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DEN CHAMPION CAR PARTS] 현대와 GM 포드는 알아도 ‘우리산업’은 모른다고요?
[HIDDEN CHAMPION CAR PARTS] 현대와 GM 포드는 알아도 ‘우리산업’은 모른다고요?
자동차의 냉난방은 얼마 전까지도 수동으로 조작했다. 더우면 에어컨 바람의 세기를 높였고, 추우면 히터를 켰다. 그러나 요즘엔 온도만 지정하면 에어컨과 히터가 저절로 조절된다. 이렇게 전자동온도조절(FATC, Full Automatic Temperature Control)을 가능하게 해준 핵심 부품의 하나가 소형모터와 기어 등으로 구성된 액추에이터다. 설정 온도와 실내 온도의 차이에 따라 차 안에 들어오는 냉·온풍 통로의 문을 여닫는 기능을 수행한다. 차 한대에 최소한 3대가 설치돼 냉·온풍과 내외 공기 유입을 조절해 준다. 조수석과 운전석, 뒷좌석 등으로 세분돼 온도를 조절할 땐 9대까지 장착된다. 우리산업주식회사(회장 김명준)의 주력 생산품이 이 액추에이터다.
액추에이터는 얼마나 작고 조용하며, 정확하게 작동하느냐가 관건이다. 우리산업이 만도기계의 모터사업부를 통해 한라공조에 액추에이터를 처음 납품하기 시작했던 1990년에는 크기가 20cm에 가동의 이상 유무만 따지던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7cm미만으로 손바닥만하며 가동의 정확성과 정숙성에 내구성까지 따진다. 특히 정숙성은 10cm 떨어진 곳에서도 38데시벨(40데시벨은 도서관 열람실 수준) 이하다. 모터 회전 때 발생하는 소음을 줄이고, 모터 회전에 따른 진동을 차단하며 최적의 비례와 구성을 갖춘 스마트한 설계구조 등에서 특허를 취득한 기술력의 개가다. 겉보기에 비슷한 중국제품은 설계 구성력과 기능에서 우리산업 제품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런 노력의 결과 에쿠스를 비롯한 모든 현대 기아차에는 우리산업의 액추에이터가 장착된다. 또 연간 2000만개 가량 생산하는 액추에이터의 절반은 미국의 델파이 등 세계 최대의 자동차 부품 회사에 납품한다. 그 결과 GM의 콜베트와 모든 SUV 차량, FORD의 링컨MK시리즈와 모든 픽업 차량, 크라이슬러의 그랜드 체로키와 대형 세단 시리즈에도 우리산업의 액추에이터가 탑재된다. 우리산업의 액추에이터가 세계시장 점유율 2위(28%)를 달리는 이유다. 1위(32%)인 미국의 부품기업 SAIA와 큰 차이가 없다. 100만개에서 7개에 지나지 않는 낮은 불량품 비율과 애프터서비스, 그리고 가격 경쟁력이 일궈낸 업적이다. 우리산업이 2010년과 2011년 국가품질경영대회에서 연달아 수상한 대통령상과 금탑산업훈장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그런 우리산업의 시작은 대단히 미약했다. 1989년 만도기계에 연료량 감지 센서 납품을 계기로 김회장이 직원 5명을 이끌고 창업했다. 그러나 창업한지 20여 년 만에 주력상품은 액추에이터(40%), 히터 콘트롤(30%), 클러치코일(20%) 등으로 바뀌어 갔으며 연간 매출액은 2400억 원에 이른다. 미국, 슬로바키아, 태국, 인도, 중국의 해외법인과 별개로 국내고용 인원만 500여명에 달하고 공장인력은 390명이다. 연료량 감지 센서는 한해 58억여 원어치를 납품하던 2002년을 정점으로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던 비중(13.62%)이 줄기 시작해 2006년 주력제품에서 아예 제외됐다.
우리산업은 김회장이 하나에서 열까지 손수 만들어낸 작품이다. 김회장은 1968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만도기계에서 자동차 부품과 인연을 맺고 한라해운 대표와 한라그룹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우리산업을 창업했다. 그러나 그는 연세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책상물림이다. 그런 사람이 50이 다된 나이에 자동차 부품 회사를 시작하며 “현장에서 직원들과 밤을 새우길 다반사였고 기술을 배우다 손가락을 거의 잘릴 뻔 하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차라리 취직을 하지 무엇하러 그런 고생을 하느냐는 핀잔을 부인에게 들었다며 김회장은 웃었다.
그러나 김회장은 창업초기 세계 유명 부품회사들의 자동차 에어컨 제어기 부품을 수집해 직접 뜯어 보고 연구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직력과 마케팅 능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김회장은 “중소기업에겐 품질과 기술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창업 이후 지금까지도 매일 품질회의를 직접 주관하는 이유다. 그가 이처럼 기술과 품질에 몰두한 배경엔 재계의 부도옹(不倒翁) 고 운곡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이 있다. 김회장은 “좋은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끊임없는 집념과 열정을 그분께 배웠습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겠죠”라고 말했다. 그는 정 명예회장이 말한 “꿈꾸고 믿고 실천하라(dream it, believe it, and just do it)”를 지금도 가장 중요한 가르침으로 여긴다. 우리산업이라는 이름도 정 명예회장이 직접 작명했다고 한다.
우리산업은 특히 기술개발 못지 않게 생산하는 부품의 안정성과 품질관리에도 각별하게 주목해 왔다. 내광성 시험기 등 105대의 시험장비와, 3차원측정기 등 599대의 측정 장비를 활용해 부품의 기능을 측정하고 이렇게 축적한 데이터의 신뢰성을 확보해 줄 전산시스템을 구축한 이유다.
우리산업은 한라공조를 통해 현대자동차와의 특수관계에서 오는 이점을 누린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 특혜를 누리기만 했다고 말한다면 억울하다. 우리산업은 김회장을 비롯해 임직원이 한마음으로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려고 발버둥쳐 왔다. 비용·재고·불량 등 낭비요소 30%이상 줄이기, 3년 내 고객·공정·부품·비용 등 품질 지수를 70%를 개선하자는 운동과 임원, 팀장, 중간관리자, 현장 담당자 모두가 모여 제품의 품질을 높이려는 노력 등을 벌여왔다. 처음엔 생산성 제고와 품질혁신을 하겠다며 다른 기업들을 보고 따라 배우기도 했다. 그러나 김회장은 “기업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생리조건이 제각각입니다. 우리산업에 맞는 독자적인 시스템을 찾아가는 게 중요했습니다”고 말했다. 완곡한 표현이지만 언젠가부터 동종의 다른 기업에게선 더 이상 배울 게 없을 정도로 국제 경쟁력이 생겼다는 말이다.
그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2001년 김회장은 우리산업이 만든 액추에이터를 들고 미국 델파이사를 찾아갔다. 델파이사는 GM에 자동차 부품을 납품했다. “우리 제품의 품질은 미국 제품에 밀리지 않았고 가격은 20~30%가 쌌습니다.” 사실은 제값을 받기 힘들었던 측면도 있다. “당시 한국 제품을 싸구려 취급했던 분위기가 없지 않았기 때문이죠.” 처음 거래를 시작할 땐 불량품이 발생해 10만 세트를 전량 폐기하는 일도 있었다. 극히 일부 불량품이 발생했지만 손해를 감수하면서 전량 다시 만들어 공수했다고 한다. 그런 우리산업의 열정과 품질을 향상시키겠다는 자세에 반한 델파이사는 첫해 액추에이터 200만개를 구입했다. 지금은 연간 1000만개를 사들인다. 2010년엔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로는 유일하게 발레오 유럽, 덴소 유럽에 직수출 계약을 따내기도 했다. 지금은 수출 초기와 달리 제값을 충분히 받는다. 김회장은 “과거엔 코리안 디스카운트로 수출했지만 이젠 품질과 기술을 인정받아 코리안 프리미엄을 당당히 받아냅니다. 에스컬레이팅 전략이었죠”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우리산업의 수출은 해외법인을 포함해 전체 매출의 51%인 1217억 원이다. 우리산업은 앞으로 아프리카와 브라질까지 해외시장을 넓히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산업은 승승장구만 했던 건 아니다. 1998년과 2008년 두 차례의 금융위기로 심각한 어려움을 맞았다. 특히 2008년 당시 대부분의 중소 수출기업과 마찬가지로 달러 헤지 통화파생상품(KIKO) 때문에 큰 고초를 겪어야 했다. 김만철 상무는 “우리산업은 인력구조 조정을 피하고 채용억제, 직원들의 연차소진, 잔업 축소, 휴업 등을 통해 위기를 넘겼다. 관리자를 비롯한 직원 일부는 상여금을 반납하는 등 위기 극복에 합심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수출 중소기업으로는 대단히 빠르게 2009년 2분기 흑자 전환을 이룩하였고 KIKO는 올해 초 완전히 졸업했다.
김회장은 특히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연구 개발인력을 줄이라는 압박을 이겨내고 박사 2명을 포함 연구전담 인력 70명이 활동하는 용인, 천안 등 3곳의 연구센터를 지켜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제가 가장 잘한 일입니다. 미래 우리산업이 걸어갈 새로운 힘과 비전을 만들어 내는 곳이 연구소니까요.” 연구소에선 외국 제품과의 비교 연구로 기존 제품의 품질향상은 물론 우리산업의 차세대 주력 상품을 개발하는 임무도 주어졌다. 이 연구소에서 기술 특허가 쏟아졌고 신제품이 개발됐다.
특히 우리산업은 2008년 충남에 선행연구 전문개발팀을 만들어 독립적으로 신기술 연구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기존 화석연료를 이용한 주력 아이템을 넘어서 향후 미래시장인 친환경 분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김회장의 판단 때문이었다. 그는 중소기업으로선 쉽지 않은 일이지만 기업의 경쟁력은 바로 기술력에서 나온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들어진 제품이 전기자동차 등에 장착되는 고전압 전기히터, 전류센서 등이다. 전류센서는 친환경 자동차의 경우 여러 중요 시스템에 흘러 다니는 고전압의 정상 여부를 검출하는 센서다.
정상원 이사(연구)는 국내에서 자동차용 전류센서를 제작하는 업체는 우리산업이 유일하며 해외에서도 스위스와 일본에 각각 1개 회사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전류센서는 HD아반테 하이브리드 차량에 장착돼 시판되며 기타 여러 친환경 개발차량에 부착돼 평가를 받는 중이다. 고전압 전기히터는 시범 생산돼 현대자동차 블루온에서 사용되며, 해외의 경우 미국 테슬러모터스에 올해 4~6월, 크라이슬러 전기자동차엔 12월에 양산 납품한다는 목표로 개발을 진행중이다. 고전압 전기 히터는 개당 가격이 20만원에서 50만원에 이르는 고가이기 때문에 우리산업의 미래 주력분야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정이사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정이사는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경우 친환경차 핵심부품 개발의 가이드라인이 부족해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며 “우리 산업은 선행연구 전문개발팀이 부품의 국산화, 모듈화, 소형 경량화, 환경친화적 소재개발, 차세대연료 대응기술 등 미래형 공조시스템 개발에 힘써 왔다”고 자부심을 숨기지 못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 차기 우리은행장 후보에 정진완 부행장
2"어린이용 버블 클렌저에 분사제로 LPG 사용?"…화재·폭발 주의
3엔지니어 중심의 인사 삼성벤처투자에도 이어져
4누구나홀딱반한닭, 2024 한국브랜드 소비자 평가 대상 수상 "쌈닭으로 메뉴 차별화"
5‘환승 저축’ 우리은행, 청약 예·부금→주택청약종합저축 전환시 5만원
6중기부, 소상공인 경영지원 플랫폼 '소상공인 365' 시범 운영
7사전 교감 없었던 ‘비자 면제’...中의 숨겨진 ‘세 가지’ 의도
8멕시코 대통령 "美와 관세 전쟁 없다"…中 전기차 투자도 미정
9 경제 삼중고...10월 생산 0.3%↓·소비 0.4%↓…투자까지 감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