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인도 델리] 73m 이슬람 탑·1500년 된 쇠기둥·황제 무덤…
- [Travel 인도 델리] 73m 이슬람 탑·1500년 된 쇠기둥·황제 무덤…

델리의 골목 어느 곳에서나 공존의 수순을 밟게 된다. 누군가에 의해 폄훼 당하고, 추켜세워지기를 반복하는 곳도 이곳 델리다. 환영에 매료돼 한 달을 머물거나, 혹은 이질적이고 번잡한 모습에 잠시 머뭇거리게 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델리는 분명 예측불허의 땅이 맞고, 상상 외의 순간들마저도 서로 어우러져 살가운 호흡을 나눈다.
델리의 주민과 여행자들이 함께 만나는 대표적인 공간은 빠하르간지다. 뉴델리역 인근에 위치한 이곳은 어떻게 보면 배낭족의 아지트와도 같다. 골목 가득 게스트하우스와 환전소들이 몰려 있고 덩치 큰 배낭을 멘 여행자들이 하루 종일 서성거린다. 인도 북부나 남부로 향하는 버스도 이곳 빠하르간지 초입에서 출발한다. 1박2일 넘게 달릴 버스를 기다리는 청춘들은 퇴색한 복장에 얼굴만은 달뜬 표정이다. 국적도 민족도 피부색깔도 제각각인 이들은 분위기만큼은 닮아 있다.
빠하르간지의 4층 노천 식당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더욱 낯설다. 식당 안은 대낮인데도 히피 복장의 젊은이들이 반쯤은 벽에 몸에 기댄 채 차를 홀짝거리거나 맥주를 마시고 있다. 그 아래 골목은 시장풍경이다. 온갖 좌판대가 늘어서 있고 사이클릭샤를 타고 번잡하게 사람들이 오간다.
종교를 넘어선 세계문화유산들뉴델리 지역은 사이클릭샤의 출입이 통제되기 때문에 느리게 흘러가는 사이클릭샤를 흔하게 볼 수 있는 곳은 이곳 빠하르간지 일대다. 최근 공항에서 뉴델리역까지 고속 공항철도가 개통된 것을 감안하면 이런 오래된 풍경은 희귀하면서도 반갑다. 빠르게 변화되는 문명과 옛것이 아직까지는 이질감 없이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빠하르간지를 벗어나 뉴델리 지역에서 만나는 차량은 유독 차체가 높다. 영국차를 본 딴 덩치 큰 앰배서더 택시가 다운타운을 오가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키 큰’ 차량이 인기 높은 것은 그들의 고유한 문화와도 연계가 깊다. 잘 살펴보면 인도인이 서구사람처럼 키가 큰 것은 아니다. 인도는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땅이고, 힌두교도나 시크교도, 이슬람교도 등은 기념일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머리에 두건을 쓰고 다니는 경우가 잦다. 옛 골목이 남아 있는 올드델리의 찬드니 촉 거리 등에서는 이런 두건 쓴 주민과 쉽게 조우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의 종교를 상징하는 두건이 차량 때문에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차체가 높은 차량을 선호한다. 초기에 외국 자동차 기업들은 이런 기호를 몰라 수출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요즘도 거리의 차를 살펴보면 같은 경차라 할지라도 차체가 높은 차량이 애용된다.

혼재된 종교 안에서 통일성은 차량에만 그치지 않는다. 델리 전역에 널려 있는 세계문화유산 유적에서도 아슬아슬한 공존의 의미를 체감하게 된다. 델리를 대표하는 유물은 꾸뜹 미나르다. 1193년 델리의 마지막 힌두 왕국을 무너뜨린 직후 이슬람 군주에 의해 세워진 탑은 높이가 73m에 달하고 위로 갈수록 점점 가늘어지는 아프가니스탄 건축 양식을 띠고 있다. 미나르 옆에는 인도 최초의 이슬람 사원인 쿠와트 알 이슬람 모스크도 들어서 있다. 힌두교 사원을 부순 위에 이슬람 모스크가 들어선 형국인데 사원 가운데 오파츠라는 쇠기둥은 1500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녹이 슬지 않은 신화적인 사연을 지니고 있다.
또 다른 뉴델리의 세계문화유산인 후마윤의 무덤에서도 세월과 건축양식이 뒤섞인 모습을 엿보게 된다.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등 유럽 건축의 혼존에만 익숙한 세인들에게는 인도의 다양한 건축조화는 신선하다. 무굴제국의 2대 황제인 후마윤의 무덤은 그의 사후 페르시아 출신 부인에 의해 건설됐으며 건축물은 페르시아 기법과 무굴 양식이 뒤섞여 있다. 정원과 수로, 건축물이 정방형으로 지어진 모습은 타즈마할을 닮았다. 무굴제국의 건축양식이 델리의 후마윤의 무덤에서 시작돼 아그라의 타즈마할에서 완성됐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의미 깊은 곳이다.
델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다양한 건축물에 대한 공존이 이해가 간다. 영국이 만든 계획 도시인 뉴델리 이전부터 델리는 수 천년 역사를 간직한 땅이다. 델리 자리에 있었던 도시만 7개인데 그 중 5개가 외부민족에 의해 세워졌다.
델리 지역은 외세가 인도평원으로 들어서는 관문에 위치했고 끊임없이 외침에 시달려야 했다. 잦은 흥망의 역사 때문에 ‘델리를 점령하는 자, 곧바로 델리를 잃는다’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뉴델리를 건설해 델리를 마지막으로 통치했던 영국은 겨우 16년만 이곳에서 주인행세를 했을 뿐이다.
올드 델리의 지난한 세월을 담다옛 영국의 흔적은 라즈쁘라빠띠 바반으로 불리는 대통령궁이나 국회의사당 등에서 선명하게 엿보인다. ‘왕의 길’로 통하는 라즈파트 일대는 영국 건축가에 의해 디자인됐고, 가로등 위에 범선 등이 올려져 있는 모습이나 앰배세더 관용차들이 늘어선 풍경은 여지없이 서양의 한 곳인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인디아 게이트를 지나는 이 대로를 따라서 인도 공화국의 창건일 등에는 각종 퍼레이드가 펼쳐지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퍼레이드의 종착점이 올드 델리의 레드포트라는 점이다. 레드포트는 올드 델리가 수도였던 시절 무굴제국의 왕궁으로 사용됐던 건물로 외곽은 붉은 벽돌로 철벽같이 둘러싸여 있다. 성의 입구이자 구권력의 상징인 라호르 게이트까지 퍼레이드가 펼쳐지는데 게이트를 지난 골목은 찻타촉이라는 장신구 상가가 들어선 일상의 풍경이다.
레드포트 앞 거리는 찬드니 촉으로 불리는 올드 델리 최고의 번화가다. 번화가라고 하지만 은시장, 향신료 시장이 어수선하게 들어서 있는 옛 장터의 정경을 보여준다. 가득한 인파 사이로 소떼도 다니고 오토릭샤도 달리는 모두 생경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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