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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김준태의 ‘세종과 정조의 가상대화’② 비판과 포용

[Management] 김준태의 ‘세종과 정조의 가상대화’② 비판과 포용



정조 삼가 여쭙습니다. 얼마 전에 “면전에서 뼈아픈 말로 저의 잘못을 비판해도 기쁜 마음으로 수용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려서 그 말이 아무리 옳은 것이라도, 순간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마음이 든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저를 반성하며 적극 수용했고, 그 말을 한 사람을 미워한 적도 결코 없었습니다.”(홍재전서 권161) 그런데 대의(大義)나 바른 논리로써 정당한 비판을 하는 게 아니라, 저열한 말로 공격해 오는 자들에 대해서는 화를 참기가 힘듭니다. 전하께서는 전하를 비판하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십니까. 특히 허무맹랑한 공격을 해대는 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하시는지요.



비판의 내용이 옳으면 수용하라

세종 ‘일전에 조원이라는 백성이 나를 ‘나쁜 임금’이라고 비난했다고 해서 난언죄(亂言罪: 허위사실 유포, 임금 모독죄)로 감옥에 갇힌 적이 있었다. 신하들은 조원이 임금의 존엄을 해쳤으므로 엄벌로 다스려야 한다고 했으나, 나는 풀어주도록 명했다.

백성이 무슨 악한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민원을 제대로 처리해 주지 않는 고을 수령 때문에 순간 억울한 마음이 들어 내뱉은 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세종6.4.4) ‘무릇 지나친 표현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그 비판의 내용이 옳은 것이라면 그것은 나의 잘못이니 벌을 주어서는 안 된다. 또한 허무맹랑하기 그지없는 말로 나를 공격하거나 비판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그 말을 꺼낸 사람이 어리석기 때문이지, 어찌 그것을 이유로 죄를 줄 수 있단 말이냐.’(세종6.4.4/15.7.18)


정조 참으로 그렇습니다. 설령 누군가가 저에게 “극도로 맹랑하고 전혀 이치에도 맞지 않는 말을 했을지라도 화낼 만한 잘못은 그 사람이 저질렀으니 제가 굳이 화를 낼 필요는 없는 것이군요.”(정조16.4.29) 가르침을 깊이 새기겠나이다. 또 하나 여쭐 것이 있습니다. ‘요즘 저의 조정(朝廷)은 침묵을 지키는 게 유행처럼 되었고, 정책의 방향이나 임금의 잘못에 대해 간언하는 말들은 더더욱 없사옵니다. 대소 신료들은 각기 자신의 사사로움만 추구하고 구차하게 자기 몸만 편안히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 백성들의 평안과 국가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어 보이니 가슴이 답답하옵니다.’(홍재전서 권174)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세종 나의 시대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무릇 임금이 적극 나서서 격려하고 자극을 주지 않으면, 신하들은 현실에 안주해 무사안일을 도모하기가 쉽다. 그래서 나는 늘 신하들에게 권장하기를 “그대들은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숨김없이 다 말할 것이며, 강직하고 과감한 말로 나에게 간언하고, 다수의 의견이라 해서 무조건 따르지 말며, 필요하다면 반대의 입장에 서서 적극적으로 논쟁하라 하였다.”(세종7.12.8) 또한 신하들에게 거듭 강조하기를 “윗사람이 옳다고 말할지라도 명백히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알면, 마음에만 담아두지 말고 반드시 그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다.”(세종31.3.29) “하물며 나는 어질지 못하고 일 처리에 어두우니, 내 행위 중 분명 하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대들은 힘써 나의 허물을 찾아내어 나로 하여금 하늘의 꾸짖음에 반성하고, 올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 도우라 하였다.”(세종7.12.8)



정조 저도 여러 차례 그런 취지의 교서를 내렸지만, 신하들이 잘 따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세종 말로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너도 말했지만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정(國政)을 비방한 것을 가지고 죄를 묻지 마라.”(세종10.4.21) 군왕은 국정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간혹 신하들이 먼저 나서서 임금을 비난하거나 국정을 비판한 사람들에 대해 죄를 주라고 청하는 경우가 있다. 비난이 귀에 거슬렸더라도, 처벌하라는 말에 솔깃해 하지 마라.” 이는 임금으로 하여금 아래의 사정을 듣지 못하게 하여 무지몽매함에 빠지게 하는 일이니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세종15.7.26) ‘전에 하위지라는 응시자가 과거시험에서 나의 과오를 강하게 비판한 답안지를 작성해 제출했는데, 당시 시험책임관이었던 영의정 황희가 그를 높은 순위로 뽑은 적이 있었다. 이를 두고 사간원에서는 하위지뿐만 아니라 황희 또한 처벌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려왔다.’(세종20.4.14) 너도 알겠지만 “과거를 시행하여 대책(對策:국가정책, 국정방향에 의견을 묻는 논술시험)을 요구하는 것은 장차 바른말을 숨기지 않는 선비를 구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설령 내가 노여워하여 하위지에게 죄를 주려고 해도, 신하들이 적극 나서서 그를 보호해야 하거늘, 도리어 하위지를 탄핵하여 앞으로 내게 직언할 자들의 길을 막고, 나아가 과거를 관장한 대신까지 공격하여 국가에서 선비를 선발하는 공명한 의의까지 모욕했다. 참 통탄할 일이 아니더냐.”(세종20.4.14) 이는 결국 내가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비판이든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고자 최선을 다했으나, 어떤 모자란 점이 보였기에 신하들이 나의 눈치를 살펴 이런 행태를 보였는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명심하라. 임금이 자신에게 간언하는 말에 조금이라도 불편한 심기를 보이면, 신하들의 대다수는 군왕에게 거스르는 말을 절대 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충언을 들을 기회는 영영 없을 것이다.



틀린 비판이더라도 죄를 묻지 말라

정조 고약해라는 자가 전하의 면전에서 참람한 행동을 보인 것을 용서하신 것도 그래서입니까.



세종 그렇다. ‘당시 형조참판이었던 고약해는 수령육기제(守令六期制: 지방수령의 임기제도)에 관한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전하께 실망입니다”라면서 내 앞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등 참으로 무례한 언동을 보인 적이 있었다. 내심 이 자를 처벌하고 싶었으나, 임금에게 무례했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는 없었다. 이후 내 앞에서 간언하는 사람들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세종22.3.18) 당부한다. ‘임금은 아량으로 포용함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어서, 그 어떤 비판이라도, 설령 그것이 무지렁이 농부의 말일지라도 반드시 들어보아서 말한 바가 옳으면 채택하여 받아들이고, 비록 맞지 아니하더라도 죄를 주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이는 임금이 범할 수 있는 오류를 막고 자칫 놓치기 쉬운 백성들의 사정을 확인하며, 나아가 임금 자신의 지혜를 넓히기 위함이니 절대 잊지 마라.’(세종15.7.26)



정조 명심하겠나이다. ‘저 자신의 주관과 편견을 버리고, 언로를 활짝 열어 백성들의 말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나이다. 다른 이들의 결점이나 오점도 산이나 바다처럼 덮어주고 수용하여, 누구나 마음속에 쌓아둔 생각들을 남김없이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하겠나이다.’(정조16.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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