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새 판 짜는 한·중·일] 한·미 손잡자 중국·일본 급해졌다
[FTA 새 판 짜는 한·중·일] 한·미 손잡자 중국·일본 급해졌다
칠레와 더불어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은 한국과 중국, 일본이 치열한 FTA 경합을 벌이는 곳이다. 외교통상부와 코트라에 따르면 한·아세안 FTA 발효 전 350억 달러 였던 우리나라의 대 아세안 수출액은 4년 만에 590억 달러로 늘었다. 아세안은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 대상국 순위 2위로 부상했다. 중국은 한국보다 1년 빠른 2005년 7월 아세안과 FTA를 발효시켰다. 일본은 우리보다 늦은 2008년 12월 FTA(CEPA)를 발효했다.
3국은 아세안 시장 선점이라는 목적은 같았지만 전략은 달랐다. 중국은 아세안에 시혜를 베푸는 듯 한 자세로 임했고 지리적 이점과 저가 제품을 앞세워 시장을 선점했다. 또한 단순히 상품교역의 경제적 효과보다는 중국의 위상을 강화하는 데 역점을 뒀다. 한국은 특성이 서로 다른 아세안 10개국과 낮은 자유화 수준의 FTA를 체결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EU나 미국과의 FTA에 더 적극적이었다. 반면 일본은 일·아세안 FTA를 맺은 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등과 양자 간 개별 FTA를 체결하는 전략을 썼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아세안 개별국과 FTA를 다시 맺는 작업에 착수했다. 일본에 대응하기 위한 포석이다.
아세안에서 벌이는 한·중·일 3국의 무역 전쟁은 전 세계로 확전이 불가피하다. 3국이 모두 FTA를 체결한 칠레와 아세안, 페루는 물론 EU, 호주, 뉴질랜드, 걸프협력회의(GCC), 남미공동시장, 남아프리카 등에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더욱이 한국이 EU, 미국과 잇따라 FTA를 맺으면서 중·일 양국은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양국의 FTA 추진 전략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11월 18일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FTA 논의를 위해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다음 날에는 “한·중·일 FTA에 대한 연구를 올해 안에 마무리 짓고 내년부터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10월에는 리커창 중국 부총리가 방한해 한·중 FTA 추진을 촉구했다. 11월 23일에는 중국의 양제츠 외교부장과 일본 겐바 고이치로 외무상이 베이징에서 만나 한·중·일 3국 간 투자협정의 연내 실현에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3국 투자협정은 한·중·일 FTA 의 사전 작업이다.
11월 11일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를 공식화한 일본의 FTA 외교도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그동안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대응하는 데는 적극적이었지만, 경제대국이나 대규모 경제권역과의 포괄적 FTA를 추진하는 데는 미온적이었다.
올 중순까지만 해도 TPP 참여조차 불투명했다. 하지만 올 7월 한·EU FTA가 발효되면서 일본 내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당시 일본경제신문은 “한국은 일본 내 주요산업인 자동차, 전기, 전자제품의 최대 경쟁국”이라며 “EU 시장에서 한·일 업체 간 점유율이 역전되거나 그 격차가 크게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경단련 등 재계단체 등도 한·미 FTA로 일본의 대미 경쟁력이 약해질 것이라며 일본 정부를 압박했다. 무엇보다 이른바 ‘6중고(六重苦)’를 탈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코트라에 따르면 일본은 심각한 수준의 엔고 현상, 뒤쳐지는 자유무역협정, 경쟁국보다 엄격한 노동규제, 40%를 넘는 법인세율, 3·11 대지진 파장, 엄격해지는 CO2 규제 등 6중고에 직면해 있다. 이를 타계하기 위해 일본이 FTA 공세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기존 전략은 중국을 견제하면서 동아시아 공동체 구성에 주력하는 것이었다. FTA는 주로 상품 무역 위주의 낮은 수준을 선호했다. 일본이 FTA를 체결한 13곳 역시 상대적으로 경제 규모가 작은 곳이 많았다. 전략은 대폭 수정됐다. 일본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과 아태 이외 주요 지역, 기타 지역으로 구분해 EPA를 추진하고 있다(일본은 FTA 보다는 경제연계협정을 뜻하는 EPA 용어를 선호한다). 한국을 의식해 일·EU FTA 추진에도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호주, GCC, 한국·한·중·일·몽골·캐나다와도 협상을 진행 중이거나 검토 중이다.
미·일 FTA로 불리는 TPP 참여도 공식화했다. 일본 정부는 TPP가 타결되면 일본 전체 무역 중 FTA를 체결한 국가와의 거래 비중이 현재 18%에서 37%까지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TPP는 미국, 호주, 페루,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이 참여해 오다가 최근 일본, 캐나다, 멕시코가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거대 경제권역의 탄생을 예고했다. TPP 참여국 대부분은 한국이 FTA를 체결했거나 체결을 검토 중인 곳이다.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아직 TPP 참여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중국의 행보 역시 달라졌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FTA 협상을 시작했다. 현재 10건을 체결했다. 중국의 기존 FTA 전략은 중화권으로 불리는 주변국(홍콩, 마카오, 아세안, 대만) 중심으로 낮은 수준의 FTA를 맺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한·미 FTA를 타결하고 TPP를 주도하며 견제해 오자 전략을 대폭 바꿨다. 중국이 현재 협상을 진행 중이거나 검토하는 국가를 살펴보면 ‘투 트랙 전략’이 눈에 띈다.
중국·일본 FTA 전략 대폭 수정현재 중국은 GCC, 남아프리카 관세동맹(SACU), 호주, 스위스 등과 FTA 협상을 하고 있다. 또한 인도와 한국, 한·중·일 FTA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아시아 역내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동아시아 중심국과 FTA 체결에 적극 나서면서, 동시에 자원 확보를 목적으로 자원보유국과 체결을 추진하는 것이다. 특히 한·중·일 FTA에 관심이 많다. 3국은 이미 아세안과 FTA를 맺고 있다. 여기에 한·중·일 FTA가 성사되면 ‘아세안+3’의 그림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이른바 동아시아 경제통합이 이뤄지는 근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주도권을 놓고도 3국의 치열한 수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여유롭다. 세계 3위의 FTA 경제영토를 얻은 한국의 전략은 대담했다. 2003년 2월 칠레와의 FTA 협상이 타결된 후 한국 정부는 ‘FTA 추진 로드맵’을 수립했다. 전략적·적극적·동시다발 추진이 핵심이었다. 주요 국가와 동시에 FTA 협상에 나섰고, 특히 거대·선진 경제권과 FTA를 추진했다. EU, 아세안, 미국 등 거대 경제권역과 FTA를 추진하면 우리와 무역하는 다른 나라도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고구마 줄기론’은 주효했다. 한국은 현재 총 45개 국가와 FTA를 맺었다. 캐나다, 멕시코, GCC, 호주 등과는 협상을 진행 중이다.
또한 중국, 일본, 한·중·일, 남미공동시장, 러시아, 몽골, 말레이시아 등과 협상을 준비 중이거나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 현재 협상 중인 국가와 협정이 체결되면 한국의 FTA 파트너는 72개국으로 늘고, 전체 교역 중 80%가 FTA 체결국과 하게 된다.
전략국가 발굴해 ‘각개 격파’ 해야 문제는 지금부터다. 우리의 주요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은 빠른 속도로 FTA 시장을 늘려가고 있다. 한국에겐 위협이다. 그래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통상 전문가들은 그동안 FTA 경제영토를 확장하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부터는 신흥국 시장 선점, 자원 확보, 일자리 창출 등 전략적인 관점에서 FTA 신규 추진 국가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일단은 호주, 콜롬비아와 협상을 조속히 마무리하고 한·중 FTA 또는 한·중·일 FTA에 대비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아세안 시장에서는 일본에 대응하기 위해 개별 국가와 FTA 협상을 늘려야 한다는데도 정부와 학계의 의견이 일치한다.
무엇보다 한·중, 한·일, 한·중·일 FTA 전략을 어떻게 짜느냐가 최대 관건이다. 한국 입장에서 중국과 일본은 1, 2위 교역국이다. 중국 입장에서 일본은 2위, 한국은 3위다. 일본 입장에서는 중국이 1위, 한국이 3위다. 세계 곳곳에서 치열한 FTA 격전을 치르고 있지만, 3국 간 무역 규모를 감안하면 한·중·일 FTA 추진은 자연스럽게 동아시아 경제통합이라는 목표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 외교통상부 이시형 통상교섭조정관은 “우리로서는 한·중이든, 한·중·일이든 동아시아의 무역 자유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에서 (협상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진행 중인 3국의 산관학 공동연구는 올해 마무리 돼 내년 각국 정상에 보고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중·일 FTA가 예상보다 빠르게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이시형 통상교섭조정관은 “한·중·일 FTA가 내년 정상회의 때 바로 굴러가기 시작하느냐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렇다고 결정된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우리나라가 거대 경제권역과 잇따라 FTA를 맺는데 성공하면서, 이제는 전략 국가를 발굴해 ‘각개 격파’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많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해외시장 확대, 자원 확보, 산업구조 고도화 등 3개 목표를 설정하고 21개국을 체결 대상 우선국으로 꼽았다. 단기간에 추진해야 할 국가로는 중국, 남미공동시장, 러시아, 호주, GCC가 꼽혔다. 3개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국가들이다. 중장기 공략 국가로는 SACU, 이집트, 카자흐스탄, 알제리, 터키, 우크라이나, 콜롬비아, 이스라엘 등을 꼽았다. 대부분 중국과 일본이 눈독을 들이는 곳이다. 선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경제적 타당성과 자원 보유 현황, 우리나라의 FTA 체결 희망 등을 고려해 10개국을 선정했다. 1단계는 알제리, 카자흐스탄, 이집트, SAUC다. 2단계는 아르제바이잔와 우크라이나,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3단계는 파키스탄과 나이지리아, 리비아, 파나마를 선정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도 최근 비슷한 보고서를 통해 현재 정부가 협상하고 있거나 고려중인 것으로 공개된 국가를 제외하고 15개국을 추진 유망국으로 선정했다. 자원은 풍부한데, 제조업 기반이 약해 수입의존도가 크고 관세율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FTA를 체결하면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 에콰도르(중남미), 이집트, 모로코, 튀니지(북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케냐(중앙아프리카), 우크라이나, 크로아티아(동유럽), 스리랑카, 파키스탄(아시아) 등이다.
김태윤 이코노미스트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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