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시련의 계절 - 최태원·재원 검찰 수사가 ‘형제경영’ 변수
SK, 시련의 계절 - 최태원·재원 검찰 수사가 ‘형제경영’ 변수
SK그룹 안팎에 떠도는 웃지 못할 우스갯소리가 하나 있다. ‘유공과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의 SK그룹이 존재할까’라는 얘기다. 두 회사는 현재 SK그룹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해외 사업에서 번번히 쓴 잔을 마시긴 했지만 그나마 글로벌 무대에 계속 도전한 것도 한국이동통신이 모태인 SK텔레콤의 이동통신 사업이다. SK그룹은 두 회사 덕에 현재 자산 규모 기준으로 재계 3위(99조원)에 올라 있다.
SK그룹이 기업 인수·합병(M & A) 시장에서 또 한번 승부수를 던졌다. SK텔레콤은 11월 11일 하이닉스반도체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SK텔레콤은 그룹 오너인 최태원·재원 형제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11월 10일 하이닉스 매각 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했다. 본입찰 참여 여부를 두고 마감시한 10분 전까지 고심한 끝에 내린 결과다.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는 SK 최고경영진의 의지가 반영됐다.
SK텔레콤이 하이닉스를 최종 인수하면 SK그룹의 자산 총액은 115조7179억원으로 늘어 재계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약 126조6890억원)을 바짝 추격하게 된다. 2001년 10월부터 채권단 공동관리를 받아온 하이닉스는 10년 만에 주인을 찾게 된다. 채권단은 11월 14일 하이닉스 이사회의 신주 발행 결의를 거친 후 신주 가격을 확정하고 곧바로 주식매매 계약을 맺는다. 그후 상세 실사와 가격 조정 등을 거쳐 이르면 내년 1월, 늦어도 내년 1분기 중 매각작업을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보통 입찰제안서 접수 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양해각서(MOU) 체결, 확인 실사, 주식매매계약서 체결 등에 두 달 정도 걸린다. 그러나 하이닉스 채권단은 MOU 체결을 생략하는 등 일정을 최대한 단축할 방침이다.
인수 과정 우여곡절 많을 듯 인수 과정이 순탄치 않을 수도 있다. 당장 그룹 총수 일가의 검찰 수사로 불거진 ‘경영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검찰의 수사 결과에 따라 인수작업이 벽에 부딪힐 수도 있다. 현재 SK그룹의 최태원·재원 ‘형제경영’은 검찰 수사란 암초를 만났다. 최태원(51) 회장과 동생인 최재원(48) 수석부회장이 선물투자 손실금 보전과 비자금 조성 등의 의혹으로 나란히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최 회장은 올해 초 부회장단을 결성해 최 부회장을 수석부회장으로 승진시키면서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 개발과 글로벌 사업을 책임지는 중책을 맡겼다. 부회장급 4명과 사장급 2명 등 6명으로 이뤄진 부회장단은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이를 최 부회장이 이끌도록 한 것이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이런 형제경영은 좌초할 수도 있다. 애초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는 최 부회장의 계열사 투자금 횡령 의혹을, 같은 검찰청 특수2부는 최 회장의 선물투자 의혹을 별도로 수사했다. 금조3부는 박성훈 글로웍스 대표의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하던 중 김준홍(46)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의 공모사실을 파악하고 3월에 김 대표의 사무실을 압수수색 해서 금고에서 175억원 상당의 수표와 금괴를 발견했다. 검찰은 이 수표 중 약 173억원어치가 최재원 부회장의 것임을 확인했다. 여기다 김준홍 대표가 SK그룹 상무 출신이고 SK그룹 계열사가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2800억원을 투자한 점에 비춰 최 부회장이 투자금 일부를 횡령했을 공산이 큰 것으로 보고 최 부회장에 대해 내사를 진행해왔다. 특수2부는 최태원 회장의 선물투자 의혹을 맡았다. 4월에 최 회장이 선물에 5000억원대를 투자했다가 1000억원대 손해를 본 사실이 알려지면서 투자금 출처를 밝히는데 주력해왔다. 그러다 9월 검찰 정기인사에 따라 최윤수 전 특수2부장이 중앙지검을 떠나고 이중희 전 금조3부장이 특수1부장으로 각각 자리를 옮기면서 두 사건은 이 부장이 있는 특수1부로 통합됐다.
두 사건은 끝까지 별개 사건으로 남아 각각 결론이 날 가능성도 있다. 김원홍씨를 비롯한 핵심 관계자가 해외에 나가 있다. 그러나 최 회장의 선물 투자금과 베넥스인베스트먼트의 투자금을 연결하는 고리가 발견되면 두 사건을 하나로 묶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검찰은 두 사건의 공통분모가 김준홍 대표와 SK해양 고문 출신의 역술인 김원홍(50)씨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증권맨 출신인 김씨는 최 회장의 돈을 맡아 선물에 투자했다. 검찰은 수개월간 자금 추적을 통해 SK그룹 계열사가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투자한 2800억원 가운데 일부가 김준홍 대표의 차명계좌를 통해 김원홍씨의 계좌로 들어간 단서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돈이 최 회장의 투자금 가운데 일부로 밝혀지면 동생이 빼돌린 계열사 투자금으로 형이 거액의 선물투자에 나섰다가 막대한 손실을 봤다는 흐름도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형제경영이 무너진다면 하이닉스 인수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종 인수를 결정한 게 아니라 우선협상대상자일뿐이기 때문에 실사 후 언제든지 협상 테이블을 떠날 수 있다.
검찰의 수사에도 SK텔레콤이 하이닉스를 인수한다고 해도 ‘승자의 저주’를 피해야 하는 관문이 남아 있다. 그러려면 반도체 불황의 골을 넘어야 한다. 하이닉스는 3분기에 2770억원에 이르는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4분기에도 실적 회복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해마다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SK텔레콤은 3조원 대인 인수 비용뿐만 아니라 인수 후 투자도 계속 해야 한다”며 “하이닉스의 경쟁력 제고는 SK그룹의 투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동생이 돈 빼돌리고 형은 선물투자?물론 하이닉스 인수 절차가 잡음 없이 마무리 된다면 SK그룹으로선 최상의 시나리오다. SK텔레콤은 하이닉스의 반도체 개발 역량을 결집해 새로운 사업을 벌일 돌파구를 마련하게 된다. 반도체 진출을 통해 그룹 내 IT 역량을 강화하는 게 핵심이다. 1조3000억원에 이르는 현금성 자산을 가진 SK텔레콤이 인수전에 뛰어든 이유도 통신과 반도체 부문의 중장기적인 시너지 효과를 노려서다. 메모리 반도체가 주력인 하이닉스의 사업 구조를 장기적으로 시스템 반도체 부문으로 전환해 정보통신기술(ICT) 전반으로 영역을 확대하는 게 SK텔레콤의 전략이다. SK텔레콤이 2월에 중국 선전에 시스템 반도체 전문업체인 SK엠텍을 세운 것도 반도체 역량을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모바일 기술과 접목하기 위해서였다. 이럴 경우 SK그룹은 ‘통신-정유-반도체’의 삼각 편대로 사업 다각화를 이루게 된다.
남승률 이코노미스트 기자 namo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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