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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영화 ‘디센던트’] 중년의 사춘기, 이 역시 지나가리라

[Culture 영화 ‘디센던트’] 중년의 사춘기, 이 역시 지나가리라

불혹. 공자는 나이 40세가 되면 ‘어떤 상황에서도 갈팡질팡하거나 미혹되지 않는 마음의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했다. 평생 마음을 갈고 닦아 온 성인군자에게도 불혹은 만만치 않은 목표였다고 하니, 미욱한 우리에겐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미션이다. 심지어 요즘 시대엔 ‘중년의 사춘기’가 화두다. 40대 중년이 되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개인적으로 안정을 이루고, 웬만한 바람에는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처럼 살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 속 40대에겐 오히려 사춘기 때보다 더 강력한 질풍노도가 찾아온다. 회사에선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에게 뒤처질까봐 고군분투하고, 경제적으로는 자녀 교육비만으로도 허리가 휘청거린다. 부부 사이의 살가운 대화는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이 가물하고,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들은 아침에 잠깐 얼굴 보는 아버지를 소 닭 보듯 하기 일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라는 자문을 던지는 중년에게 사춘기가 찾아오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사람 사는 모습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매 한가지인가보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5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이슈몰이 중인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디센던트’도 중년 가장의 사춘기를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삶은 비극과 희극의 교차로알렉산더 페인 감독은 일상의 소소한 풍경에서 유머와 감동을 길어 올리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 특히 중년 남성이 겪게 되는 삶의 소용돌이에 관심이 많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대표작으로는 잭 니콜슨 주연의 ‘어바웃 슈미트’(2002)와 폴 지아매티 주연의 ‘사이드웨이’(2004)를 들 수 있다. ‘어바웃 슈미트’는 평생 열정을 바쳐온 회사에서 하루 아침에 잘리고, 아내마저 황망하게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낸 남자의 이야기다. 모든 것을 잃었다며 자책하던 슈미트(잭 니콜슨)는 어느 날 딸로부터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만큼 ‘못난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소식을 듣는다. 마지막 남은 딸마저 얼간이에게 뺏길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결혼을 막기 위해 딸이 사는 지역으로 여행을 떠난다. 물론 슈미트가 목적을 이룰 리 없다. 또 다른 대표작 ‘사이드웨이’ 역시 ‘불혹’과는 거리가 먼 중년 남자의 좌충우돌 여행기를 그린 영화. 아내와 이혼하고 그 외로움을 와인으로 달래던 마일즈(폴 지아매티)는 결혼을 코 앞에 둔 단짝 친구와 와이너리 여행을 떠난다. 더 많은 와인과 더 많은 여자를 즐기겠다 목적에서다. 하지만 마일즈의 계획 또한 수포로 돌아간다.

원하던 목표를 이루지 못했지만, 그들은 다사다난한 여행을 통해 자신에게 닥친 중년의 사춘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선물 받는다. 2월 16일 개봉하는 ‘디센던트’도 큰 줄거리는 유사하다. 하와이 토착민의 후예이자 성공한 부동산 변호사인 맷(조지 클루니)에게 예상치 못한 비극이 찾아온다. 보트를 타던 아내가 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것. 아내를 떠나 보낼 준비를 하라는 통보를 들은 맷은 큰딸 알렉산드라에게 더 황당한 뉴스를 듣는다. 아내가 실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맷과 이혼할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은 이 붕괴 직전의 가족에게 기상천외한 여행을 제안한다. 아내의 불륜남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던 맷은 딸들과 함께 ‘불륜남 추적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 든 큰딸은 사사건건 엄마 하나 간수 못한 아버지를 책망하려 들고,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열 살짜리 작은 딸은 엄마가 잠에서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중년의 아버지는 진퇴양난이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로 불리는 조지 클루니는 이 영화에서 단 한 번도 남성적 섹시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이보다 더 조지 클루니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영화도 없었다. 깊게 패인 주름과 약간 멍한 눈동자로 딸들에게 치이는 조지 클루니는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평범한 아버지의 얼굴을 보여준다.

사랑했던 아내를 영원히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어린 딸들을 보듬고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짊어진 중년 아버지의 고독한 사춘기. ‘디센던트’는 이제야 진지하게 인생의 딜레마를 바라보게 된 중년 남자를 통해, 비극과 희극이 교차되는 인생의 맨 얼굴을 드러낸다. 인생은 모든 이가 만족할 만한 해피엔딩도 없지만 극복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새드엔딩도 없다. 예상치 못한 삶 속에서 흔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화해하면 그 또한 조용히 흘러 갈 것이다. 이것이 ‘디센던트’가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다.

조지 클루니가 출연하긴 했지만 ‘디센던트’는 할리우드에선 소위 ‘작은 영화’다. 화끈한 액션도, 극적인 이야기도 없다. 하지만 할리우드 관객과 평단은 이 영화가 전하는 따스한 위로에 반해 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지난해 11월 16일 북미 개봉한 ‘디센던트’는 쟁쟁한 블록버스터 개봉작 사이에서 첫 주 박스오피스 10위에 이름을 올렸고, 장장 3개월 동안 10위 권 안에 자리를 지키켜 ‘잔잔한 흥행’을 지속 중이다.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고, 2월 26일(미국 현지시간)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을 노리는 유력한 후보작이다. 미국 평단은 “알렉산더 페인 감독과 조지 클루니가 만나 조용하고도 우아한 가족 드라마를 탄생시켰다”며 칭찬 일색이다. 특히 남우주연상 부문은 조지 클루니의 우세가 점쳐진다. 21세기 할리우드에 무성 흑백 영화를 부활시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아티스트’의 주인공 장 뒤자르댕이 조지 클루니의 경쟁상대지만, 인지도와 기여도 면에서 조지 클루니에게 한참 밀린다는 분석이다. 과거 할리우의 ‘섹스 심벌’로 스타가 된 배우가 블록버스터를 거쳐 사회파 드라마의 얼굴로, 유려한 정치 영화의 감독으로, 이제는 전 세대의 공감을 얻는 중년의 아버지로 진화를 거듭하는 과정도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의 구미 당기기에 충분하다.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경제적 위기론이 격렬해지고 있는 이때, ‘디센던트’가 전하는 따스한 위로에 아카데미의 마음이 녹아 내릴 것이라는 분석이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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