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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사업 영토 넓히는 기업들 - 오너 가족과 핵심 측근, 총수 특명 받아 진두지휘

신 사업 영토 넓히는 기업들 - 오너 가족과 핵심 측근, 총수 특명 받아 진두지휘


2011년 여러 기업이 M&A 등을 통해 신 사업에 진출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되는 경기 침체와 유럽 재정 위기가 신 사업 진출의 모멘텀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룹의 신 성장동력에는 오너 가족과 핵심 측근이 전진 배치된 게 특징이다.
삼성그룹의 미래 5대 신수종 사업 가운데 헬스케어 분야를 지휘하게 된 윤순봉 삼성서울병원 사장.

지난 10월 27일 삼성서울병원 사내 인트라넷에는 ‘윤순봉 탐구생활’이라는 교육프로그램이 개설됐다. 윤순봉 삼성서울병원 사장이 직원들과 개혁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비전을 공유하기 마련한 이 프로그램은 △신입사원 윤순봉, 나는 누구인가 △성을 쌓는 자 vs 길을 만드는 자 △변화에 대한 오해와 진실 △헬스케어 3.0 건강 수명 시대의 도래 등 총 7편으로 제작됐다.

윤 사장은 첫 프로그램이 방영된 이후 직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우리의 가장 큰 문제점은 혁신을 하는 것이 아니고 혁신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라며 강도 높은 경영혁신을 예고했다. 삼성그룹 5대 신수종 사업의 하나인 헬스케어 분야에 대한 의지와 책임감을 나타낸 것이다.



전진 배치 된 삼성 윤순봉, 한화 김동관삼성그룹이 의료와 헬스 사업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11년 4월 바이오의약품 생산을 위한 합작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설립한 데 이어 11월 중순 미국의 심장질환검사기기업체인 넥서스(Nexus)를 인수했다. 2010년 국내 엑스레이기기 업체인 레이, 초음파의료기기 업체 메디슨을 인수한 데 이어 M&A를 통해 해외 바이오·의료장비 업체를 확보한 것이다.

삼성이 이처럼 의료기기 업체 인수에 나선 것은 그룹 차원에서 의료기기를 태양전지·자동차용 전지·발광다이오드(LED)·바이오 제약과 함께 미래 5대 신수종 사업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삼성은 헬스케어 분야에 10년간 1조2000억원을 투입해 연 매출 10조원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삼성의 헬스케어 사업 키는 그룹에서 ‘혁신 전도사’로 불리는 윤순봉 사장이 잡았다. 윤 사장은 삼성그룹 비서실 재무팀,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조정실장, 그룹 전략기획실 홍보팀장 등을 거쳐 삼성석유화학 대표를 지냈다. 삼성경제연구소 근무 당시 이건희 회장의 ‘신 경영’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황이 어려운 계열사로 투입될 때마다 ‘턴어라운드’를 만들어낸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공식 직함은 삼성서울병원 지원총괄사장 겸 의료사업 일류화 추진단장. 이름이 꽤 긴 데서 그의 관할권이 넓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병원 경영뿐만 아니라 바이오·헬스케어 사업에서 병원과 계열사 간 협력을 지원하는 역할도 맡는다. 이에 따라 앞으로 삼성의료원과 삼성전자 헬스 부문,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의료·헬스 사업의 협업 체제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이 삼성물산, 삼성SDS, 삼성전자, 삼성서울병원을 중심으로 베트남, 터키, 아랍에미리트 등 아시아와 중동 지역에 병원 패키지 수출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윤 사장의 계열사 조율 기능에 무게가 실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그룹회장실 차장에게 ‘태양광 특명’을 내렸다. 김 차장은 지난 12월 15일 한화솔라원 이사회에서 기획실장으로 임명됐다. 미국 세인트 폴 고등학교와 하버드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김 차장은 2010년 1월 회장실 소속 경영기획실로 입사했지만 뚜렷하게 맡은 업무는 없었다. 이번 보직 발령으로 사업 전략을 짜고 직접 집행하는 등 최전방에 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앞길이 순탄치는 않다. 재정 위기를 맞은 유럽의 태양광 수요 감소와 중국산 부품의 공급 과잉으로 태양광 중간재·완제품 가격이 반 토막 난 상태다. 이 때문에 LG화학을 비롯한 태양광 업체들은 생산설비 증설 등 향후 투자 계획을 취소하거나 잠정 보류해놓고 있다. 한화솔라원 역시 2011년 2분기 연속 대규모 손실을 기록하는 등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김 차장의 전면 배치를 한화그룹이 태양광산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한다. 한화는 폴리실리콘(한화케미칼)-웨이퍼·셀·모듈(한화솔라원)-태양광 발전(한화솔라에너지)의 수직계열화를 2013년까지 완성할 계획이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한화그룹의 핵심은 제조와 보험인데 둘 다 성장 한계가 뚜렷한 내수 사업”이라며 “김 회장이 태양광 사업에 강한 애착을 보이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김 차장은 오너십을 활용해 각 계열사로 흩어져 있던 태양광 사업을 총괄해 난관 돌파를 꾀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인사를 놓고 ‘김승연 식 자녀 경영수업’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김종희 선대회장이 일찍 타계한 까닭에 29세에 그룹 총수에 오른 김 회장의 의중이 담겼다는 분석이다. ‘이론’이 아닌 ‘현장’에서 경영수업을 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한진·현대차 오너 일가 신 사업 눈길그룹의 신 성장동력 발굴과 함께 오너 일가에 대한 배려 차원의 신 사업 진출도 눈길을 끈다. 한진그룹의 마리나 사업 진출과 현대차그룹의 생명보험업 진출이 그것이다. 사업의 성공 여부와 함께 향후 형제·남매간 그룹 분할에 있어 신 사업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한항공이 인천시와 함께 진행하는 인천 왕산마리나 사업은 조현아 대한항공 전무가 맡게 됐다. 대한항공은 지난 11월 3일 “왕산마리나 조성 사업을 위해 60억원을 들여 왕산레저개발을 설립하고 조현아 대한항공 전무가 대표를 맡는다”고 밝혔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맏딸인 조 전무는 현재 대한항공 객실승무본부장과 기내식사업본부장을 겸하고 있다. 호텔사업 계열사인 칼호텔네트워크의 대표도 맡고 있다. 이번 왕산레저개발 대표에 오르면서 해양·레포츠 사업까지 아우르게 된 셈이다.

왕산마리나 사업은 인천경제자유구역 영종지구의 왕산해수욕장 인근 공유수면 9만8604㎡를 매립해 요트 300척 규모의 계류시설과 해상방파제, 클럽하우스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요트 경기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며, 대한항공이 전체 사업비 1500억원 중 1333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인천 연고 기업이 많지 않아 대한항공이 인천 아시안게임 지원에 나서게 됐다”며 “이후 경인 아라뱃길과 연결이 가능하고 정부 또한 마리나 사업 육성 의지가 높아 활용 가치가 클 것”이라고 밝혔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 조 전무의 마리나 사업 담당을 두고 “신 사업 진출 등 사업 다각화를 통해 향후 그룹 분할의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호텔, 관광 서비스 부문 사업을 넓혀 장녀 조현아 전무에게 주고 주 사업인 물류를 장남 조원태 전무에게 물려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관계자는 “조 전무가 호텔·레저·관광 등 연관성 있는 사업 분야를 이끌어 왔기 때문에 마리나 사업의 대표이사로 선임됐을 뿐”이라며 “후계구도나 그룹 분할 이야기는 너무 앞서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이 녹십자생명보험을 인수한 것을 두고도 “그룹 분할을 염두에 둔 신 사업 진출”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0월 21일 녹십자홀딩스가 보유하고 있는 녹십자생명 지분 89.4%를 2283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모비스·기아차·현대커머셜이 각각 37.4%, 28.1%, 28.1%씩 지분을 인수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녹십자생명 인수는 보험 업계 선두가 되겠다는 것보다는 그룹 내 금융 포트폴리오 완성 측면이 강하다”며 “이번 인수로 현대카드·현대캐피탈·현대커머셜·HMC투자증권에 이어 보험사까지 거느리게 돼 은행을 제외한 금융 전 부문을 아우르게 됐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딸을 위한 재산분배’ ‘사위 챙기기’가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녹십자생명의 지배주주가 될 현대커머셜을 정몽구 회장의 둘째 딸인 정명이 고문과 남편인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이 실제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태영 사장은 2001년 업계 7위인 다이너스카드를 인수해 이름을 현대카드로 바꿔 업계 2위권으로 올려놓았다. 정 사장은 현재 현대카드뿐 아니라 캐피탈·커머셜 대표도 맡고 있는 등 HMC투자증권을 제외한 현대차그룹 금융 부문을 책임지고 있다. 또 녹십자생명은 자동차 산업과는 시너지를 내기 어렵지만 현대카드·캐피탈·커미셜 등 금융회사들과는 연계 비즈니스가 가능해 이러한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SK와 현대그룹은 주춤신 사업 진출은 물론이고 경영 공백이 우려되는 대기업도 있다. 하이닉스를 인수해 반도체 사업에 진출했지만 총수가 검찰 수사를 받느라 이렇다 할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는 SK그룹과 제4이동통신 사업 진출 과정에서 혼선을 빚다 결국 포기한 현대그룹이 그 경우다.

최근 SK그룹은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로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당장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사업과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SK그룹은 2011년 M&A 시장의 대어로 꼽히는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하면서 정유와 통신 위주의 내수 기업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SK그룹의 주 성장동력이던 통신사업 성장이 정체되기 시작하고 최태원 회장이 공을 들였던 중국 사업도 주춤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2012년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투자를 검토했던 SK그룹의 사업 계획은 보류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2~3년간 하이닉스의 수익성 유지와 신규 투자가 하이닉스 인수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관건이 될 것”이라며 “그러나 최종 결정권자인 그룹 총수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라고 분석했다.

재계에서는 수사가 일단락되면 어떤 식으로든 SK그룹의 사촌간 계열 분리가 가속화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촌인 최신원 회장은 SKC 계열사를, 최창원 부회장은 SK케미칼·SK건설·SK가스 3사를 실질적으로 관장하고 있다.

제4 이동통신 사업 참여를 놓고 우왕좌왕 했던 현대그룹도 당분간 신 사업 추진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컨테이너선과 벌크선 등 해운업이 주력인 현대그룹은 차세대 사업으로 이동통신을 검토하고 제4 이동통신(IST 컨소시엄)에 참여하려 했다. 방송통신위원회도 제4 이통 사업의 불확실성이 크다고 판단해 현대그룹과 같은 대기업을 끌어들여 사업 안정성을 높이려 했다.

하지만 현대그룹은 그룹 내 통신전문가가 거의 없기 때문에 다른 컨소시엄 업체들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신 사업을 추진한다면서 2대 주주로 참여하려 한 것도 그룹 내 교통정리가 안 된 상태라는 걸 보여주었다. 이 같은 내부 사정은 사업 참여-불참-재 참여-다시 불참이라는 행보로 나타났고, 결국 현정은 회장은 불참을 지시했다. 현대그룹은 신뢰도에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었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대기업 322개, 중소기업 689개 등 전국 1011개 기업을 대상으로 ‘2012년 설비투자계획’을 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의 내년 설비투자 증가율은 평균 4.1% 늘어날 것으로 조사됐다. 2010년 같은 조사(6.1%)보다 2% 포인트 감소한 수치. 그러나 ‘2012년 투자를 2011년보다 늘리겠다’고 응답한 기업은 전체의 61.4%였다. ‘시설 개선 필요’와 함께 ‘미래 대비 선행투자’ ‘신규 사업 진출’을 투자 확대 이유로 꼽았다. 어려울수록 기업의 인프라를 활용한 공격 경영에 나서겠다는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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