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형사처벌 받았다고 당연퇴직해선 곤란
[Law] 형사처벌 받았다고 당연퇴직해선 곤란
A대학의 김 교수가 무면허 상태에서 음주운전하다가 단속에 걸렸다. 소지하고 있던 동생의 운전면허증을 제시하고, 주취운전자 적발보고서와 피의자 신문조서에 동생 이름을 기재하고 서명했다. 결국 사문서 위조, 공문서 부정행사, 도로교통법 위반죄 등으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의 형이 확정됐다.
A학교법인은 김 교수에게 당연퇴직 처분을 내렸다. 금고 이상의 형(집행유예 포함)을 받은 경우를 당연퇴직 사유로 규정한 사립학교법과 국가공무원법 규정을 적용한 것이다. 김 교수는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의 종류, 죄질 등을 불문하고 예외 없이 당연퇴직하도록 한 법규정이 직업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당연퇴직 규정 자체는 문제 소지 있어헌법재판소는 관련 규정의 입법 목적과 수단이 정당하고, 대체적 입법수단이 없다고 봤다. 또 이에 따라 교원의 지위가 박탈된다고 해도 그것이 공익에 비해 비중이 크다고 볼 수 없고, 형벌에 내포된 사회적 비난 가능성과 공교육을 담당하는 교원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과 교직 수행에 대한 신뢰의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공무원이나 사립학교 교원도 근로자이지만 신분과 업무의 특성상 일반 근로자와 달리 임용과 자격요건 등을 법률로 정하고 있다.
김 교수가 무면허 음주운전을 하고 다른 사람 이름으로 조서를 작성한 행위는 형벌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비난 가능성이 크고 대학교수에게 요구되는 도덕성에 비추어 당연퇴직 결과가 지나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관련 규정 자체에는 문제점이 있다. 예를 들어 대학교수가 음주운전 또는 무면허가 아닌 상태에서 단순한 교통사고로 집행유예를 받았거나, 교원이 동창회 임원으로서 금전을 관리하다가 배임 등으로 집행유예를 받은 경우에도 일률적으로 당연퇴직 처리한다는 건 부당하다.
법을 위반한 행위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았지만, 사실관계에 나타난 행위를 볼 때 사회적 비난 가능성에서 차이가 있어 금고형 이상의 집행유예를 받으면 일률적으로 당연퇴직된다는 법규정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에서 적절한 대체 입법수단의 부재를 언급한 것도 그런 취지이지만 현행법 체계에서 법규정대로 할 수밖에 없는 모순이 있다.
다른 예를 보자. 지하철공사에서 차량정비 업무를 보던 김 과장은 공사 노동조합의 지회장으로 노조활동을 하던 중 노조 간부들과 불화 때문에 벌어진 폭력사건으로 기소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공사는 직원에게 이런 사유가 있으면 당연퇴직하는 것으로 규정된 인사규정을 근거로 당연퇴직의 인사발령을 했다. 김 과장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1심 법원은 김 과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해고란 근로자의 의사에 반해 사용자의 일방적 의사로 이뤄지는 모든 근로계약 관계의 종료를 뜻한다. 금고 이상의 집행유예를 받아 당연퇴직 처분을 받은 김 과장의 경우 해고에 해당한다. 해고가 정당하려면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판단은 사용자의 사업 목적과 성격, 사업장의 여건, 근로자의 지위 및 담당직무의 내용, 비위행위의 동기와 경위, 이에 따른 기업의 위계질서 문란 위험성 등 기업질서에 미칠 영향, 과거의 근무태도를 비롯한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김 과장이 담당하던 차량정비 업무가 특별히 고도의 도덕성을 요한다고 보기 어렵다. 유죄판결이 확정됐지만 불구속 기소됐고, 형의 집행이 유예돼 근로를 제공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다. 또 김 과장의 폭력행위는 조합원 사이의 감정싸움에서 비롯된 것으로 업무와 관련성이 크다고 볼 수 없고, 극히 우발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폭행 사건으로 공사의 명예와 신용을 훼손하거나 거래관계에 악영향을 미쳤다거나 직장질서 유지를 저해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래서 김 과장이 폭력행위로 집행유예의 확정판결을 선고 받았다는 사유만으로는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사업장에서는 대체로 취업규칙 또는 인사규정에 일정한 형벌을 받고 확정되면 당연퇴직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사용자가 취업규칙 또는 인사규정에 근거해 근로자에게 징계처분 또는 인사명령 등을 내릴 수 있지만 그것에 규정된 내용이라고 반드시 법적 효력이 인정되는 건 아니다. 형사상 범죄로 근로계약에 따른 근로자의 기본적 의무인 노무제공 의무를 이행할 수 없는 상태가 장기간 계속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범죄 내용과 종류에 상관없이 이를 근거로 근로관계 종료가 정당화될 수 있다. 또 불구속 상태에서 벌금이나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 현실적인 노무제공에 장애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범죄내용과 종류에 비추어 계속 고용에 대한 기대가 객관적으로 어려울 경우에는 해고가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업무와 관련 없는 순수한 사생활 영역에서의 형사상 범죄로 형사처벌을 받게 된 경우에는 이것만으로 당연퇴직이 정당화될 수 없다. 이런 경우에는 범죄내용과 형사처벌로 근로관계의 유지와 존속이 기대될 수 없는지를 판단하고, 그 결과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범죄행위의 내용과 성격, 형사처벌의 내용과 종류를 근로자의 업무 내용과 성격, 사업운영에의 영향 정도, 기업의 신용이나 명예 실추 여부 등과 관련 지어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교사가 사적인 생활영역이라 할지라도 양속에 반하는 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에는 해고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범죄라도 학교 교사가 아닌 기능직 직원의 경우는 달리 판단할 수도 있다. 음주운전도 운전업무 종사자에게는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 판례는 공기업 직원은 일반 사기업보다 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고 공무원법상 결격사유 규정의 적용을 받는 경우도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당연퇴직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사례가 많다.
다양한 목적의 형벌 늘어범죄 내용이 사생활 영역에서 범한 비행이어서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당연퇴직의 정당성을 부정하기도 한다. 요컨대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서 형사처벌을 당연퇴직 사유로 정했다는 것만으로 정당성을 담보하는 게 아니다. 범죄행위와 형사처벌의 내용 및 종류에 비춰 당연퇴직이 타당한가를 실질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사회구조 변화에 따라 다양한 목적으로 형벌을 가하는 법률이 증가해 근로자들은 직업적 또는 사회적 활동으로 인해 형사적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형벌을 받은 자에 대해 일률적으로 당연퇴직시키는 법과 취업규칙이 그대로 존속하고 있어 사실관계에 따라서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탄력적인 해석을 통해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하고 경직된 규범의 적용과 해석으로 부당한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28일 서울 지하철 9호선 일부구간 '경고 파업' 철회
2‘하늘길도 꽁꽁’ 대설에 항공기 150편 결항
3‘이재명 아파트’도 재건축된다…1기 선도지구 발표
4코스피로 이사준비…에코프로비엠, 이전상장 예비심사 신청
5‘3000억원대 횡령’ 경남은행 중징계….“기존 고객 피해 없어”
6수능 2개 틀려도 서울대 의대 어려워…만점자 10명 안팎 예상
7중부내륙철도 충주-문경 구간 개통..."문경서 수도권까지 90분 걸려"
8경북 서남권에 초대형 복합레저형 관광단지 들어서
9LIG넥스원, 경북 구미에 최첨단 소나 시험시설 준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