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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WAVE k-hop] 한국 힙합의 르네상스

[KOREAN WAVE k-hop] 한국 힙합의 르네상스

“내 마음에 명중하는 운명의 화살, 힙합이란 바이러스...(중략)...너무 커져서 내 자신도 놀라. 잘 나가는 우리나라 수퍼스타도 힙합 스타일로 변신해.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모든 게 다 물거품...”

래퍼 주석이 부른 ‘힙합뮤직(피처링 가수 임정희)’의 가사처럼 요즘 한국의 힙합은 “너무 커져서” 세계가 놀랄 정도다. 빅뱅과 2NE1은 오는 3월에 열리는 일본 최대 힙합R&B 페스티벌 ‘2012 스프링 그루브’에 초대받았다. 행사 주최측은 빅뱅을 ‘세계 음악 시장에서 폭발적인 움직임을 일으킨 그룹’으로, 2NE1은 ‘세계적인 차세대 팝 아이콘’이라고 소개했다. 2NE1은 지난달 일본 아이튠즈가 뽑은 ‘2012년 가장 기대되는 신인 아티스트(Japan Sound of 2012)’ 10위 안에 들기도 했다. 래퍼 윤미래는 지난해 이기가 선정한 ‘전 세계 최고 여성 래퍼 톱 12’에 뽑혔다. 힙합 뮤지션 개리, 길, 다이나믹 듀오 등은 현재 음악뿐 아니라 예능프로그램을 통해서도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다. 직장인 백혜영(31) 씨는 “예전에는 힙합 가수들을 콘서트에 가야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TV 등으로 더 가까워져 좋다”고 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한창 ‘잘 나가던’ 힙합이 다시 인기다.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와 KBS2 ‘자유선언 토요일-불후의 명곡2’에서 경연곡들의 재해석에 힙합이 비중 있게 자주 활용된다. 편곡 전쟁이 살벌한 경연에서 랩은 단번에 관객을 사로잡는 수단이다. 잔잔한 발라드만 부르던 이소라가 힙합이 강하게 섞인 ‘주먹이 운다’로 화제를 모았고 소냐는 송창식의 애잔한 곡 ‘상아의 노래’에 힙합 그룹 지기독의 랩을 가미했다. 과거 유행곡이 힙합 버전으로 재 탄생하는 등 힙합은 더 이상 몇몇 마니아의 음악이 아니다.

미국에서 상륙한 한국의 힙합은 두 부류의 뮤지션들이 길을 냈다. 가리온, 주석, 디지, 데낄라 에딕티드 등 PC 통신문화를 통해 자생적 힙합문화를 발전시킨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다. 천리안 힙합 동아리 ‘블렉스’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견인차 역할을 했다. 다른 한 부류는 JK타이거, 테디 박, 이준 등 ‘리턴 코리아 뮤지션’이다. LA 한인 타운을 중심으로 발굴돼 한국 음악시장에 진입했다.

힙합 태동기부터 활동했던 빅사이즈는 “도대체 무슨 음악일까 궁금해 하면서 (외국 힙합을) 통째로 외웠고 물어 물어 힙합 클럽을 찾아갔다”고 한다. 당시 10대 초반이던 그가 발견한 곳은 신촌의 클럽 ‘푸른굴양식장’(이후 마스터플랜에서 긱스로 바뀜)이다. 한국 힙합의 본산지로 유명한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클럽 근처에서 합숙하며 힙합을 배웠다. 음악성향이 맞는 사람들의 가벼운 모임을 통칭하는 ‘클랜’(clan, crew 라고도 함)들은 힙합 음원들을 발표하고, 소규모 음반회사들은 이들을 발굴하고 음반을 발매하면서 힙합은 주류 음악으로 진입하게 됐다. 이때 마스터플랜은 ‘초’라는 앨범을 내기도 했다.

현재 홍대에서 힙합의 인기를 되살리자는 프로젝트 ‘백투더 나인티나인(1999년)’을 벌이는 선독 사운드는 “일부 소수가 즐기던 초창기 힙합 문화는 컴필레이션 앨범이 나오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윤미래가 활동한 그룹 업타운을 중심으로 1999년 출시된 앨범 ‘대한민국’ 시리즈는 언더 그라운드 뮤지션과 리턴 코리아 뮤지션이 함께 작업한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이 앨범에는 DJ. DOC, 길, 개리, 바비킴, 김진표, 허니패밀리, Dope Boyz 등 당대 가장 인기 있던 힙합 뮤지션들이 대거 참가했다. 총 8회 발매된 이 시리즈 앨범에 영감을 받아 힙합 가수가 된 뮤지션들도 많다.

이제 한국의 힙합도 다양성을 보인다. 정통 힙합을 고수하는가 하면 음악적 변화를 시도하면서 활로를 모색하는 힙합퍼들이 점점 늘어난다. ‘한국 힙합 K-합은 바로 이것이다’라고 딱 잘라 말할 순 없지만 정통 힙합보다는 다양한 음악 장르가 결합된 ‘크로스오버 힙합’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 흐름이기도 하다. 본래 힙합은 무엇과도 ‘섞이는’ 특징이 강하다. 댄스, 락, 펑크, 어쿠스틱 등과 쉽게 어울린다.

애초 출발도 그랬다. 최초의 랩은 1960년대 미국에서 한 클럽 디제이가 턴테이블 두 개를 놓고 LP를 틀다가 다음 곡으로 넘어가기 전에 음악 간의 틈을 메우려는 호스트 MC의 조잘거림이었다. 원래 있던 곡의 특정 부분을 떼어내 무한반복으로 부르면서 시작됐다. 여기서 독특한 사운드가 탄생하면서 사람들은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지난해 K-팝 개발을 목표로 일본연수를 다녀온 ATC 미디어 콘텐츠 김형민 전략팀장은 K-합의 ‘독특한 사운드’를 이렇게 설명했다. “최근 미국 시장에서 주목 받는 2NE1의 음악은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일렉트로닉 힙합’이다. 미국 빌보드 차트 인기곡들과 경쟁을 붙어도 촌스럽지 않다. 그 이유는 요즘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덥스텝(dub step, 테크노가 발전된 형태로 선율적 악기를 쓰지 않고 잡음이 강조된 소리를 배열)을 노래에 가미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악기의 ‘도’ 음이 아니라 기계음 ‘꿍’을 눌러서 멋있게 만드는 식이다.”

소녀시대의 ‘더보이즈(The Boys)’나 원더걸스의 ‘더 디제이 이즈 마인(The DJ is Mine)’ 등 걸그룹 K-팝도 덥스텝 분위기를 풍긴다. 일렉트로닉 힙합은 정통힙합을 하던 ‘블랙 아이드 피스’ 3집 ‘엘레펑크(Elephunk, 2003년)’에 수록된 ‘웨어 이즈 더 러브(Where Is The Love)’라는 노래에서 시작됐다.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피처링하고 이 그룹의 멤버인 윌아이엠이 프로듀서와 작곡을 맡았다. 이 곡은 전 세계 음악시장을 휩쓸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블랙 아이드피스는 빌보드 핫100차트 1위를 19주 동안 차지했을 정도로 전 세계적인 힙합그룹이다. 윌아이엠은 테디 박과 함께 2010년부터 2NE1을 프로듀싱하면서 그의 음악적 색깔이 K-팝에 힘을 실어줬다.

타이거 JK, 리쌍, 정인 등 힙합뮤지션들이 소속된 정글엔터테인먼트 조선오 대표는 지난해 12월 미국 LA 윌턴 극장에서 열린 ‘정글콘서트 in LA’에서 힙합의 한류 가능성을 확인했다. 3000여 명 관객의 열광적인 호응에 참여 가수들은 K-합의 밝은 미래를 보았다. LA 타임즈 2011년 12월 2일자 1면에는 타이거 JK 사진과 함께 ‘아시아의 랩퍼가 LA에서 포효하기 시작했다(Asian rapper set to roar across L.A.)’는 기사가 실렸다. 이 신문은 타이거 JK를 “미국, 아시아,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 래퍼”라고 소개했다. 또 LA 베벌리 힐즈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한국음악 영향을 받았고 백인과 흑인 사이에서 느낀 문화적 차이까지도 힙합을 통해 분출하는 등 독특한 시각(unique perspective)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글엔터테인먼트의 힙합콘서트를 시작으로 한국 힙합이 미국 전역에 소개되리란 전망도 덧붙였다. 조대표는 “비주류에서 주류가 되기까지 단기간에 큰 발전을 이룬 한국 힙합의 강점을 무기로 힙합 르네상스 시대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힙합 전문 연출가 김영원씨는 “미국이 선도하는 힙합산업에 진입해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래피티, 디제잉, 그리고 한국이 강세를 보이는 비보이 등 다른 힙합 문화와 함께 발전시킨다면 가능성이 있다. 지금 한류열풍은 분명 한국 힙합에도 기회다.” 그는 현재 힙합과 한국전통을 섞은 하이브리드 퍼포먼스 ‘비빔인서울’의 미국 내 공연을 기획사 사일런트 파트너와 협의 중이다. 한국 1세대 힙합 댄서 최종환 엔와이크루 단장도 “한국의 힙합이 세계화되려면 언어 제약을 넘고 우리만의 강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래퍼 UMC/UW는 “우리나라보다 더 큰 자본력과 내수 시장을 등에 업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뮤지션에게 보이지 않는 창작성을 무기로 내세웠으면서도 미국시장 진출에 실패한 일본 R&B 힙합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며 “K-팝과 K-합은 철학 기반이 없는 무자비한 속도 경영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영미음악시장에서 ‘뉴키즈온더블럭’이나 ‘테이크댓’ 등으로 출발해 수십 년 간 쌓아온 아이돌 그룹 음악문화를, 자본과 시장, 창조성은 물론 철학적 기반도 없는 우리가 단 10년 만에 따라잡기란 쉽지는 않으리라는 우려다. 우타다 히카루, 아무로 나미에, 드래곤 애쉬 등 작사, 작곡 실력을 갖춘 일본 톱 가수들도 현지 문화에 맞지 않아 성공하지 못했다. 음악인이 수도 없이 많은 미국이나 가사를 중시하는 유럽시장에서 현재의 인기를 지속하려면, 콘텐츠 자체의 창조성과 더불어 진출 시장을 정확하게 분석해야 한다.

김형민 팀장은 “아티스트가 해외에서 활동하려면 그 나라에 맞는 전략이 필요하다. 가수 비가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보아나 세븐이 음악성과 춤 실력이 있었지만 미국에서 실패한 원인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남성적인 섹시미가 트렌드인 미국에서 문화적 차이를 잡아내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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