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any] M & A로 몸집 불린 롯데 - 국내외 M & A로 사업영토 확장
[Company] M & A로 몸집 불린 롯데 - 국내외 M & A로 사업영토 확장
한·러 수교(1990) 이후 러시아에 진출한 첫 번째 국내 기업은 롯데그룹이다. 신격호(90) 롯데 총괄회장은 1992년 그룹 기획조정실(현 정책본부) 안에 해외사업본부를 만들었다. 러시아 진출을 위한 조직이었다. 1996년에는 신격호 회장의 지시로 ‘한·러 합작법인’을 세웠다. 롯데의 ‘러시아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이 발생했다. 1997년 가을, 러시아가 모라토리엄(국가채무불이행)을 선언하면서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먼저 한·러 합작법인이 위기에 몰렸다. 이 법인이 추진하던 각종 사업과 공사가 줄줄이 중단됐다. 더 큰 문제는 롯데가 당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추진하던 13만㎡ 규모의 ‘복합단지 조성계획’이었다. 그룹 내부에선 “러시아 경제가 좋지 않은 데 롯데복합단지 계획을 계속 추진해야 하느냐”는 논란이 일었다.
초콜릿부터 석유화학까지롯데는 그룹 차원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애썼다. 러시아 진출에 실패하면 롯데가 목표로 내건 해외시장 진출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컸다. 신동빈(57·당시 부회장) 회장이 해결사로 나섰다. 그는 2001년 이후 러시아에 수시로 방문했다. ‘롯데복합단지의 핵심인 백화점·호텔이 러시아에 진출했을 때 성공할 수 있겠느냐’를 직접 검토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러시아에 출장을 갈 때마다 현지 특급호텔을 바꿔가며 투숙했다.
호텔의 규모·가격·서비스를 꼼꼼하게 체크했다. 고급호텔에 오는 고객의 소비행태도 살펴봤다. 신 회장은 2006년 결단을 내렸다. “러시아 시장의 잠재력은 충분하다. 소비문화가 조성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백화점은 진출할 만하다. 특히 러시아에 있는 현지 호텔의 서비스·시설 수준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서다. 롯데호텔이 진출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롯데백화점은 2007년 러시아에 진출했다. 3년 후인 2010년 모스크바 중심가인 노브이 아르바트 거리에 롯데호텔모스크바가 문을 열었다. 아시아 호텔 브랜드 사상 최초의 러시아 입성이었다. 한때 진통을 겪었던 러시아 롯데복합단지 프로젝트도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다. 신 회장의 해외시장 개척의지가 만든 성과라는 평가가 많다.
‘젊은 롯데’ 시대가 열렸다. 롯데는 올해 2월 3일 정기인사에서 고령 CEO급 7명을 용퇴시키거나 2선으로 후퇴시켰다. 2007년 롯데백화점 사장에 오른 이철우(69) 대표는 일선에서 물러나 대외업무를 담당하는 총괄사장에 임명됐다. 후임으로 신헌(58) 롯데홈쇼핑 사장이 지휘봉을 잡았다. 5년 동안 롯데제과를 이끈 김상후(62) 사장은 용퇴했다. 김용수(54) 롯데삼강 부사장이 신임 사장에 올랐다. 신동빈 회장의 누나인 신영자(70) 롯데홈쇼핑 사장은 현업에서 물러나 롯데장학·복지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이번 인사를 통해 롯데 주요 계열사 CEO의 평균 연령은 60.8세에서 57.5세로 낮아졌다. 업계에서는 “롯데가 글로벌 경쟁에 나설 수 있는 역동적 조직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롯데그룹은 “젊고 역동적인 조직구성에 중점을 두고 역량 있는 임원을 전진배치 했다”며 인사의 의미를 밝혔다.
젊은 경영진은 첫 공식업무를 해외에서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은 이르면 2월 셋째주에 베트남·인도·미얀마 등 아시아 3~5개국을 방문한다. 신헌(롯데백화점)·김용수(롯데제과)·허수영(61) 호남석유화학 신임 사장 등 5~6명이 동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과 젊은 경영진이 방문하는 국가는 롯데가 해외사업의 거점으로 삼고 있거나 진출을 모색하는 곳이다.
증권사 M & A도 주목신 회장은 지난해 ‘2020년 매출 200조원·아시아 톱10’이라는 목표를 밝혔다. 핵심전략은 해외시장 개척, 전술은 인수합병(M & A)이다. 롯데는 초콜릿·과자에서부터 할인점·편의점·석유화학에 이르기까지 업종을 가리지 않고 해외 M&A를 진행하거나 추진하고 있다. 중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인수대상 기업의 국적도 따지지 않는다. 신 회장이 그룹경영을 실질적으로 이끌기 시작한 2004년부터 롯데가 성공한 주요 M & A 금액만 해도 7조원(인수금액 기준)이 넘는다.
롯데홈쇼핑은 2010년 7월 중국 홈쇼핑업체 ‘럭키파이’를 인수한 데 이어 현재 베트남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롯데의 모태인 식품·관광부문도 M&A를 통한 해외시장 개척을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롯데제과는 베트남 제과업체 ‘비비카(2007)’, 벨기에 명품 초콜릿 브랜드 ‘길리안(2008)’, 파키스탄 대표 제과업체 ‘콜슨(2010)’을 M & A했다.
롯데가 해외시장에만 공을 들이는 건 아니다.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실탄(자금)은 대부분 국내시장에서 조성돼서다. 롯데가 국내시장을 넓히기 위해 M & A를 노리는 기업은 약 20곳이다. 금융분야에서는 증권사 M & A가 주목된다. 증권사는 진입장벽이 낮을 뿐만 아니라 70개가 넘는 롯데 계열사를 고객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일본 노무라증권 출신인 신 회장이 금융 분야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하이마트 M & A는 관전 포인트다. 시장에선 하이마트의 유력 인수후보로 롯데를 지목하고 있다. 현금동원능력,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감안한 예상이다. 롯데는 하이마트 경영권 분쟁이 터지기 전부터 자체 가전전문점인 ‘디지털파크’ 사업을 강화하고 있었다. 롯데쇼핑은 최근 하이마트 인수를 위해 국내외 투자은행에 입찰제안요청서를 발송하고 구두로 참여 여부를 확인하는 등 자문사 선정작업에 착수했다.
롯데가 노리는 또 다른 시장도 있다. 맥주시장이다. 2004년 일본 아사히맥주와 함께 롯데아사히주류를 세운 롯데는 아사히맥주를 수입해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맥주는 아직 제조하지 못하고 있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신 회장이 “그룹의 숙원인 맥주사업에 반드시 진출하겠다”고 선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롯데칠성은 충주신사업단지에 있는 33만㎡ 규모의 부지에 7000억원을 투자해 맥주공장을 건립할 계획이다. 2015년 착공, 2017년 완공이 목표다. 이 공장이 양산체제에 들어가면 연간 50만kL의 맥주가 생산된다. 업계 관계자는 “올 초 오비맥주 M&A 포기를 선언한 롯데가 맥주시장 직접 진출을 공식화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비맥주 M & A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맥주사업을 직접 하려면 면허를 취득해야 할 뿐만 아니라 충주공장 완공이 2017년에야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신 회장은 시장상황을 지켜보면서 맥주사업 진출시기·방법을 결정하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밝혔다. 그는 올 1월 5일 대한상의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하긴 해야 하는데, 올해는 맥주사업을 시작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오비맥주·하이마트 M & A는 글쎄롯데는 2004년 이후 국내외 시장을 꾸준히 개척해 성장을 거듭했다. 그룹 매출은 2000년 12조9000억원에서 2011년 73조원(추정)으로 크게 늘었다. 지난해 계열사는 77개로 2010년보다 2.5배 늘었다. 문제는 끊임없는 국내외 시장개척이 몰고올 ‘후유증’이다. 지난해 해외매장 12개를 더 출점한 롯데마트의 해외점포 수는 중국 90개, 인도네시아 27개, 베트남 2개로 늘어났다.
외형은 몰라보게 커졌지만 일부 해외매장은 아직도 적자 상태다. 특히 2008년 출점한 롯데백화점 베이징점은 4년 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애널리스트는 “신 회장이 의욕적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있지만 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에서 손해가 계속되면 시장의 평가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롯데의 국내시장 확대전략도 걸림돌이 많다. 무엇보다 하이마트 M & A는 인수가격이 부담스럽다. 하이마트의 매각대상지분 62.5%의 시장가치는 1조10000억원이 넘는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영업권 가치까지 감안하면 하이마트의 실제 인수가격은 2조원에 이를 수 있다.
특히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이 하이마트를 팔고 또 다른 가전유통매장을 세우면 하이마트의 경쟁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디지털 가전유통업에 삼성·LG가 진출했다는 점도 롯데엔 긍정적이지 않다. 이상구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하이마트의 인수가격은 생각보다 싸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인수가격 논란이 제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롯데쇼핑은 2010년 중국 슈퍼마켓 타임스(Times)를 인수했지만 성과는 저조했다”며 “이번 하이마트 M & A도 수익모델과 재무부담을 감안하면 롯데의 기업가치에 부담이 될 전망이다”고 지적했다.
롯데의 ‘맥주사업’ 추진계획도 녹록하지 않다. 오비맥주 M & A는 높은 인수가 때문에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롯데가 맥주사업을 직접 시작하면 하이트맥주·오비맥주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유진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롯데가 맥주사업에 7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지만 하이트맥주와 오비맥주가 독점하고 있는 시장을 단기간에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특히 신제품이 시장에 안착할 때까지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롯데는 수익성 훼손 등 운영상의 리스크에 시달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윤찬 이코노미스트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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