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nology] ‘DNA 재단사’ 유전자 가위 - 잘못된 유전자 자르고 붙여 난치병 치료
[Technology] ‘DNA 재단사’ 유전자 가위 - 잘못된 유전자 자르고 붙여 난치병 치료
지난해 12월 29일, ‘네이처 메소드(Nature Methods)’는 서울대 화학부 김진수 교수팀이 개발한 ‘유전자 가위’를 ‘올해의 기술(Method of the Year 2011)’로 선정했다. 네이처 메소드는 생명과학과 화학 분야 최고 권위의 학술지다.
‘네이처’의 자매지인 이 학술지는 매년 전 세계에서 개발한 실험기술 가운데 가장 혁신적인 한 가지를 뽑아 소개하는데, 국내 연구자가 주도적으로 개발하고 보급한 연구기술이 ‘올해의 기술’로 선정된 것은 처음이다.
올해의 기술에 선정되었다는 건 이 분야에서 10년 안에 노벨상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게 김진수 교수의 설명이다. ‘유전자 가위’는 어떤 기술이기에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일까.
인체의 차이는 유전자 차이인간의 체형이나 외모, 질병 등의 차이는 유전자 차이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가령 어떤 사람은 살이 쪄서 고민이고 어떤 사람은 바짝 말라서 고민이다. 또 어떤 사람은 쌍꺼풀이 너무 커서 고민이고 어떤 사람은 없어서 고민이다.
인간의 DNA는 23쌍의 염색체로 이뤄졌다. 이를 연결하면 폭 1000억 분의 5㎝, 길이 152㎝가 된다. 보통 정상적인 사람의 유전체는 이 안에 30억 쌍의 염기서열로 구성돼 있다. 사람들의 유전자는 기본적으로 모두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부분이 공통적으로 같다. 하지만 각각의 사람의 모습과 행동이 다르듯, 유전자를 들여다 보면 다른 부분이 많다. 인종마다 다르고 세계인구의 개개인마다 다르다.
그런데 간혹 이 염기서열에 미세한 구조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가령 수백만 개의 염기쌍이 삽입되거나 일부 결여되거나 중복되어 나타나곤 한다. 이를테면 아데닌(A)·구아닌(G)·시토신(C)·티민(T) 등 4가지 염기로 이뤄진 DNA 염기서열 가운데 AGCT가 정상이라면 AGCC(중복), AGC(결여), TCGA(뒤집어짐) 같은 염기서열 변이가 일어난다. 문제는 이런 구조변이가 생겨 유전자가 제멋대로 행동하면 암이나 혈우병과 같은 유전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를 바로 잡아 돌연변이가 생기는 것을 막는 연구가 국내외 생명과학자들의 최대 관심거리다.
유전자 가위(Zinc Finger Nuclease)란 특정 염기서열만을 인식해 절단하도록 만들어진 인공 제한효소다. 세포 안에 있는 유전자의 특정 위치를 선별해 원하는 부위만 잘라내고 붙이는 ‘DNA 재단사’ 역할이다. 최근 생명과학자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신기술로, 인간세포를 포함한 모든 동식물세포에서 문제가 발생한 특정 유전자 일부를 잘라 중간 부분을 뒤집거나 없애 인위적으로 유전자를 교정하는 데 사용한다. 다시 말해 고장난 유전자를 유전자 가위를 사용해 절단한 후 건강한 사람의 원래 위치로 교정하는 것이다.
잘못된 DNA 부위를 유전자 가위로 자르고 그 부위에 정상 염기서열을 삽입하면, 마치 외과의사가 환자의 환부를 잘라내고 치료하는 것처럼 유전자 수술이 가능하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유전자 변이로 인한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유전자 가위는 자연에 존재하는 제한효소와 달리 더 정교하게 원하는 부위만 절단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제한효소도 DNA의 특정 염기서열을 식별하여 절단하는 효소로, 생물 세포에 침투하는 바이러스나 외래 유전자 DNA를 절단하여 제거하는 미생물의 자기방어 기구이다. 이러한 미생물에서 분리한 천연 제한효소는 유전공학에서 재조합 DNA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데, 보통 염기 6쌍을 인식해 분리(절단)한다. 반면 실제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인간배양세포에 도입한 실험에서는 14만 염기쌍에 달하는 염기서열을 뒤집을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제한효소의 성능을 업그레이드한 것이 인공 유전자 가위인 셈이다.
보통 제한효소는 시험관 수준에서 DNA를 자르고 붙이는데 쓰이는 반면 유전자 가위는 생체 수준에서 DNA를 자르고 붙이는 기술이다. 김진수 교수팀은 유전자 가위를 짧은 시간에 대량 합성하는 기술과 유전자 가위로 돌연변이가 일어난 세포와 정상 세포를 쉽게 선별하는 방법을 개발해 2011년 1월과 10월 ‘네이처 메소드’에 발표했다.
또 최근에는 유전자 가위를 통해 뒤집어진 혈우병 유전자를 다시 뒤집어서 원상 복구하는 기술을 개발해 주목을 끌었다. 혈우병은 상처가 나면 혈액이 응고되지 않아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치명적인 질환으로, 8번 혈액응고인자 유전자의 일부가 뒤집어져 혈액응고 단백질을 만들지 못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유전자 가위로 에이즈 바이러스 유전자를 조작하여, 이 바이러스가 세포 안으로 침입하지 못하게 해 감염률을 낮추려는 연구도 이러한 목표의 하나이다. 이 연구는 현재 미국에서 진행 중이다.
유전자 가위를 활용할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유전자·세포 치료제 개발, 농작물·가축·어류의 개량 등 다양한 생명공학 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한 대부분의 연구가 가축과 농작물의 개량을 위해 적용되고 있는 수준이다. 김 교수는 특히 돼지 췌도 이식을 통한 이종장기 이식을 중점으로 연구하고 있다.
궁극적 목표는 인간 질병 치료인슐린을 만드는 췌도 이식은 당뇨병 완치에 가장 근접한 기술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돼지 췌도를 우리 몸에 이식할 경우 면역거부 현상이 일어나는 게 문제였다. 따라서 돼지 세포에 있는 면역거부반응 유발 유전자를 유전자 가위로 제거하면 이종간 장기이식이 쉬워져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현재 세포 실험을 마친 단계이다. 동물 실험을 거쳐 실제 환자 임상 실험까지 가려면 최소 5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잘못된 유전자만 정확히 골라내 교정할 수 있는 확률이 지금으로는 매우 낮아 가능성을 높이는 추가 연구가 더 필요하다.
김진수 교수는 “앞으론 의과학계에서도 한류 바람이 불어 유전병을 앓는 사람들이 유전자 수술을 하러 한국에 올 것”이라며 유전자 가위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날이 하루빨리 찾아와 우리 경제에도 큰 힘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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