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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論濁論] - 세금 피하려 사망일도 바꾸는데…

[淸論濁論] - 세금 피하려 사망일도 바꾸는데…

결혼을 할까 말까, 아이를 낳는다면 몇 명이 적당할까 등의 결정은 경제적 선택행위에 해당한다. 이는 이미 우리가 알고 경험하는 사실이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고 중앙정부에서 다자녀 가구에 소득세를 경감해주는 것도 출산율이 경제적 인센티브에 반응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경제적 이득을 위해 출산일과 사망일을 의도적으로 조정할 수 있을까. 자녀의 사주팔자를 좋게 하기 위해서 임신 시기나 제왕절개수술 날짜를 잡는 경우는 종종 있다. 그러나 자녀의 운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 자신이 세제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도 출산일을 조정하는 것이 가능한가. 출산은 그렇다고 해도 세금을 피하기 위해서 죽는 날을 바꾼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는가.

대단히 비인간적이고 인간의 숙명에 어긋나는 이 질문에 도전한 경제학자들이 있다. 1999년 한 국제학술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매년 12월 마지막 주간의 출산율이 높고 새해 첫 주간의 출산율이 낮은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연말기준으로 되어있는 자녀 소득공제와 재정지원을 앞당겨 받으려는 부모의 경제적 욕심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2003년 또 다른 국제학술지에 실린 논문에서는 상속세와 같은 사망 관련 세금이 오르기 직전에 사망률이 올라가고 세금을 인하한 후에는 감소한 역사적 사례를 분석한다. 세금을 피하거나 덜 내기 위해 사망일을 조정했다는 얘기다.

출산은 물론이고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죽음의 영역까지 세금이 영향을 준다는 이 같은 주장은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자녀의 출생일을 신고하거나 망자의 사망일을 신고할 때 기왕에 자신들에게 유리한 시점으로 바꿔 신고한다고 하면 아주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방법이야 어쨌든 두 논문의 메시지는 간결하지만 분명하다.

높은 세금은 피하고 공짜복지(재정지원)를 누리려는 사람들의 합리적 선택행위가 출생일과 사망일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 고 이태석 신부처럼 자기희생의 삶을 선택한 의인이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사적 이익을 위해 주어진 제도(규제)에 적응하고 대응한다.

최근 한나라당이 부자증세의 일환으로 최고세율 40%가 적용되는 소득구간을 신설하자고 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지금은 최고세율이 35%인데, 앞으로 억대 소득구간에 대해서는 40%로 올리자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감세 공약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이다. 그런 여당이 최고세율 35%를 33%로 낮추겠다는 약속도 파기하더니 급기야 부자증세로 돌변한 모양새다. 우에서 좌로, 말 그대로 우왕좌왕이며 정체성 상실이다.

세율이 높아지면 조세회피 노력은 치열해지고, 자산의 해외이전과 지하경제 규모는 더욱 늘기 마련이다. 경제 전체로 보면 세율 인상은 득보다 실이 많아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도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40%가 소득세를 한푼도 안내는 게 문제인데, 이를 방치하고 최고세율을 인상하자는 것은 과연 정의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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