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ance 엇박자 낸 저신용자 대책 - 서민은 혜택 못보는 서민금융 정책
Finance 엇박자 낸 저신용자 대책 - 서민은 혜택 못보는 서민금융 정책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재민(41)씨는 최근 거래처 결제에 필요한 500만원 대출을 받기 위해 한 시중은행을 찾았다.
김씨는 7등급이긴 하지만 연체 없이 대출금도 잘 갚았고 거래도 꾸준해 대출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거절당했다. 신용이 8등급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본 그는 땅을 쳤다. 한달 전 급전이 필요했던 김씨가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 했지만 불가 통보를 받아 캐피털회사에서 신용조회를 했던 게 문제였다. 김씨는 “은행에서 거절당해 어쩔 수 없이 제 2금융권을 찾았는데 조회 한번 했다고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하소연했다.
출판사에 다니는 임훈(37)씨는 신용등급이 8등급에서 9등급으로 떨어졌다. 일부 대출이 있지만 오랜 기간 꾸준히 상환을 해왔고 단 한 번도 연체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신용등급이 떨어졌다. 왜일까. 3년 전 휴대전화 요금 100만원을 두 달간 연체한 게 화근이었다. 그러나 이미 미납요금을 바로 갚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임씨는 “1등급을 올리려면 최소 1년 이상 걸리는데 아직까지도 연체기록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며 “꼬박꼬박 대출금을 갚아나가도 별 수 없다”고 화를 냈다.
신용정보 조회, 소액 연체 기록 남지 않아김씨와 임씨가 10월 이후 신용조회를 하거나 연체했다면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10월부터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기 위해 신용정보를 조회하거나 10만원 미만을 연체하면 개인신용등급 평가에 반영되지 않는다. 또 90일 미만 연체정보는 대출금을 갚을 경우 신용평가에 3년만 반영된다. 종전에는 5년이었다. 여기에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보험료, 전기요금 납부정보 등 금융회사와 공공기관이 보유한 우량 정보를 신용평가에 반영한다. 은행 문턱을 넘기 힘든 저신용자의 신용등급을 높여 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금융위원회가 마련한 ‘서민금융 기반강화 종합대책’의 주요 내용이다. 이를 10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1~6등급의 경우 54%가 은행을 이용하는 반면 저신용자는 50%가 제2금융권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대부분 금리가 20%를 넘어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개선안이 시행된 지 2개월이 지났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현재까지의 답은 “효과 없다”다. 개인신용평가사인 코리아크레딧뷰로(KCB)에 따르면 9월 저신용자 비율은 16.3%에서 10월에는 16.2%로 큰 변동이 없었다. 9월 신용등급 7~10등급 보유자인 681만4593명 중에 1만7079명만이 등급이 올랐다. 전체의 0.1%에 불과하다. 나이스신용정보(NICE)는 숫자 공개를 거부했다. NICE 관계자는 “신용등급 비율을 분기별로 공개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숫자를 알려줄 수 없다”면서도 “제도 시행 전과 크게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신용평가사들은 “제도를 개선한다고 바로 등급이 올라가는 게 아니다”며 “개인마다 평가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신용등급이 올라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신용평가사인 KCB와 NICE가 정부의 신용평가 기준 개선 후 개인신용평가 기준 모형을 자체적으로 다시 개편했기 때문이다.
신용평가회사는 부채수준, 연체정보, 신용형태, 신용거래기간 등을 잣대로 신용등급을 매긴다. KCB의 기존 평가 잣대에서는 부채수준(35%)과 연체정보(25%) 비중이 60%였다. 그러나 모형을 손질하면서 부채수준 비중을 5%포인트 더 높였다. 정부가 신용정보 조회와 소액 연체 기록을 평가에 반영하지 않음에 따라 상대적으로 부채수준 비중을 높인 것이다. NICE는 기존에 없었던 부채수준 항목을 새롭게 만들었다. 지금까진 신용형태와 부채수준을 합쳐 평가(31%)했지만 신용형태(25.8%)와 부채수준(23.0%)으로 평가항목을 나눴다. KCB관계자는 “부채수준은 현재 개인의 신용 리스크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비중을 늘렸다”고 말했다. NICE 관계자는 “정부가 신용조회기록 정보를 신용평가에 반영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우리도 신용조회정보 항목을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한해 소득이 2000만원에 못 미치는 저소득층의 가계대출 잔액은 85조원으로 나타났다. 1년 반 새 49%나 증가했다. 이 기간 가계대출 증가액 77조원 가운데 37%는 연소득 2000만원 미만, 29%는 연소득 2000만~3000만원 미만 계층에 집중됐다. 더구나 이들은 대부분 제2금융권 등을 이용해 대출을 받는다. 20%대에 달하는 이자만 겨우 갚아가는 상태다. 이들은 절대 부채수준이 높기 때문에 신용평가회사의 새로운 평가 모델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신용평가 업계 관계자는 “저소득층의 경우 소득에 비해 빚이 많거나 고액 연체 경험이 중상위 신용등급자보다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연구원의 이순호 박사는 “부채수준이 신용평가의 중요한 기준이긴 하지만 비중을 얼마로 매겨야 할지 정답은 없다”며 “정부가 개선안을 내놨지만 결국 저신용자에게 유리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도 정부의 대책이 큰 효과가 없을 것이란 얘기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저신용자의 신용등급을 올리자는 게 기본 취지이지만 정부가 민간신용평가회사의 평가기준에 대해 관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신용평가사에서 평가 기준 바꿔 불리금융위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신용조회 기록이 신용평점에 반영된 사람 수는 약 307만명, 10만원 미만 연체 정보가 평점에 영향을 끼친 경우도 약 749만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번 개선안으로 얼마나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알 수 없다”고 답했다. 그는 “1~10등급까지 해당 항목별로 확인하기도 어렵고 처음 시행하기 때문에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신용평가회사 관계자도 “저신용자이지만 연체 없이 꼬박꼬박 빚을 갚아나는 등 적극적으로 노력을 하는 사람의 경우 신용도가 올라갈 수 있지만 단순히 정보를 축소하고 반영하지 않는다고 해서 저신용자 비율이 얼마나 줄어들지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소비자연맹 조남희 사무총장은 “정부의 서민금융 지원 정책에 부응하기 위한 조치”라며 “실효성 여부를 본인들도 모르는 데 과연 제대로 된 정책이라고 볼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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