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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의 파수꾼

세계경제의 파수꾼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IMF 총재로서 유럽과 미국을 제2의 대공황에 이르는 벼랑 끝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

1월 13일 금요일, 워싱턴 DC 국제통화기금(IMF)에 아침이 음울하게 밝아왔다(Friday the 13th of January dawned grim at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in Washington, D.C.). 대서양을 건너 날아든 소식은 요즘 흔히 그렇듯 닥쳐오는 허리케인처럼 재앙의 냄새를 물씬 풍겼다(brought the smell of disaster like an approaching hurricane).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9개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됐다. 거의 파산한 그리스를 구제하려는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졌거나 아예 없던 일로 됐다. 아직 어느 쪽인지 분명하지는 않았다.

그날 아침 회의에서 IMF 이사들은 유럽이 금융붕괴(financial implosion)를 막는 데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유럽의 금융이 무너지면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미국의 경기회복이 완전히 사그라지고(could suck the life out of America’s anemic recovery), 서방 경제가 다시금 경기후퇴나 더 심한 곤경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IMF 이사회 회의실 벽에는 역대 IMF 총재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모두 남자였다. 지난해 5월 성추문 와중에 사임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총재의 초상화는 아직 걸리지 않았다. 그의 후임으로 지난해 여름부터 IMF 총재를 맡아온 크리스틴 라가르드 전 프랑스 경제재무장관은 타원형으로 배열된 좌석의 맨 윗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핵심참모 중 한 명이 187개국의 대표 24명에게 전하는 암울한 소식을 차분히 들었다. 곳곳에 안테나를 가진 그 참모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했다(told what the whole truth is). 라가르드는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Good, she thought). 그녀의 관점에서는 바로 그런 게 건설적인 회의였다. “진실을 전하는 게 우리의 임무(Telling truth is our job)”라고 그녀가 말했다. 두 번째 금융붕괴를 막을 시간은 아직 있다고 그녀는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이미 라가르드의 마음은 이번주(22일) 베를린에서 열릴 회의에 가 있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유럽, 미국, 중국, 그리고 나머지 국가가 힘을 합쳐 세계경제 시스템을 안정시키는 더 나은 방법을 찾지 못하면 끔찍한 결과를 각오해야 한다는 경고를 할 생각이다.

IMF에선 누구도 ‘세계적 불황(global depression)’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결정적인 순간(defining moment)’ 또는 ‘1930년대의 순간(1930s moment)’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모두가 무슨 뜻인지 안다. 대규모 실업(massive job losses), 정정 불안(political unrest), 혼돈(chaos)… 현재 위기의 진원지(epicenter)는 유럽이지만 IMF 분석가들은 미국도 예의주시한다. 그들은 청하지 않아도 미국 주택 소유자들의 담보대출 부채(mortgage debts) 부담을 줄이는 방법을 조언하고[IMF는 은행의 부채 평가절하(bank write-downs)를 제안한다], 당쟁으로 세계경제에 잇따른 충격을 입힌 미국 의회의 교착상태(partisan impasse)를 비판한다.

IMF는 위기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 대가가 크고, 특히 미국이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 IMF의 목표 중 하나는 ‘세계 방화벽(global firewall)’ 건설이다. 위태로운 금융 시스템을 보호할 목적으로 조성되는 약 1조 달러의 기금을 말한다. 현재 IMF가 동원 가능한 기금의 거의 세 배이지만 여러 전문가들에 따르면 그 정도로도 충분치 않을지 모른다. 라가르드는 미국이 그 구상을 지지하리라는 일반적인 낙관론을 견지하지만 미국이 현금 기여(cash contributions)를 하리라 내다보는 관측통은 거의 없다. 미국 재무부의 한 관리는 최근 “미국은 IMF를 위한 추가적인 자금을 조달할 의사가 없다(the U.S. has no intention to seek additional resources for the IMF)”고 잘라 말했다.

라가르드는 뉴스위크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세계가 계속 위험을 무시할 경우 어떻게 될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is blunt about). “신뢰 상실(loss of confidence)이 온다. 신뢰 상실은 투자 결정, 고용 창출, 무역 등 모든 면에서 미국을 포함해 세계 전체에 타격을 준다. 우리가 그런 타격에 저항할 수 있도록 완충제(buffers)와 방어벽(defenses)과 준비금(reserves)을 마련해야 한다.”

사실 역대 IMF 총재들은 거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다(virtually anonymous). 그러나 라가르드는 세계경제를 보호하는 ‘철의 여인(the iron lady of the global economy)’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the woman of the moment)으로 부상했다. 그녀는 경제 전문가가 아니며, 공직에 선출된 적도 없다. 라가르드와 가까이서 일한 사람들에 따르면 그녀의 가장 훌륭한 기술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평가하고, 강한 팀을 꾸려, 어려운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는 능력이다(to get the best out of a tough situation). “그녀는 결정에 도달하기 전에는 절대 회의장을 떠나지 않는다(You don’t leave the room until a decision has been reached)”고

프랑스 재무부에서 참모를 지낸 한 인사가 말했다.

지금 같은 포스트페미니즘 시대에는 세계 곳곳에서 여성들이 자주 CEO나 총리,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라가르드는 여성이라는 사실 때문이나, 또 여성임에도 불구하고(because of their gender, nor in spite of it) 그런 자리에 오른 지도자가 아니다. “그녀가 IMF 총재라는 사실과 여성이라는 사실은 별개의 사안(She is the managing director of the IMF and she is a woman)”이라고 프랑스 언론인 길 들라퐁이 말했다(금융붕괴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공동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우아함을 즐기는 모습을 쑥스러워하기는커녕 어느 정도 과시하고 싶어 한다(even a little ostentatious).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프랑스 재무장관 시절 그녀의 출장 일정에는 가끔 그냥 ‘스톤(stone)’이라고만 적힌 항목이 있었다. 보석 쇼핑을 위해 비워둔 막간 일정이었다(interlude put aside for jewelry shopping). 하지만 그녀에게 더 중요한 자질이 있다. 화합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대인관계의 미묘한 면(social nuance)을 직감으로 파악하는 능력이다.

스트로스칸 전임 총재의 성추문 후 IMF에서 라가르드의 존재는 당연히 조직의 이미지 쇄신에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IMF 내부에 그보다 더 큰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다(there are deeper changes afoot at the IMF). IMF를 1년 전과 완전히 다른 조직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라가르드는 위기를 헤쳐나가는 일만 하는 게 아니다. 그녀는 IMF나 총재의 명목상 역할(titular roles)을 훨씬 넘어서는 권위를 쌓아간다. 그러면서 세계 최고 권력자의 대열로 신속히 진입했다.

한 고위 참모는 IMF를 의료생활 협동조합(health cooperative)으로 묘사한다. 회원들이 건강검진을 받고, 병을 진단 받은 사람에게는 치료가 처방되며, 나머지 사람들은 공동으로 그 비용을 댄다. 원칙 자체는 나무랄 데가 없이 훌륭하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대개 정부는 진단이 틀렸다며 거부하고, 국민은 치료[주로 고통스러운 긴축정책이 포함된다(often involves painful austerity)]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우리를 장의사처럼 검은 정장 차림에 무거운 서류가방을 든 사람들로 생각한다(People thought of us as men in dark suits with heavy briefcases who looked like undertakers)”고 라가르드 가까이서 일하는 한 여성이 말했다. 다른 참모는 IMF가 과거에는 “아침식사로 아기들을 잡아먹는 기관(the institution that ate babies for breakfast)”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부유한 서방국가도 언젠가는 IMF가 처방한 약을 복용해야 한다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자금을 공여했을 뿐 받지는 않았다. 그들은 지시를 내렸고, 그 지시를 자신은 따를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가 2008년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21세기에는 어떤 나라도 경제 전염병에서 격리될 수 없다(no economy can be quarantined)는 점이 분명해졌다. 이제 IMF는 유럽 정부들, 심지어 당쟁을 벌이는 미국 의회에도 자신들이 처방한 약을 먹도록 강요하는 일종의 ‘집행자(enforcer)’ 역할을 자임한다.

현실에서 IMF가 회원국의 협조를 받는 방식은 은근한 압력을 통한 설득보다는 강압에 가깝다(more about jawboning than arm-twisting). 그 과정에서 라가르드는 IMF 총재라는 직책만큼이나 자신의 개성이 갖는 힘에 의존한다. “물론 라가르드 총재도 늘 숫자를 이야기한다”고 네마트 샤피크 IMF 부총재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대인관계, 해당 문제와 관련된 사람들의 성격을 직감적으로 파악한다(very intuitive about the relationships and the people involved in these issues). 그런 능력 덕분에 우리 영향력이 더 커진다.”

이번주 IMF는 2012년 경제전망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세계 전체(심지어 호황을 구가하는 인도와 중국도 포함)의 성장둔화를 예측할 게 확실하다. IMF의 자매기관인 세계은행도 유럽의 경기후퇴(recession), 미국과 일본의 준경기침체(near-stagnation), 나머지 거의 모든 국가의 성장둔화(growth slowing down)를 내다봤다. 이런 정체상태에서 탈출구를 만들기 위해 라가르드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 25일부터)에서 자신의 메시지를 전할 계획이다. 그 다음 1월 30일 EU 본부(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럽 정상회의에서도 같은 메시지를 전할 생각이다. 그 정상회의에서 유럽의 대통령과 총리들은 라가르드를 자신들과 동격으로 맞이할 것이다.

라가르드는 워싱턴의 천장 높은 집무실에 앉아 지난해 7월 IMF 총재 자격으로 참석한 첫 유럽 정상회의를 돌이키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국가 수반들이 가득한 방에 걸어 들어가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같은 의제를 논하고 내 생각을 말하고 건의했다. 말하자면 ‘동급인 사람들(peers)’과 대화를 한 셈이다. 아주 흥미로웠다. 이전에 내 보스였던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갑자기 나와 지위가 같아졌다.” 그녀는 너무 재미있어 거의 소리를 내어 웃었다. 라가르드의 자질 중 느긋한 아이러니 감각 역시 빼놓을 수 없다(Not the least of Lagarde’s qualities is her relaxed sense of irony).

어떻게 그런 힘을 갖게 됐을까? 그 과정은 장애물을 뛰어넘는 방법을 아는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위기 자체의 비화(inside story)에 속하기도 한다. 한 IMF 직원은 “그녀는 태풍의 눈에서 위기를 관리했다(She has seen it from the eye of the storm)”고 말했다. 56세인 라가르드는 세간의 이목을 끄는 높은 자리(high-profile post)를 옮겨 다니면서 ‘여성 최초의...’라는 수식어를 너무도 자주 들었기 때문에 그녀의 개략적인 삶은 잘 알려졌다. 프랑스 르아브르에서 학자인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미국 매릴랜드주 일류 여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했으며, 같은 해인 1974년 미국 의회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그녀는 1981년 미국 법률회사 베이커 앤 매켄지의 파리 지사에서 변호사로 경력을 시작했다. 1999년 그녀는 같은 회사에서 전세계 임원을 이끄는 첫 여성 회장에 올랐다. 2007년 사르코지 대통령은 그녀를 프랑스의 경제재무 장관으로 임명했다. 역시 프랑스 여성 최초였다. 그러나 그런 참신함(novelty) 때문에 명성을 떨치는 건 아니다. 라가르드는 시대의 위기에 의해 만들어지는(who are created by the crises of the times) 지도자에 속한다.

2008년 9월 미국 금융회사 리먼 브러더스가 부도 위기에 빠지자 부시 행정부는 그 대기업을 그냥 파산시켰다(Bush administration let it implode). 라가르드는 다른 유럽인처럼 그 결정에 놀랐고 상당한 배신감까지 가졌다(felt more than a little betrayed). 그 직후 그녀는 부시가 그해의 미국 대선을 의식해 그런 거의 치명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불만을 표했다. 우연히도 당시 라가르드는 미국을 가장 잘 이해하는(with the most American touch) 프랑스 장관이었다. 그녀는 나무랄 데 없는 영어를 구사했고(She spoke English impeccably), 뉴욕과 워싱턴의 고위급 인사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가 꼭 필요한 인물이 됐다(Suddenly she was indispensable).

라가르드와 유럽 각국의 재무장관들은 밤낮 없이 일하며(시장이 개장되기 전에 조치를 취하는 게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특히 밤에 일을 많이 했다) 유럽 은행들을 구하려고 애썼다. 그녀는 종종 프랑스 재무부 사무실에서, 그리고 센강이 내려다 보이는 관저 아파트에서 잠을 잤고, 한번은 침실 실내화(bedroom slippers)를 신은 채 아침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2009년 여름이 되자 위기의 최악 상황은 종료된 듯했다. 하지만 더 광범위한 경제 불안이 찾아 들기 시작했다(the broader economic malaise started settling in). 곧 그리스의 신임 정부는 재정 적자가 공식 장부상의 거의 두 배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장부가 너무도 심하게 조작돼 있었다(The books had been cooked to an extraordinary degree). 투자자들이 그리스에 신뢰를 잃으면서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에서 새로운 위기가 시작됐다. 프랑스와 독일이 황급히 구제금융안을 얽어냈지만(cobbled together bailout packages) 투자자들은 적자에 허덕이는 유럽 국가들의 부채에 등을 돌렸다.

2010년 10월 프랑스 휴양지 도빌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은행, 헤지펀드 등 국채를 보유한 민간 금융사들이 그리스를 비롯해 위태로운 유럽국가를 구제하기 위해 대규모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가능성을 논의했다. 결국 그리스 재정을 훨씬 엄격하게 감독하는 방안(much tighter oversight)이 채택됐다. EU 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ECB), IMF가 정기적인 점검(regular checkups)을 하기로 했다.

그로써 유럽의 국가부채(sovereign debt)가 더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도빌 정상회담을 위기 해법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기 시작한 순간으로(as the moment when solutions to the crisis began to seem almost impossible) 묘사했다.

라가르드는 도빌 회담에 참석하지 않았다.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그곳에서 합의된 거래와 자신은 상관 없다며 거리를 두었다(she distances herself from the deal struck there). 감탄 반 빈정거림 반(with an apparent mixture of admiration and irony)으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지도자들은 조언이나 조언가, 수많은 공무원의 배경 작업이 있든 없든 영향이 큰 결정을 얼마든지 내릴 수 있다. 그날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 타협에 나는 참여하지도 않았고, 타협안을 준비하지도 않았다.”

2011년 5월 15일 일요일 이른 아침, 라가르드는 남자친구인 사비에르 지오칸티와 잠시 휴가를 보내는 동안 속보(news alert)를 봤다. 스트로스칸 IMF 총재가 뉴욕에서 호텔 여종업원 성폭행 기도 혐의로 구속됐다는 소식이었다. 그 소식이 알려진 순간부터 스트로스칸의 사임은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실제로 며칠 뒤 그가 사임했다.

사실 스트로스칸이 구속되기 전부터 IMF에선 그의 후임 자리를 두고 막후에서 치열한 경쟁이 이미 시작됐다. 그가 6월이 되면 프랑스 대선 출마를 발표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스트로스칸이 구속되기 바로 이틀 전 라가르드는 런던에서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British Chancellor of the Exchequer)과 만찬을 가졌다. 오스본은 그녀에게 IMF 총재 자리를 원한다면 영국이 밀어줄 용의가 있다(if she wanted the IMF post, Britain would back her)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그가 그 생각을 내 머리에 심었다(Actually, George put it in my mind)”고 라가르드가 말했다. “그가 그 문제를 미리 생각한 게 틀림없다(It was something that George had thought about, that’s for sure).”

스트로스칸의 사임이 확정되면서 후임자 경쟁이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라가르드는 메르켈 독일 총리의 지지를 확보했다. 두 사람은 성을 빼고 이름만 부를 정도(on a first-name basis)로 친했다. “그들은 서로 믿는다”고 한 IMF 직원이 말했다. “서로 말이 통한다(they speak the same language). 두 사람 다 명료함을 좋아한다(both of them like clarity).”

그러나 한가지 문제(there was a hitch)가 있었다. 라가르드는 프랑스에서 각광 받는 장관이었기 때문에 사르코지는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그녀를 내보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내 생각엔 사르코지가 크게 반기지는 않았다(I think Sarkozy was not over the moon)”고 라가르드가 말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메르켈 등 여러 수반들이 그를 설득한 듯하다.” 라가르드는 몇 주에 걸쳐 막강한 여러 신흥경제국(유럽인이 아닌 인물을 선호했다)의 지지를 확보한 뒤에야 IMF 총재에 임명됐다.

그녀가 IMF의 운영을 떠맡았을 때 IMF는 이미 큰 변신을 겪고 있었다. 2007년만 해도 IMF는 빈사상태(moribund)였다. 한 고참 직원은 이렇게 돌이켰다. “이곳 사람들은 ‘우리가 도대체 여기 왜 있나(What are we here for)?’라고 자문하곤 했다.” 그러나 2008년 세계를 휩쓰는 금융위기가 터지자 스트로스칸은 IMF를 세계의 중심무대로 옮겨놓는 데 성공했다. 라가르드의 부상 즈음, 유럽 지도자들은 이전에는 생각도 못하던 개념을 받아들였다. IMF가 그리스의 엄격한 재정지침 준수를 감독하도록 허용하고, 도를 벗어난 국채 투기(runaway speculation in government bonds)에서 각국 정부를 보호하는 ‘방화벽’ 역할을 떠맡는 일 말이다.

그러나 라가르드의 IMF 운영 방식은 스트로스칸과 사뭇 달랐다. 그녀가 IMF 이사 24명과 처음 만난 자리는 약간 어색했다. 그런 회의는 늘 의례화되는(ritualized) 경향이 있다. 회의 참석 경험이 많은 한 여성은 “가부키(歌舞伎: 일본 전통극) 같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라가르드의 호칭 문제도 있었다. 체어맨(Chairman)? 체어우먼(Chairwoman)? 체어(Chair)? 라가르드는 ‘마담 체어맨(Madame Chairman)’으로 낙착을 지었다.

“성별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내 운영 방식은 좀 더 포괄적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I don’t know if it’s male versus female, but I am told my management style is more inclusive)”고 라가르드가 말했다. 팀의 견해를 모으고, 합의적인 접근법(consensual approach)을 택하기 때문인 듯하다. “합의를 도출할 때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일단 합의가 이뤄지면 그 의제를 실행하도록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결단력이 없어 보인다고 해도 나는 ‘내 뜻이 이러하니 못 따르겠다면 떠나라(this is my way or the highway)’는 식으로 일하지 않는다”고 라가르드가 말했다. “궁극적으로는 한가지 타협점(a compromise)과 공감대(a common platform)를 찾아야 하지만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참여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질은 제쳐둔다(leave aside the bastards). 난 그런 사람과는 상종하지 않는다. 거짓말하고, 속이고, 독단적으로 행동하고(not with the group), 기생충 같은 사람(behave like parasites) 말이다. 난 그런 사람을 절대 참지 못한다(That, I can’t stand).”

라가르드 곁에서 일하는 고참 IMF 직원은 “우리가 가장 어려울 때 그녀가 들어왔다(she stepped in at the most difficult time)”고 말했다. “이처럼 어려운 적이 없었다(I’ve never seen it this bad).” 지난해 7월 유럽 정상회의에서 라가르드는 유럽 부채위기가 거의 절망적이라며 심각성을 강조했다. “문제의 심각성에 그들이 눈을 뜨도록 만든 사람이 라가르드였다(She was the one who opened their eyes to the magnitude of the problem)”고 그 고참 직원이 말했다.

라가르드는 지난해 8월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연차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그녀와 남자친구 지오칸티는 높은 그랜드티턴산 아래의 긴 산책로를 걸었다. 너무 멀어 그들은 중간에서 길을 잃었다. 그런 해프닝에도 불구하고 라가르드는 유럽 은행들이 이 위기를 견딜 만한 충분한 자금을 갖고 있지 않다고 진실을 말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 일로 그녀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라는 확고한 명성을 굳혔다(she established her truth-telling reputation with a bang)”고 한 IMF 동료가 말했다.

그러나 유럽 경제의 하늘은 계속 어두워만 갔다. 지난해 11월 게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는 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새로운 긴축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이겠다(put new austerity measures to a referendum)고 폭탄선언을 했다. 사르코지와 메르켈은 파판드레우에게 유로존에 남아 있을지 탈퇴할지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칫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라가르드는 일부 유럽 지도자들과 함께 막후에서 파판드레우에게 국민투표 결정을 철회하라고 압박을 가했다. 그녀의 참모들은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완전히 겁에 질려 칸을 돌아다녔다”고 한 참모가 돌이켰다. “그때 난 어쩔 줄 몰랐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단이 된 1914년의 사라예보처럼 느껴졌다. 이 작은 사건이 파멸을 부를 수 있는(this weird small thing could trigger Armageddon) 상황이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의 문제도 있었다. 그는 매춘부 스캔들과 방탕한 생활로 라가르드가 말한 ‘저질’에 딱 들어맞았다. 그녀는 이렇게 돌이켰다. “그가 기자회견에서 식당들이 붐비고, 비행기표가 매진되고, 상황이 좋기 때문에 이탈리아에는 위기가 없다고 말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까? 그는 자기 나라 앞에 놓인 위험을 몰랐다(I don’t think he understood the risks his country was headed towards).”

몇 주 안 가 파판드레우와 베를루스코니는 총리직을 사임했고 적어도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할 수 있는 기술관료들(technocrats)이 나라 운영을 맡았다. 칸에서 어쩔 줄 모를 정도로 겁에 질렸던 그 IMF 참모는 이렇게 돌이켰다. “우리는 어렵사리 요정을 병 속에 다시 집어 넣었다(We put the genie back in the bottle). 하지만 유럽 정상회의 때마다 우리는 위태롭게 휘청거린다.”

다음 정상회의가 열리기 전에 라가르드는 자신의 경고가 효과를 발휘해 유럽과 여타 세계가 정상궤도에 들어서기(back on track)를 고대한다. 공포를 조장할 의도가 아니다(Her intention is not to instill fear). 그녀 없이도 공포를 불러일으킬 일은 많다. 다만 그녀는 세계경제가 약간의 안정(with some modicum of stability)을 되찾아 전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싶어한다. 그러려면 더 강한 성장이 필요하고, 어려운 나라들을 더 잘 보호해야 하고, 통화·재정 정책에서 유럽이 하나로 뭉쳐 더 견고한 통합을 이뤄야 한다(지난 12월 영국을 제외한 EU 26개국 정상들은 통화정책뿐 아니라 재정정책까지 통합하는 내용의 새로운 재정협약 구상에 합의했다).

“그게 유럽이 가야 할 길(That’s the European way)”이라고 한 독일 외교관이 말했다. “대개는 위기가 닥쳐야 그쪽으로 움직인다. 늦었지만 결국 그렇게 된다(It happens late, but it does happen).” 그러나 올리비에 블랑샤르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상당히 비판적이다. 약속은 잔뜩 해놓고 실행은 별로 하지 않는(promise a lot and deliver much less) 정상회의가 시장을 더 어지럽히고 풀어야 할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든다고 그는 말했다.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 보다는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게 낫다’는 속담이 언제나 적용되는 건 아니다(the proverb, ‘Better to have tried and failed, than not to have tried at all,’ does not always apply).”

한편 미국의 경우 라가르드는 세제와 지출 문제를 둘러싼 의회의 논의가 ‘한 정책은 좋고 다른 정책은 나쁘다’는 마니교식 이분법(the Manichaean realm where one policy is considered good, another evil)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한다. 블량샤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장 자체가 ‘정신분열(schizophrenic)’ 증상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긴축 정책과 부채 감축을 환영하면서도 그 정책이 성장둔화를 가져오면 깜짝 놀라 거부반응을 일으키기(react with consternation when that leads to slower growth) 때문이다.

라가르드가 계속 되풀이하는 단어는 ‘신뢰(confidence)’다. 신뢰가 없으면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신뢰는 지도력에서 나온다. 그녀는 바로 그 지도력을 허튼소리를 용납치 않는 자신의 고유한 방식대로(in her no-nonsense way) 발휘하려고 애쓴다. IMF만이 아니라 전세계를 위해서 말이다.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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