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f] 국내 대기업 프레지던츠컵 유치 경쟁
[Golf] 국내 대기업 프레지던츠컵 유치 경쟁
11월 20일 호주 멜버른의 로열 멜버른 골프장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에서 미국 팀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세계 연합팀이 2년에 한 번씩 맞붙는 프레지던츠컵은 2015년에는 한국에서 열릴 예정이다.
그런데 미국PGA투어는 이례적으로 대회 개최 골프장 발표를 내년 상반기로 미뤘다. 왜 그랬을까. 이 대회의 성격과 코스를 정하는 기준, 그리고 발표를 미루는 이면에 어떤 스포츠 마케팅 전략이 숨어있는지 다시 생각해볼 대목이다.
프레지던츠컵 개회식에서 공식 발표됐지만 2015년 한국 개최는 이미 지난해부터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었다. 골프 강국인 호주, 남아공, 캐나다는 이미 개최했고 일본, 아르헨티나, 중국 등의 후보가 있었지만 최근 몇 년 간의 성장세와 최경주, 양용은, 김경태 등 선수들의 활약상을 보면 한국 개최는 당연했다.
프레지던츠컵을 주최하는 미국PGA투어에서는 올해 두 번 방한해 코스 점검까지 마쳤다. 2013년 대회 개최지인 뮤어필드빌리지를 설계했고, 미국팀 단장을 역임했으며 세계적으로 300개가 넘는 코스를 설계한 잭 니클러스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3월에 송도의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코리아와 영종도의 스카이72골프리조트 오션 코스, 성남의 남서울CC 세 곳을 둘러봤다.
그들은 ‘서울’에서 개최하는 것 같은 코스를 원했다. 올해 프레지던츠컵의 메인 스폰서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좋은 도시’로 꼽힌 멜버른이었다. 이름에서부터 ‘프레지던츠컵’으로 내걸었고 대회 때 개최국 대통령과 총리가 명예 대회장을 맡는 만큼 PGA투어는 단지 한 개의 골프장 단위를 넘어 한 도시나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상징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골프장이 그 나라 골프에서 명망과 신뢰를 얻고 있는 곳이길 원했다. 하지만 서울과 접근성, 대회장 규모, 세계적인 골프 거물의 숙박을 해결할 여건 등에서 뚜렷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곤지암으로 굳어지다 개최지 발표 연기PGA투어 실사단은 7월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이번에는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요청에 프레지던츠컵에 막강한 발언권을 행사하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풍산그룹 류진 회장의 제안이 더해졌다. 실사단은 여주 해슬리나인브릿지와 광주 곤지암CC를 점검했다. 해슬리는 대회 개최 의욕과 코스 상태는 최고였지만 국제 규모의 골프 대회를 개최할 코스 치고는 너무 협소했다. 멜버른에서 만난 매튜 카민스키 프레지던츠컵 디렉터는 로열멜버른이 올해 또 다시 대회를 개최한 큰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36홀 규모여서 새로운 코스를 만들고 나머지 홀을 주차장이나 방송 시설이 채울 수 있었다. 또 멜버른 도심에 위치해 숙박 등 편의 시설이 충족됐다.” 그들은 이 대회의 독자성을 중시한다. 2009년 샌프란시스코의 하딩 파크에서 개최할 때도 현지의 전통 깊은 36홀 퍼블릭 코스를 완전히 새로운 18홀로 재구성해서 대회를 열었다.
곤지암CC는 코스의 규모와 숙박, 방송시설 공간 등에서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켰다. 또한 강남에서 45분 거리의 접근성이 뛰어났다. 그 정도면 경기도 광주가 아니라 서울이 개최 도시로 파트너가 돼도 될 것 같았다. LG그룹과 친분이 깊은 류진 풍산 회장이 한국 개최에 대한 의미를 다음과 같이 부여했다. “아시아 최초로 개최하는 프레지던츠컵은 하나의 골프 대회를 넘어 한국과 미국의 굳건한 동맹관계를 재확인하는 계기다. 2015년은 ‘한미수교 65주년’의 해인 만큼 양국 동맹의 결속을 높이는 계기로 삼자.”
따라서 개막식 또는 폐회식을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개최하자는 안도 긍정적으로 논의됐다. 곤지암CC는 철저한 회원제로 운영되며 방송중계 시설이 들어와도 될 정도의 규모도 갖췄다. 서브원 리조트가 있어 방송 관계자의 숙박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구본무 LG 회장도 대회의 성격과 의미에 대해 듣고는 흔쾌히 대회 개최와 관련된 지원을 승낙했다.
이렇게 한국 개최는 이미 기정사실이 됐고, 대회장이 곤지암CC로 굳어지던 상황에서 팀 핀쳄 PGA투어 커미셔너는 대회장을 내년 상반기에 공개한다는 발표를 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7개의 카드를 다 받은 포커게임에서 상대방이 카드를 열지 않고 베팅을 키웠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가 무슨 카드를 가졌고, 우리는 뭘 가졌는가를 점검하는 일이다. 일단 국제적인 최고의 대회를 열 코스의 가치에 대한 재평가를 해야 한다.
로열멜버른은 120년의 역사를 가졌으며 호주에서 최고의 코스로 손꼽힌다. 2003년 개최한 남아공 웨스턴케이프의 링크스팬코트호텔은 골프다이제스트에서 뽑은 ‘미국을 제외한 세계 100대 코스’에서 67위에 올라 있다. 2007년 캐나다 퀘벡의 로열몬트리올 역시 세계 81위에 올라 있다. 2013년에 개최할 오하이오의 뮤어필드빌리지는 미국 100대 코스 19위다.
한국의 개최 골프장이 내년 상반기에 결정되는 만큼 이제부터 국내 골프장의 소리 없는 레이스가 시작될 것이다. 한국 골프의 대표성을 가진, 전통도 있는, 베스트 코스가 어디냐를 가리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이 대회는 상업성을 배제하기 위해 씨티그룹과 롤렉스 외에는 어떤 기업의 후원도 없다. 코스에도 선수에게도 기업 로고를 붙이지 못한다. 선수들도 상금 없이 명예로 출전한다. 하지만 대회를 개최하려면 개최장의 스폰서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즉, 보이지 않는 이미지 홍보에 과감하게 큰 돈을 베팅할 수 있는 곳이 어디냐의 싸움이 치열한 대회다.
PGA투어에서 판돈 키운 듯일단 잠재 후보는 LG의 곤지암CC, CJ의 해슬리, 포스코건설의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코리아, 남서울CC, 스카이72 정도다. 하지만 물밑 다크호스를 더 주목해야 한다. 안양베네스트는 내년부터 1년간 코스를 휴장하고 리노베이션에 들어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한다. 삼성이라는 글로벌 기업이 후원하고 역사와 전통성을 가진 한국의 명문 코스인 만큼 안양베네스트도 후보가 될 수 있다. 남서울의 허광수 회장과 함께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세계 최고 권위의 R&A 멤버다. 군포에 위치하지만 서울에서 개최하는 것만큼 상징성도 있다. 따라서 남서울과 안양이 후보가 된다면 서울시를 러닝 메이트로 적극 끌어들여야 한다.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코리아가 개최하려면 서울보다는 동북아 비즈니스 허브를 지향하는 송도 국제도시를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이 코스는 이미 미국 챔피언스투어를 개최하고 있어 감점 요인이다. 스카이72 역시 LPGA투어를 해마다 개최해 참신함이 떨어진다.
또 하나의 다크호스는 CJ의 클럽나인브릿지다. 제주도는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됐으며 골프의 미래와 한국의 이미지를 홍보하는데 이만큼 훌륭한 자연 조건도 드물다. CJ는 제주도를 파트너 삼아 후보 경쟁에 나설 수 있다. 또한 클럽나인브릿지는 한국의 베스트 코스 1위이며 세계 100대 코스에서 65위에도 올라 있다.
어떤 골프장이 대회를 개최하느냐는 한국의 대표성을 알리는 국내 기업의 자존심 대결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PGA투어는 결국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꽃놀이패를 들고 판돈을 키운 것 같다. 한국 골프장의 유치 경쟁을 즐겁게 지켜보다 좀더 나은 후원 조건을 제시하는 쪽에 손을 들어주면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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