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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꼼데가르송길 - 유럽풍 패션·문화 거리로 진화중

이태원 꼼데가르송길 - 유럽풍 패션·문화 거리로 진화중

마치 유럽에 온 듯 노천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신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가게가 촘촘히 붙어 섰는데 테라스에 얹은 작은 화분이 운치를 더한다. 성남 분당에 있는 정자동 카페거리다. 이제는 ‘청자동(청담동+정자동)’이라 불리며 전국에서 손님이 몰려들 정도로 유명한 관광지가 됐지만 2004년만 해도 주민들이 주말 농장으로 활용하던 텃밭이었다. ‘백궁지구’라 불리던 이곳은 원래 상업지구였지만 인근 서현역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면서 개발이 더뎠다. 하지만 허허벌판에 대형 주상복합이 속속 들어서면서 이곳 사잇길은 2년 사이에 유럽형 카페거리로 바뀌었다.



리움 미술관 들어선 후 발달정자동 카페거리만큼 천지개벽 한 건 아니지만 그곳과 비슷한 모습으로, 천천히 변해가는 거리도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일대의 꼼데가르송길(이하 꼼데길)이다. 꼼데길은 이태원 제일기획 삼거리부터 한강진역에 이르는 700여m 길을 말하는데 몇 년 전만 해도 이 길은 이태원 번화가가 끝나는 곳에 불과했다. 낡은 건물에 음식점이 몇 개 있는 정도였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2004년에 리움 미술관이 문을 열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며 “대기업들이 앞다퉈 투자에 나서자 개발 유망지역으로 부상했다”고 설명했다. SPC그룹은 2007년에 리움 미술관 건너편에 위치한 본사 건물을 리모델링 해서 독특한 외형의 고급 베이커리 ‘패션5’를 열었다. 인터파크가 운영하는 대형 공연장 블루스퀘어도 지난해 개관했다.

꼼데길은 제일모직이 2009년 8월에 꼼데가르송의 플래그십 스토어(대형 단독매장)를 낸 후 패션·문화의 중심거리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꼼데가르송은 일본의 여성 디자이너 레이가와 쿠보가 제작하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다. 꼼데가르송 건물의 특징은 단순히 옷을 파는 곳이 아니라는 점. 갤러리와 카페, 레스토랑 등이 공존하는 5층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인데 외형부터 눈길을 끈다. 1층에서는 차를 마시면서 옷과 신발을 구경할 수 있도록 했고 계단이 아닌 터널로 층과 층을 연결한 점도 이색적이다.

번잡한 이태원과는 달리 한적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더했다는 게 꼼데길의 특징이다. 젊은층과 외국인의 발걸음이 잦은 이태원의 유동인구를 흡수하는 동시에 인근 한남동 일대에 거주하는 부유층의 시선까지 사로잡고 있다. 거리를 둘러보면 테라스형 카페와 특색 있는 디자인의 건물이 곳곳에 자리잡았는데 이들은 수입 자동차 매장과도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아씨는 “건물 하나하나가 예술품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매력이 있다”며 “처음에는 조용해서 찾기 시작했는데 최근 이색적인 가게가 늘고 있어 볼거리도 늘었다”고 말했다.

건축가 유이화씨와 패션디자이너 박수우 부부가 운영하는 ‘비숍’이 대표적이다. 건물 입구부터 대형 레고 소년으로 디자인했고 바로 옆에는 퓨전 레스토랑 ‘비키친’을 함께 열었는데 소박하지만 운치 있다. 가구 디자이너 이종명씨도 꼼데길에 작은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쇼윈도 안으로 전시한 아기자기한 소규모 가구들은 독특한 색감으로 길 가던 사람들을 멈춰 서게 한다. 정통 유럽형 레스토랑인 ‘더 스파이스’와 미술관을 연상케 하는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도 가볼 만하다.

꼼데길의 발전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거리의 형성을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움직임이 가장 활발하다. 리움 미술관과 꼼데가르송을 연 데 이어 삼성생명과 제일모직도 건물 신축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현대카드 역시 세계적인 건축가를 초빙해 클래식 전용 공연장을 짓고 있다. 거리 개발에 뛰어든 기업만 5곳이 넘는다. 이태원 관광특구 관계자는 “예전부터 상당수의 부동산을 대기업이 소유하고 있었는데 거리의 분위기에 맞게 건물을 리모델링 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세입자들이 소규모 가게를 열면서 거리와 상권이 형성된 홍대나 가로수길 등과 다른 점이다. 자율적인 개발이 어렵다는 비판도 있지만 대기업이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워 가꾸기 때문에 경쟁력을 더 갖출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대기업이 주변 유동인구를 흡수할 수 있는 대형 건물을 지으면 또 다른 상권을 만들 수 있다는 논리다.

꼼데길이 널리 알려지면서 외국인 관광객을 비롯해 유동인구도 늘었다. 땅값과 임대료도 크게 올랐다. 3년 전 3000만~4000만원 수준이던 3.3㎡당 매매가는 8000만원에 육박한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이렇게 비싼데도 매물이 없어 못 파는 경우가 더 많다”며 “최근 들어 어느 정도 가격 형성이 끝난 듯 보이지만 대기업들이 짓는 주변 건물의 공사가 끝나면 또 한 차례 오를 듯 하다”고 말했다.



외국인 “볼 거리 부족하다” 지적도임대료 역시 크게 올랐다. 꼼데길 대로변 198.3㎡(60평) 규모의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보증금 1억원에 월세 650만원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49.5㎡(15평) 규모의 작은 소품가게를 운영하는 이모 씨는 “매달 월세를 280만원씩 내고 있다”며 “부담이 너무 커 이사를 계획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 그는 “대기업들이 땅값을 지나치게 올려놔 세입자 입장에서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며 “결국은 대규모 카페나 레스토랑을 운영할 수 있는 자금력이 있어야 이 지역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리금도 3.3㎡당 평균 400만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뜨는’ 상권으로 주목 받고 있지만 제2의 가로수길이라 하기에는 부족한 점도 눈에 띈다. 일단 주말에 비해 평일 유동인구가 너무 적어 장사하기 어렵다는 푸념이 쏟아졌다. 중국이나 일본 관광객을 상대로 노점상에서 한류 관련 기념품을 팔고 있다는 윤모씨는 “이태원 근처에서 장사를 하다 경쟁이 너무 심해 이쪽으로 넘어왔는데 여의치 않다”며 “평일에는 아예 장사를 하지 않는 게 낫다”고 말했다.

개발 속도가 더뎌 답답하다는 상인들도 있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진모씨는 “3년 전부터 뜬다는 말만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태원과 비교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말했다. 일본인 관광객 사야카씨는 “안내 책자에 나온 것처럼 근사한 길을 기대했는데 카페를 제외하곤 볼 거리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동산 관계자는 “제일모직이 짓고 있는 의류 매장과 현대카드의 클래식 전용 공연장 등이 들어서면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용산구청 도시계획과 강대양 주무관은 “디자인적 가치가 있는 건물을 짓는 것도 좋지만 인근 남산 등 주변 경관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고도제한 원칙 등을 유지하면서 꼼데길을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올해 이태원역에서 한강진역 구간에 가로수를 새로 심는 등 보도 정비를 계획하고 있는 만큼 서울의 대표적인 디자인 거리로 바꿔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장원석 이코노미스트 기자 ubiquitous8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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