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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pe Economy] 유로 위기를 진단한다

[Europe Economy] 유로 위기를 진단한다


유로화가 처한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유로가 폐지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경제전문가 8명에게 들어본다



조셉 스티글리츠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유로를 보존하려는 유럽 지도자들의 결의를 의심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념적인 이유든 정치적인 이유든 간에 유로화를 보존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그 필요한 일을 할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결여됐다. 유럽 지도자들은 긴축재정 그 자체(austerity by itself)만으로는 성장(growth)도 신뢰(confidence)도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성장이 없으면 신뢰도 없으며, 부채위기는 계속 심화될 게 거의 확실하다. 지금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엄격한 재정규율(strong fiscal constraints)이 다음 위기를 막을 수 있다고 해도 현재의 위기는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울러 현재 논의되는 구조 개혁(structural reforms)이 바람직하다고 해도 그건 공급 측면의 조치(supply-side measures)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 유럽 국가 다수의 문제가 수요 부족이며, 그런 개혁을 실행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지만 시간은 위기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한마디로 국가 부도(default)의 위험을 줄이고 성장을 촉진하는 추가적인 조치가 따르지 않는다면 유럽연합의 기반이 된 정책의 기본틀(the policy framework)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시장은 이 점을 잘 안다. 신용평가 기관들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언제 정치 지도자들이 이 점을 깨닫고 조치를 취하느냐다.



자그디시 바그와티컬럼비아대 경제학 교수

자만심의 비극(a tragedy of hubris)이다. 원조를 따지자면 고대 그리스에서 디오니시아(Dionysia) 며칠 전 그 비극이 시작됐다. 디오니시아는 그리스 비극 공연으로 유명한 전통 축제를 말한다. 하지만 이 비극은 현대까지도 계속된다. 그리스는 과다한 부채(debt overhang)에서 비롯되는 큰 문제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주된 문제는 어마어마한 경상수지 적자(current deficit)였다. IMF는 그런 문제를 가진 국가에게 일시적인 조정 자금(temporary adjustment funds)을 제공하면서 고통을 완화해 주는 동시에 허리띠를 졸라매도록 강요하는 불쾌한 임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나는 EU가 자신에게도 IMF의 이런 불쾌한 임무 수행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EU는 IMF에 구조를 요청하면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했다(the EU felt that calling in the IMF was undignified). 그래서 비극이 시작됐다. 지금 그리스인들의 적은 IMF가 아니라 독일이다. 전염병은 공포에 휘말린 다른 나라에도 번졌다. 과거엔 터키가 ‘유럽의 병자(sick man of Europe)’로 불렸다. 그러다가 그리스가 그 꼴이 됐다. 이제는 EU 전체가 거의 그 지경이다.



게리 베커199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유로 위기가 아주 심각한 문제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리스, 이탈리아를 포함해 대여섯 나라에 집중돼 있다. 비교해 보면 이 나라들은 대부분 GDP 대비 부채 비율(debt-to-GDP ratios)이 가장 높지도 않고 일부를 제외하면 적자가 가장 심한 나라도 아니다. 하지만 전부 수출보다 수입이 훨씬 많은 국가였다. 한마디로 경쟁력이 없었다는 뜻이다(basically not very competitive). 그래서 국채 발행으로 돈을 끌어 쓰다 보니 부채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로버트 E 루빈 전 미 재무장관, 현 미 외교협회(CFR) 공동회장

유로존은 내재적인 결함이 있는 구조다(inherently flawed structure). 공동 통화와 공동 통화정책을 갖고 있으면서도 재정 시스템은 각 회원국마다 다르다. 그 문제가 여러 측면에서 현 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다. 더구나 다양한 유로존 국채의 상대적인 신용 가치(relative credit worthiness)를 시장이 적절히 평가하지 못했다. 그 결과 각국의 재정정책에 규율을 강요하지 않았다. 유로존 지도자들은 번번히 현실을 따라잡지 않았다(consistently behind the curve). 그들은 문제가 처음 시작됐을 때 그리스에 재정규율을 강요함으로써 위기를 피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더 넓게 보면 위기의 각 단계에서 효과적인 조치가 취해질 수 있었지만 정치적인 의지가 없었다(the political will was lacking). 현재 유럽중앙은행(ECB)의 유동성 공급(liquidity measures)이 시간을 벌어주고 있지만 성장을 촉진하는 개혁을 포함해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유로존은 일부가 탈퇴하든 완전히 해체되든 심각한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유로존의 성장과 안정 협약은 재정규율을 요구하지만 각 회원국의 주권을 뛰어넘는 효과적인 실행 메커니즘이 없다(no effective enforcement mechanism to overcome national sovereignty).



글렌 허바드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장

통화 통합(currency union)은 있는데 재정 통합(fiscal union)이 없다면 유연성(flexibility)을 가질 수 없다. 각 회원국에 미치는 충격이 똑같고 모두가 올바로 처신한다면(behave) 문제가 없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또 유럽에는 일부 국가가 도덕적인(virtuous) 반면 나머지는 그렇지 않다는 논란이 가끔 있다. 그게 전부도 아니다. 독일은 유로 덕분에 경쟁력이 크게 좋아졌다. 독일의 환율은 과소평가됐고(undervalued) 그리스는 과대평가됐다(overvalued). 이것이 경상수지 불균형(account imbalances)을 불렀다. 셋째 문제는 금융과 재정 규제(banking and financial regulation)다. 자기자본 요건(capital requirements)이 없었다. 그래서 이 부채에 은행들이 대규모로 투자했지만 이제 그 부채는 정리돼야(restructure) 한다.



로버트 먼델 199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유로 위기라기보다 유로 지역 전체의 위기다. 재정 시스템, 재정규율 부재, 재정당국의 협력 부재가 포함된다. EU의 기본틀인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분명한 가입 조건(clear-cut conditions)을 명시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조건에 맞지 않는 국가들을 받아들였다(Countries were given a pass). 이탈리아와 그리스가 대표적이다. 조건은 GDP 대비 부채 비율이 60%이지만 그들이 유로존에 가입했을 때 부채 비율은 120% 또는 110%였다. 가입 자체는 문제가 없을지 모른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해진 기간에 부채 비율을 줄여야 한다는 강제가 없었다는 점이다. 재정규율 이행 측면에서 완전히 실패했다(a big flop in carrying through the fiscal discipline). 유럽의 성장과 안정 협약도 그에 힘을 실어주는 권위가 없다. 가장 크고 가장 안정된 회원국인 독일조차 2002년 그 협약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유로가 사라진다면 유럽에 치명적이겠지만 나머지 세계에도 큰 악재다. 특히 미국과 북미에 끔찍한 재앙(a terrible calamity)이 된다. 강한 유럽(유로는 실제로 유럽을 더 강하고 더 단결된 연합으로 만들었다)을 좋아하지 않는 일부 국가들은 이득을 보리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 생각엔 오산이다.



요제프 아커만도이체방크 CEO

유로 통화 자체의 위기가 아니라 유로존의 일부 국가에서 일어난 국가부채의 위기(a sovereign-debt crisis)다. 그러나 이 위기가 신속히 해결되지 않을 경우 공동 통화의 신뢰가 심하게 훼손될 수 있다. 따라서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 비슷한 위기의 재발을 막으려면 지속가능하고 신뢰할 만한 예산 건전화 노력(budget-consolidation efforts), 국가 차원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 개혁(structural reforms), 유럽 전체 차원의 제도 개혁(institutional reforms)이 필요하다.

순전히 가정이지만(purely hypothetical question) 만약 유로존이 해체된다면 유럽, 그리고 (유럽이 여전히 세계 최대 경제블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세계경제까지 깊은 경기후퇴(deep recession)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아울러 세계에서 유럽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독립성과 영향력도 위태로워진다.

그러나 국가부채 위기는 유로존의 현행 지배구조(governance structure)가 엄격하지도 효과적이지도 않다(lacks rigor and effectiveness)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유럽의 경제·통화 동맹(Economic and Monetary Union)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려면 앞으로 모든 재정정책 분야에서 회원국 정부와 의회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재량권(discretionary room for maneuver)을 제한해야 한다. 통화 동맹을 개편해 애초에 확립하지 못한 제도적 구조(institutional architecture)를 갖춰야 한다.



대니 로드릭하버드대 국제정치경제학 교수

유럽은 통합 과정의 중간 단계에서 발목이 잡혔다(got caught halfway in its integration process). 통화 동맹(monetary union)은 더 완벽한 재정·정치 동맹(a fuller fiscal and political union)으로 가는 디딤돌(stepping stone)이었다. 아니 그래야 마땅했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유로존의 지배적인 구조가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후 위기가 실수로 더 악화됐다. 특히 독일이 긴축정책을 고집하고(Germany’s insistence on austerity policies) 유럽중앙은행(ECB)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나는 유로존을 모험할 만한 가치가 있는(worth it as a gamble)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다. 더 완벽한 통합을 목표로 한 장기적인 전략의 일환으로서 말이다(as part of a long-term strategy of fuller integration). 문제는 나를 포함해 그 누구도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유로존이 미국의 금융위기 여파에 휩쓸리지 않았다면(if it had not been hit with the aftermath of the U.S. financial crisis) 수십 년 동안은 문제가 없었을 듯하다.

[As told to R. M. SCHNEIDERMAN, ROBERT VERGER, MAC MARGOLIS, and MIKE GIGLIO

번역 이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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