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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 전남 여수] 차지고 씹을수록 단맛 나는 겨울 민어

[Travel : 전남 여수] 차지고 씹을수록 단맛 나는 겨울 민어

민어는 ‘여름 민어’라는 말이 익숙할 만큼 여름 횟감으로 인기가 많다. ‘복날에 민어탕’도 마찬가지다. 옛날 양반들은 개고기나 삼계탕 대신 고급 어종인 민어로 탕을 끓여 복다림을 했다고 한다. 항간에서는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라며 일축하지만 사람들이 민어를 여름에 먹는 고급 횟감으로 생각하는 건 분명하다.

‘여름 민어’ 선입견이 깨진 것은 2년 전 겨울, 전남 여수를 방문했을 때다. 겨울 삼치를 취재하러 간 어느 허름한 횟집, 길이 1m가 넘는 거대한 삼치를 바다 사내 네댓 명과 어울려 해치워갈 무렵 한 사내가 “아짐, 민어 좀 썰어와 보쇼”라고 식당 아주머니를 다그쳤다.

한겨울에 민어라. 여수 아낙은 냉장실에 얼린 듯 만듯한 선어 상태의 민어를 썰어 접시에 담아 왔다. 선홍빛이 도는 민어를 푸짐하게 썬 횟감에 이어 살짝 데친 민어 껍데기, 그리고 냉장실에서 쪼그라들어 끈적끈적할 정도로 착착 감기는 민어 부레까지. 한겨울에 먹는 선선한 민어 선어는 별미였다. 한여름 뱃전에서 낚시로 낚은 놈을 썰어먹는 활어의 식감과는 확연히 달랐다. 금방 잡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생 쇠고기 한 점을 입 안에 넣고 씹을 때의 맛이다. 또 흑산도에서 갓 올라온 삭히지 않은 생 홍어의 살점을 씹을 때의 식감과 비슷하다. 차지고 부드럽고 씹을수록 달다.



최고급 횟감으로 인기여수 사내들은 진귀한 횟감을 놓고 서로 자랑하느라 안달이 났다. “민어는 겨울이 제 맛이지, 뭘 모르는 사람들이 여름 알배기 민어를 최고라고 하지.” “알 밴 조기 알배기 민어는 알을 쳐주는 것이지 횟감을 쳐 준당가. 알을 배면 살이 알로 가지 몸통으로 가것능가.” “암, 고기는 알을 배면 맛이 없지. 알을 품기 전 살이 기름지고 찰진 법이여.” 제법 근거 있는 소리다.

민어는 겨울철에 더 많이 잡히는 어종이다. 국립수산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2011년 1월에 잡힌 민어는 709t, 연간 어획량 중 최고다. 같은 해 7월에 잡힌 민어는 307t으로 1월 어획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2010년 11월부터 2월까지 겨울에 난 민어는 연간 어획량의 40%를 상회한다. 1990년대 자료는 더 재미있다. 10년 동안 한 여름이라 할 수 있는 7월에 잡힌 민어는 연간 어획량 중 5%에도 미치지 못한다. 어획량만 놓고 보면 민어는 확실히 겨울 횟감이다.

민어 암컷은 삼복이 지나면 맛과 영양이 확연히 떨어진다. 품고 있던 알을 모두 서해안 모래바닥에 쏟아내서다. 가을 민어는 다시 남해안의 깊은 바다로 들어간다. 겨울 찬 바다에 건져 올리는 민어는 다시 살이 차오른다. 여수 사람들은 “설날 전후 민어가 살이 차지고 씹을수록 단 맛이 난다”고 말한다.


겨울 민어 부레 비린내 덜해민어 부레는 별미 중 별미다. 부레는 민어 내장에 있는 지방 덩어리로 임금님 진상용이었으며 최고 스테미나 식재료로 알려져 있다. 한의학 자료를 보면 말린 부레를 약재로 썼다는 기록이 있다. 접착제가 개발되기 이전에는 아교와 부레를 섞어 쓰기도 했다. 이 부레가 부풀어 오르면 그 부력에 못 이겨 물에 둥둥 뜬 민어가 바닷가 쪽으로 밀려오는 진귀한 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겨울 선어 상태의 부레는 여름에 먹는 것보다 비린내가 덜하다.

여수 시내와 돌산 섬을 잇는 돌산대교 아래에 남쪽 바다 수산물의 보고, 국동어항단지가 있다. 부산·인천·목포에 이은 큰 어항으로 이른 아침 위판장에 가면 제법 큰 민어를 구경할 수 있다. 겨울 민어는 남해 먼바다에서 잡혀 오기 때문에 씨알이 굵은 편이다. 길이가 1m 가까이 되고 무게도 5㎏은 너끈하게 나간다. 겨울 민어는 여수 거문도·백도 너머 먼바다와 제주도 사이에서 조업하는 저인망어선에 끌려 나온다.

반면 여름철 산란을 위해 서해안 사질토를 찾는 민어는 작은 어선이나 얕은 바다에 설치된 고정식 그물에 걸려 나온다. 겨울 민어가 여름 민어와 다른 점은 암수 모두 몸매가 날씬하다는 것이다. 암놈·수놈 모두 배가 밋밋해 언뜻 봐서는 암수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요즘 민어 조황은 꾸준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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