.
수학적 모델 풀기 위해 비현실적 가정에 집착올해 노벨경제학상도 논란이 많다. 수상자인 토머스 사전트 뉴욕대 교수와 크리스토퍼 심스 프린스턴대 교수는 경제정책과 거시변수의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모델을 개발했다. 두 교수의 기본 가정은 다음과 같다. “합리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있는 인간은 정부가 개입하지 않아도 경제를 잘 유지하고 이끌 것이다.” 1995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루커스 시카고대 교수의 ‘합리적 기대이론’과 철학·이론구조가 같다. 21세기 주류경제학인 신(新)자유주의의 근거이기도 하다. 합리적 기대이론은 인간의 합리성을 강조하고 시장의 효율성을 신봉한다. 거품은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
이런 합리적 기대이론은 지금 비판을 받고 있다. 시장의 합리성과 효율성을 맹신한 결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유럽 재정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그간의 경제학은 이론의 아름다움을 진실로 착각했다”고 주장했다. 합리적 기대이론은 가설일 뿐이고 주류경제학은 ‘학문을 위한 학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주류경제학은 과연 위기에 빠졌을까. 이인호 서울대 교수는 “‘지금 경제학은 복잡한 경제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주장은 일정 부분 맞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경제학의 이론적 모델은 수학적으로 풀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며 “그 결과 현실적이지 않은 합리성에 대한 가정을 많이 했다”고 지적했다. 또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사전트 교수는 합리적 기대이론을 수학적으로 푸는 데 기여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과 무관한 경제주체를 만들어냈다”고 비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재정위기를 ‘경제학 탓으로 돌려서는 곤란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관호 고려대 교수는 “최근 터진 각종 위기를 경제학이 예측하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이는 경제학 속성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도 “현대 경제학 이론의 결과는 ‘금융시장은 상대적으로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라며 “경제학은 미래를 족집게처럼 예측하는 학문이 아니다”고 분석했다.
세계 경제위기가 경제학이 아니라 정부의 금융시스템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견해도 있다. 이영 한양대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세계 재정위기는 주택담보대출 시장을 정부가 과하게 보장한 것과 금융 파생상품의 건전성 규제를 하지 않은 것 때문에 발생했다”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경제학이 아닌 정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택담보대출 시장에서는 정부개입을 줄이고, 파생상품 분야에는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조건적 시장 자율권 확대에 제약 생길 듯”경제학에 대한 비판이 옳든 그렇지 않든 주류경제학은 이미 ‘변화 중’이다. 김소영 교수는 “오래전부터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수정되고 있다”며 “모든 사회과학이 그렇듯 경제학도 위기를 기점으로 진화한다”고 말했다. 19세기에 태동한 고전파 경제학은 시장에 모든 걸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을 바꿔놓은 건 1929년 대공황이다. 대공황의 후유증이 1930년대까지 이어지면서 “정부개입이 필요하다”는 케인스주의가 주류가 됐다.

하지만 이 역시 변화를 피하지 못했다. 1970년대 오일쇼크가 터졌을 때 정부가 개입해도 경제가 살아나지 않자 ‘시장의 역할을 더 강조해야 한다’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떠올랐다. 2000년대 초에는 신고전파 뒤를 이어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주류로 등장했다.
재정위기 후에는 어떤 경제학이 주류가 될까.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다음 주류 경제학은 처방을 강조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은 문제를 미리 찾아 적절한 처방전을 내놓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재정위기가 끝나면 보다 현실적 설명력 또는 현실 상관성을 강조한 경제학이 떠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관호 교수는 “경제위기의 원인과 관련한 분석이 매우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앞으로 시장에서의 불완전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고려하는 경제학이 주요 연구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와 반대로 신경제학파나 신경제이론의 부상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재영 서울대 교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 자체에 대한 거부나 대안 모색은 수많은 경제 외적인 문제와 함께 고려해야 할 사안”이라며 “간단하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근거해 시장 자율성을 무조건 확대하는 분위기는 사라질 전망”이라며 “신자유주의 논리에 따라 철폐된 금융산업의 규제는 재검토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규제는 반드시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윤찬 이코노미스트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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