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길순 에어비타 대표 - “주부 눈높이에 맞춰 제품 만들어요”

“당신이 사업을 한다고요.” 공기청정기 전문 업체 에어비타의 이길순(47) 대표가 회사를 세운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사회 경험이 전무한 10년 차 전업주부의 창업 선언에 지인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게다가 여성 CEO가 드문 전자업계에 뛰어든다고 하니 더욱 그랬다. 회사를 세운 후에도 한동안 이런 반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직 안 망했어요.”가 거래처 대표들이 곧잘 건네는 안부인사였다.
회사를 세운 지 11년이 흐른 지금 이 대표는 연매출 40억원을 올리는 ‘작지만 강한 기업’을 이끌고 있다. 에어비타 제품을 미국과 독일을 비롯한 26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도 인정 받고 있는 것이다.
주부 겨냥한 제품 개발회사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평범한 엄마였던 이 대표는 우연한 계기에 CEO로 변신했다. 1992년 반지하 단칸방에 사는 이웃집을 방문했다가 천식 환자인 한 아이를 보게 됐다. 곰팡이 때문에 악취가 심했지만 형편이 어려워 공기 청정기가 없었다. 이 대표는 이마에 혈관주사를 꽂고 있는 아이가 마음에 걸렸다.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공기청정기를 선물할 생각으로 가격을 알아보니 비싼 외국 제품은 수백만원짜리도 있었다. 필터를 교환하는 비용만 수십만원이 들었다. 그나마 국산 제품값도 수십만원에 이르렀다. 공기청정기는 서민들에게 필요한 물건이지만 정작 가격이 너무 비싸 서민들이 구입하기 어려웠다. 이 대표는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저렴한 가격대의 실용적인 공기청정기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일본 여행을 갔을 때 방마다 공기청정기가 있는 걸 보고 마음을 더욱 굳혔다. 그게 1994년이었다.
제품 개발은 쉽지 않았다. 시장 조사를 하고, 마음이 맞는 제품 개발자를 찾는 등 창업하기까지 7년이라는 준비기간이 걸렸다. 1999년에 집을 팔아 4억원을 마련해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는 “차곡차곡 모은 재산을 사업에 쏟아 붓자 가족들도 걱정했지만 공기청정기에 미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2001년에 당시 필터형이 주류인 공기청정기 시장에 최초로 음이온식 공기청정기를 내놨다. 콘센트에 꽂기만 하면 공기 1cc당 98만여개의 음이온이 발생해 공기 중의 유해물질을 중화시키는 제품이다. 1990년대만 해도 대부분의 공기청정기는 전자레인지 정도로 크기가 큰 편이었다. 가정주부인 이 대표가 보기에도 실용적이지 않았다. “대부분 아이들 방에 책상과 컴퓨터가 있기 때문에 여유 공간이 부족한데 공기청정기가 크면 곤란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회사 제품의 길이는 약 15cm에 불과하다. 성인 손바닥 크기로 무게가 152g 정도인 초소형 공기청정기다. 가격도 10만원대로 경쟁업체 공기청정기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주부 입장에서 번거로운 청소와 필터 교환 문제도 해결했다. 에어비타 제품은 필터를 교환할 필요가 없다. 한 달에 한 번 공기정
화부를 물로 씻어내면 된다. 주부들이 관리하기 편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이 대표가 고안한 아이디어였다. 그는 “공기청정기를 관리하는 건 대부분 주부의 몫이므로 설거지를 하듯이 물로 씻어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며 “주부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주위에선 공대 출신도 아닌 전업주부가 제조업체를 세우는 게 무모하다고 했지만 주부여서 오히려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도 그는 주부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제품을 개발한다. 차량용 공기청정기를 만들 때도 주부를 대상으로 선호하는 색을 조사해 결정했다. 꼼꼼한 소비자인 주부의 눈높이를 맞추면 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에어비타가 처음부터 시장에서 환영을 받은 건 아니다. 2001년 제품을 내놨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낯선 중소기업의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자는 드물었다. 납품업체에 계약서를 쓰러 갔다가 주부가 만든 제품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계약이 물거품이 된 적도 있었다. 이 대표는 울면서 계단을 걸어 내려 오며 이를 악 물었다. 그는 “자식을 키우는 심정으로 제품을 만들었으니 언젠가는 시장에서 인정할 것이라고 수없이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회상했다.
2012년 매출 100억원 목표시장 공략이 만만치 않자 이 대표는 전략을 바꿨다. 해외 시장을 먼저 뚫고 국내로 들어오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1년에 반은 해외에서 보냈다. 세계 각국의 가전 기기 전시회를 쫓아다니며 에어비타 제품을 알렸다. 세계 무대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미국 UL(Underwriters Laboratories), 유럽안전규격(CE) 인증을 받았다. 2005년엔 제네바 국제발명전시회에서 수상했다.
그랬더니 해외 바이어가 관심을 보였다. 2004년 일본에 500개를 판 걸 시작으로 주문이 계속 늘었다. 2010년 독일에 4만개를 비롯해 세계시장에 6만개 가량을 수출했다. 2003년 제네바 전시회에서 만난 독일 홈쇼핑채널 QVC 관계자와 인연이 닿아 2008년에 독일에서 방송을 탄 게 기폭제가 됐다. 당시 방송 40분만에 1만6000개의 공기청정기를 팔고 추가로 5만대의 주문을 받았다. 그 후 각국에서 제품 문의와 주문이 밀려왔다. 홈쇼핑과 대형마트 등 국내 유통업체들도 러브콜을 보냈다.
이 대표는 디자인에 많은 공을 들였다. 이 회사 제품은 사각형 모양이 일색이던 기존 공기청정기와 달리 곡선 형태다. 우아한 곡선을 살린 디자인으로 올해 지식경제부가 선정하는 굿디자인을 받았다. 이 대표는 “첫눈에 반하는 디자인을 추구하는 게 에어비타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2010년에 30억원대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40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내수와 수출 비중은 각각 40, 60%다.
이 대표는 늦깎이 창업을 준비하는 여성들에게 “언제든지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경영 멘토를 찾으라”고 조언했다. 특히 직장 경험이 없다면 회계·인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멘토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에게 수시로 경영 전반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
또한 제품에 대한 확신이 들 때 창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섣부르게 시작하면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다. 이 대표는 “세계인들이 모두 에어비타 한 대씩을 사용하는 날이 곧 올 것”이라며 “2012년엔 매출 100억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였다.
김혜민 이코노미스트 기자 has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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