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economic crisis] 기술관료정치의 함정
[EU economic crisis] 기술관료정치의 함정
전설에 따르면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가장 위대한 기술관료였던 알렉산더 해밀턴은 신생 미국의 국민을 “커다란 야수”로 묘사했다. 또 한번은 “그들은 거칠고 변덕스럽다. 옳게 판단하거나 결정하는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말해 그 미국 초대 재무장관은 은행가들이 일을 처리하고 부자들이 대중의 이른바 ‘불안정’을 통제하는 방안을 훨씬 더 선호했다.
Legend has it that Alexander Hamilton, the greatest technocrat among America’s Founding Fathers, described the fledgling nation’s people as “a great beast.” They “are turbulent and changing; they seldom judge or determine right,” he said on another occasion. Generally speaking, the first secretary of the Treasury of the United States was a lot more comfortable with the thought of bankers running things and the rich reining in what he called the “unsteadiness” of the masses.
요즘 유럽에서 그런 걱정스러운 상황이 재현된다.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기존 정부를 쫓아내고 학자, 사업가, 행정관료들에게 국정운영을 맡기는 방법으로 재정 파탄(financial doom)을 막으려 한다. 그런 조치로 시장을 진정시키고, 날뛰는 투기를 억제하고, 세계의 금융기관들을 안심시키려는 의도다. 기존 정치인들은 대중이라는 야수에 영합하느라 예산을 모두 탕진하고 국가부채를 한도까지 끌어다 썼다(maxed out their national credit). 이제 그들은 자리에서 밀려나고 대신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는 기술관료들이 들어선다.
진작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 장-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는 동료 정치인들에게 경제적인 엄밀함이 부족하다고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 무엇을 할지는 알지만 일단 일을 처리한 뒤 어떻게 해야 다시 선출되는지는 모른다(We all know what to do, but we don’t know how to get reelected once we have done it).” 지금은 ‘융커의 저주’로 알려진 이 논평에 담긴 의미는 명백하다.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유권자들의 생각에는 신경 쓰지 않는 전문가들을 불러들이라는 뜻이다(when hard times hit, call in the wonks, who don’t really care what voters think). 융커 총리는 현재 EU(유럽연합)의 단일통화를 존속시키려 애쓰는 재무장관들의 유러그룹(Eurogroup, 유로화 사용권 재무장관 그룹) 의장도 맡고 있다. 그는 마리오 몬티 신임 이탈리아 총리를 “국면타개용(the man for the situation)”에 불과하다고 본다. 대학총장으로 유럽연합 집행위원 출신의 몬티는 재선 도전은커녕 공직에 선출된 적조차 없었다. 사실 그의 새 내각 각료 중 이탈리아의 통상적인 기준에 맞는 정치인은 한 명도 없다. 루카스 파파데모스 신임 그리스 총리도 EU관료와 기술관료로 확실한 자질을 갖췄다. 지난해까지는 유럽중앙은행 부총재였다.
그러나 이같은 이른바 비정치적인 접근법에는 하나의 역설이 있다. 그 역설은 아무리 잘 만들어진 재정·경제개혁안도 무용지물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 위기가 닥쳤을 때 큰 야수는 그냥 가버리기는커녕 오히려 갈수록 침착성을 잃고 흉포해진다. 기술관료 셈법의 엄격함(the rigors of the technocrats’ calculus)을 견뎌내도록 대중을 설득하는 일은 수학의 문제라기보다 정치의 문제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 등이 지적했듯이 유럽통화통합의 원죄는 통합에 대한 사실상의 정치적 합의가 없었는데도 그렇게 중대한 일을 순전히 기술적인 차원에서 엘리트가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척 허풍 떤 일이었다. 유럽, 미국 그리고 대다수 다른 나라의 현재 문제는 셈법의 실패가 아니다. 유권자들을 설득해 그 고통스러운 결론을 받아들이도록 할 만한 배짱, 지혜 그리고 카리스마를 지닌 정치 지도자가 없다는 점이다(the lack of political leaders with the guts, the smarts, and the charisma).
파파데모스의 전임자 게오르게 파판드레우(그 자신도 과거 민중을 선동하던 정치 왕조의 기술관료에 가까운 후손이다)는 그리스 총리로 재임한 지난 2년간 그리스 국민이 앞으로 달라지며 자크 들로르 전 유럽집행위원회(EC) 위원장이 말하는 이른바 자신들의 “재정사기 기술(art of fiscal fraud)”을 포기하겠다고 금융계를 설득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스인들은 변하지 않았다.
대신 국가부도 위기에 몰리자 파판드레우를 파파데모스로 교체했다. 마치 기술관료 성격이 강하고 정치색이 옅은 그의 이력을 만병통치약(panacea)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초반의 신임투표에도 불구하고 아테네에서 계속되는 가두시위와 새 긴축안에 대한 우익 정치지도자들의 소극적인 반응은 파파데모스의 리더십이 파판드레우보다 더 나을 게 없음을 말해준다(no more effective as a leader than Papandreou was). 오히려 신임 총리가 대중을 설득한 경험이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어쩌면 더 못할지도 모른다.
상황이 어려워지고 서방의 미래가 더 어두워지는 듯하자 고도로 기술관료적이며 상당히 비민주적인 중국에 거의 노골적인 선망(ill-disguised envy)을 나타내는 논객도 있다. 중국이 고도의 경제성장을 지속하는 데는 적어도 중국의 기술관료들이 결정하면 베이징이 밀어붙이는 방식도 적잖이 작용한다(what the country’s technocrats dispose, Beijing imposes). 그러나 중국은 아주 특수한 경우이며 다른 지역에서는 기술관료 정치와 독재정치 결합의 장기적인 성과가 결코 고무적이지 않다.
이집트가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다. 호스니 무바라크는 몰락하기 전 10년 동안 저명한 기술관료를 다수 정부 요직에 임명했다(appointed a slew of well-respected technocrats to his government). 재산이 늘어나는 사람 숫자는 극히 작았지만 통계상 이집트는 번창하고 있었다. 기술관료적인 총리, 재무장관, 그리고 통상장관은 모두 재계와 금융계에서 널리 존경받는 인물들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자신들의 인도 아래, 해가 바뀔수록 성장해가는 거시경제 지표를 가리키며 후원자로서 자부심을 느꼈다. 2004년 10억 달러이던 외국인 직접투자(foreign direct investment)는 2008년 130억 달러를 돌파했고 지난해까지만 해도 경제성장률이 5.1%였다. 그 숫자들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지만 민중 봉기가 일어나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그 기술관료 장관들은 모두 쫓겨났으며 그들 중 여럿이 무바라크와 함께 철창 신세를 지게 됐다.
또 다른 사례는 파키스탄이다. 시티뱅크 출신의 말쑥하고 돈 많은 샤우카트 아지즈는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 정부에서 재무장관과 총리를 지냈다. 2004~2006년 연간 7%에 가까운 놀라운 GDP(국내총생산) 성장을 이끌었으며 파키스탄 국민들이 수입품에 돈을 펑펑 쓰면서 개인소비 지출이 급증했다(the country enjoyed a consumer boom as Pakistanis splurged on imported goods). 텔레컴 산업에 수억 달러의 외국인 직접투자가 몰렸으며 휴대전화 판매는 천문학적인 수준에 달했다. 하지만 파키스탄에서는 단 한 대의 휴대전화도 생산되지 않았다.
파키스탄의 경제실적과 아지즈의 평판은 미국, 유럽, 일본, IMF, 아시아개발은행(ADB), 그리고 세계은행의 외국 원조에 크게 좌우됐다. 아지즈는 금융관료의 언어를 구사했으며(spoke the moneycrats’ language) 그들은 그런 점을 높이 샀지만 파키스탄의 국민은 여전히 빈곤을 벗어나지 못했다. 전통적인 섬유산업 말고는 일자리가 거의 생기지 않았다. 파키스탄이 심각한 전력과 식수난(critical shortages of electricity and water)에 직면한 건 분명했다. 하지만 인프라 투자의 필요성은 외면당했다. 정부가 경제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민영화 캠페인은 부패와 특혜시비로 얼룩졌다(rife with corruption and favoritism). 대법원장이 무샤라프의 권력남용을 조사하며 자신의 권력기반을 위협하자 무샤라프는 그를 해고했다. 그로 인해 촉발된 정치적 후폭풍이 무샤라프와 아지즈 시대의 막을 내리는 단초가 됐다.
민주주의에서 기술관료가 국민의 지지를 받을 때 상당히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조용한 경제학자로 인도가 경제대국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이끌었던(who has overseen his country’s transformation into a major economic power) 맘모한 싱 인도 총리도 자주 언급되는 사례다. 더 의외의 또 다른 인물은 후안 마누엘 산토스다. 지난해 그가 콜롬비아 대통령이 됐을 때는 직업적인 전문 관료로 보였다.
엘리트 출판왕조의 후손인 그는 미국과 런던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여러 해 동안 무역과 국방부를 이끌었지만 한번도 선출직에 출마하지 않다가 2010년 곧장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했다. 어쨌든 승리했지만 그는 감당하기 어려운 과업을 떠안게 됐다. 엄청난 인기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알바로 우리베의 뒤를 잇는 일이었다. 우리베는 지방의 폭력사태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인권을 짓밟은 혐의를 받았다. 반대파들은 산토스가 치열한 의회정치에 굴복하거나 우리베의 꼭두각시(a mere puppet for Uribe)가 될 것이라고 코웃음을 쳤다.
산토스는 그들의 예상을 뒤엎었다(proved them wrong). 잠재된 정치력을 발휘해 중요한 정부 개혁안의 초안을 작성할 때는 반드시 여야 양쪽 의원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made a point of working all sides of the congressional aisle). 그 결과 콜롬비아는 어느 때보다 안전해졌으며 성장하는 경제, 원활히 돌아가는 의회, 자유 언론, 투명한 법률체제로 라틴 아메리카의 샛별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 모두가 가능했던 건 산토스가 알려진 대로 숫자에 밝고 성격이 꼼꼼해서가 아니라 이제껏 알려지지 않고 잠재돼 있던 그의 강력한 정치 리더십 재능 덕분이다(his hitherto untapped and unknown talent for strong political leadership).
이제 미국 이야기를 해보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경제이론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고 심각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없지만 분명 경제운영의 정치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듯하다. “마치 사람들이 다른 결과를 얻으려고 계속 공식을 조정하려 드는 느낌(It just feels as if people keep on wanting to jigger the math so that they get a different outcome)”이라고 지난주 하와이에서 아시아 지도자들과 회동한 뒤 비아냥 섞인 기술관료의 말투로 오바마는 푸념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하든 공식은 똑같다 … 현명한 삭감과 그에 상응하는 세수확대의 결합이다(Well, the equation, no matter how you do it, is going to be the same ... Prudent cuts have to be matched up with revenue).” 그런 평가는 뻔한 상식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오바마는 의회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했다. 대신 중요한 세부사항을 의회에 구성된 초당적 ‘수퍼위원회(supercommittee)’로 넘겼다. 하지만 수퍼위원회는 현재 교착상태에 빠진 듯하다. 그에 따라 대통령(그리고 미국)은 기술관료정치의 전형적인 함정에 빠졌다(in the classic technocratic bind). 오바마는 자신이 옳다고 믿지만 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가 틀린 셈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재로선 이탈리아가 기술관료제의 시금석이다(technocracy’s acid test). 이탈리아의 상황이 안정을 되찾지 못하면 유로화가 종말을 고하고 곤경에 처한 글로벌 경제에 새로운 위기가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몬티가 기술각료 인선을 발표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새 내각은 파당적인 이탈리아 정당정치의 인질이 되고 말았다(it was taken hostage by Italy’s fractious political parties). 밀라노, 토리노, 피렌체, 볼로냐, 로마, 팔레르모에서 학생들이 이 “금융가”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물러나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도 정계에서 은퇴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밝혔다. “몬티를 지지하지만 억압적인 긴축조치는 지지하지 않는다(I support Monti, but I do not support oppressive austerity measures)”고 지난 20년 중 상당기간 이탈리아를 통치했던 그 억만장자 난봉꾼(the billionaire libertine)이 말했다. 언제든 자신이 원할 때 몬티의 지지를 철회할 만큼 의회에 영향력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몬티의 긴축조치가 지지를 받지 못하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음성적인 방법으로 임금을 받는(who are paid under the table) 20% 안팎의 근로자를 찾아내 세금을 물리겠다고 다짐한다. 공공 서비스 일자리를 줄이고 베를루스코니가 폐지한 재산세(property tax)를 부활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이 모든 조치가 이탈리아의 보통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듯하다. 다수가 현 정부에 투표한 적이 없다고 불평한다. 현 정부는 선거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탈리아 대통령이 지명한 뒤 의회가 승인했다. “지금 정부에는 국민의 대표가 전혀 없다(Right now we’ve got zero representation of the people)”고 로마 중심부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마리오 파첼리가 말했다. “국민은 현 정부에 이질감을 느끼며 따돌림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가 밀어서 뽑힌 사람이 실수할 때는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 사람들에게는 누가 책임을 묻나(The people feel detached from this government and out of the loop. At least when the people we voted into office make a mistake, we can hold them accountable. Who are these people accountable to)?”
이탈리아 거리에서 아직 커다란 야수가 울부짖지는 않지만 목청을 가다듬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듯하다(you can already hear it clearing its throat).
[With With Ron Moreau and Mac Margolis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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