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LEONTOLOGY] 공룡의 발자국을 찾아서

LAUREN HILGERS 베이징에서 동남쪽으로 600㎞ 떨어진 중국 산둥(山東)성 주청(諸城)시 외곽의 비행기 격납고 내부. 고생물학자 수싱(42)은 술에 취해 얼굴이 불그스레한 관광객을 무심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 관광객은 신발을 벗고 거대한 하드로사우루스(오리주둥이 공룡)의 화석화된 대퇴골 앞에 털썩 주저앉아 사진 포즈를 취했다. 하드로사우루스는 백악기 말기인 약 1억 년 전 지구를 활보한 공룡이다. 그 화석 뼈는 금색 천에 싸여 있고 높이가 약 1.5m다. 중국어로 된 안내판은 관광객들에게 이 화석을 만져보라고 권한다. ‘공룡 뼈를 문지르세요.’ 현지 사람들은 예로부터 공룡 뼈를 어루만지면 행운이 온다고 믿는다.
근년 들어 중앙아시아에서 화석이 대거 발견되면서 중국 고생물학자들은 공룡 뼈를 만질 기회가 크게 늘었다. 수싱이 현장 연구를 하는 주청 지역은 중국에서 가장 새롭고 진기한 공룡 화석의 보고다. 격납고에서 멀지 않은 곳의 구덩이에는 화석화된 커다란 공룡 뼈들이 사암 바위 표면에 흩어져 있다. 어지럽게 뒤섞인 모양으로 미뤄 1억 년 전 아주 큰 재앙이 닥친 듯하다.
주청에서 최근 발견된 공룡 화석들은 단일군으로 세계 최대 규모다. 그 전에도 수싱은 여러 차례 대단한 발견을 했다. 그는 세계의 어떤 공룡 화석 사냥꾼보다 더 중요한 발견에 일조한 학자다. 펜실베이니아대 고생물학 교수이며 ‘공룡류(The Dinosauria)’의 공동 저자인 피터 도드슨은 “수싱은 공룡 고생물학 역사에서 새로운 종을 누구보다 많이 찾아냈다”고 말했다.
수싱은 자신이 새로운 공룡 종을 얼마나 많이 발견했는지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약 30종”으로 추정한다. 지난 15년 동안 그는 랴오닝(遼寧)성에서 깃털을 가진 드로마에오사우르스, 신장(新疆)에서 수각류(두 발 보행 육식성 공룡), 내몽골에서 타조처럼 생긴 시노르니토미무스의 발견에 기여했다. 모두 공룡의 삶과 진화를 이해하는 방식을 바꾸는 데 도움을 준 발견이다.
영국 고생물학자로서 주청에서 3년 동안 현장 연구를 한 데이비드 혼은 “중국엔 공룡 화석이 들어 있을 만한 암석이 수없이 많다”고 말했다. 북미에는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말기(2억2800만~1억9960만 년 전), 쥐라기 말기(1억6110만~1억4550만 년 전), 그리고 백악기 말기(9950만~6550만 년 전)의 공룡 뼈가 많이 발견됐지만 각 시기 사이에 살았던 공룡은 발견되지 않았다.
혼에 따르면 중국은 공룡 진화와 지리적 이동에 생긴 공백을 메워준다. 북미, 아시아, 유럽에서 각각 발견된 종 사이의 유사점은 과학자들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대륙을 가로지른 공룡의 이동을 추적하는 단서다. 랴오닝과 신장에서 발견된 공룡 뼈는 현대 조류의 진화 수수께끼를 밝히는 데도 도움을 준다. 수싱은 공룡이 새의 시조라고 생각한다. 그가 최근 발견한 공룡 중 하나는 닭만한 크기의 ‘샤오팅기아 정기(Xiaotingia zhengi)’다. 이 발견을 계기로 과학자들은 가장 오래된 조류로 알려진 시조새의 분류를 재고하게 됐다. 수싱에 따르면 샤오팅기아 정기의 발견은 시조새도 조류가 아니라 깃털 달린 공룡이었다는 증거를 뒷받침한다.
중국에서 공룡 화석이 대량 발견되면서 세계적으로 공룡 진화의 이해가 더 깊어졌을 뿐 아니라 중국 순수 국내파인 수싱도 국제무대로 진출하게 됐다. 수싱은 신장 서부의 일리(伊犁)에서 성장했다.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맞대는 중앙아시아 오지다. 그는 베이징대 고생물학과에 배정된 뒤 입학허가 서류를 보고서야 공룡에 관해 처음 들었다. “그 서류를 가져가 고등학교 선생님께 보여주었다. 선생님도 고생물학이 무엇인지 몰랐다. ‘새로 생긴 학과인 모양이군. 첨단기술 같은 분야 아니겠어’라고 말씀하셨다.” 수싱은 컴퓨터를 다루게 되리라 기대하고 대학에 갔다.
수싱이 고생물학에 진정으로 관심을 갖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그는 대학을 마친 뒤 단지 베이징에 있고 싶다는 생각으로 고생물학 석사 과정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아주 특이한 공룡 화석을 본 뒤 마침내 그 분야에 열정을 갖게 됐다. 그는 작은 케라톱스(각룡, 북미의 트리케라톱스와 유사한 뿔 달린 공룡)와 처음 마주한 순간을 지금도 기억한다. “난 어차피 고생물학자가 될 운명이었던 듯하다”고 수싱이 말했다. 그는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할 목적으로 영어를 공부했다. “1990년대에 이미 아주 특이한 공룡 화석이 중국에서 발견됐다”고 수싱이 말했다. “하지만 세계적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모든 논문이 중국 학술지에만 발표됐기 때문이다.” 중국의 고생물학계는 언어장벽도 있지만 과학을 다루는 방식도 다르다(논증이나 학계 동료평가의 전통이 없다). 여러 면에서 중국의 고생물학은 시대에 뒤졌다.
중국에서 공룡 화석은 1920년대에 처음 발견됐다. 그러나 몇 안 되는 과학자들은 수십 년간 현장에서 변변한 시설도 없이 연구했다. 지금은 국제 공동연구와 다양한 자금 지원으로 중국의 고고학이 많이 발전했다. “과거엔 국내 기관이 매년 한두 건의 보조금만 제공했다”고 수싱이 말했다. “하지만 이제 매년 거의 열 건에 이른다.”
중국의 고속성장도 고고학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건설 공사가 많아지면서 화석을 발견할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원생으로서 연구할 화석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수도 적고 가장 좋은 화석은 주로 노련한 과학자들이 차지했다. 그러나 지금 중국 과학원 척추고생물·고인류학 연구소에 있는 그의 사무실은 공룡 화석으로 넘쳐난다. “그의 사무실에 티라노사우루스 화석이 널려 있었다”고 영국 고생물학자 혼이 말했다. “드디어 그가 ‘난 너무 바빠서 그런데 이걸 연구해보지 않을래요?”라고 내게 물었다. 혼은 그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고생물학자들은 주청의 공룡 화석 지대를 20년 넘게 알고 있었지만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몰랐다. 그러다가 2008년 우연히 방대한 화석군이 발견됐다. 그뒤 300m 길이의 구덩이에서 새로운 공룡 9종이 발견됐다. 그중 하나가 혼이 연구한 7t짜리 티라노사우루스(‘주청고사우루스 막시무스’)다.
그 발굴 현장은 ‘롱구시안(龍骨縣: ‘용뼈 마을’이라는 뜻이다)’의 외곽 지역이다. 수 세기 동안 이곳의 암석에서 공룡 화석이 나왔다. 현장의 규모도 크지만 뼈도 빼곡히 들어차 있다. “최상의 발굴 현장”이라고 도드슨이 말했다. “그 많은 화석이 왜 그곳에 쌓여 있는지 설명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이 공룡들이 종말을 맞았는지도 아직 수수께끼다. 수싱은 산사태로 공룡들의 몸이 찢겨 뼈가 뒤섞였다고 추정한다. 반면 혼은 공룡들이 죽어 부패된 뒤 그 뼈가 대규모 홍수나 진흙사태로 휩쓸려 그곳에 쌓였다고 생각한다.
주청의 가장 큰 구덩이에는 오리주둥이를 가진 하드로사우루스화석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지금 연구자들에게 더 흥미로운 종은 현장 전역에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다른 종이다. 주청고사우루스 막시무스의 뼈는 하드로사우루스 사이에서 일부만 발견됐다고 혼이 말했다. 연구자들은 주청고사우루스 막시무스의 전체 뼈를 다 발견하진 못했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인 위턱뼈를 찾아냈다. “티라노사우루스의 위턱뼈는 각각 다르다”고 혼이 말했다. “그런데 주청고사우루스 막시무스는 놀랍게도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와 아주 흡사하다.”
그곳에선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대형 케라톱스도 나왔다. 과학자들은 케라톱스 화석이 아시아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오랫동안 좌절했다. 북미에 서식하던 공룡 중 다수가 아시아에서도 발견되면서 백악기 말기 태평양을 가로지른 육지가 존재했다는 이론이 대두됐지만 아시아에 케라톱스 화석이 발견되지 않자 그 이론에 의문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제 중국에서 ‘시노케라톱스’의 발견으로 그 문제가 해결됐다고 수싱이 말했다. 그 발견은 과거 북미와 아시아가 서로 연결됐다는 증거이며 앞으로 더 많이 발굴할 수 있다는 전망을 가능케 한다. “북미와 아시아에 매우 유사한 공룡 종이 존재했다”고 혼이 말했다. “이제 하나를 찾았으니 다른 화석도 찾아야 한다.”
수싱은 주청의 화석 발굴 구덩이를 거닐며 앞으로 발견될 새로운 공룡 종이 많다고 확신했다. 그는 아직 명명되지 않은 공룡 종의 뼈가 암석에서 튀어나온 지점에 멈춰 섰다. “정말 희한한 공룡”이라고 그는 행복에 겨워 말했다. “고생물학자는 늘 진짜 기이한 공룡을 발견하고 싶어한다.”
[필자는 상하이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작가다.
번역 정세윤 인턴기자 ]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이엔셀, EN001 샤르코마리투스병 임상 1b상 환자 투여 종료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일간스포츠
이데일리
이데일리
[단독] 김재환 PD “더본코리아 백종원, 자기 업보”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이재명 50.2% 김문수 35.6% 이준석 8.7%[리얼미터]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마켓인]SKIET 이어 SK지오센 佛 계열사도…EOD 위기서 기사회생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배병준 현대바이오 사장 “기술수출, 국내 첫 항바이러스제 개발 이뤄낼 것”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